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한글/자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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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범위
3. 조합형 자모 목록
3.1.1. 초성
3.1.2. 종성
3.1.2.1. ㄱ
3.1.2.2. ㄴ
3.1.2.3. ㄷ
3.1.2.4. ㄹ
3.1.2.5. ㅁ
3.1.2.6. ㅂ
3.1.2.7. ㅅ
3.1.2.8. ㅿ
3.1.2.9. ㆁ
3.1.2.14. ㅇ 연서
3.2.1. ㅏ/ㅑ
3.2.2. ㅓ/ㅕ
3.2.3. ㅗ/ㅛ
3.2.4. ㅜ/ㅠ
3.2.5. ㅡ
3.2.6. ㅣ
3.2.7. ㆍ
4. 호환용 자모 목록
4.1.1. ㄴ
4.1.2. ㄹ
4.1.3. ㅁ
4.1.4. ㅂ
4.1.5. ㅅ
4.1.6. ㅿ
4.1.7. ㅇ/ㆁ
4.1.8. ㅎ
4.1.9. ㆆ
4.1.10. 특수
4.1.10.1. ㅇ 연서


1. 개요[편집]


옛한글 자모를 다룬 문서. 참고: 옛한글 정보 데이터베이스
유니코드 상으로는 1,638,750자가 존재한다.


2. 범위[편집]


아래 목록은 '옛한글 자모'로 묶여있기는 하나 등장 시점이 천차만별이다. 예컨대 ''는 세종대왕이 창제한 글자이지만, ''는 지석영이 1905년에 처음 주장하였다. 간혹 조선 중기 실학자들이 고안한 글자들도 있다. 겹자음은 한글 창제 초에 (아마도) 어두자음군을 표기하기 위한 것들은 조선 중기를 거치면서 상당수 사라지고 근대에 외래어 음차와 형태소 표기에 생겨난 것들이 많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형태소 중심의 표기의 과도기 단계에서 지나치게 분석하여 생겨난 겹자음들도 상당하다.[1] 반면, 모음은 근대에 새로 생겨난 것이 그렇게까지 많진 않고 'ힽ'처럼 중국어, 만주어, 몽골어 표기에 도입된 것들이 많다. 아래에 범례에 따라 표시를 해두었다.

사용 빈도도 상당히 다른 편이다. ''와 ''처럼 15세기에 한정하면 현대 한글 낱자모 못지 않게 자주 등장한 것도 있는 반면, 'ᇋ'처럼 정말 딱 한 번 정도밖에 쓰이지 않은 것들도 있다.

본 문서에서는 역사적으로 등장했던 한글 자모 가운데 현대 한국어를 위하는 한글 표기에서 쓰이지 않는 것을 모두 모아두었다. 현대 한글에서는 지금 옛한글 자모로 추가된 것들도 자주 쓰이지 않고 더 이상의 새로운 자모 조합을 안 하기 때문에 여기서의 용례는 역사적인 것에 한한다. '역사적'의 범위는 대개 오늘날 한글의 범위를 규정한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다.[2] 길게는 외래어에서도 24자모 이외의 표기를 허용하지 않게 된 1958년 이전까지로 한정할 수 있다. 아래 유니코드 5.2 제출 출전에서는 조선어문 정체(朝鮮語文正體, 1941)가 제일 최근의 문헌이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는 1948~1955년 사이에 낱글자 몇 개를 추가하였는데, 이 역시 '옛'한글은 아니다. 옛한글 자모를 그대로 썼으면 1955년까지 외래어 표기에 옛한글 자모를 쓴 남한의 예와 유사했겠으나[3] 새로운 자모를 추가했다(한국어/맞춤법/역사 참고). 이들 신자모는 전산화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폐지되었으므로 인코딩되지 않았다.

일본어 표기의 영향으로 한글에 탁점(゛)을 쓴 예도 근대에 간혹 보이지만 이는 옛한글로 간주되지는 않는다.[4] 그 밖에도 로마자를 음절자 안에 섞어서 쓰는 등의 기록이 발견된다 해도 옛한글로는 보지 않을 것이다. 한글의 조합 방식이 매우 특이해 그런 예는 거의 없다.[5]

학교 교육과정에서는 흔히 "창제 당시에는 28자였고 현대 한국어에 쓰이는 자모는 24자로 ㆍ, , , 4자가 사라졌다(=옛한글 자모로 분류된다)"로 배운다. 이는 한글 글자수의 기준이 모음 초출자 및 재출자, 자음 기본자 및 전탁자(ㅊㅋㅌㅍㅎ)이기 때문이다. 가령 은 오늘날 쓰이지 않으나 애당초 차청의 병서자라서 28자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6] "28자→24자"로 줄어든 예로 가르치지 않는다. 연서라는 특이한 방식을 사용하는 등도 마찬가지이다. 본 문서에서는 합용자를 포함해서 지금 쓰이지 않는 것을 망라하고 있기에 목록의 자모 수가 많다.


3. 조합형 자모 목록[편집]


2019년 시점에서 초성 105개, 종성 110개, 중성 73개 도합 288개로 구성되어있다.[7] 역사적 용례가 발견됨에 따라 숫자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다만, 이미 넣은 게 사실은 쓰이지 않는 유령 문자라는 게 밝혀진다 해도 상위 호환의 원칙에 따라 넣었던 걸 굳이 빼지는 않으므로[8] 줄어들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옛한글 문서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옛한글은 조합형으로 구현되어있으며 문헌에 나타나는 낱자모가 코드에 배당되어있다. , , 과 같은 고유 낱자모는 그냥 추가하면 되지만 ᇋ, ᄓ 같은 것은 해당 조합이 문헌에서 발견될 때마다 하나하나 추가해야 되기 때문에 상당히 칸을 많이 차지하고 있다. 예컨대 2019년 시점에 'ㄴㄹ' 초성 조합은 실려있지 않은데, 어느 한글 문헌에서 'ᅟᅠퟋ' 초성 조합이 발견되면 'ᅟᅠퟋ' 초성 조합을 추가[9] 해야지만 전산적으로 입력할 수 있다. 모든 '(자모)(자모)' 조합에 대해서 대처할 수 있는 조합 코드를 개발하면 문제가 해결되긴 하겠지만,[10] 일단 지금의 방식으로도 300개 이내이니 그렇게까지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것인 아니다. 완성형 11172자도 욱여넣었는데 288개 정도야

유니코드에 추가하려면 과거 문헌에 등장했다는 출전이 필요하기 때문에 각각의 낱글자는 모두 1회 이상의 출전이 명시되어있다. 이러한 출전 정보를 모아두었다. 5.2 추가 당시의 출전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pdf 12쪽부터). 다만 출처를 알 수 없는 유령 문자 같은 자모도 좀 있는 모양이다.[11] 홍윤표 & 국립국어원(1995)도 참고할 수 있다.[12]

아래 표는 조합형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한양PUA 방식 중 완성형은 현대 한글처럼 모든 음절자가 하나의 코드로 배당되어있는데, 현실적으로 10000개도 훨씬 넘는 것을 하나하나 다 코드화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래 겹자모 중 구현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13]

아래 목록의 순서는 대체로 유니코드 등재 순서를 따랐다. 대체로 초성/중성/종성이 모아져있지만 공간이 모자라기 때문에 가끔 군데군데 따로 실려있기도 하다. 이따금 나중에야 문헌으로 발견되어 추가되는 경우도 있어서 가나다순에도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위의 유니코드 표를 보면 상당히 불규칙하게 실려있음을 볼 수 있다. 일단 사용할 때에는 별 상관 없다.

