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행주대교 (r0 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한강의 교량)] || {{{-2 {{{#555,#aaa 하류 방면}}}}}}[br]← [[김포대교]] ||<-2><#006fb9> '''[[한강|{{{#fff 한강의 교량}}}]]''' || {{{-2 {{{#555,#aaa 상류 방면}}}}}}[br][[방화대교]] → || ||<-4><#004a8b> {{{#fff {{{+2 '''행주대교'''}}}[br]Haengjudaegyo (Bridge) | 幸州大橋}}} || ||<-4><#004a8b> {{{#white ▼ [[호국로(경기도)|{{{#white '''호국로(행주대교)'''}}}]] · [[개화동로|{{{#white '''개화동로(신행주대교)'''}}}]] ▲ }}} || || {{{-1 {{{#555,#aaa [[서해|{{{#555,#aaa 한강 하류}}}]] 방면}}}}}}[br][[김포대교]][br]← - km ||<-2><#ae1932> [[자유로|{{{#fff '''자유로'''}}}]] || {{{-1 {{{#555,#aaa [[양평군|{{{#555,#aaa 양평}}}]] 방면}}}}}}[br][[방화대교]][br]- km → || || {{{-1 {{{#555,#aaa [[강화도|{{{#555,#aaa 강화도}}}]] 방면}}}}}}[br][[김포시|김포 시내]][br]← - km ||<-1><#ae1932> [[김포대로| {{{#fff '''김포[br]한강로'''}}}]] ||<-1><#ae1932> [[김포대로| {{{#fff '''올림픽대로'''}}}]] || {{{-1 {{{#555,#aaa [[팔당댐|{{{#555,#aaa 팔당댐}}}]] 방면}}}}}}[br][[방화대교]][br]- km → || ||<-4><#004a8b> {{{#white ▼ [[호국로(경기도)|{{{#white '''호국로(행주대교)'''}}}]] · [[개화동로|{{{#white '''개화동로(신행주대교)'''}}}]] ▲ }}} || ||<-4>{{{#!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 장소=행주대교, 너비=100%, 높이=225)]}}} || ||<-4><#c0c0c0,#3f3f3f> '''다른 문자 표기''' || ||<-4>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2px" || 간체자 || 幸州大桥 || || 가타카나 || ヘンジュ大橋 ||}}}}}}}}} || ||<-4><#c0c0c0,#3f3f3f> '''위치''' || ||<-4>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동]] (북단) || ||<-4> [[서울특별시]] [[강서구(서울특별시)|강서구]] [[개화동]] (남단) || ||<-4><#c0c0c0,#3f3f3f> '''개통''' || ||<-4> [[1978년]] [[11월 21일]] (구 행주대교)[* 폐쇄후 철거][br][[1995년]] [[5월 19일]] (행주대교)[br][[2000년]] [[12월 16일]] (신행주대교) || ||<-2> '''시공''' ||<-2> '''관리''' || ||<-2> [[벽산건설|[[파일:벽산건설 로고.svg|width=100]]]][* 새롭게 놓은 행주대교와 부실공사로 붕괴된 신행주대교를 시공하였다.] ||<-2> [[서울특별시]] || ||<-4><#c0c0c0,#3f3f3f> '''길이 / 폭''' || ||<-4> 길이 1460m, 폭 14.5m (편도 각 3차선) || ||<-4> '''구조형식''' || ||<-4> 프레스트레스트 케이블[* 본래 콘크리트 사장교로 설계되었으나 시공중 붕괴사고로 인해 교량 하중을 줄이기 위해 케이블 사장교로 설계 변경되었다.] 