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위환공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역대 위(춘추시대) 군주)] |||||| '''{{{#ece5b6 위(衛)나라 13대 국군[br]{{{+1 환공}}}[br] 桓公}}}''' |||||||||| |||| '''[[성씨|{{{#ece5b6 성}}}]]''' ||희(姬) || |||| '''[[본관|{{{#ece5b6 씨}}}]]''' ||위(衛) || |||| '''[[휘|{{{#ece5b6 휘}}}]]''' ||완(完) || |||| '''{{{#ece5b6 아버지}}}''' ||[[위장공]](衛莊公) 희양(姬陽) || || '''{{{#ece5b6 생몰 기간}}}''' ||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719년 || || '''{{{#ece5b6 재위 기간}}}''' || 음력 ||기원전 734년 ~ 기원전 719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 [[춘추시대]] [[위(춘추전국시대)|위(衛)나라]]의 13대 [[군주]]. [[위장공]]의 아들. [[위군 주우]], [[위선공]]의 형. 어머니는 대규(戴嬀). 위 장공의 명령으로인 장강(莊姜)의 손에 길러졌다. 위장공이 죽고 그 뒤를 이어 나라를 다스렸다. 그는 아우인 공자 주우(州吁)가 사치하여 면직시키자 주우는 달아났는데, 그 주우가 힘을 키워 그를 살해하고 뒤를 이었다. == 생애 == === 즉위 전 === 그는 위에 나왔듯이 [[진(춘추전국시대)|진(陳)나라]] 여자인 대규의 소생으로 태어났으며, 위 장공은 그를 아껴 본처인 제나라 여자 장강의 손에 길러졌다. 그리고 위 장공이 죽은 뒤 그 뒤를 이어 나라를 다스렸다. === 즉위 후 === 위 환공 2년(기원전 733년), 위 횐공은 아우인 공자 주우가 교만하여 횡포를 부리고 사치가 심해 그를 해고해서 주우는 위나라를 떠났다.[* 그 당시 권력을 잃는 것은 실업자가 됨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을 잃는 것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본인 뿐만이 아니라 일족이.....] 위 환공 13년(기원전 722년), [[노은공]]은 아버지 [[노혜공]]의 장례를 치렀다. 위 환공이 그 장례에 참여했다. 이때 정나라의 군주 [[정장공]]은 그 아우인 공숙 단이 반란을 일으키자 그것을 진압하니 공숙단이 패해 위(衛)나라로 달아났다. 그리고 위 환공은 그것을 빌미로 정나라를 쳤다. 그래서 정나라의 늠연을 점령했다. 그리하여 정 장공은 주천자의 군대와 괵나라 군대는 위나라 남북을 치게 하고, 주(邾)나라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주(邾)나라 군주는 노나라의 공자 예에게 사람을 보내 도움을 요청했으나 노은공이 거절했다. 결국 공자 예는 스스로 정나라, 주(邾)나라와 회맹했다. 위 환공 14년(기원전 721년), 정 장공이 위나라를 치니 공손 환은 패배했다. 위 환공 16년(기원전 719년), 2월 무신일 공자 주우는 사람을 모아 위 환공을 살해하고 위나라의 군주가 되었다. 그러나 석작이 [[진환공(규성)|진환공]](陳桓公)과 함께 주우를 죽이고 공자 진(晉)을 세우니[* 이떼 석작은 주우의 최측근이었던 아들 석후(石厚)까지 죽게끔 만들었는데 여기서 큰 일을 할 때에는 혈육의 사사로운 정을 무시한다는 뜻의 [[대의멸친]]이라는 말이 유래했다.] 그가 바로 위 선공이다. [[분류:위(衞)나라의 군주]][[분류:기원전 719년 사망]]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