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현사선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유공자|{{{#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br] {{{#ffffff '''{{{+1 현사선}}}'''[br]'''玄巳善[* 연주현씨대동보에는 玄'''{{{+1 詞}}}'''善으로 등재되어 있고, 玄'''{{{+1 社}}}'''善으로 표기한 문헌도 있다.]'''}}}}}}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현사선.jpg|width=100%]]}}} || || '''창씨명''' ||쿠로야마 키젠(玄山己善) || || '''이명''' ||현기선(玄己善) || || '''본관''' ||[[연주 현씨]][* 중랑장공파 27세 선(善) 항렬.] || ||<|2> '''출생''' ||[[1911년]] [[4월 16일]] || ||[[전라남도]] [[제주시|제주군]] 신좌면 조천리[br](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166837&evntId=&evntdowngbn=N&indpnId=0000112701&actionType=det&flag=2&search_region=|1942년 수형인명부]]에 따르면, 조천면 조천리 2355번지가 본적이고 조천면 함덕리 2914번지는 주소지이다.] || ||<|2> '''사망''' ||[[2001년]] [[1월 22일]] || ||[[일본]] [[치바현]] || ||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683호 || || '''상훈''' ||대통령표창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다. == 생애 == 현사선은 1911년 4월 16일 전라남도 제주군 신좌면(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서 아버지 현천학(玄千鶴)과 어머니 [[전주 이씨]] 이도명(李道明)[* 이종록(李宗祿)의 딸이다.] 사이의 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신좌면(현 조천읍) 함덕리로 이주하였다. 아버지 현천학은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면서 [[서당]] [[훈장(직업)|훈장]]을 겸직했던 인물이다. 그는 1940년 3월 제주도 조천면의 자기가 경영하는 잡화상점에서 동네 주민 쿄하라 오츠류(淸原乙龍) 등에게 일제의 소위 [[내선일체]](內鮮一體)론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꼬집어 비판하는 말을 하였으며, 같은 해 4월 말에는 [[중일전쟁]]의 전황에 관하여 "일본은 장기건설, 장기건설이라고 떠들면서 국민을 혹사시키고 더욱이 급박한 상황에 이르러 방법이 없게 되자 조선인을 전쟁터로 끌어낸다"고 말하여 한인 [[지원병]]제(志願兵制)의 부당함을 성토하였다. 또한 같은 해 9월경에는, "신문은 일본군이 [[중화민국|중국]]의 임시수도인 [[충칭|중경]]을 30여 회나 폭격했다고 보도하고 있는데, 진짜 폭격했다면 당연히 함락되었을 것인데도 함락시키지 못하는 것을 보면 30여회 폭격이라는 기사는 진위를 의심케 한다"라고 말했으며, 이 밖에도 [[일본]]으로 도항하는 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내선일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내선일체라면서 조선인의 일본 도항은 종래에 통하는 엄중한 취체가 있지 않는가."라고 말하는 등, 수 차례에 걸쳐 반일사상을 표명하였다. 이를 이유로 1941년 9월 중순에 일본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42년 8월 13일 광주지방법원 형사부에서 소위 육·해군형법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미결 구류일수 중 30일 본형에 산입)을 선고받고[[https://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352433&evntId=0034992309&evntdowngbn=Y&indpnId=0000023304&actionType=det&flag=1&search_region=|#]]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치바현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다가 2001년 1월 22일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현사선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그리고 2007년 11월 6일에 본래 [[일본]] [[치바현]]에 안장되어 있던 그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여 이튿날인 7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에 안장했다.[[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39013|#]]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연주 현씨]][[분류:제주시 출신 인물]][[분류:1911년 출생]][[분류:2001년 사망]][[분류:대통령표창(독립유공자)]][[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