범례
* 출전 쪽수: 특별한 말이 없으면 유니코드 5.2 제안서 pdf이다.
* || 유니코드 5.2 이후 추가[14] || 가로줄 ||
|| 종성/초성 모두 쓸 수 있음[15] || (공용) ||
|| 호환용 자모로도 존재[16] || * ||
|| 고유어 표기에 사용 || 🇰🇷 ||
|| 외래어 표기에 사용 || 🌐 ||
|| 예시로만 사용 || ⛔ ||
|| 형태소 표기 || @ ||
|| 발음이나 흔적이 남아있음 || ✅ ||
[1] '겹침'을 '겨ퟩ임'으로, '자빠지다'를 '자ퟦ아지다'로 분석한 것이 그 예이다.[2] 종성 'ㅋ', 'ㅎ', 'ㄶ', 'ㅀ', 'ㅆ'이 규정에 포함된 것이 이때부터이다. 단, ''처럼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 인정되었으나 옛한글 자모로 여겨지는 것도 있다.[3] 와 같은 옛한글 자모를 쓰기는 했다.[4] 결합 문자 방식의 탁점을 이용해 '가゙'와 같이 표기할 수는 있다. 글꼴에 따라 탁음 뒤에 공간이 너무 떨어져 보일 수도 있다.[5] 비공식적인 표기에 그치긴 하나 근래에 'th'나 'f'를 한글에 섞는 자막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v\]를 적을 때 'ㅂ'와 'V'의 자형을 합쳐 '∀'로 적으면 어떨까 하는 농담이 나오기도.[6] 오히려 《동국정운》에서는 ㄲㄸㅃㅆㅉㆅ 병서자 6자를 기본 자음자로 세어 자음이 23개(훈민정음에선 17개)라고 소개한다. 《훈민정음》과 《동국정운》에서 자음 수를 세는 기준이 다른 것도 연구거리 중 하나이다.[7] 따라서 이론상 가능한 옛한글(로만 된) 음절자의 개수는 105*110*73으로 843,150자가 된다. 현대 한글 자모도 섞을 수 있으니 그 수는 더 많아진다.[8] 이미 문자를 추가했으니 그 문자로 입력된 텍스트가 존재 가능한데, 이후 유니코드 리스트에서 해당 문자를 빼버리면 이후 버전에서는 그 문자를 읽을 수가 없게 된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글자 순서도 어지간해서는 절대 바꾸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9] ᅟᅠퟋ 종성 조합은 존재한다(가ퟋ 식으로.) [10] 사실 한국어 초성/중성/종성에 들어갈 수 있는 낱자모 개수의 한계도 정해져있지 않기 때문에 이 가능성까지 모두 상정하기는 어렵다. 일단 대체로 3개가 상한선이기는 하다.[11] 예: [12] 홍윤표 & 국립국어연구원(1995), (연구보고서)한글 코드에 관한 연구 / 홍윤표 연구 ; 국립국어연구원 [편\].[13] 예: 종성 ᇇ[14] 이들간의 차이는 그저 전산 구현 시기의 차이이기는 하나, 학자들이 미처 찾지 못하고 놓치거나 뒤늦게야 사용 문헌이 발견되는 등의 이유이기 때문에 약간 더 빈도가 낮을 가능성이 높다. 가령 《훈민정음》의 소개된 합용자처럼 진작부터 잘 알려진 글자들은 5.2 이전에도 다 실려있다.[15] 현대 한글에 초성/종성 둘 중 하나로만 쓰이는데 옛한글에 추가되어 둘 다 쓸 수 있는 경우에도 (공용)을 표시해둠. 물론 자형상으로 동일할 뿐 코드는 다르다는 점에 유의. 사실 이 점은 현대 한글의 조합형도 마찬가지이며(ᄅ/ᆯ이 다름), 완성형의 경우 아예 음절자 하나하나가 따로 배당되므로 코드상으로는 초성 ㄹ과 종성 ㄹ이 아무 관련도 없는 셈이다.[16] 현대 한글에서 초성/종성 둘 중 하나라도 존재하고 있는 경우에는 모두 호환용 자모도 존재한다. 이러한 것은 따로 표시하지 않았다.



3.1. 자음[편집]


조합형의 특성상 초성과 종성이 다른 코드로 구현되어있다. 유니코드에 낱자모를 실을 때에는 그때그때 초성에 나타나는 것, 종성에 나타나는 것을 따로 실어두고 있어서 '종성은 초성을 다시 쓸 수 있다'(종성부용초성, 終聲復用初聲)의 원칙에 어긋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에 따라 어떤 낱자모는 초성으로만 쓸 수 있고 어떤 것은 종성으로만 쓸 수 있다(문헌에 그렇게 나타나기 때문에).

이들 자모는 단독으로 썼을 때 특정 폰트에서는 그냥 낱자모처럼 보이지만 조합형 빈칸을 구현하는 폰트에서는 초성/종성 자리에 빈칸이 있는 식으로 나타난다. 일종의 결합 문자 방식이기 때문에 한글 자모가 아닌 문자에도 자형상 결합할 수는 있게 되어있다.[이미지]

한국어에서 어두자음군은 중세 한국어 단계에 잠시 있었다가 사라지고 이후의 겹자음 표기는 된소리를 나타내는 데에 ㅂ계 합용병서ㅅ계 합용병서가 쓰이는 식으로 용도가 바뀌었기 때문에 초성의 겹자음은 그리 많지 않고 종성이 더 많이 분포한다.


3.1.1. 초성[편집]



3.1.1.1. ㄱ[편집]

일부 브라우저에서는 글자 자체가 빈칸으로 표시되는데 ㄱ과 ㄷ이 합쳐진 형태이므로 참고하자. 기달 제일 앞이지만 늦게 추가되어 115~116 사이의 빈틈에 끼워져있다.


3.1.1.2. ㄴ[편집]

ㄴ은 비음성이 강하기 때문에 ㄴ계 겹자음은 외래어유성음을 표기하는 용도로 간혹 쓰였다. 강매(姜邁)의 조선어문법 제요(朝鮮語文法提要, 1921)에서도 일본 가나 탁음에 해당하는 한글 자모로 ㄴ계 합용병서를 우수수 소개하였다. 유성음을 주로 나타냈다는 점은 ㅇ계 겹자음과 유사하지만 ㅇ계 겹자음은 (ᅄ은 [v]를 나타내는 등) 후행 자음과 사뭇 다른 음을 나타낸다는 점이 다르다.[17]

  • (공용)🇰🇷
례이ᄓᅨᆫ[靈](왜어유해 상:53ㄱ)가 등장한다.
  • (공용)🇰🇷*
한숨디ᄔᆞᆫ(석보상절19:14)이 등장한다. '한숨짓는'의 의미로 쓰인 것이다.
히이ᄔᅦ루[秀, ひいでる](왜어유해 상:19ㄱ)가 등장한다.
  • (공용)🌐*
왜어유해(倭語類解, 1781)에서 上:8b에서 '泥'(でい)의 일본 한자음을 'ᄕᅦ이'로 적었다.
ᄕᅩ[怒, ど](왜어유해 상:23ㄱ)도 있다.
ᄖᅵ와[琵琶, びわ](왜어유해 상:43ㄱ)가 등장한다.

  • (공용)*
  • 🌐
왜어유해(倭語類解, 1781) 下17a에서 고삐를 의미하는 たづな(手綱)를 '다ᅜ\ᅳ나'라고 표기한 예가 있다(12쪽).
마ᅜᅵ(조선어학 282)의 예가 있다. '만지다'를 표기한 것이다.
  • 🇰🇷
최현배 우리말본(1937) 81에서 '난호', '좋냐'를 발음하면 ㄴ과 ㅎ이 함께 소리나서 [나ᅝ\ᅩ], [조ᅝ\ㅑ]와 같이 된다고 했다(13쪽). 이 예는 ㄴ계 겹자음의 다른 예처럼 2개 자음이 1개의 음으로 소리나는 다중문자가 아니라 실제로 두 자음이 같이 발음된 예이다.


3.1.1.3. ㄷ[편집]

  • (공용)

  • (공용)🌐
강매(姜邁)의 조선어문법 제요(朝鮮語文法提要, 1921)에서 영어 'drink'를 'ᅞᅵᇯ'로 적은 예가 있다(78쪽). 종성 ᇯ의 예이기도 하다.
  • : 공간이 모자라서 ꥠ부터는 저 밑 A96○에 있다.
  • (공용)
  • (공용)🌐
최현배의 우리말본 첫재매(1929)에서 일본어 를 'ꥢᅳ'로 적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15쪽).[18]
  • (공용)


3.1.1.4. ㄹ[편집]

  • (공용)
ᄘᅩ위스(ᄐᆡ서신ᄉᆞ 1ㄴ)가 등장한다.
  • (공용)@🌐
극ᄙᅡᆨ(정속언해 41)가 등장한다. 타져ᄌᆛᄙᅢ마(지나어강좌 4-9,393), ᄙᅥ(창조 1권 1호 7)의 외래어 표기 예도 있다.
찌아찌아어와 솔로몬제도 카리어에서 \l]을 나타낼 때 사용했다. 1948년 <들온말 적는법>에서는 [l]의 한글 표기로 'ᄙ'을 쓰자고 규정한 적이 있다.
'가르다', '오르다', '다르다' 등의 르 불규칙 용언들을 ᇐ로 적었다. 김두봉의 깁더 조선말본(1922)에서 '오ᇐ아'(오르다-올라)가 (51쪽), 최현배의 우리말본 첫재매(1929) 97에서 '다ᇐ아'(다르다-달라)가 (18쪽), 권영달(權寧達)의 조선어문 정체(朝鮮語文正體, 1941) 63에서 '가ᇐ아'(가르다-갈라)가 등장하였다(81쪽). 우리말본 첫재매(1929)에서 ᇐ과 ㄹ은 끝소리(종성)로 날 때 같아진다고 설명했다.
혀를 부르르르 떠는 [r] 을 적는 데 쓰이기도 했다. 미국식 영어의 'r'인 [ɹ]과는 다르다(그건 'ꥶ'로 적은 예가 있다).
현 한국어에 이 있긴 하나, 그건 종성용이고 이건 초성용이다. 조ᄚᅵ(우리말본 46)가 등장한다.

  • (공용)
김두봉의 조선말본(1916) 52에서 'ꥤᅡ/ꥮᅡ/ꥥᅡ'가 동시에 등장한다(17쪽).
  • (공용)*
  • @
최현배의 우리말본 첫재매(1929) 97에서 'ꥩ\ᅡ/ꥤ\ᅡ/ꥨ\ᅡ', 'ꥥᅡ/ꥪ\ᅡ/ꥧ\ᅡ'가 동시에 등장한다(18쪽).
  • (공용)
  • (공용)
ꥨᅡ, ꥩᅡ, ꥪᅡ(우리말본 97)
  • (공용)
  • (공용)@
이규영(李奎榮)의 현금 조선문전(現今朝鮮文典, 1920)에서 '할수록'의 '-ㄹ수록'에 해당하는 어미를 'ꥬ\ᅳ록'이라고 적었다.
  • (공용)


3.1.1.5. ㅁ[편집]

  • (공용)*🌐
왜어유해(倭語類解, 1781)에서 上:12a에서 '母'(ぼ)의 일본 한자음을 '우'로 적었다. 현 일본 한자음과는 달리 장음이다.
나ᄜᅵ(조선어학 283)이 등장한다. '냄비'를 적은 것이다.