사장교[br](PC[* Prestressed Concrete] Cable-stayed girder Bridge) || ||<-4> 프레스트레스트 콘크리트 합성상형교[br](PC box girder Bridge) || [목차] [clearfix] == 개요 == '''행주대교'''(幸州大橋, Haengjudaegyo (Bridge))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동]]과 [[서울특별시]] [[강서구(서울특별시)|강서구]] [[개화동]]을 잇는 [[한강]]의 다리로, [[39번 국도]] 및 [[78번 지방도]] 상의 다리이다. 서울특별시에서 최서단에 있는 다리이다. 행주대교 남단은 [[올림픽대로]]와 [[김포한강로]]의 기종점이기도 하다. 총 연장은 1.460km이다. == 구 행주대교 == || [youtube(l5wt31Y2iVs)]|| || {{{#black,#white [[1978년]] [[11월 21일]] 행주대교를 포함한 [[경인고속도로]]와 [[통일로]]를 잇는 도로 포장공사 완공}}} || [[1978년]] 11월에 교량 폭 10m, 왕복 2차로의 규모로 최초 준공되었다. 이 때는 고양이나 김포나 개발이 진행되지 않았고 당연히 시로 승격되지 않고 군으로 남아있을 만큼 논밭만 있는 허허벌판에 가까웠던 데다가 자가용 수도 별로 많지 않아 차선이 2개 밖에 없어도 충분히 교통량을 소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자가용 자동차가 [[중산층]]들을 대상으로 차츰차츰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2차선 도로만으로는 교통량을 감당하기 힘들어졌고 거기에 더해 [[1989년]]에 주변 지역에 [[일산신도시]], [[중동신도시]] 등 [[신도시]]가 들어설 계획이 세워지면서 교통량 감당이 힘들 게 뻔했다. 이에 교통망 구축을 위하여 1980년대에 행주대교 신교량 부설계획이 수립된다. 신교량은 각각 3차로의 동일한 규모의 교량 두 개가 건설 계획되어 고양시와 서울특별시에서 각각 한 교량씩 담당하여 건설하였다. [[파일:6000094291_20080919.jpg]] 신 행주대교와 2차 신교량까지 준공되고 난 후 옛 교량은 차량통행이 차단되고 인도교로 한동안 사용되었다. 이후 구교량의 노후화에 따른 통행안전 문제로 입구에 콘크리트 블럭으로 담을 쌓아(현재 콘크리트 블럭은 없지만 철망으로 막아둔 상태) 교량 통행을 완전 차단하였다. [[2011년]]에는 배가 다닐 수 있도록 교량의 일부가 철거되었으며, 이후 예산문제로 방치되고 있다가 고양시에서 자전거 및 보행자 전용 다리로 변화시킨다고 한다. 폐쇄 직전 제한속도는 60km/h였다.[* [[https://map.kakao.com/?map_type=TYPE_MAP&map_attribute=ROADVIEW&panoid=1154890050&pan=81.1&tilt=5.5&zoom=6&urlLevel=3&urlX=457216&urlY=1137407|카카오맵]]] == 신 행주대교 == 최초에 [[고양시]]에서 [[서울특별시]] 방면으로 시공된 1차 신교량(신행주대교)은 상판을 지지하는 케이블을 콘크리트로 둘러싼 콘크리트 사장교 형태로 [[1987년]] 착공하여 [[1992년]] [[12월]] 완공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92년]] [[7월 31일]] 시공업체인 [[벽산건설]]의 부실시공으로 교량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는 붕괴사고가 발생하여 오히려 수도권 일대의 교통난을 악화시켰다. 공교럽게도 바로 전날에 [[창선교 붕괴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에도 개탄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지만 2년여 뒤의 [[성수대교 붕괴사고]]의 전조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다. 