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평양공주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신당서)] [목차] == 개요 == 平陽公主 (? ~ 623년) [[중국]] [[당나라]]의 [[공주]]로, 초대 황제인 [[고조(당)|당고조]] 이연의 셋째 딸이다. 생모는 [[태목황후]] 두씨. 아버지를 도와 의병에 가담한 것으로 유명하다. [[구당서]]의 [[시소(당나라)|시소]] 열전과 [[신당서]]의 공주전에서 각각 평양공주에 대한 열전을 볼 수 있다. == 생애 == 평양공주는 고조와 태목황후 사이에서 태어났고, 성인이 되어 [[시소(당나라)|시소]]에게 시집을 갔다. 공주는 시소와 함께 [[수나라]]의 수도인 장안에서 살았는데, 당시 수나라 각지에서 [[양제(수)|양제]]의 거듭된 실책으로 인해 반란이 일어나자, 아버지인 고조 역시 반란에 가담하였다. 시소는 이연에게 종군하기 위해 고조의 근거지인 태원으로 가야 했는데, 이때 공주는 시소에게 지름길을 경유해서 태원으로 가도록 말해준다. 그리고 시소가 태원으로 간 사이에 공주는 호현(鄠縣)으로 가서, 가산을 털어서 군대를 모아 군대를 일으킨 아버지에게 응하였다. 당시 하반인(何潘仁)이라는 도적이 사죽원(司竹園)에서 총관을 자칭하자, 공주는 가동인 마삼보(馬三寶)를 보내 하반인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다. 공주는 뒤에 이중문(李仲文), 상선지(向善誌), 구사리(丘師利) 등 다른 도적들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아버지에게 합류하기 위해 세력을 키워나갔다. 공주는 군대를 통솔하면서 약탈을 금지하고 엄정한 법 준수를 강조하여 군율을 잡아나갔기 때문에, 공주의 군대에 많은 사람들이 귀부할 수 있었다. 고조가 [[황하]]를 건널 때, 공주는 위북에서 [[이세민]]의 군대와 합류하였고, [[수나라]]의 수도인 장안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공주는 남편인 시소와 함께 장안을 평정하였는데, 이때 군중에서는 공주가 이끄는 군대를 낭자군(娘子軍)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장안이 평정되고 [[당나라]]가 건국된 뒤에는 평양공주로 책봉되었는데 공주가 세운 군공 덕분에 공주가 받은 하사품은 다른 공주들과 남달랐다. 평양공주는 여생을 보내다가 623년에 사망하였다. 공주의 장례를 지낼 때는 고조의 의사가 반영되어 장례가 거행되었으며, 소(昭)라는 시호를 받았다. 평양공주는 시소와의 사이에서 시철위(柴哲威)와 시령무(柴令武)라는 두 아들을 낳았다. [[분류:수당시대/공주]][[분류:623년 사망]]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