  • (공용)
  • (공용)*


3.1.1.6. ㅂ[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ㅂ계 합용병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 🇰🇷*
ᄞᅦ고(가례언해 5:12a), ᄞᅢᆫ묵(역어유해 상:52a)가 등장한다.
  • (공용)🇰🇷*
'뜻'은 근대 초기까지도 'ᄠᅳᆮ'으로 자주 쓰였다.
ᄠᅢ(두창집요 상:24a) ᄠᆞ로(박통사언해 하:37ㄱ)가 등장한다.
  • (공용)🇰🇷
과거 '쌀'이 'ᄡᆞᆯ'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사용하다"를 의미하는 '쓰다'의 고형이 'ᄡᅳ다'였으며[19] 이 어형으로부터 유래한 조사인 '-로써'는 20세기 초까지도 '-로ᄡᅥ'로 나타나곤 했다. 1905년 지석영이 건의한 "신정국문"에서도 를 'ᄡᅧ'로 쓰는 당대 표기를 언급하면서 이러한 표기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ᄡᅮᆨ닙(태산집요 10ㄱ)가 등장한다.
  • (공용)🇰🇷*
과거 '찢다'를 ᄧᅵᆽ다'로 쓴 적이 있었다.
ᄧᅬ고 (신전자초방언해 1ㄴ), ᄧᆞ다(역어유해 상53ㄴ)가 등장한다.
  • (공용)
ᄨᅩᆼ관(염불보권문-동화사판 23ㄱ)가 등장한다.
  • 🇰🇷*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서 'ᄩᅡ'가 등장한다. ᄩᅡ셔(마경초집언해 상:98ㄴ)의 예도 있다.
  • (공용)
ᄪᅳ리(여훈언해 하19ㄱ)가 등장한다. 니ᄪᅩᆫ[日本](첩해신어 2:8ㄴ)의 예도 있다.

염불보권문-해인사판 49ㄴ에서 이 ꥳ라는 낱자를 이용한 'ꥳᅳ'가 등장한다.
  • (공용)
ꥴᅡᆫ(염불보권문-동화사판 28ㄱ)이 등장한다.

3.1.1.7. ㅄ[편집]

이른바 '계 합용병서'라고 부르는 것으로 현대 한국인으로서는 ㅂ계 합용병서보다도 이질적이다. ㅂ계 합용병서보다 더 이른 시기에 사라졌다고 알려져있다. 초성에만 주로 등장했으며 만약 이들이 정말 어두자음군이라면 중세 한국어의 발음은 초성 3개가 연달아 나오는 상당히 생소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다만 ㅂ은 어두자음군으로서 발음했더라도 후행하는 ㅅ계 합용병서는 된소리일 가능성이 높기는 하다.

아래 예는 정승철(2013)[20]에서 가지고 왔다.

  • 🇰🇷*
월인석보(月印釋譜, 1459) 1:28에서 'ᄢᅮᆯ'(>)이 나타난다. 구급방언해(救急方諺解, 1466) 下:32의 'ᄢᅳᆯ'(>끌),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 1461) 2:95의 'ᄢᅥ디다'[>(땅이) 꺼지다], 'ᄢ\ᅳ\ᆷ'(>)이 나타난다.
'ᄢ'로 나타나는 예들은 근대 한국어 시기에 'ᄞ'이나 'ᄡ'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예: ᄞᅢ여(語錄解 改, 2), ᄭᅢ여(語錄解 改, 3) (근대국어문법론(hwp, 자동 다운로드)) 어록해(語錄解,1657)에서는 비교적 뒷시기인 17세기에도 'ᄢᅢ다'의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 (공용)🇰🇷*
월인석보(月印釋譜, 1459) 7:9에서 'ᄣᅢ'(>)가 나타난다. 내훈(內訓, 1475) 초간본 1:3의 'ᄣᅵ르다'(>찌르다)도 있다.
  • 🇰🇷
  • 🇰🇷
연병지남 4a에서 'ᄥᅳ며'가 출현한다.
  • 🇰🇷

  • 🇰🇷


3.1.1.8. ㅅ[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ㅅ계 합용병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열음(ㄱ, ㄷ, ㅂ) 앞에 ㅅ이 붙은 ᄭ, ᄯ, ㅽ은 파열음된소리를 적는 용도로 ㅅ계 합용병서가 20세기 초까지 널리 쓰였기 때문에 용례가 많다. 사실 된소리 표기에서 오늘날 사용되는 각자병서(ㄲ, ㄸ, ㅃ, ㅆ, ㅉ)는 중세 한국어 시기에 원각경언해(1465)를 기점으로 사라지며#[21] 근대 시기에는 ㅅ계 합용병서가 규정으로 명시됐던 적도 있기에(1912년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22] 이 문서의 겹자모 중에서는 제일 빈번하게 쓰였다고 볼 수 있다. 사실 20세기 초기 문헌들은 특별한 언급이 없으면 원문에서는 ㅅ계 합용병서를 쓰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23]

단, 파열음이 아닌 ᄮ, ᄱ과 같이 된소리로 보기 어려운 예도 있으며 이들은 앞서 다룬 파열음 계열 ㅅ계 합용병서에 비하여 출현 빈도가 확연히 낮다. 자세한 것은 ㅅ계 합용병서 참고.

  • (공용)🇰🇷*✅
  • 🇰🇷*
석보상절 19:14b에 '사나이'의 고형 'ᄮᅡᄒᆡ'가 나타난다.
  • (공용)🇰🇷*✅
  • (공용)🇰🇷@
박승빈의 조선어학 강의 요지(朝鮮語學講義要旨, 1931) 29쪽에서는 '~라 이른다'의 '이름'을 '니ᄰᅳᆷ'이라고 했다. '다름'도 '다ᄰᅳᆷ'이라고 했는데, 이들 '이르다', '다름'은 르 불규칙 용언으로, 근대에는 이들을 'ᄙ'로 적은 경우가 많다. 박승빈은 각자병서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부류 역시 'ᄰ'로 적은 듯하다.[24] 'ᄙ'과 마찬가지로 '다르다', '이르다' 등의 'ㄹ'의 성질 자체가 그렇다고 본 것이기 때문에 초성/종성에 모두 쓰였다. 동사 활용의 관점 외에도 이 책에서는 영어 'love'를 'ᄰᅥ브'로 적는 등(102쪽), 'ㄹㄹ'~[l]을 'ᄰ'로 적었다.
종성의 예로는 두ᄃᆞᇩ로ᄡᅥ(십구사략언해 1:16ㄱ)가 등장한다.
  • (공용)
ᄆᆞᄅᆞᆫᄱᆞᆯᄯᅩᆼ (마경초집언해 하80ㄴ)가 등장한다.
  • (공용)🇰🇷*✅
ᄳᅳ려(여훈언해 하23ㄴ)가 등장한다.
웃ᄵᅳᆷ(속수한문훈몽 2ㄱ)가 등장한다. ᄅᆉᆫᄋᆔᄵᅳ(한어초 인:20ㄱ)의 외래어 예도 있다.
  • (공용)🇰🇷*✅
ᄶᅩ각(오륜전비언해 7:5ㄱ)가 등장한다.
  • (공용)
ᄷᆞᆯ벼(규합총서 16ㄱ)가 등장한다.
ᄸᅳᆫ(정속언해 18ㄱ)가 등장한다.
  • (공용)
ᄹᅳᆷ이(명성경언해 34ㄱ)가 등장한다.
ᄺᅵ(경세종 16ㄴ)가 등장한다.
  • (공용)
ᄻᅧ(연병지남 9ㄴ)가 등장한다.
가 소멸될 당시 발음은 남아있다고 판단하여 식으로 쓰기도 하였다. 여담으로 다른 언어에서 쓰이는 'sh' 꼴을 한글로 그대로 전자하면 이 글자에 대응될 것이다. 사ᄻᅡ



3.1.1.9. ㅿ[편집]

  • (공용)🇰🇷*✅


3.1.1.10. ㅇ[편집]

ㅇ계 겹자음은 20세기에 외래어 표기를 위해 도입된 것이 많다. 현대 한국어에서 ㅇ은 그다지 음성적 특징이 없는데 표기에 넣은 것은 과거 ㅇ 연서 표기인 ㅸ, ㆄ에서 착안한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ᅄ, ᅋ은 ㅸ, ㆄ과 비슷하다. 이 중 ᅄ, ᅋ은 1948년에 규정 표기로 인정받기도 했다.

첩해신어(捷解新語, 1676)나 왜어유해(倭語類解, 1781)에서 일본어 탁음에 ㅇ계 겹자음을 대응시킨 예가 있다. 단, 이들 문헌에서 ザ행은 ᅅ이나 ᅈ이 아닌 ㅿ로 적었다. 첩해신어의 경우 'ᅁᅩ'만이 자주 등장하며 ダ행은 '(받침)ㄴ+ㄷ', ガ행은 '받침ㅇ+ㄱ'을 써 겹자음이 훨씬 더 적게 나타난다. 왜어유해에서도 ガ행에만 'ᅁ'를 쓰고 ダ행에는 'ᄕ', バ행에는 'ᄜ'로 각각 다르게 대응된다.[25][26] 1930년 조선총독부언문 철자법에서는 ᅁ(ガ행), ᅅ(ザ행), ᅂ(ダ행), ᅄ(バ행)와 같이 ㅇ계로 통일하였다.

