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빌헬름 빅토르 아우구스트 에른스트 (r20220720판)

문서 조회수 확인중...

파일:external/www.patriotic-flags.com/ImperialGermanWarEnsign.png 1차세계대전기 독일제국군의 장성급 장교

[ 펼치기 · 접기 ]
원수
Generalfieldmarschall
파일:DR_Generalfeldmarschall_1918.gif

육군
원수
프란츠 요제프 1세 | 콜마르 폰 데어 골츠 | 파울 폰 힌덴부르크 | 헤르만 폰 아이히호른 | 아우구스트 폰 마켄젠 | 빌헬름 2세 | 뷔르템베르크의 빌헬름 2세 | 레오폴트 폰 바이에른 | 카를 폰 뷜로 | 루프레히트 폰 바이에른 | 프리드리히 폰 외스터라이히테셴 대공 | 메흐메트 5세 | 프란츠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 | 뷔르템베르크 공작 알브레히트 | 루트비히 3세 | 페르디난트 1세 | 카를 1세 | 콘스탄티노스 1세 | 레무스 폰 보이르슈
해군
원수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 헤닝 폰 홀첸도르프 | 빌헬름 2세 |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
상급대장
Generaloberst

파일:KHeer_OF9_GenOberst_(Bayern)_1918.gif
육군
상급대장
펠릭스 그라프 폰 보트머 | 모리츠 폰 린커 | 헬무트 요하네스 루트비히 폰 몰트케 | 알렉산더 폰 클루크 | 루트비히 폰 팔켄하우젠 | 막스 폰 하우젠 | 알렉산더 폰 린징겐 | 구스타프 폰 케셀 | 요아힘 카를 빌헬름 프리드리히 레오폴트 | 요시아스 폰 헤링겐

명예원수 베른하르트 3세 | 명예원수 한스 폰 플레센 | 명예원수프리드리히 2세
병과대장
General der Waffengattung / Admiral
파일:General_(Wurttenburg).gif

육군
병과대장
에리히 폰 팔켄하인보병 | 에른스트 루트비히 카를 알브레히트 빌헬름보병 | 에리히 루덴도르프보병 | 로타르 폰 트로타보병 | 에른스트 폰 회프너기병 | 콘라트 크라프트 폰 델멘징엔포병 | 오스카 폰 후티어보병 | 오이겐 폰 팔켄하인기병 | 파울 폰 레토포어베크보병 |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기병 | 막시밀리안 폰 바덴기병 | 빌헬름 폰 우라흐기병 | 프리드리히 식스트 폰 아르민보병 | 카를 에두아르트보병 | 오토 폰 벨로보병 | 에두아르트 폰 리에베르트보병 | 프리드리히 빌헬름 빅토르 아우구스트 에른스트보병 | 헤르만 폰 슈타인포병
해군
대장
후고 폰 폴 | 라인하르트 셰어 | 프란츠 폰 히퍼 | 루트비히 폰 로이터
중장
Generalleutnant / Vizeadmiral

육군
중장
콘스탄틴 폰 알트록 | 카를 폰 베닝거 | 헤르만 폰 쿨 | 빌헬름 그뢰너 | 프리드리히 폰 작센마이닝겐 | 게오르크 그라프 폰 발더제
해군
중장
막시밀리안 폰 슈페
소장
Generalmajor / Konteradmiral

육군
소장
한스 폰 젝트 | 막스 호프만 | 프리츠 폰 로스베르크 | 카를 하우스호퍼 | 아이텔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 게르하르트 타펜 | 뤼디거 폰 데어 골츠
해군
소장
-
※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독일 제국군의 상급대장과 대장, 중장, 소장은 각각 미군의 대장, 중장, 소장, 준장에 상응.
※ 윗 첨자 : 전사






