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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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태종(太宗)
시호계천체도현덕성공흠명문사영예인철소헌건중문황제
(繼天體道顯德聖功欽明文思英睿仁哲昭憲建中文皇帝)
레(Lê / 黎 / 여)
응우옌롱(Nguyên Long / 元龍 / 원룡)
생몰기간1423년 ~ 1442년
재위기간1433년 ~ 1442년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베트남 후 레 왕조의 제2대 황제. 묘호는 태종(太宗), 시호는 문황제(文皇帝). 휘는 레응우옌롱(黎元龍/여원룡)이다.


2. 생애[편집]


태조 레러이의 차남이며, 어머니는 범씨(范氏)로 태종이 겨우 2살일 때 사망했다. 태종은 아버지 레러이처럼 총명하고 능력이 출중하였으며 아버지가 정무를 볼 수 없게 되자 황태자로 지명되었다.

1433년, 아버지 태조 레러이가 사망하자, 여원룡은 뒤를 이어서 황제로 즉위했다. 이때 태종의 나이는 10살에 불과했기에 신하인 여찰(黎察)이 그를 도와 정무를 수행했다.

여찰은 태종과 같이 정무를 수행했으나 학견이 좁고 성품이 교만방자하였으며 충신에게 해를 가했다. 후에 태종은 장성한 후 권력을 되찾고 친정을 시작했다.

1442년, 궁밖에 나가서 순행을 하던 태종은 신하 응우옌짜이의 집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도중에 박닌성에서 갑자기 사망했다. 태종이 의문사하자, 대신들은 응우옌짜이에게 첩을 태종이 데려간 것[1]에 앙심을 품고 태종을 죽였을거라며 죄를 뒤집어씌워 그를 체포해 사형시켰다. 태종이 죽은 이유는 전해지지 않으나, 다양한 설이 전해지며, 『베트남의 역사』의 저자인 유인선 교수는 태종의 개혁으로 권력이 약해져 불만을 품었던 타인호아 지방의 개국공신들이 모의하여 태종을 암살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1] 태종이 응우옌짜이의 집을 방문했을 때, 응우옌짜이의 첩에게 반해 이것을 알아차린 응우옌짜이가 태종에게 자신의 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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