이 사고가 발생하였을 당시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이 연일 승승장구하고 있었을 때였던 데다 건설 중인 교량이 붕괴된 사고였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없어 사람들의 뇌리에서 너무나 쉽게 잊힌 사고였다. || [[파일:attachment/44444_1.jpg|width=100%]] || || 우측의 구교량과 주탑과 상판이 모두 붕괴된 1차 신교량의 모습 || 결국 과다하중을 일으키는 콘크리트 사장교 형태 대신 케이블 사장교로 설계 변경 및 재시공하여 [[1995년]] [[5월]] 총 3차선의 규모로 개통하여 구교량과 함께 사용되었다. 기존 구교량의 왕복 2차선 도로에서 확장되어 총 왕복 5차선의 도로폭을 가지게 되었는데, 신교량의 경우 고양→서울 방면이 서쪽의 두개 차로를 차지하고, 서울→고양 방면의 화물차량 전용차로 1개를 내주었으며, 구 교량의 차로 2개는 협소한 교량 규모와 노후화의 이유로 서울→고양 방면 승용차 전용차로로 전환하였다. || [[파일:attachment/484841.jpg|width=100%]] || || 행주대교 남단에서 바라본 신교량(좌측 두 교량)과 구교량(가장 우측)이 함께 있던 모습 || [[1996년]]부터는 1차 신교량과 구교량 사이에 [[서울특별시]]에서 [[고양시]] 방면의 2차 신교량(제2신행주대교)을 건설하기 시작하여 [[2000년]] [[12월 16일]] 같은 3차선의 규모로 개통되었다. 1차 준공된 신교량과 똑같은 규모였으나 1차 신교량에서의 주탑과 케이블로 지지하는 사장교의 형태가 아닌 일반 교량의 형태로 시공되었다. 개통 당시 제한속도는 60km/h이었다. 이후 2002년 서울경찰청 일반 도로(한강교)70km/h 상향 대상에 포함되었다. 동시에 서강/원효/성수/올림픽대교도 70km/h 상향 대상에 포함되었고 이후 2014년에 개통된 구리암사대교도 70km/h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서울시 전역 일반 도로 안전속도 5030 정책으로(2020년 8월 말~2020년 12월 20일까지 모든 시설물이 교체됨) 2020년 11월 네이버 거리뷰에 60km/h로 하향된 것을 알 수 있다. == 교통 연계 == 행주대교 자체가 [[39번 국도]]의 일부분으로 지정되어 있다. 북단으로 나오면 곧바로 행주고가사거리로 연결되는데, 여기서 고가차도로 진입하면 그대로 호국로를 따라 우회해 [[화정동(고양시)|화정동]]으로 진입하고, 고가차도 하단으로 빠진 후 직진하면 행신로로 진입해 [[능곡동(고양)|능곡동]]으로 이어진다. 우회전하면 舊 행주내리 마을과 [[KTX]]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 그리고 [[행주산성]]으로 이어지며, [[자유로]]와 재접속하는 교차로도 있기 때문에 실수로 행주대교IC를 지나쳤다면 이 교차로를 이용해도 된다. 남단으로 내려오면 곧바로 [[개화IC]]를 통해 [[올림픽대로]]와 연결되는데, 개화IC 램프에 [[78번 국가지원지방도]] 방향 진출램프도 합쳐져 있는데다 개화IC 램프를 지나서 얼마 가지도 않고는 곧바로 [[39번 국도]], [[48번 국도]]와 연결되는 고촌IC 연결램프가 등장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행선지가 꼬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는 개화동로와 48번 국도가 연계되는 이름없는 교차로의 구조 변경이 한 가지 원인으로, 본래 이 교차로는 많이 찌그러진 트럼펫형 입체교차로였으나 [[김포한강로]] 개통으로 [[개화IC]]의 구조가 이리저리 뜯어고쳐져야 하는 상황이 왔고, 이 때문에 개화IC에서 개화동로 김포공항 방향으로 진입하는 램프가 길어지게 되면서 부지가 더 필요해진 탓에 이 이름없는 교차로의 행주대교→48번 국도 방향 램프를 철거하게 된 것이다. 그 대신 개화IC 진입램프를 지나친 위치에 곧바로 고촌IC방향 램프를 신설해서 이를 대체했고, 여기에 그렇게 뜯어고친 개화IC지만 행주대교→김포한강로 방향 접속램프 개설이 어려워서 이를 대체하기 위해 행주대교 방향에서 78번 국지도로 접속해 김포한강로로 간접 접속할 수 있게 추가 램프를 또 내다보니 이런식으로 램프가 복잡하게 꼬였다. 