  • ᅁ(공용)🌐
첩해신어(捷解新語, 1676) 1:3b에서 御를 'ᅁᅩ'로 적었다.
ᅁᅵᆫ[銀](왜어유해 상:1ㄴ)의 예도 있다.
  • ᅂ🌐
왜어유해(倭語類解, 1781) 上2a에 일본 한자음을 'ᅂᅦᆫ'로 적었다(26쪽). 일본어 탁음 를 적은 것이다.
아학편 등에서는 외래어에서 나타나는 \ð]를 표기하기 위하여 쓰이기도 했다.
  • ᅃ(공용)
ᅃᅮ마야[厩](왜어유해 상:23ㄱ)가 등장한다.
  • ᅄ🌐
시ᅄᅵ[鮪魚](왜어유해 하:25ㄱ)가 등장한다.
[v]를 표기하기 위해 20세기 초중반에 쓰였던 한글 자모이다. 지석영의 《아학편》(兒學編, 1908)과 이종극의 《모던조선외래어사전》(1937)에서 나타난다.[27]
조선 초에 사용되었던 자음 ㅸ과 유사한데, ㅸ는 한국어 고유어를 표기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1948년 들온말 적는법에서는 [v]에 대하여 ㅸ과 ᅄ 둘 다 쓸 수 있다고 동일한 자모로 취급하였다.
  • ᅅ(공용)*🌐
디ᅅᅵ[地濕](왜어유해 상:11ㄱ)가 등장한다.
아학편에서는 외래어 자음 \z]를 표기하기 위해 쓰였다. 중세 한국어에서 나타나던 ㅿ과 음이 유사하다.
  • ᅆ(공용)*
가네ᅆᅳ미[鐘](왜어유해 상:43ㄱ)가 등장한다.
  • ᅇ*🇰🇷
다른 ㅇ계 초성 겹자음과는 달리 이 글자는 훈민정음 창제 시기부터 존재하였다.
셴ᅈᅩ우[戰場](왜어유해 상:39ㄱ)가 등장한다.
아학편에서는 [θ]의 표기로 쓰였다.
  • ᅊ🌐
외래어 자음 \θ]를 표기하기 위한 글자이다.
  • ᅋ🌐
외래어 자음 [f]를 표기하기 위한 글자이다. 소설 "소년"에서 '프랑스'를 'ᅋᅳ랑쓰'로 적은 예가 있다(25쪽).

  • 🌐
외래어 자음 \ɹ](치경 접근음)를 표기하기 위한 글자이다. 영어 'r'의 음성이다.
  • (공용)🌐
왜어유해(倭語類解, 1781) 上2a에 일본 한자음을 'ꥷᅩ우'로 적었다(26쪽). 이 문헌에서 ㅇ계 겹자음은 주로 유성음, 일본어 표기상 주로 탁음에 대응되나 행의 탁음은 [b]이며 이 문헌에서 그냥 'ㅂ'이나 'ᄜ'으로 적었기 때문에 그러한 예는 아니다. 현대 일본어의 ほう였다면 '호우'로 적었을 법도 한데 ほ의 자음의 특수성을 표기한 것 같기도 하다. 같은 페이지에서 は, ひ, ふ는 그냥 '하, 히, 후'로 나타난다.


3.1.1.11. ㆁ[편집]

  • (공용)🇰🇷*


3.1.1.12. ㅈ[편집]

안ᅍᅳᆯ (속수한문훈몽 2ㄱ), 어ᅍᅵᆯ(속수한문훈몽 4ㄱ)가 등장한다.

이필수(李弼秀)의 선문통해(鮮文通解, 1922)에서 'ꥸᅦퟗ' 같은 기묘한 예를 들어놓은 통에 'ꥸ'가 용례로 등록되었다(60쪽). 문서 참고.


3.1.1.13. ㅊ[편집]

날ᅓᅵᆯ(속수한문훈몽 2ㄱ)가 등장한다.


3.1.1.14. ㅌ[편집]

  • 🌐
5.2에 추가되었다.
정약용의 아언각비(雅言覺非, 1819)에서 오늘날 '감투'가 된 '㯯[28]頭'의 중국 한자음을 '감ꥹᅮ'라고 적었다(28쪽).


3.1.1.15. ㅍ[편집]

  • (공용)

  • 🌐
ᅋ와 마찬가지로 [f]를 위한 표기로 보인다. 안자산(安自山)의 조선어원론(朝鮮語源論, 1922) 219쪽에서 핀우그리어파(Finno-Ugric)를 'ꥺ\ᅵ노 우글'로 음차하였다(29쪽). 아학편에서도 책 앞의 자모 소개에서는 [f]의 표기로 사용하였으나, 본문에서는 주로 'ᅋ'를 썼다.


3.1.1.16. ㅎ[편집]


ꥻᅣ, ꥻᅣᆼ ꥻᅵ(지나어강좌 4-6, 362)가 등장한다.


3.1.1.17. ㆆ[편집]

  • (공용)🇰🇷*✅

이 글자가 쓰인 문헌이 없고 존재했다는 증거가 없는 일종의 유령 문자이다.

3.1.1.18. 특수[편집]


3.1.1.18.1. 치두음정치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훈민정음의 치두음과 정치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1.1.18.2. ㅇ 연서[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훈민정음의 순경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체로 순경음을 표기하기 위하여 쓰였다. 단, ㅇ연서 글자 가운데 ᄛ만은 순경음이 아니다.

이들 자모는 연서자만이 단독으로 존재하며 'ㅸㅅ' 식으로 연서자 뒤에 다른 자음이 온 것은 없다. 연서자가 뒤에 온 것은 다른 문단에 실려있다.

  • (공용)*🌐
조선의 실학자 박성원은 저서 화동정음통석운고(華東正音通釋韻考, 1747)에서 ㅱ에 해당하는 음의 글자로 (마름모 미음)를 제안하기도 했으나 본문에는 쓰지 않았다. 이에 따라 ◇ 역시 낱자로 실려있지 않다.


3.1.2. 종성[편집]


겹자음 중에서 나중 자음에 'ㅅ'이 들어간 것이 꽤 있다. 사이시옷의 조상이 된 속격 ㅅ이 받침이 있든 없든 쓱 끼어들어갔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ㅎ' 역시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 '-하다'의 줄임으로 ㅎ받침을 끼워쓸 수 있다고 규정한 통에 온갖 받침에 ㅎ이 들어간 예가 많다.


3.1.2.1. ㄱ[편집]

느ᇃ도록(동국신속삼강행실도 효5:5ㄴ), 흐ᇃ덩이(동국신속삼강행실도 효1:87ㄴ)가 등장한다. 단어 맥락을 봤을 때 '늙-', ''을 잘못 적은 것 같다.

  • ⛔🌐
박승빈의 조선어학(朝鮮語學, 1935) 284쪽(위 pdf 47쪽)에서 로마자 표기 언어의 단어를 '시ᇺ아스'[29]음차한 예가 보인다. 아래 ퟻ에서 보듯 "'식나스'로 적어야지, '시ᇺ아스' 같은 표기는 말도 안 된다"라는 취지에서 쓴 표기였는데 용례로 등록되어버렸다.
  • @
권영달(權寧達)의 조선어문 정체(朝鮮語文正體, 1941) 63에서 '적막하다'를 '적마ᇾ다'로 줄인 예가 나온다(67쪽).


3.1.2.2. ㄴ[편집]

  • ᇅ(공용)@
ㄴ 뒤에 나타나던 ㄱ 곡용 현상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글자이다. 용례는 "ᄂ\ᅧᇅ" 하나로 모음 앞에서 /년ㄱ/ 형태로 발음되고 자음 앞에서는 '녀느'라는 이(異)형태를 취했다. 비슷하게 ㄱ 곡용 현상을 표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글자로 이 있다. ᇚ은 1933년 맞춤법까지 그 형태를 인정받았으나 ᄓ 은 이미 옛말이었기 때문에 겹자음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 ᇆ(공용)*⛔
여ᇆᄌᆞᆸ고(월인석보 10:10ㄴ)가 등장한다. 외래어의 예로는 따이야머ᇆ[diamond](모던조선외래어사전 54)가 나타난다.
박승빈의 조선어학(朝鮮語學, 1935) 146쪽에서 '문득'을 '무ᇆ윽'으로 쓰면 한 음절에 발음할 수 없다고 버리는 표기로 등장한 예이다(65쪽).
  • ᇇ(공용)*@
아ᇇ거늘(석보상절 6:21ㄴ)이 등장한다. 겹받침을 적되 8종성법을 적용해 이 아닌 ㄴㅅ을 적은 예이다.
완성형에서는 (합자를) 지원하지 않는다. 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 1489) 2:63b에 "ᄀᆞᇇ곳 ᄒᆞᆫ 랴ᇰ과ᄅᆞᆯ ᄒᆞᆫᄃᆡ ᄀᆞᄂᆞ리 ᄀᆞ라"의 용례가 있다(찍다 문서). 앞서 언급한 대로 이 때의 'ㅅ'은 'ᄀᆞᆫ'[30]에 붙은 속격 ㅅ이다.
박승빈의 조선어학(朝鮮語學, 1935) 284쪽에서는 에스페란토 'pens'의 변화형을 '페ᇇ-'으로 적는 것은 이상하다는 예로 등장한다.
  • ᇈ*
권영달(權寧達)의 조선어문 정체(朝鮮語文正體, 1941) '가우ᇉ'이 나타난다(67쪽).
박승빈의 조선어학(朝鮮語學, 1935) 284쪽에서 '에스펠아ᇉ오'의 예가 나온다. 이는 박승빈의 다른 주장과 마찬가지로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은 이상하다'의 예로 나온 것이다.

  • (공용)*@
김두봉의 깁더 조선말본(1922)에서 '가ᇿ'이 나타난다(51쪽).