독일 제국 황태자
독일 제국군 육군 중장
빌헬름 폰 프로이센
Wilhelm von Preussen


이름
Friedrich Wilhelm Victor August Ernst
프리드리히 빌헬름 빅토어[1] 아우구스트 에른스트

Wilhelm von Preussen
빌헬름 폰 프로이센[2]
출생
1882년 5월 6일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독일국 프로이센 왕국 포츠담
사망
1951년 7월 26일(향년 69세)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헤힝겐
복무
파일:external/www.patriotic-flags.com/ImperialGermanWarEnsign.png 독일 제국군
최종 계급
보병대장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주요 서훈
왕관 붉은 독수리 대십자 훈장
가문
호엔촐레른 가문
종교
루터교
배우자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체칠리에[3]
자녀
빌헬름, 루이스 페르디난트, 후베르투스, 프리드리히, 알렉산드리네, 체칠리에
아버지
빌헬름 2세
어머니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아우구스테 빅토리아
형제
아이텔 프리드리히, 아달베르트, 아우구스트 빌헬름, 오스카, 요아힘, 빅토리아 루이제
서훈
푸르 르 메리트
신체
키 180cm

1. 개요
2. 생애
2.1. 어린 시절
2.3. 전간기
3. 자녀와 후손
4. 대중매체



1. 개요[편집]


독일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이자 프로이센 왕국의 마지막 왕세자로, 독일 제국군의 보병대장이었다.


2. 생애[편집]



2.1. 어린 시절[편집]


빌헬름 2세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아우구스테 빅토리아의 장남으로, 1882년 5월 6일 포츠담에서 태어났다. 참고로 빌헬름 출생 당시에는 증조할아버지빌헬름 1세가 살아 있었고,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3세는 여전히 황태자였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21px-Bundesarchiv_Bild_102-00625A%2C_Kaiser_Wilhelm_I._mit_Sohn%2C_Enkel_und_Urenkel.jpg
▲왼쪽부터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3세, 증조할아버지 빌헬름 1세, 아버지 빌헬름 2세이다.

증조할아버지 빌헬름 1세의 품에 안겨있는 아기가 바로 빌헬름이다. 빌헬름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 빌헬름 2세와 할머니 빅토리아 황태자비 사이에서 충돌이 있었다. 빅토리아 황태자비는 며느리의 출산에 간호사가 입회하기를 원했으나, 빌헬름 2세는 이에 대해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빌헬름의 출산에는 딱히 큰 문제가 일어나진 않았고, 6살 때 증조할아버지 빌헬름 1세가 사망하면서 빌헬름도 왕위계승 순위 3위의 황태손으로 격상되었다.

빌헬름은 당시 시대상 새로운 스포츠였던 축구에 반감이 없어서 BFC 프로이센이라는 축구팀을 창단하기도 했다.
파일:BFC_Preussen_Team_1910-15-1.jpg
▲1910년대 BFC 프로이센의 선수들과 함께 찍은 사진.

1914년에는 체칠리엔호프궁의 건설을 명령했다.


2.2. 제1차 세계 대전[편집]


1차 세계 대전 발발 이후 빌헬름은 제5군의 사령관이 되었다. 보통 군은 병과대장 또는 상급대장이 지휘하는데, 빌헬름은 이때 소장계급을 달고 있었다. 보통 소장은 사단이나 여단을 지휘하는데, 5군 밑의 사단의 사령관들도 대부분 소장이었다.[4] 5군의 사령관으로 국경 전투에 참여하였지만 실질적 사령관은 5군의 참모총장인 콘스탄틴 폰 크노벨스도르프였다.

1915년 이후에는 그의 군단도 있었는데, 5군, A분견군, B분견군, C분견군, 그리고 3군이 포함되어 있었다. 해당 군단은 아르곤 공세에 참여하였다.


