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 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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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틱 FC
Celtic FC Official Legend
파일:P.Bonner_1.webp
이름 패키 보너
Packie Bonner
본명 패트릭 조셉 보너
Patrick Joseph Bonner
출생 1960년 5월 24일 (64세)
아일랜드 도니골 주 버튼포트 클라우글라스
국적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신체 188cm
직업 축구선수(골키퍼 / 은퇴)
소속 선수 키듀 로버스 FC (1975 / 유스)
셀틱 FC (1978-1997)
국가대표 파일: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80경기 (아일랜드 / 1981~1996)

1. 개요
2. 클럽 경력
2.1. 경력 초기
3. 국가대표 경력
4. 여담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아일랜드의 前 축구선수. 셀틱 FC에서만 20년 가까이 활약한 레전드이며, 1980~90년대 아일랜드 대표팀의 골문을 든든히 지킨 수문장이다.


2. 클럽 경력[편집]



2.1. 경력 초기[편집]


지역 유소년팀인 키듀 로버스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1978년 5월 14일, 셀틱 FC에 입단하면서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2.2. 셀틱 FC[편집]


파일:P.Bonner_Celtic_1.jpg

스코틀랜드 명문 클럽인 셀틱에 입단한 보너는 20년 가까이 셀틱에서만 활약하며 642경기를 출전하였고[1], 4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스코틀랜드 컵 우승 그리고 리그 컵 우승을 견인하며 셀틱 역사상 위대한 골키퍼로 평가 받았다. 1996년부터는 플레잉 코치로 활약하다가 1997-98 시즌을 끝으로 19년간 머물렀던 팀과 작별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파일:P.Bonner_National_1.webp

1981년 5월 24일, 그의 21번째 생일 날에 폴란드를 상대로 성인 대표팀에 데뷔했다. 이 경기에서 90초만에 골을 허용하더니, 데이비드 오리어리의 자책골과 후반에 추가 실점을 내주고 0:3으로 패하면서 보너에게는 생일날 최악의 데뷔전을 치르고 말았다. 이후, 짐 맥도나의 백업으로 수년 동안 벤치를 지키다가 1986년 잭 찰튼 부임 후 주전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찰튼 감독의 총애를 받아 UEFA 유로 1988를 통해 국제 메이저대회에 데뷔하였으며, 2년 뒤 1990 FIFA 월드컵에서는 16강 루마니아전 승부차기에서 5번째 키커 다니엘 티모프테의 슛을 막아내며 대표팀 역사상 최고 성적인 8강 진출을 견인했다. UEFA 유로 1992는 지역예선에서 대표팀이 잉글랜드에 밀려 참가조차 하지 못했고, 1994 FIFA 월드컵은 지역예선에서 유로 우승국 덴마크를 밀어낸 끝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별라운드 3경기 모두 주전으로 뛰며 두 대회 연속 토너먼트 진출을 견인했으나, 네덜란드와의 16강전에서 0:1로 지고있던 전반 41분, 보너는 약 25m의 거리에서 때린 빔 용크의 평범한 중거리슛을 캐칭으로 막으려다가 놓치면서 추가 실점을 허용했다.[2] 그의 치명적인 실수는 대표팀이 추격의 의지를 상실한 원인이 되었고, 결국 0:2로 패하면서 8강 진출은 좌절되었다. 월드컵 이후, 보너는 앨런 켈리에게 오랫동안 군림했던 대표팀의 주전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1996년 6월 15일, 볼리비아전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물러났다.

4. 여담[편집]


  •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그 중 아들은 아일랜드 유소년 대표팀에서 활약한 축구선수였다가 나중에 장거리 육상선수로 전업했다.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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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셀틱 역대 최다 출전자 6위에 기록되어있다.[2] 러시아 대표팀 골키퍼 이고르 아킨페프대한민국전에서 보여준 실책과 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