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토요타 전쟁 (r1 버전으로 되돌리기) * 상위 문서: [[전쟁]], [[테크니컬]], ~~[[자동차 관련 정보]]~~ [목차] == 개요 == 1986~1987년에 걸쳐 일어난 [[차드]]-[[리비아]] 간의 전쟁으로 정식 명칭이 도요타 전쟁은 아니다.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en/e/ef/Chadian_soldiers_in_Toyota_pickup_truck.jpg]] '''[[구혜선|토요타에 가자!]]''' [[차드군]]이 주력 부대를 이런 식으로 굴려서 '''[[토요타]] 전쟁'''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 배경 == 배경은 사실 간단하다. 서구 열강으로부터 독립한 [[아프리카]] 국가들간의 국경선 문제. 과거 제국주의 시대 서구열강들은 인종, 부족, 언어, 문화, 지리적 경계선, 생활권 등의 요소를 깡그리 무시하고 그냥 지도에 자 대고 줄 긋는 식으로 자기들끼리 아프리카를 나눠먹었다. 그리고 2차대전 이후에 그 경계선 그대로 독립을 한 것이다. 즉 법적인 국경과 실제 사람들이 느끼는 경계선이 전혀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국경이 무의미한 [[사막]]에서는 반쯤 무시하고 넘어가면 그만이었지만 인구 밀집도가 높은 중남부 아프리카에서는 이 때문에 [[콩고 전쟁|피의]] [[르완다|융단을]] 까는 곳이 엄청나게 많다.] 이처럼 불확실한 국경 문제는 곳곳에서 문제가 일어났고, [[리비아]]와 [[차드]] 국경도 그 중의 하나였다. 특히 [[쿠데타]] 이후 [[리비아]]의 정권을 장악한 [[무아마르 알 카다피]]는 범아랍주의를 제창하며 주변국에 온갖 간섭을 하곤 했다. 더군다나 [[차드]] 북부지방은 [[우라늄]]이 많아서 짭짤한 돈줄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차드는 이런 [[갑의 횡포|리비아의 행태]]에 불만이 꽤 많았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파탄국가]] 중에서도 톱클래스를 차지하던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 발단 === 그러나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리는 없었다. 1983년, 차드에서 내전이 종식되고 신정부가 수립되며 리비아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자, 카다피는 신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차드 북부를 침공하여 점령한 뒤 파죽지세로 남하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거의 절대적인 종주국 노릇을 하던 [[프랑스]]가 전투기를 동원해 두들겨패면서[* [[2011 리비아 민주화 운동|카다피는 2011년에도 또 프랑스로부터 전투기로 존내 두들겨 맞는다.]]][* 프랑스는 지금까지도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상당한 위세를 떨치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일례로 2012년 [[말리 내전]]때도 프랑스 공군과 지상군이 투입되어 정부군과 함께 싸웠고, 2011년 [[코트디부아르]]에서 대선 불복으로 내전이 벌어졌을 때도 프랑스군이 UN [[평화유지군]]과 함께 적대 정치인의 거처를 쓸어버렸다. 참고로 말리와 코트디부아르, 차드의 공통점은 셋 다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로 치면 일제에게서 독립하고 나서 후에 [[자위대]]가 한반도에 들어와 싸우는 건데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여하튼 그렇다.] 남하는 중단되었고, 리비아의 차드 강점은 북위 16도선에 그치고 말았다. [[http://www.nytimes.com/images/2011/11/11/opinion/11borderlines-mapcx/11borderlines-mapcx-blog427.jpg]] 차드라는 글자 위의 위도선이 북위 16도선이다. 차드의 반절쯤을 떼먹은 셈이니 사실 많이 내려간거다. === 전개 === 그리고 1986년, 리비아의 차드 점령지에서 대대적인 무력봉기가 일어나자 카다피는 이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차드군]]은 영토수복을 위해 병력을 동원하면서 전쟁이 발발했다. 