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치중병 (r0 버전으로 되돌리기) [목차] * 일본군을 제외한 의미의 군사 보급에 대해서는 [[병참]] 문서 참조바람. 輜重兵 (しちょうへい) == 개요 == [[일본 육군]]의 병과로, 보급 물자의 관리 및 수송 ([[병참]])을 맡은 병과. 1893년의 [[일본군/편제]]에서는 사단 총원 18,000명 중 약 7%인 1,328명을 치중병대대에 놓았다. 하사관이나 병사가 [[일본 군도]]를 사용하는 계층은 기병, [[일본 제국 육군/헌병|헌병]] 등 특수병과 본부 근무자 및 관외 거주자 뿐이었는데 이 특수병과에 치중병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 [[38식 소총]]에서 길이를 30cm 줄이고 무게가 가벼워진 38식 기병총을 많이 사용했다. 치중병 최선임 장교를 치중병감이라 했다. 1887~1897년에는 중좌, 대좌 선에서 맡았으나 그 후에는 대개 소장이었다. 태평양 전쟁 중에는 중장 선에서 맡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 육군은 치중병과를 천시했다. 당시 일본 육군에서는 [[육군대학교]]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는 것이 장군 진급에 중요했는데, 육군대학교(정원 연 50~60여명)는 기수별로 치중병과를 1명밖에 뽑지 않았다. 그래서 치중병과에서는 중장 달기가 매우 힘들었으며 소장도 치중병감이 아니고서는 거의 힘들었다. 일본 육군의 치중은 2차대전 중에도 상당부분 말에 의존하고 있었다. 자동차에 쓸 석유도 부족했고 자동차 대수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병과 학교로는 1925년 육군자동차학교 (치중병 및 기갑)가 설립되었는데 1940년 여기서 치중병과 관련 내용을 분리해서 육군치중병학교를 세웠다. 나머지 기능은 1941년 육군기갑정비학교로 개칭했다. [[분류:일본군]]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