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중앙산업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 기업개요 || ||||<#ffffff><:> [[파일:중앙산업 CI.svg|width=300]]|| || 정식명칭 ||중앙산업주식회사 || || 영문명칭 ||Joongang Industrial Co., Ltd. || || 설립일 ||[[1946년]] [[7월 20일]] || || 설립자 ||조성철 || || 상장유무 ||[[비상장기업]] || || 업종명 ||콘크리트 관 및 기타 구조용 콘크리트 제품 제조업 || || 법인형태 ||외부감사법인 || ||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로96길 6 ([[삼성동(강남구)|삼성동]]) || || 자본금 ||22억 7천만원 ^^(2020)^^ || || 매출액 ||41억 6백만원 ^^(2020)^^ || || 영업이익 ||4억 946만원 ^^(2020)^^ || || 당기순이익 ||1억 7천만원 ^^(2020)^^ || || 직원 수 ||33명 ^^(2020.04.06)^^ || || 링크 ||[[http://www.heights.co.kr/|웹사이트]]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콘크리트 전주 등 생산업체로, [[중앙건설]]의 모태이다. == 역사 == [[1946년]] 극우(極友) 조성철 창업주가 서울 [[태평로(서울)|태평로]]에서 창립해 초기에는 건설업을 주업으로 해왔율다. [[1950년]] 국내 최초로 건설현장에 중장비를 도입하고 [[1951년]]에는 [[제주도청]] 낙성식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눈에 들어 [[경무대]] 수리공사를 지시받는 등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52년]]에는 도급순위 1등을 차지했고, [[1953년]]에는 업계 최초로 외자를 유치받았다. 조성철 사장은 해외 각국을 순방하며 [[선진국]]의 건설기술을 차차 수입해내 같은 해에는 토목 중기계를 들이고 [[1954년]]에는 목재가공 기술을 표준화/체계화하는가 하면, [[1955년]]에는 국내 최초로 콘크리트 자재를 생산했다. 1956년에는 [[서독]] 혼네프에 해외사무소를 열었다. 1957년에는 국내 최초의 아파트[[중앙아파트]]를 시공했으며 [[1959년]]에는 국내 최초로 원자력연구소 [[원자로]] 공사까지 맡았다. 그러나 [[1960년]] [[4.19 혁명]] 후 [[허정 과도내각]] 수립 직후 조성철 사장은 부정축재자로 몰려 구속됐고, 마포형무소 수감 중 국가헌납 결의에 서명하고 8,900만 환을 내야 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후 경제재건촉진회 발기인으로 참여해 재기를 노리며 [[1962년]]에는 중앙시멘트도 세웠으나, 이미 '[[자유당]] 특권재벌'로 낙인찍힌 본사는 건설업계를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배척당했는데, 이미 [[1961년]] 4월 건설협회의 공개질의서에 대해 신문을 통해 반박했었기 때문이다. [[1962년]]에는 지면광고를 통해 국제특허 도용 및 분실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국내건설 참여 기회가 주어지지 않자 해외건설사업에 눈을 돌려 [[1967년]]에 국내 최초로 [[미국]]령 [[괌]]에 진출했고, [[1970년]] [[팔라우]]에도 진출한 후 [[1972년]] [[레바논]]에 진출해 중동건설에 손을 뻗고 이듬해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레덱 사와 주택공사 계약을 맺었으나, 사우디 공사 입찰보증신청마저 거절당해 외환은행 단기금융 부도로 회사가 기울고, 조성철 사장은 해외로 도피하기도 했다. [[1977년]] 중앙산업의 목재부가 중앙제공으로 분사되었고, [[1978년]] [[여주군]]에 [[콘크리트]] 공장을 준공하였으며, [[1980년]] 중앙산업의 건설부가 [[중앙건설]]로 분사되었다. [[1981년]] 조성철 사장 사망으로 아들 조규영이 가업을 이었고, 자회사 중앙건설에는 아파트 시공을, 본사는 아파트 시행 및 분양을 각각 맡아왔다. [[1988년]] [[경기도]] 여주공장 내에 레미콘 및 석제공장을 준공하고 [[1990년]]에는 개발부를 '중앙하이츠개발'로 분사시켰다. 한동안 건자재 사업을 중심으로 내실을 다지다가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건설업 경기가 악화되어 사세가 약화됐고, [[2014년]] 자회사 중앙건설의 [[부도]]로 같이 부도나 회생절차를 밟다가 2017년에는 이우티이씨가 인수하면서 회생절차에서 벗어나 정상화됐다. 같은 해 [[한국전력공사]]로부터 초고강도 전주 연구개발업체로 지정받은 후 [[2018년]] KEPCO Trusted Partner(KTP)까지 인정받았으며, [[2019년]]엔 국내 최초로 초고강도 전주 R&D에 성공하고 [[2021년]] 시범사업까지 개시했다. [[2022년]]엔 이우티이씨로부터 나주공장, 빛가람 토지, 용인 사옥까지 양수받았다. == 기업정신 == * 비전 >'''최고의 기술과 최상의 품질, 언제나 신뢰를 주는 기업''' * 핵심가치 >'''정직, 발전, 공헌''' == 지배구조 == [[2020년]] 12월 기준. || 주주명 || 지분율 ||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2]]]] 김평 || 49.46%||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2]]]] 이우티이씨 || 36.17%|| ||기타 || 14.38%|| == 역대 임원 == * 대표이사 * 조성철 (1946~1981) * 조규영 (1981~1992) * 조승규 (1992~2014) * 김평 (2017~2022) * 김치우 (2022~ ) * 사장 * 강정헌 (2017~ ) * 관리인 * 조승규 (2014~2017) == 자회사 목록 == 이하 회사들은 [[법정관리]] 전 관계사 목록이다. * [[중앙건설]]: [[2014년]] 부도. * 중앙제공: [[2011년]] 청산. * 중앙하이츠개발: 전북 남원 중앙하이츠콘도 운영사로, [[2000년]]에 콘도가 중앙건설에 흡수된 후 청산됨. == 참고자료 == * 한국기업흥망사 - [[공병호]] 저. 명진출판사. 1993. p125~130. [각주][[분류:대한민국의 자재 회사]][[분류:1946년 기업]]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