2.3. 전간기[편집]


제1차 세계 대전 동안의 수탈로 지친 독일 국민들이 독일 11월 혁명을 일으키며 독일 제국은 멸망했고 카이저 빌헬름 2세는 퇴위하였다. 이에 따라 빌헬름도 독일 제국의 황태자와 프로이센의 왕세자 직위를 모두 잃었고, 그의 형제자매들도 프로이센의 왕족이라는 칭호와 직위를 잃었다. 빌헬름은 아버지와 함께 네덜란드로 망명했다.

내심 왕당파였던 구스타프 슈트레제만바이마르 공화국의 총리가 되자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조건으로 구 왕족들의 독일 귀환을 허락했고 빌헬름은 독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물론 이 조건은 지켜지지 않았고 독일로 입국한 빌헬름은 극우파를 지원하는 등 왕정복고 여론을 부채질하게 된다.

파일:58ef2fa4-0002-0004-0000-0000629b2fbf_w488_r1.778_fpx55_fpy45.jpg
▲1933년 히틀러와 악수하는 빌헬름 황태자[5][6]

1925년에는 대선에 출마해 대통령이 되어 직접 왕정을 복고하려고 했지만 네덜란드에 망명한 아버지[7]가 반대하면서 출마가 무산되었다. 대신 이후부터 철모단에 가입해 나치를 지지했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빌헬름도 떡고물을 기대했지만 장검의 밤으로 빌헬름의 친구 쿠르트 폰 슐라이허가 처형당하며 김칫국만 먹게 된다. 장검의 밤 이후로 왕당파는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되었고 빌헬름은 모든 정치 활동을 접었다.


2.4. 제2차 세계 대전 이후[편집]


1940년 빌헬름의 장남 빌헬름이 프랑스 침공 도중 사망했다. 장례식장에는 5만명이 모여 애도하며 왕당파의 세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확인시켰다. 이를 경계한 나치 지도부는 법을 제정해 모든 구 왕족의 군대 예편을 명령했다.

1941년에 아버지 빌헬름 2세가 사망하자 빌헬름이 호엔촐레른 가문의 수장이 되었다.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이 터지자 게슈타포의 감시를 받았다.

1945년 본인의 건강이 악화되자 포츠담을 떠나 알프스 지역으로 요양을 가게 된다. 붉은 군대가 서진해오자 포츠담 궁은 버려졌고 영국/미국/소련의 전후처리 회의의 회의장로 사용된다.

전후 연합군 소속의 자유 프랑스 모로코군에게 체포되었는데, 사유는 다름아닌 1차 대전의 전범이라는 이유였다.(...) 정작 1차대전 패전 직후 부황 빌헬름 2세를 포함한 당대 패전국 군주들은 그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음에도 말이다.[8][9] 체포 이후 곧바로 풀려났지만 빌헬름은 거주지였던 헤힝겐에서 반경 25km를 벗어날 수 없는 가택연금 처분을 받았다.

이후 1951년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3. 자녀와 후손[편집]


  • 빌헬름 (1906-1940): 도로테아 폰 살비아티와 결혼하면서 1933년 계승권 포기. 1940년 프랑스 침공 때 벨기에에서 전사.
  • 루이스 페르디난트 (1907-1994): 러시아의 키라 키릴로브나 여대공[10]과 결혼. 차남이었으나 형 빌헬름이 귀천상혼함에 따라 프로이센 왕가의 후계자가 됐다.
    • 프리드리히 빌헬름 (1939-2015)
    • 미하엘 (1940-2014)
    • 마리 체칠리에 (1942-)
    • 키라 (1943-2004)
    • 루이스 페르디난트 (1944-1977): 두 형이 모두 귀천상혼하는 바람에 후계자가 됐으나, 군 훈련 중 사고사했다. 장남 게오르크 프리드리히(1976-)는 현재 프로이센 왕가 당주.
    • 크리스티안 지기스문트 (1946-)
    • 크세니아 (1949-1992)
  • 후베르투스 (1909-1950): 마리아 폰 훔볼트다흐로덴 여남작과 결혼했다 이혼. 이후 로이스의 마그달레나와 재혼하여 2녀를 두었다. 남서아프리카 빈트후크에서 사망.
  • 프리드리히 (1911-1966): 가명으로 영국 유학 중 2차대전이 터지는 바람에 억류되었다. 1945년 2대 Iveagh 백작의 딸 브리짓 기네스와 결혼해 1947년 영국에 귀화한다. 3남 2녀[11]를 두었으나 모두 비왕족과 결혼했다.
  • 알렉산드리네 (1915-1980): 다운증후군 환자였다고 한다. 미혼
  • 체칠리에 (1917-1975): 클라이드 해리스와 결혼.