3.1.2.3. ㄷ[편집]

  • ᇊ(공용)@
ᄉᆞᇊ리[狸](왜어유해 하:23ㄱ)의 예가 등장한다.
김두봉의 깁더 조선말본(1922)에서 ''을 '바ᇊ'으로 적은 예가 나타난다(51쪽). '밖'은 오랫동안 '밧그로' 식으로 적었기 때문에 단독으로 등장할 때에 [받]이었을 가능성도 있기는 하다.
  • ᇋ(공용)

특이하게도 초기 문헌인 원각경언해(圓覺經諺解, 1465)에 '欲의 어루아 아쳐ퟍ부믈 아리(知欲可厭)'가 등장한다(53쪽). 당시 판본체는 그냥 ㄷ을 쓸 때에도 넓적하게 썼기 때문에 인쇄 오류일 가능성도 있다. 권영달(權寧達)의 조선어문 정체(朝鮮語文正體, 1941) 63에서 '뜨ퟍ'이 나타난다(67쪽).
방언 가운데 ''에 '-에'가 결합했을 때 [끄띠]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형태소에 따라 분철 표기하면 '끄ퟍ이'라고 적을 수 있다.
  • (공용)
  • (공용)
  • (공용)


3.1.2.4. ㄹ[편집]

  • *@
훈민정음 해례본 합자해에는 'ᄃᆞᇌᄣᅢ'라는 말이 등장하며, 그 뜻은 유시(酉時)라고 한다. 우리가 아는 그 ''이 맞는데 속격 ㅅ이 끼어들어서 삼중자음이 되었다.
'marx'를 오늘날에도 '맑스'라고 적는 때가 많은데, 자음군 단순화를 적용하지 않는다면 이 자음을 이용해 마ᇌ로 적을 수도 있다.
  • (공용)@
김윤경이 1928년 11월 28일 동아일보 사설에서 '들다'의 활용형 '드ᇍ'을 쓴 적이 있다.# 권영달(權寧達)의 조선어문 정체(朝鮮語文正體, 1941) 63에서도 '갈다'의 활용형 '간'을 '가ᇍ'으로 적는 예가 나온다(67쪽). 기ᇍ(동광 1권1호 11)의 예도 있다.
  • (공용)*
ᄎᆞᇎ 것과(소학언해 2:13)가 등장한다.
  • ᇐ(공용)
초성 참고.
ᇅ, ᇚ과 마찬가지로 ㄱ 곡용이다. '풀무'라는 단어는 옛말에서 모음 앞에서는 '부ᇑ', 휴지나 자음 앞에서는 '불무'의 형식으로 나타났는데 이 때 모음 뒤에 올 때만 사용되었다. 연철로 표기할때는 ㄻ+ㄱ의 형식으로 나타나서 '붊ᄀᆞᆫ'(풀무는) 등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현대어에서는 '부ᇑ'이 현대어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1933년 맞춤법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세ᄀᆞᇓ(원각경언해 상:1之3, 70)가 등장한다.
  • (공용)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1447) 3:15(16장)에서 '오ᄂᆞᇗ'이 등장한다(77쪽). 아마도 속격 ㅅ이 종성 ㄹ에 의해 ㅿ으로 유성음화된 것을 표기에 반영한 것 같다.
  • (공용)
따ᇘ호스[dark horse](모던조선외래어사전 56)가 나타난다.

  • (공용)
이필수(李弼秀)의 선문통해(鮮文通解, 1922)에서 'ꥸᅦퟗ' 같은 기묘한 예를 들어놓은 통에 ''가 용례로 등록되었다(60쪽).
  • ⛔✅
이병기(李秉岐)의 조선어강화(朝鮮語講話, 1933)에서 '츠ퟛ'이 등장했다(63쪽). '츩'(오늘날 '칡')이 ㄴ 앞에서 자음 동화되어 ㅇ받침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츠ퟛ'이라는 표기를 쓴 것이다.


3.1.2.5. ㅁ[편집]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 고어의 곡용을 표기하기 위해 채택됐기 때문에 옛한글 자모 중에서는 상당히 두각을 드러낸다. 오늘날에는 거의 쓰이지 않게 됐지만 아직까지도 조금 용례가 남아있다. 문서 참고.
다ᇛ다(자류주석)가 등장한다.
  • (공용)*
사ᄅᆞᇜ ᄠᅳ디(용비어천가 15)가 등장한다.
  • (공용)*✅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1481) 忠6에 "降ᄒᆡ요려 커든 내 알ᄑᆡ셔 주거 뵈요ᇝ"가 있다. 이 ᇝ는 구결에서도 '立𠤎'로 나타날 정도로 유구한 어미인데,[31] 가능/당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ᇝ를 '-ㅁ직하다'('먹음직하다' 등)와 관련을 짓는 연구자도 있다.
권영달(權寧達)의 조선어문 정체(朝鮮語文正體, 1941) 32에서 '없다'가 '없는' 등에서 [엄는]으로 동화되지만 'ㅂ'이 이를 대표할 수 있으므로 '어ᇝ다'로 적지 않고 '없다'로 적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ᇝ이 다시금 등장하였다(82쪽).
완성형 옛한글에는 이 종성이 구현되어있지 않다.

박승빈의 조선어학(朝鮮語學, 1935) 146쪽에서 '함지'[32]를 '하ퟢ이'로 쓰면 한 음절에 발음할 수 없기 때문에 버리는 표기로 등장한 예이다(65쪽).


3.1.2.6. ㅂ[편집]

열여ᄃᆞᇣ비오(지장경언해 상:12ㄴ)가 등장한다. '여덟'의 'ㄼ'을 바꿔적은 것 같다.
  • (공용)
  • (공용)@
앞서 '-하다'의 줄임으로 ㅎ받침을 인정했기에 권영달(權寧達)의 조선어문 정체(朝鮮語文正體, 1941) 63에서 '돌이ᇥ지'(돌입하지) 등이 나타난다(67쪽).

  • (공용)
  • @
권영달(權寧達)의 조선어문 정체(朝鮮語文正體, 1941) 63에서 '괴로움'을 적은 듯한 '괴로ퟥ'이 등장했다(67쪽). '괴롭-'이 어간이기에 '괴롬'으로 탈락한 상태에서도 표기상으로 ㅂ을 반영한 것이다.
  • @
김두봉의 깁더 조선말본(1922)에서 '자ퟦ'이 나타난다(51쪽). 오늘날의 '자빠지다'를 '자ퟦ아지다'로 분석한 것 같다. 권영달(權寧達)의 조선어문 정체(朝鮮語文正體, 1941) 63에서 '쁘ퟦ'이 나타난다(67쪽).
  • (공용)
  • (공용)
  • (공용)@
강매(姜邁)의 조선어문법 제요(朝鮮語文法提要, 1921)에서 '겹침'을 '겨ퟩ임'으로 적은 예가 있다(70쪽). 아마 명사형 '-ㅁ'을 '-ㅁ'으로 보지 않고 '음', '임' 등으로 한 음절자로 보아야 된다는 인식 때문에 ㅊ를 받침으로 넣은 것 같다. 다만 '겨ퟩ'으로 어간을 한 글자로 써도 'ㅣ'가 후행하지 않는 다른 어형이 없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이런 식으로 쓰지 않는다. 단, 동사 어간을 '빛-'으로 분석했을 때 '빛이다'(비치다)/'빛우다'(비추다)와 같은 두 어형이 존재하고, 심지어 명사 ''과도 표기적 연관성을 갖출 수 있는 예에서도 '빛이다', '빛우다'와 같이 쓰지는 않는다. 아마 '빛다'가 없는 상황에서 '-이다', '우다'를 분석해봤자 의미가 없어서 그렇게 정한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겨ퟩ우다'(겹추다) 같은 게 있었어도 '겨ퟩ다'가 없는 이상 '겨ퟩ'이라는 표기가 실제로 쓰일 가능성은 낮았을 것이다.


3.1.2.7. ㅅ[편집]

  • (공용)
  • (공용)
  • (공용)
초성 부분 참고.
  • (공용)

  • (공용)
  • (공용)
  • (공용)
  • (공용)
  • (공용)


3.1.2.8. ㅿ[편집]




3.1.2.9. ㆁ[편집]

옛한글에서는 종성에서 모두 이다. 단, 이들 중에는 ㅇ과 합류된 이후의 문헌도 있어서 표기상 구별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유니코드에는 ᇬᇭᇮᇯ가 초기에 ㅇ 모양으로 실려있다가 이후 ㆁ으로 수정되었다.

  • (공용)✅
  • (공용)
  • 🌐
강매(姜邁)의 조선어문법 제요(朝鮮語文法提要, 1921)에서 영어 'drink'를 'ᅞᅵᇯ'로 적은 예가 있다(78쪽). 초성 의 예이기도 하다.
  • (공용)*
바ᇱ대(법화경언해 5:162)가 등장한다.
  • (공용)*

  • (공용)
  • (공용)@
김두봉의 깁더 조선말본(1922)에서 '찌ퟶ'이 나타난다(51쪽). 다만 인용 본문에서는 인쇄의 어려움이 있었는지 '찌ퟶ'이 인쇄되어있지 않다. '찧다'의 고형으로 추측된다. 권영달(權寧達)의 조선어문 정체(朝鮮語文正體, 1941) 63에서처럼 '다정하다'를 줄인 '다저ퟶ다'도 있다(67쪽).


