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펑라이구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산둥성의 행정구역)] [[파일:중국 펑라이 4.jpg]] 등대와 신항만에서 바라본 시가지 [[파일:봉황각 중국.jpg]] [[명나라]] 대의 해군기지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봉래수성 [[파일:중국 등주.jpg]] 랜드마크인 봉래각 (蓬莱阁)에서 바라본 시가지 [목차] == 개요 == {{{+1 蓬莱区 }}} Penglai / Tengchow [[산둥성]] [[옌타이]]의 구. [[산둥 반도]]의 북쪽 끝에 위치한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그저 시내의 구로 보일 수 있으나, 옌타이 도심에서 서북쪽으로 30km 가량 떨어져 있다. 사실상 다른 도시이고, 펑라이의 관할 인구만 42만에 달한다. 옛 지명은 덩저우 (登州, 등주)로, 한국에서는 732년 [[발해-당 전쟁]] 당시 [[장문휴]]가 기습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시내의 덩저우 분지구로 남아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등주의 치소인 봉래현 (蓬萊縣)으로, 전설 속 중국 동쪽 바다에 있다고 하는 [[봉래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명나라]] 대에 봉래는 해군 기지였고, 당시 요새화된 봉래수성의 일부가 바로 봉래각 (蓬莱阁)이다. 17세기 초에는 명나라 군대의 교관 격으로 [[포르투갈]] 화포 기술자들이 봉래로 파견되기도 하였다. 이어진 [[명청교체기]]에 [[후금]]에 투항한 한족 장수 [[공유덕]]이 [[경중명]]과 함께 1632년 봉래 등주성을 점령하였고, 도중 포르투갈인[* 장교 곤잘로 테이헤이로 사망, 예수회 선교사 주앙 로드리게스는 바다에 몸을 던져 목숨 부지] 일부가 살해되었다. 이후 공유덕은 포르투갈의 [[불랑기포]]를 이용하여 래주를 공격했으나 실패하였고, 1633년 명나라 군이 등주를 수복하였다. 하지만 10여년 후 일대는 결국 [[청나라]] 령이 되었다. 그리고 19세기 [[2차 아편전쟁]] 후 체결된 [[천진 조약]]에서 봉래는 개항장으로 지정되었으나 근대적인 항구로 부적합하다 여겨져 동남쪽의 즈푸 (옌타이)가 대신 개발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봉래는 쇠퇴하여 결국 옌타이에 속한 현으로 전락했으나, 소외된 덕에 옛 성벽과 누각이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어 오늘날 AAAAA급 풍경구로 지정된 관광지를 품게 되었다. 또한 21세기 들어 옌타이의 위성도시 격으로 개발되어 40만의 인구를 지니게 되었고, [[옌타이 펑라이 국제공항]]은 옌타이보다 펑라이에 가까워 공항과의 접근성이 편리하다. 본래 옌타이시 펑라이현에 편성되어 있었으나 2020년 펑라이구로 개편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한편 같은해 산둥 반도와 [[랴오닝 반도]] 사이의 장산열도 (长山列岛)를 관장하던 창다오현 (长岛县)이 펑라이구 관할에 편입되었다. == 여담 == [[등주 담씨]]의 관향이다. [[등주]]는 이곳 말고도 [[허난성]] [[난양시]] 덩저우, [[산둥성]] [[짜오좡시]] 텅저우 등이 있지만 모두 한자가 다르다. == 갤러리 == [[파일:펑라이 중국.jpg]] [[파일:중국 펑라이 3.jpg]] [[파일:PenglaiPavilion.jpg]] [[파일:중국 봉래 1.jpg|width=600]] [[파일:중국 봉래각.jpg|width=600]] [[파일:펑라이 중국 5.jpg|width=600]] [[분류:산둥성의 시할구]][[분류:중국의 도시]]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