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최온순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 '''{{{+1 최온순}}}'''[br]'''崔溫順'''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최온순 침선장.jpg|width=100%]]}}} || || '''호''' ||여천(如泉) || ||<|2> '''출생''' ||[[1937년]] || ||[[전라북도]] [[군산시]] || || '''사망''' ||[[2023년]] [[9월 20일]] (향년 86세)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 '''직업''' ||무형문화재 || || '''학력''' ||[[이리문화양재고등학교]] || || '''가족''' ||남편 김현희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인간문화재. == 생애 == 1937년 군산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유난히 바느질을 좋아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꿈을 펼치지 못했다. 이후 22살에 결혼을 하게 됐고 시어머니에게 바느질을 배웠다. 그때부터 점차 솜씨를 인정받게 된 그녀는 옷감을 받고 주변 사람들의 옷을 만들게 됐고 어느새 바느질을 직업으로 삼게 됐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익산 노라노양재학원에서 한복을 가르치게 된 그는 처음 출전한 기능대회에서 금상을 차지하며 본격적으로 침선의 길에 들어섰다. 1997년 40여년간 해온 바느질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서민 옷을 중심으로·최온순 전통복식전’을 열고 일반인들의 생활복식을 조명해 화제가 됐다. 해당 전시를 계기로 박경자 성신여대 교수와 박성실 단국대 교수를 스승으로 모시게 된 그녀는 한국복식사, 출토 복식의 유물 복원 등을 전문적으로 배우며 작품세계를 넓혀갔다. 이후 조선시대 다양한 옷을 복원하는 데 전념해 왔으며 전라도 지방의 굴건제복(屈巾祭服)[* 상주가 상복을 입을 때 두건 위에 덧쓰는 건과 제복]을 복원, 재현해 내며 1998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22호로 선정됐다. 문화재 지정 후 정경부인 은진 송씨 당의, 덕온 공주 당의 유물 녹원삼 등 전통복식을 재현하며 전통침선의 맥을 이어온 그녀는 2014년 말 태조 이성계의 청룡포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2015년부터 본인이 만든 543점의 전통복식과 공예품 등을 전북대학교에 기증했다. == 사망 == [[2023년]] [[9월 20일]] 사망했다. [[분류:대한민국의 무형문화재]][[분류:1937년 출생]][[분류:2023년 사망]][[분류:군산시 출신 인물]]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