3.1.2.10. ㅈ[편집]

  • @
이상춘(李常春)의 조선어문법(朝鮮語文法, 1925) 27에서 '낮브이'가 '나ퟷ이'로 줄어드는 예를 들었다(80쪽). 낮브이가 뭘까

권영달(權寧達)의 조선어문 정체(朝鮮語文正體, 1941) 63에서 '쯔ퟹ'이 나타난다(67쪽). 그 외에도 조선어 신철자법에서 '찌으ퟹ'을 쓴 용례도 있다.


3.1.2.11. ㅍ[편집]

  • (공용)

  • ⛔🌐
박승빈의 조선어학(朝鮮語學, 1935) 283쪽(위 pdf 83쪽)에서 'accept'[33]의 활용형 'accepted', 'accepting'을 적을 때 어간/어미를 분리하여 '악세ퟻ에드', '악세ퟻ잉'으로 적은 예가 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박승빈이 이렇게 적자고 주장한 게 아니라 "누가 'accepting'을 '악세ퟻ잉'으로 적겠냐, 그러니까 '발가'를 '밝아'로 적는 것도 이상하다."라는 식으로 한 글자에 형태소를 합쳐서 적는 것이 표음문자로서는 유래가 없고 무척 어색함을 지적한 예이다. '이렇게 쓰면 이상하다'라는 취지에서 쓴 문장인데 그 취지가 무색하게도 이 예문 자체가 용례가 되어 유니코드에 실리고 말았다.


3.1.2.12. ㅎ[편집]

러ᇵ(동광 1권 2호)가 나타난다. 본문을 확인해야 더 자세히 알 수 있겠지만 추측건대 '이렇다' → '이런' 류의 활용을 '이러ᇵ'으로 적은 것으로 보인다.


3.1.2.13. ㆆ[편집]



3.1.2.14. ㅇ 연서[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훈민정음의 순경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종성에는 ᄬ가 없다.



3.2. 모음[편집]


자음과 마찬가지로 합용자 중에서 오늘날에는 쓰이지 않는 것이 많다.《훈민정음》에서는 중성해(中聲解)에서 양성모음/음성모음끼리 합쳐지고 재출자끼리 합쳐진 원순모음→평순모음 방향의 ᅟᅪᅟᅯᅟᆄᅟᆑ 4자, ㅣ가 뒤에 붙은 [j]계 하향이중모음 글자의 예로 ㆍㅡㅗㅏㅜㅓ에 ㅣ가 결합한 ᅟᆡ ᅟᅴ ᅟᅬᅟᅢ ᅟᅱᅟᅦ 6자와 더불어 ㅛㅑㅠㅕ에 ㅣ가 결합한 ᅟᆈᅟᅤᅟᆔᅟᅨ 4자, ᅟᅪᅟᅯᅟᆄᅟᆑ에 ㅣ가 결합한 ㅙ ㅞ ᅟᆅ ᅟᆒ 4자를, 합자해(合字解)에서 ᆝᅟᆜ 2자를 제시하여 총 20자의 합용자를 소개했다. 이 중 위에서 굵게 처리된 ᅟᆡ ᅟᆈ ᅟᆔ ᅟᆄ ᅟᆑ ᅟᆅ ᅟᆒᆝᅟᆜ 9자가 쓰이지 않아 옛한글 모음자로 분류되고 ᅟᅪ ㅝ ㅢ ᅟᅬ ᅟᅢ ᅟᅱ ᅟᅦ ᅟᅤ ᅟᅨ ㅙ ㅞ 11자만이 오늘날까지 쓰인다.[34]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훈민정음》에서는 재출자끼리 결합한 ᅟᆄ와 같은 것만 제시했지 ᅟힲ ᅟᆦ처럼 하나에만 재출자가 결합한 글자는 소개하지 않았다. ᅟᆥ처럼 음성모음과 양성모음이 합쳐진 것, ᅟᅶ처럼 평순모음→원순모음 순으로 합쳐진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들 글자는 후대에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한글 창제 이래 약 400여년 간 여러 모음 표기가 새로 고안됐으나 이들 가운데 오늘날 현대 한국어에서 쓰이는 것은 없다. 현재 한국어에서 쓰이는 모음 글자들은 우연하게도 전부 세종대왕이 직접 창제한 것들뿐이다.

초출자 중에서는 만이 유일하게 사라졌음이 세간의 상식으로 널리 잘 알려져 있다. 앞서 학교 교육상 "사라진 4자"로 알려진 ㆍ, , , 가운데 ㆍ만이 모음이다.


3.2.1. ㅏ/ㅑ[편집]


  • ᅶ🌐
ᅶ 는 ㅏ를 먼저 발음하고 ㅗ를 나중에 발음하는 이중모음이다. 한국어에서 사용되는 모음은 아니며, 화동정음통석운고, 신자전 등에서 중국 한자음 豪운(-ao)를 표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高는 ᄁᅶ로 표기된다. ᄁᅶ슝 [wɐ]를 나타내는 와는 서로 다른 모음이다. 오래된 자전에서는 의외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목 등에 쓰이는 글자체 중에서는 ㅘ가 ᅶ처럼 보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아래는 그 예시 중 하나. 현대 한국어에서 ᅶ는 쓰이지 않으므로 이렇게 써도 혼동을 빚을 염려는 없다.
파일:중학교 ᄀᅶ학.jpg
중학교 ᄀᅶ학 가오학
옛한글을 모르는 사람에게 ᅶ를 보여주면 십중팔구는 ㅘ로 인식한다.
ᄅᅷ여(동문유해 상:37ㄴ)가 등장한다.
후ᄌᅸ(동문유해 상:38ㄴ)가 등장한다.

ᅟᆣᆮ(우리말본 97)가 등장한다.
  • 🌐
몽어유해(蒙語類解, 1768) 下39b에서 就에 해당하는 몽골어가 '치ᄎᆤ'라고 했다(31쪽).


3.2.2. ㅓ/ㅕ[편집]


  • ᅺ🌐
궁ᄑᅺ(삼역총해 6:6ㄴ)가 등장한다.
몽어유해(蒙語類解, 1768) 下10a에서 '시울'(가장자리)에 해당하는 몽골어가 '일ᄀᅺᆯ'라고 했다(40쪽).
ᄃᅻ(동문유해 상:10ㄴ)가 등장한다.
꼴ᄋᅼᆹ는(잘뽑은 조선말과 글의 본 33)가 등장한다.
  • ᅽ🌐
원ᄎᅽ(삼역총해 2:20ㄴ)가 등장한다.
몽어유해(蒙語類解, 1768) 下19b에서 '명주'[綿紬]에 해당하는 몽골어가 '미ᄎᅽ'라고 했다(33쪽).
ᄌᅾ(동문유해 하:12ㄴ)가 등장한다.



3.2.3. ㅗ/ㅛ[편집]


ᄋᅿᆯ마나(염불보권문-흥률사본 5ㄴ)가 등장한다.
이 글자를 보면 ㅘ, ㅙ 따위의 ㅗ가 처음부터 [w]였던 것은 아님을 추정할 수 있다. 만약 반모음 ㅗ가 언제나 [w]였다면 이미 ㅝ가 있는데 굳이 당시의 모음조화를 깨가면서까지 ᅿ를 쓸 이유가 없기 때문.
ᄒᆀᄒᆞᆫ다(염불보권문-흥률사본[고대본] 19ㄱ)가 등장한다.
  • ᆂ🌐
ᄃᆂᆷ비(동문유해 상:8ㄴ), ᄀᆂ니(몽어유해 상:10ㄴ)가 등장한다.
ㅗ+ㅗ이기는 하지만 '오'의 장음은 아니고 앞의 'ㅗ'가 [w] 역할을 해 [wo]로 읽었을 것이다. 청어노걸대의 만주어 발음 표기에 이 글자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만주어의 /oo/ 발음을 표기하는 용도로 쓰인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 ᆃ🌐
첩해신어(捷解新語, 1676)에서 1:1b에서 일본어 申す(もうす)를 'ᄆᆃ스'로 적었다.
  • ᆆ🌐
유희는 언문지(諺文志, 1824)에서 이 글자와 ᅶ 등 중국어 표기에만 쓰이는 글자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ᆇ🌐
ᄫᆇ톰비(동문유해 상:20ㄴ)가 등장한다.
동문유해(同文類解, 1748) 上37b에서 직책명 '冬大季'(혹은 冬至使)를 '암바 ᄫᅳᆯ곤이 ᄎᆇ햔'[35]이라고 적었다(39쪽).
ᄉᆈ굽(경언록언해 18ㄴ)이 등장한다. 사실 ㅅ의 역사적 음의 특성으로 '쇠-'는 근대 이전에 'ᄉᆈ'로 자주 적혔다.

이규영(李奎榮)의 현금 조선문전(現今朝鮮文典, 1920)에서 '고양이'를 한 글자 줄여 'ᄀᆦᆼ이'라고 했다(32쪽).
  • : 자리가 모자라 여기부터는 아래 코드에 구현되어있다.
  • 🌐
세 개의 모음이 세로로 합쳐져서 알아보기가 어렵다. 로, ㅗ+ㅗ+ㅣ이다. 훈민정음의 일반적인 결합 방식으로 치자면 를 오른쪽에 써서 'ᆂㅣ'와 같은 식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ᆂ가 [wo]로 추정되므로 ힱ는 [woj]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동문유해(同文類解, 1748) 下44b에서 '나무 마디'에 해당하는 만주어가 'ᄆힱ 쟈란'이라고 했다(34쪽).[36]Mooi jyaryan ooi
  • 🌐
동문유해(同文類解, 1748) 下5b에서 십간 '甲'에 해당하는 만주어가 'ᄂힲᆼ갼'[37]이라고 했다(35쪽). 유일록(遊日錄, 1902) 등 20세기까지도 'ㅈ'에 대해서는 '져', '쟈' 등 [j] 개재 모음자를 자주 사용했기 때문에[38] ''도 'ᄌힲ'로 자주 나온다.
이필수(李弼秀)의 선문통해(鮮文通解, 1922)에서 'ᄋힳᆫ'이 등장했다(60쪽). 앞서 '자음'과 '모음'에 태클을 건 그 문헌이다.
  • 🌐
삼역총해(三譯總解, 1704) 7:9b에서 '元'의 만주어 발음이 'ᄋힴᆫ'(ᠶ᠊᠊ᠣ᠊ᡝ᠊ᠨ)으로 표기되었다(37쪽).


