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rr20240101판에서 저장되지 않은 문서입니다.자동으로 r20210301판 문서를 읽어왔습니다. 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한수길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조선 의병장]][[분류:청주 한씨]][[분류:임실군 출신 인물]][[분류:1873년 출생]][[분류:1913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 || 성명 ||한수길(韓壽吉) || || 본관 ||[[청주 한씨]] || || 생몰 ||[[1873년]] ~ [[1913년]] [[2월 7일]] || || [[출생지]] ||[[전라도]] 임실현 구고면 평지리[br](현 [[전라북도]] [[임실군]] 청웅면 구고리 평지마을)[* [[청주 한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한기수#s-1|한기수]]·[[한도수]]도 이 마을 출신이다.] || || 사망지 ||전주형무소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한수길은 1873년생이며 전라도 임실현 구고면 평지리(현 전라북도 임실군 청웅면 구고리 평지마을) 출신이다. 그는 1908년 음력 1월 15일 [[이석용(독립운동가)|이석용]]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하여 이석용을 비롯한 30여 명의 의병과 함께 1년간 임실, 남원군 등지에서 활동했다. 그는 1908년 음력 2월 상순 전북 임실군 목리의 민가에 들어가 "우리는 의병인 바 군용금을 차출하라"고 말하며 엽전 40냥을 모집하였으며, 같은 해 음력 3월에도 임실군 구고면 평지리에서 엽전 40냥을 거두었다. 또한 같은 달 20일 임실군 덕치면 가곡리의 민가에서 같은 방법으로 군자금을 모집했다. 그러나 1909년경 일제 헌병대에게 체포된 그는 1910년 3월 9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폭동 및 강도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1912년 9월 13일 은사에 관한 조서에 의거해 징역 3년 6개월로 감형되었지만 1913년 2월 7일 전주형무소에서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한수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