여튼 이 구간에서 올림픽대로로 진입하지 않을 경우 개화IC 램프와 연결된 78번 국지도 방향 램프로 나가면 아라김포 여객터미널 방향으로 이어져 전호IC를 통해 [[김포한강로]]로 들어갈 수 있으며, 고촌IC 연결램프를 통해 39번 국도로 진입하면 부천/인천 방향으로, 고촌IC 연결램프를 통해 48번 국도로 진입하면 김포 방향으로, 어디로도 들어가지 않으면 [[김포국제공항]] 방면으로 이어진다. 다리 북쪽의 [[덕양산]]에 [[행주산성]]이 있다. 자전거 동호인들이 한강을 달리다 행주대교를 건너 행주산성 근방에서 국수를 먹고 오는 것을 하나의 코스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 행주대교 북단에서 행주산성 주변에서 자전거 동호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가양대교]]의 정체를 피하기 위해서 이 다리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자유로]]를 거쳐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자유로IC]]와 [[평택파주고속도로|서울문산고속도로]] [[남고양IC]] 및 [[북로JC]] - [[흥도IC]] 경로를 이용하려고 하거나 진출한 차량들로 인해 정체가 발생한다. == 과적 기준 == 한강을 건너는 다른 다리에 비해 행주대교는 [[과적]] 기준이 빡빡하다. [[국도]] 상의 다리라 [[화물차]]가 많이 다닐 법한 상황임도 불구하고 행주대교는 화물차가 많이 건너지 않는데, 과적 기준 때문에 그렇다. 한강을 건너는 다른 다리는 총중량 40톤(10% 초과 허용 44톤)까지 통과할 수 있는 반면 행주대교는 총중량 30톤(5%만 초과 허용해 32톤) 이하여야만 통과할 수 있다. 화물차는 무조건 행주대교 검문소로 진입하여 계량대에 올라 총중량 검사를 시행한 이후 다리에 진입할 수 있다. 실제로 행주대교 진입 전에 "총중량 32톤 제한, 4.5톤 이상 화물차 무조건 검문소 진입"이라 적힌 [[도로교통표지판]]이 붙어 있다. 다른 [[한강]] 다리의 과적 단속은 [[서울특별시청]]이나 특별사법경찰, [[국토교통부]] 국토관리청에서 시행하나, 행주대교는 한강 다리 중 유일하게 군부대가 과적단속을 한다. 행주대교는 [[제30기계화보병사단]](부대 해체 이전) → [[제1군단]](30사단 해체 이후)에서 과적을 관리하고 있다. 때문에 다른 교량은 과적'''단속'''이라고 표현하는데, 행주대교는 과적'''[[검문]]'''이라고 표현한다. [[2010년]] [[연평도 포격전]]과 같이 [[남북한관계]]가 얼어붙으면 행주대교 검문소에서 행주대교를 지나는 모든 차량을 [[검문]]한다.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로 인해 행주대교의 전 차량 검문이 [[2011년]] [[3월]]까지 약 4개월간 시행되기도 했다. 승용차도 예외 없이 검문을 받으며, 행주대교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을 제시해야 한다. 전술한 내용은 현재는 적용되지 않는 오래된 내용으로, 2023년 8월 기준 행주대교는 다른 한강 교량과 동일하게 40톤 제한을 적용하고 있으며, 과적단속도 일반적인 도로사업소 직원이 실시하고 있다. == 경유 시내버스 == 2019/11/22 기준 정보이며, 별도의 서술이 없는 한 전방향 경유이다. * [[경기광주 버스 9600]]: 위시티 방면 한정 경유 * [[광역급행버스 M7412]]: 일산 방면 한정으로 행주대교를 이용해 자유로로 간뒤 일산IC로 진입한다. 하지만 교통 정체가 심하면 가양대교에서 바로 강변북로로 진입하기도 한다. * [[고양 버스 85]] * [[파주 버스 56]] * [[파주 버스 150]] == 여담 == 구 행주대교에는 [[12.12 군사반란]]과 관련하여 [[흑역사]]가 있다.