3.2.4. ㅜ/ㅠ[편집]


ㅝ 계열의 글자는 ㅓ의 왼쪽 획이 ㅜ 가로획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 원칙이지만 초성으로 ꥫ 따위의 어마어마한 부피를 자랑하는 것이 들어가면 Noto sans 같은 폰트에서는 ㅓ의 왼쪽 획이 위로 올라가버리기도 한다. 그래도 실제로 발음 순서가 바뀌는 경우 ᅻ와 같이 ㅜ가 상당히 아래로 내려가는 식으로 조정되기 때문에 막 아주 헷갈리지는 않는다.

ꥫᆒퟴㆋᄱᆌᆱᅟᆌ

파일:noto uye.png
현재 폰트
Noto Sans 폰트
무슨 글자야 lvüjezvüjesmwjelmwje 류볘즈뷰옛뮈엘뮈에
  • 🌐🇰🇷
  • ᆊ🌐
ᄒᆊ타머졸하(동문유해 상:58ㄴ)가 등장한다.
ᄒᆋᆫ하다(ᄌᅼᆼ음문ᄌᅼᆫ 20)가 등장한다.
ᆂ와 마찬가지로 ㅜ의 장음이 아니라 앞의 ㅜ는 [w]를 표기하는 것으로, [wu] 정도로 발음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 ᆎ🌐
동문유해(同文類解, 1748) 上37b에서 '원수'(元帥)의 만주어 발음을 'ᄋᆎᆫᄉힷ'라고 적었다(39쪽).
  • ᆏ🌐
동문유해(同文類解, 1748) 上37b에서 '장군'(將軍)의 만주어 발음을 '쟝ᄌᆏᆫ/쟝ᄀᆏᆫ'이라고 적었다(39쪽).
이 글자가 지금까지 있었다면 재규어[ˈdʒæɡjuə(r)]를 '재ᄀᆏ'로 적을 수 있었을 것이다.
  • ᆑ🌐
ᄒᆑᆫ잣(용비어천가 1:8)이 등장한다. 졔ᄋᆑ(동문유해 상:39ㄱ)의 예도 있다.
역어유해(譯語類解, 1690) 下29a에서 '다리를 절다'라는 뜻의 瘸[qué]를 'ᄁᆑ'라고 적었다(38쪽).
긔ᄎᆒᄅᆞᆯ(태평광기언해 1:47)가 등장한다.

  • ힵ🌐
비록 옛한글 자모이지만 이 자모는 현대 한국어의 [ɥʌ] 발음을 표기하는 데 쓰일 수 있다. '-ㅟ다' 계열의 용언에 연결어미 '-어'가 붙는 경우로 '사귀어', '바뀌어' 등이 그 예이다. 이 모음을 쓰면 '사ᄀힵ', '바ᄁힵ' 등으로 쓸 수 있다. 하지만 현대 한글 자모에 없기에 '사겨', '바껴'로 쓰는 사람들이 많다. 단, 전설화/경구개음화되는 것을 재출로 표기에 반영한다고 하면 '바ᄁᆑ'로 적을 수도 있겠다( 문서).
물론 'ힵ'는 'ㅜ+ㅕ'로 볼 수 있고, 'ᆑ'는 'ㅠ+ㅕ'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두 표기 중 어느 것도 [ɥʌ] 발음의 엄밀한 표기라고 하기는 어렵다. 엄밀히 말하면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모음 [y]에 해당하는 문자가 없어 반모음 [ɥ]를 표기하는 방법 또한 없었기에, [ɥʌ] 발음을 표기하는 옛한글 조합은 만들어진 적이 없다. 'ힵ'든 'ᆑ'든 [ɥʌ]의 표기에 쓰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얘기다.
본명조에서는 가 합자했을 때 ㅗ+ㅕ의 모양으로 나오는 폰트 에러가 있다. 단독으로는 제대로 나온다.
파일:bon oyeo.png
  • 🌐
동문유해(同文類解, 1748) 上37b에서 '원수'(元帥)의 만주어 발음을 'ᄋᆎᆫᄉힷ'라고 적었다(39쪽).
  • 🌐
몽어유해(蒙語類解, 1768) 下10a에서 '(먼지 털어내는) 솔'[鍋刷]에 해당하는 몽골어가 '토곤 ㅜ ᄉힸᆯ'이라고 했다(40쪽).[39]


3.2.5. ㅡ[편집]


ᄋᆕ(개화기의 국문연구 203)의 예가 있다.
1905년 지석영신정국문을 통해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를 썼는데 이를 그대로 따르지 않은 이유는 당시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실전되어있던 영향도 있었을 듯하다. 문서 참고.

이필수(李弼秀)의 선문통해(鮮文通解, 1922) 64쪽에서 '적다'(少)를 'ᄌ\ힺᆨ다'로 적었다. 동일 문헌에서 '엇지'(어찌)를 'ᄋ\ힺᆺ지'로 적은 것도 나타난다. 그 외에도 이 문헌에서는 '' 말음 동사('뜨다', '끄다' 등)의 '-어' 활용형을 모두 'ힺ'로 적었다.
이필수(李弼秀)의 정음문전(正音文典, 1923)[40] 96에서 "ᄀힻ가 ᄭᅩ리를 치며 ᄯᅱ였다"의 예문을 들었다(41쪽). '꼬리를 치는'[41]에서 걸로 보아 ''를 뜻하는 것 같다.
  • 🌐
삼역총해(三譯總解, 1704) 1:11a에서 'ᄒힼ'가 등장하였다.
자형상 ㅜ+ㅡ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가로로 합쳐진 ''가 'ㅣㅓ'가 아니라 'ㅏㅣ'임을 감안하면 'ㅜㅡ'로 보일 여지도 충분하다. 다행히(?) ㅜ+ㅡ의 합자는 아직 문헌에서 발견된 바가 없다.
ㅡㅣㅜ이다. 과거에 '뉴스'를 '늬우스'라고 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ᄂᆗ스'라고 적을 수도 있겠다. ㅣ가 후행 ㅜ랑 합쳐져 'ㅡㅠ'와 유사해질 가능성이 있으나, 'ㅡㅠ'는 쓰인 바가 없다.[42]


3.2.6. ㅣ[편집]


중국어에서 [j]가 활발히 사용되기에 중국어 표기에서 이들 ㅣ계 겹모음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한청문감(漢淸文鑑, 1779) 범례 3a에서는 'ퟀ, ퟂ, ᅸ, ퟃ'를 한꺼번에 소개하고 있다.

특이하게도ᆘ,ᆙ, ᆚ, ퟂ, ᆛ, ퟃ, ᆜ, ퟄ /ힿ 다 있는데 ㅣㅓ는 없다.

  • ᆙ🌐
ᄐᆙᆫ(한청문감 1:1ㄱ)의 예가 있다.
정약용의 아언각비(雅言覺非, 1819)에서 鋪墊[pūdiàn]의 중국음을 '푸ᄃ\ᆙᆫ'이라고 적었다(28쪽). 침대 매트리스 같은 깔개를 의미하는 단어라고 한다.
쟈봄ᄇᆚ(팔세아 4ㄱ)가 등장한다.
  • ᆛ🌐
컨ᄋᆛ(삼역총해 2:1ㄱ), ᄅᆛᄒᆉᆼ(동문유해 상20ㄴ)가 등장한다.
정약용의 아언각비(雅言覺非, 1819)에서 오늘날 '토시'가 된 套袖[tàoxiù]를 중국 음으로 'ᄐ\ᅶᄉ\ᆛ'라고 한다고 했다(28쪽).
ㆍㅡ起ㅣ聲,於國語無用。兒童之言,邊野之語,或有之,當合二字而用,如ᄀᆝᄀᆜ之類,其先縱後橫,與他不同。
'ㆍ'와 'ㅡ'가 'ㅣ'소리에서 일어난 소리는 우리 나라말에서 쓰임이 없고, 어린아이의 말이나 시골 말에 간혹 있기도 하는데, 마땅히 두 글자를 어울려 쓸 것이니 'ᄀᆝ' 나 'ᄀᆜ' 와 같이 세로로 된 글자를 먼저 쓰고 가로로 된 글자를 나중에 쓴 글자는 다른 글자(가로로 된 글자를 먼저쓰고, 세로로 된 글자를 나중에 쓴 글자)와 다르다.