4. 대중매체[편집]


Hearts of Iron 4에서는 독일로 나치를 축출하고 제국을 재건한 뒤 빌헬름 2세의 사망 이벤트가 뜨면 뒤를 이어 황제 빌헬름 3세가 되며, 네덜란드가 빌헬름 2세의 귀환을 막아도 아버지 대신 귀환해 황제가 될 수 있다. 민주주의 루트에서는 그가 진짜 입헌군주국의 황제가 되며 안정도를 올려주는 국민정신으로 표현된다.

모드 카이저라이히에서는 동맹국의 승전으로 제국이 계속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계속 황태자이며 육군 원수이다. 빌헬름 2세 사망 소식이 뜨고 나면 뒤를 잇는다.

대체역사 소설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에서는 나치가 몰락하고 제국이 복고되면서 빌헬름 3세로 즉위한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2-06-22 10:45:49에 나무위키 프리드리히 빌헬름 빅토르 아우구스트 에른스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본 항목에서는 '빅토르'로 적혀 있지만 실제 독일어 발음은 '빅토어'에 가깝다.[2] 바이마르 공화국 수립 이후 독일 제국의 황족들은 기존의 성씨 대신 '프로이센'을 성씨로 쓰게 되었다.[3] 1886~1954,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10세의 왕비 알렉산드리네의 여동생이자, 고모부 콘스탄티노스 1세의 6촌 동생이다. 체칠리에의 어머니이자 빌헬름의 장모 아나스타샤 대공비와, 콘스탄티노스 1세의 어머니 올가 왕비가 친사촌간)[4] 원래는 콘스탄틴 폰 알트록처럼 소장 계급으로 여단/사단을 지휘하는 게 정상적이다.[5] 히틀러 집권 이후 구세대(제국)와 신세대(나치)의 화합을 보여주기 위해 괴벨스의 기획으로 열린 행사 포츠담의 날에 찍힌 사진이다.[6] 히틀러는 당시 독일 남성의 평균 키를 가지고 있었는데, 빌헬름 황태자는 그보다 훨씬 더 큰 것을 볼 수 있다.[7] 빌헬름 2세는 파울 폰 힌덴부르크를 지지했다.[8] 다만 빌헬름 2세나 불가리아 왕국페르디난드 1세와는 달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카를 1세오스만 제국메흐메트 6세의 경우에는 책임을 묻기가 힘든데, 둘은 한참 세계대전이 치러지는 도중에 즉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를 1세는 오히려 조기 종전을 위해 노력한 인물이었고(그래서 협상국 내에서도 그를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여론이 소수나마 있었다.) 메흐메트 6세는 전임 황제 메흐메트 5세처럼 허수아비였다.[9] 황당하게도 여동생 빅토리아 루이제는 오빠와 정반대로 조지 6세의 지시를 받은 영국군의 도움을 받아 소련군의 진주를 피해 영국군 점령지로 피신했다.[10] 키릴 대공과 빅토리아 멜리타의 1남 2녀 중 막내딸(둘째).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 기준으로 하면 7촌이다.[11] 막내인 안토니아는 아서 웰즐리가 창시한 웰링턴 공작가에 시집을 가 2남 3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