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한조(고려)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2> '''고려 정종의 장인[br]{{{+1 한조 | 韓祚}}}''' || || '''직위''' ||어사예부시랑(御事禮部侍郎)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 지서경유수사(知西京留守事) 문하시중(門下侍中) || || '''본관''' ||[[한(성씨)|단주 한씨]][* 湍州 韓氏] || || '''이름''' ||조(祚) || || '''아버지''' ||[[한언공]] || || '''배우자''' ||미상 || || '''자녀''' ||장녀 - [[용신왕후]][* [[정종(고려 제10대)|정종]]의 제2비] 차녀 - [[용의왕후]][* [[정종(고려 제10대)|정종]]의 제3비] || || '''생몰연도''' ||? ~ ? ||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려의 문신. == 생애 == [[현종(고려)|현종]] 12년인 1021년 어사예부시랑(御事禮部侍郎)으로서 [[북송]]에 외교 사절로 다녀온다. 한조 등 일행은 모두 179명으로, 북송이 보여준 은혜에 감사하고 고려가 [[요나라|거란]]과 우호 관계를 맺었음을 알렸다. 한조는 이듬해 송 건흥 원년인 1022년 2월 [[진종(송)|진종]]이 전례에 따라 내린 하사품을 받고 5월 고려에 돌아온다. 진종의 하사품은 현종이 표문을 올려 요청한 『성혜방(聖惠方)』, 『음양이택서(陰陽二宅書)』 외에 『건흥력(乾興曆)』과 불경 한 장(藏)이었다. 10월에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에 오르고, 현종 21년인 1030년 지서경유수사(知西京留守事)를 지낸다. 사후 [[문하시중]]에 추증된다. == 가족관계 == 정종에게 두 딸을 시집보냈지만 정종 사후 동생인 [[문종(고려)|문종]]이 왕위를 계승하면서, 한조의 외손자들은 왕이 되지 못했다. * 부: [[한언공]] * '''본인: 한조''' * 딸: [[용신왕후]] * 사위: [[정종(고려 10대)|고려 정종]] * 외손자: 왕형(王詗) * 딸: [[용의왕후]] * 사위: [[정종(고려 10대)|고려 정종]] * 외손자: 애상군 왕방(哀殤君 王昉) * 외손자: [[왕경(낙랑후)|낙랑후 왕경]](樂浪侯 王璥) * 외손자: [[왕개(개성후)|개성후 왕개]](開城侯 王暟) [[분류:고려의 인물]][[분류:단주 한씨]][[분류:몰년 미상]][[분류:조공·책봉 사절]][[분류:고려의 외척]][[분류:국구]]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