훈민정음(1446)
아래 ᆝ와 함께 훈민정음(책)에서 나타나지만 '어린아이 말이나 시골 말에 간혹 있기도 하는데'라는 언급에서도 볼 수 있듯이 널리 쓰이지는 않았고 이는 현대 한국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
한청문감(漢淸文鑑, 1779) 12:6b에서 翹[qiáo]의 중국어 발음으로 'ᄏힽ'가 나온다(43쪽).
나눔명조 옛한글에서는 ㅣㅑㅗ라고 입력해도 ㅣㅑ로 뜨는 폰트 에러가 있다. 2018년 시점에서 ㅣㅑㅜ는 유니코드에 중성 낱자로 실려있지 않다. 한편 반대로 ㅣㅑㅜ로 입력하면 ㅣㅑㅜ 모양의 자형이 입력되지 않는다. 본명조, Noto sans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없다.
파일:namum iyao.png
한청문감범례(3ㄱ)에서 ᄂퟀ와 ᄎퟀ, ᄒퟀ 등이 등장한다.
  • (ㅣㅗㅣ)[43]
한청문감범례에서 ᄉퟂ가 등장한다.
ᄒퟃᆫ디(한청문감 11:52ㄴ)가 등장한다.
ᆍ, ᆂ와 마찬가지로 ㅣ의 장음이 아니라 [ji]를 표기하기 위해 ㅣ를 한 번 더 쓴 것이다. 영어 'yeast'의 발음 [ji:st] 중 [ji]를 표기하는데 쓸 수 있다.


3.2.7. ㆍ[편집]


ㆍ(아래아)는 차지하는 면적이 작은 특성상 어느 모음이 선행하는지 알기가 어렵다. 예컨대 ᆟ의 경우 ㅓ가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할 때 아래아가 후행하는 이중모음의 경우 ᆝ처럼 모음의 아래에 바로 이어지도록 만들었기에, 그렇지 않은 경우 아래아가 선행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아래아가 문자 구성 요소로 쓰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단모음으로 ㅣ와 결합한 것이기에 문자 구성 요소로 결합한 것과 구분해야 한다. 예컨대 ㆍ와 ㅣ가 이중모음으로서 결합한 ᆡ와 문자 구성 요소 ㆍ와 ㅣ가 결합한 는 다르다. 단, ᆟ 같은 건 문자 구성 요소로 결합했다면 ''가 되었을 테니 구별이 되고, ㆍ와 ㅡ는 이중모음으로 결합해서 나타난 예가 없기에 와 헷갈리지 않는다. 아무튼 오늘날까지 아래아 이중모음 표기가 남아있었다면 아래아를 문자 구성 요소로 사용하는 천지인 자판 스타일의 입력이 조금 어려웠을 것이다.

단독 아래아조차도 혼란을 겪다가 결국 현대 한글에서 사라져버릴 정도로 변동이 많았기 때문에 이중모음도 다소 적은 편이다.

ᄀᆟᆼ사[慶事](ᄌᅼᆼ음문ᄌᅼᆫ 18)의 예가 있다.
신경준이 훈민정음 운해(訓民正音韻解, 1750)에서 j계 상향 이중 모음에 적용되는 재출(再出)의 원리(점을 두 번 찍는 원리)에 맞게 ᆢ를 소개하였다. 이 문단의 다른 모음처럼 ㆍ와 다른 모음이 이중모음으로 결합한 것은 아니다.



4. 호환용 자모 목록[편집]


아래 자모들은 조합되지 않고 홀로 쓰일 것을 상정하고 추가된 글자들이다. 홀로 쓰는 용도이기에 자음에서 초성/종성의 구분은 없다. 조합형 옛한글이 구현된 이후 업데이트되지 않아서 일부만이 등록되어있다. 입력할 때에는 이것들이 뒷 음절자와 합쳐져서 꼬이거나 하는 일이 없어서 편리하기는 하다. 이곳 위키에서도 , , 등은 이쪽 코드를 표제어로 문서가 만들어져있다. 총 42개가 실려있다.


4.1. 자음[편집]



4.1.1. ㄴ[편집]




4.1.2. ㄹ[편집]




4.1.3. ㅁ[편집]




4.1.4. ㅂ[편집]




4.1.5. ㅅ[편집]




4.1.6. ㅿ[편집]




4.1.7. ㅇ/ㆁ[편집]




4.1.8. ㅎ[편집]




4.1.9. ㆆ[편집]




4.1.10. 특수[편집]


치두음과 정치음은 홑자모용으로 실려있지 않다.


4.1.10.1. ㅇ 연서[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훈민정음의 순경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ᄛ은 실려있지 않다.



4.2. 모음[편집]



[이미지]
파일:qe.png
ퟣ⃰. '*'과 종성 'ㅳ'이 결합한 모습이다.
[17] 이러한 점 역시 ㅂ과 ㅸ의 조음점이 다르다는 점에서 ㅇ계 겹자음이 ㅇ 연서에서 착안되었을 가능성을 눈여겨보게 한다.[18] 같은 책에서 일본어의 유성 파열음에 탁점을 쓴 예가 있다.[19] '몹쓸'에 'ㅂ'이 들어가는 것도 'ᄡᅳ다'의 영향이다.[20] 정승철(2013), 語頭子音群의 硬音化와 激音化, 한국문화 제32집 2003.12, pp. 31~48.[21] 단, ㅆ만큼은 ㅅ계 합용병서로도 볼 수 있으므로 원각경언해 이후 시기에도 꾸준히 출현한다.[22] 각자병서는 중세 한국어 문헌에서 각자병서로 통일하자고 처음 제안한 것은 1909년 국문연구의정안이며,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친 것은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 때이다(한글 맞춤법/역사).[23] 그 유명한 김소월진달래꽃도 1922년판은 표기가 '진달내ᄭᅩᆺ'이다. 다만 이 문헌은 이후 저자의 표기 의식이 바뀌었는지 1925년에 발간된 동명의 시집의 제목은 '진달내꽃'으로 나왔다.[24] 다만 파열음에서 ㅅ계 합용병서는 사이시옷의 ㅅ이 폐쇄를 표시한다고 해석하면 후행 자음이 경음으로 인식된다고 볼 음운론적인 근거가 있으나, ㄹ과 같은 유음에서는 ㅅ을 곧이곧대로 [s\]로 해석하든 폐쇄로 해석하든 [l\]이 되는 것을 직관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약점이 있다. 폐쇄([t\])라고 생각한다면 현대 한국어 음운 규칙상으로도 비음화([n\]) 후 유음화를 거쳐 /ㄹㄹ/이 될 수 있기는 하다.[25] 후행 자음에 따라 '유성음'과 같은 특정 자질의 표기를 다르게 하는 방식은 용비어천가에서 (오늘날 사이시옷으로 남은) 속격 표기에서도 나타난다. 이 때도 초성 ㄷ에는 종성 ㄴ이, 초성 ㄱ에는 종성 ㆁ이 대응되는 식이다. 거기에서는 된소리 자질을 나타낸다.[26] 비록 외국 용례이지만, 재미있게도 현대 그리스어에서는 /g/, /d/, /b/를 나타낼 때 γκ, ντ, μπ와 같은 식으로 표기하는데 이는 왜어유해에서 유성음을 나타낸 방식과 똑같다.[27] 참고로 같은 시기에 대부분의 언론 (그리고 심지어 이종극의 모던조선외래어사전에서조차)은 [v\]를 기존의 한국어에 존재하는 양순음 자음(ㅂ, ㅍ, 혹은 ㅃ)으로 옮겨적었다.[28] 상자 감. '작은 잔 공'이라는 독음도 있다. 㔶이라고도 쓴다.#[29] 에스페란토의 'sign'의 변화형을 적은 것이다(283쪽).[30] '소금 간' 할 때의 '간'이다.[31] 이는 이두/향찰의 音叱과도 연결된다. 과거에 音은 청자존대법 '-ᅌᅵ-'와도 연관시키곤 했다.[32] 나무로 네모지게 짜서 만든 그릇. 운두가 조금 깊으며 밑은 좁고 위는 넓다(네이버 국어사전). '함지박'과 같은 합성어가 있다.[33] 이 단어는 지금도 한국에서 음차해서 자주 쓰는데 주로 '억셉(트)' 식으로 부른다.[34] 여기서 모음자의 순서는 훈민정음에서 소개된 순서를 따랐다.[35] 이 중 '암바'가 '大'에 해당한다. 그래서 대청제국을 '암바 칭 구룬'(Amba Cing Gurun)이라고도 한다.[36] '세대' 역시 '쟈란'이라고 하는 것이 '마디'와 연관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터'이고, 그래서 '當今'은 '테 쟈랸'이라고 하는 것이 둘의 합성어 같다.[37] 乙은 '뇨혼', 丙은 'ᄫᅮᆯ갼', 丁은 'ᄫᅮ라훈'이라고 했다. 이 4개에서는 홀수번 십간에서 '-갼', 짝수번 십간에서 '-홀/훌'이 나타나는 공통점을 보인다.[38] ㅈ, ㅉ, ㅊ 다음의 이중 모음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현 표준어에서는 '자'와 '쟈'의 음이 같다고 보기에 '쟈'를 쓰지 않고 '자'로만 쓴다. 이러한 개정이 이루어진 것은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이다.[39] '가마'[鍋兒\]에 해당되는 말이 '토고'인 것과 관련이 있어보인다.[40] 앞서 언급된 선문통해의 수정판이다.[41] ㅅ계 합용병서 (ㅅㄱ같은 것)은 뒤에 있는 것을 된소리로 읽는다, ᄭᅩ리를 치며 ᄯᅱ였다. = 꼬리를 치며 뛰였다.[42] 이 문단을 잘 보면 알 수 있는 점이지만 ㅡ가 선행하는 겹모음 표기 중에서는 [j\] 상향이중모음 글자(ㅑ, ㅕ, ㅛ, ㅠ)가 결합한 예가 없다.[43] ᅟힱ처럼 ㅣ를 아래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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