일단 외관상으로는 [[리비아군]]의 압도적 우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리비아군은 [[소련]]에서 수입한 [[전차]]와 [[장갑차]]도 매우 많았으며, 병력도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 [[차드군]]은 제대로 된 전차와 장갑차도 없었고, 보병을 [[토요타]] [[랜드크루저]]와 [[픽업트럭]]에 태워서 돌아다니는 판국이니 패배하는 게 당연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 절정 ===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달랐다. 차드군은 리비아군의 강력한 [[기갑]]전력에 맞서기 위해 민간차량에 [[기관총]], [[대전차미사일]], [[로켓#s-1.2|로켓포]] 같은 무기를 탑재하고, 방어판을 대는 정도의 개량을 가한 일명 [[테크니컬]]을 대거 동원했다. 그리고 테크니컬의 기동성을 이용한 치고 빠지기 전술로 리비아군을 쳐발랐다! 리비아군은 당시 각 지역의 점령지에 분산되어 있었는데 차드군은 이 점을 이용해서 격멸-기동-격멸 전술을 구사한 것이다. 게다가 [[프랑스군]]이 [[제공권]]을 장악한 상태라서 리비아군은 적의 움직임을 파악할 방법조차 없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차드군은 신출귀몰하게 [[토요타 랜드크루저]]를 타고 사막을 [[종횡무진]]하며 리비아군을 각지에서 격파했다. 차량탑승형 기동 게릴라들은 리비아 기갑부대를 강습하여 [[대전차미사일]]과 [[로켓#s-1.2|로켓포]]를 날려 궤멸시킨 뒤 다시 기동하기를 반복했는데, 소규모로 분산된 리비아군은 곳곳에서 와해되어 분산 격파당하고 보급로가 두절되었으며, 막강하다는 [[기갑]]부대는 트럭 타고 다니는 차드군 보병의 [[대전차화기]]에 파괴당하거나 패닉에 빠진 리비아군이 버리고 도망가면서 순식간에 전멸당했다. 1987년에는 아예 차드군이 총공세로 전환하여 트럭을 타고 국경을 넘더니, 리비아 남부의 공군기지 한 곳을 기습해 수비중이던 1개 여단을 제압하고, 기지에 있던 모든 전투기를 파괴해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 시점에서 사실상 [[리비아군]]은 패배한 것이었다. 그리고 차드군이 노획한 무기들은 대부분 미국, 이집트, 프랑스 등 리비아와 사이가 좋지 않은 (그리고 차드를 지원했던) 국가들로 보내졌다. 1987년 4월에는 11대의 [[L-39]] [[경공격기]]와 9대의 SF-260, 2대의 [[Mi-24]]를 노획했고, 이렇게 노획된 항공기의 대부분은 미 공군 [[C-5]]로 차드의 수도 [[은자메나]]로 옮겨졌다. 이중에서 Mi-24와 다른 곳에서 노획된 상당한 수의 구소련제 [[대전차미사일]]들은 미국과 프랑스로 보내졌다. L-39 제트훈련기 10대는 [[이집트]]가 가져가서 [[이집트군|이집트 공군]]이 운용중이다. 리비아와 적대 관계였던 미국 또한 이 전쟁을 매우 관심있게 주시했으며 1988년 6월에 마운트 호프 3(Mount Hope III) 작전을 실시해서 차드에 유기된 리비아군의 소련제 [[Mi-24]] [[공격헬기]]를 입수하고 구조와 성능을 파악하는데 성공했다. === 결말 === 이쯤되니 리비아도 더 전쟁했다간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고, 차드도 잃어버린 영토를 다 회복하고 큰 승리를 거두어 만족한 데다 리비아군이 재반격에 나설 경우에는 중과부적으로 패할 가능성이 높아 극단적으로 자극할 필요성은 없다고 생각했는지 결국 양측은 1987년 9월에 휴전협정에 조인했다. 이 전쟁으로 리비아는 무려 10,000명에 달하는 사상자와 1,000여 대에 달하는 전차 및 장갑차. 기타 차량. 그리고 30여 기의 항공기를 잃었다. 이 전쟁에 투입된 리비아군이 약 90,000명이라는 걸 감안하면 손실률 10% 이상. 반면 차드군의 사상자는 1,000명 안팎에 머물렀다. 테크니컬 특성상 한 번 맞으면 끝이지만 리비아군이 워낙 오합지졸이라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후 [[무아마르 알 카다피]]는 패전책임을 물어 군부인사들을 숙청하고 내부독재를 더 강화했으며, 전쟁에 아무런 관련이 없던 [[토요타]]는 졸지에 전쟁때문에 광고효과로 땡잡았다고 한다. 물론 카다피가 차드 침공을 단념했다고 해서 보복하는 것까지 잊지는 않았다. 