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난 [[1979년]] [[12월 12일]] 밤 당시 반란군인 [[하나회]] 소속이던 [[제1공수특전여단]] 여단장 [[박희도]] [[준장]]은 하나회 회장 [[국군보안사령관]] [[전두환]]의 지시로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서울)|용산동]]에 있던 [[대한민국 육군본부|육군본부]](현 [[전쟁기념관]])와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현 국방부 별관)를 점령하고자 [[강서구(서울)|강서구]] 주둔지에서 한강 이북으로 건너와야 했다. 강서에서 용산으로 가려면 [[한강대교|제1한강교]]나 [[잠수교]]나 [[한남대교|제3한강교]]를 건너야 했는데[* 12.12 군사반란 당시 서울시내의 자동차 횡단 가능 한강 교량은 행주대교, [[양화대교|제2한강교]], [[마포대교|서울대교]], [[한강대교|제1한강교]], [[잠수교]], [[한남대교|제3한강교]], [[성수대교]], [[영동대교]], [[잠실대교]], [[천호대교]], [[광진교]] 등 11개에 불과했다. 이중에 한강 이남에서 용산으로 직결되는 다리는 제1한강교와 잠수교 뿐이었다. 다만 빠른 점령을 위해서는 초고속 부대 이동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동거리가 가장 짧은 제1한강교를 노렸을 것이다.] 이들 교량은 진압군 측인 [[장태완]] [[소장(계급)|소장]]의 [[수도방위사령부|수도경비사령부]]가 관할하는 지역이었고 다리 초소에 수경사 장병들이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제30기계화보병사단|제30보병사단]] 관할 교량인 행주대교로 건너가고자 했다. 물론 수경사에서도 이 상황을 알고 있기에 장태완 사령관이 30사단장인 박희모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1공수여단이 행주대교를 건너려 한다. 행주대교를 막아달라"고 요청했지만 하필이면 그 전화를 반란군의 핵심인 [[국군보안사령부]]가 전부 도청했다. 보안사 간부들은 득달같이 박희모 사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방금 박 장군이 장태완 장군과 통화한 것을 알고 있다.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1공수가 서울에 진입할 수 있도록 조용히 행주대교를 열어달라. 그러면 모든 일이 조용히 해결될 것이다"라고 진압군 측 요청을 무시해달라고 압박했다. 사단 사령부에서는 1공수의 강북 진입을 열어주기로 했으나 행주대교 검문소에는 이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탓인지 남단 쪽 검문소에 있던 30사단 소속의 [[군사경찰]]이 1공수와 마찰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30사단 군사경찰은 1공수 요원들에게 제압됐고 1공수는 행주대교를 건넌 뒤 용산 육본과 국방부로 가서 난장판을 만들었다. 2023년 11월에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영화)|서울의 봄]]>에서는 당시 [[수도방위사령관|수경사령관]]인 [[장태완|이태신 장군]]([[정우성]] 분)이 혈혈단신으로 행주대교로 가서 서울로 진입하려던 2공수여단의 행렬을 홀로 막는 장면이 등장한다. 다만 이는 실제가 아닌 허구이며 수경사령관 장태완은 이 당시 필동 수경사령부 상황실에서 작전 지시를 하고 있었다. 길 한복판에서 혈혈단신으로 상대 탱크 행렬을 막았던 것은 진압군 장태완 장군이 아니라 반란군인 [[김진영(군인)|김진영]] 당시 [[대령]]이었으며 실제 탱크 행렬을 저지한 곳 역시 행주대교가 아닌 광화문 부근이다. [[분류:한강의 교량]][[분류:39번 국도]][[분류:1978년 건설]][[분류:1995년 건설]][[분류:2000년 건설]][[분류:부실공사]][[분류:교량 사고]][[분류:나무위키 도로 프로젝트]]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