나중에 차드와 갈등관계인 [[투아레그족]]을 지원했는데, 이번에는 이들이 차드군을 상대로 [[테크니컬]] 차량을 타고 정반대로 차드군을 골탕먹인 것.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사하라]]의 터줏대감인 투아레그족에 무기와 차량을 지원하니 차드군 이상으로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들 투아레그족은 현재도 건재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카다피는 지옥행 열차를 탄 지 꽤 됐지만 대신 [[수단]]의 독재자 오마르 알 바시르가 차드를 교란하기 위해 투아레그족에게 상당한 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1년]], [[리비아 내전]]에서도 시민군이 토요타 트럭을 동원해 카다피군에 맞섰으며 [[오디세이 새벽 작전|서방, 특히 미국이 방공망을 제공하고]] 카다피군을 괴롭혔고 카다피는 시민군에게 박살나기를 반복하다가 2011년 가을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서방이 개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카다피군은 전열을 정비하고 반격에 나서서 키레나이카 재정복 목전에 있었다. == 여담 == 참고로 성능 좋은 트럭에 소규모 인원이 탑승하여 종횡무진하며 적진을 들쑤셔놓는 전법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SAS]]가 북아프리카에서 사용하던 전법이다. 미군 특수부대도 [[이라크 전쟁]]과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그렇게 활동하고 있다. 물론 이 리비아-차드 전쟁에서 양측이 사용한 병력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이 전쟁 이후 트럭이 척박한 환경에서의 기동성과 각종 기관총 및 대포의 반동에도 견고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자 아프리카 [[제3세계]] 국가들과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 [[ISIS]] 등 아랍권 테러리스트들도 즐겨 쓰게 되었고 심지어 [[미군]]도 아프간의 사막지역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토요타]]제 트럭은 미국 정부가 직접 토요타 측에 해명하라는 요구까지 할 정도로 여전히 제3세계 전장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469&aid=0000094684|IS가 타는 도요타차 다 어디서 구했나?]] [[http://www.army.cz/images/id_9001_10000/9683/04.jpg?width=638]] [[http://en.valka.cz/attachments/121/1289122202_Hilux_SCV__5_.jpg?width=638]] 미군이 마개조 한 6세대 [[토요타 하이럭스]].~~조수석에 기관총이있다.... 시미라지프?~~ [[http://cdn2-b.examiner.com/sites/default/files/styles/image_content_width/hash/88/82/8882e97c994d27f50b985a862f528b21.jpg?width=638]] [[http://3.bp.blogspot.com/-71PUSOiDvbc/U-R_eXqsujI/AAAAAAAAJew/gO1r7KG5RsQ/s1600/ISIS_CIA_Convoy.jpg?width=638]] [[http://offgraun.files.wordpress.com/2015/03/isis-toyota-3.jpg?width=638]] [[이슬람 국가]] 소속 토요타 부대 14년형 하이럭스에 15년형 [[랜드크루저]]까지 섞여 있으니 미국이 의심할만 하다. 냉전시기 도시바가 구 소련에 [[CNC]]를 팔아먹은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테러단체에 트럭이 대량으로 들어간다면 누가봐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특히나 일본이 팔아먹는데는 도가 텄으니(...) [youtube(8GgrGvqYUjY)] 이에 대한 토요타 광고(?)[* 원본 광고는 [[http://youtu.be/yl0IMrI3kyk|이거]]다. --6초부터 나오는 7세대 하이럭스는 로켓 쏘다 불붙는다.--] [[분류:전쟁]] 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