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 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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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
柄谷行人
からたに こうじん

파일:가라타니 고진.jpg
본명
柄谷善男(からたに よしお (가라타니 요시오, Yoshio Karatani)
출생
1941년 8월 6일(82세)
국적
[[일본|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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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학력
도쿄대학 경제학부학사
도쿄대학 대학원 영문과석사
직업
작가

1. 개요
2. 행적
2.1. 1960년대
2.2. 1970년
2.3. 1980년
2.4. 1990년
2.5. 2000년
3. 여담
4. 가라타니 고진의 저작



1. 개요[편집]


"한 나라가 전쟁을 포기한다면 혹은 전쟁의 권리를 증여한다면 그것은 국가연합의 존재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버리겠지요. 그럼으로써 비로소 세계동시혁명이 됩니다."[1]

일본의 사상가, 문학비평가, 작가. 호세이대학 교수, 킨키대학 교수, 컬럼비아 대학교 객원교수, 코넬대학교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다. 일본의 대형서점에 가라타니 고진 코너가 별도로 마련돼 있을 정도로 일본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이다.

1960~1970년대에 일본의 인문학계를 이끈 인물이 요시모토 다카아키[2]였다면, 1970년대 후반부터는 가라타니 고진이 그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사유는 서구에서 발달한 근현대사상의 개념과 논리구조를 사용해 비서구인들 특유의 주변부적 문제의식을 풀이함으로써 세계적인 보편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1978년에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재해석한 저서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을 발표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책의 요점은 오늘날 고전 마르크스주의 식의 노동운동은 소비자운동으로 대체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또한, 가라타니는 노동운동이 힘을 잃어가듯이 문학 역시 힘을 잃고 있다고 판단했다. 포스트모더니즘 사조까지 시도했음에도 문학은 자신의 사회적 역할이 건재함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고, 따라서 21세기에는 '초비평'이라는 새로운 문화적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가 말하는 비평이란 문단에서 이루어지는 협소하고 자족적인 활동이 아니라, 근현대에 축적되어온 철학 사상들과 끝없이 투쟁하면서 '자본주의=민족(Nation)=국가(State)' 관념체를 극복할 담론을 생산하는 활동이다.

다양한 분야들을 넘나들며 무수한 사유적 업적을 남긴 점을 인정받아, 2022년에 '철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베르그루엔 철학문화상[3]의 수상자로 지명됐다.

2. 행적[편집]



2.1. 1960년대[편집]


도쿄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고 도쿄대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학부 시절에 여러 경제학 서적을 탐독했지만, 마르크스의 저작을 깊게 다룰 기회는 갖지 못했다. 이즈음의 가라타니는 경제학보다 문학에 더 관심이 많았다. 1966년에 그가 작성한 『사상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가 도쿄대신문에 평론 부문 가작으로 게재되기도 했다.

1967년, 가라타니는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과학부에서 석사논문인 「알렉산드리아 사중주의 변증법」을 제출했다. 그는 박사과정까지 이어갈 생각이 없었는데, 엘리트주의에 염증을 느껴서였다.

1969년, 가라타니는 「소세키 시론, 의식과 자연」으로 제12회 군상 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에서 수상했다. 이때부터 그의 문예비평가 경력이 시작된다. 20대의 고진은 요시모토 타카아키와 에토 준의 저서를 탐독하고 필사하는 데 많은 노력을 들였다. 평론에서 나쓰메 소세키를 다룬 것도 소세키의 논객으로 알려진 에토 준의 영향 때문이었다.

2.2. 1970년[편집]


1970년, 가라타니는 호세이대학 교양학부 전임강사로 취임했다. 1973년에 <맥베스론>을 「문예」에 발표한 것을 기점으로, 그는 단순한 문학비평을 넘어 사상과 이론을 중심으로 작품을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이즈음에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제시된 가치형태론을 재해석하는 작업도 진행됐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관점을 비판하고 대안적인 마르크스주의 해석을 모색하고자 한 가라타니는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을 「군상」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 요지는 자본가의 부를 증식시켜주는 잉여가치는 단순히 상품교환에서 발생한다기보다는 공간적인 가치체계에 의해 전개되며 시간이 흐르며 산업자본의 잉여가치체계도 변화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이 저서는 소쉬르의 언어학을 마르크스 이론에 접목시키는 독창적인 시도를 했다.

1975년, 호세이대학에 정식교수로 취임했다. 동시에 예일대학교 동아시아학과의 객원교수로 초빙되어 일본문학을 가르쳤다. 1977년까지 미국 동해안의 뉴헤이븐에 체류하면서, 가라티는 폴드만과 교류했으며 폴드만을 통해 자크 데리다를 소개받기도 했다.

1975년에 <의미라는 병>이 제7회 카메상 후보작으로 선정됐지만 낙선했다. 대신 1978년의 제10회 카메상에서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으로 수상했다. 1977년에 일본으로 귀국한 가라타니는 도쿄신문에 문예시평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1978년에는 <풍경의 발견>과 <내면의 발견>을 「계간 미술」에 발표했다.

2.3. 1980년[편집]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1980), 『은유로서의 건축』(1983), 『반성과 역행』(1985), 『탐구Ⅰ』(1986), 『탐구II』(1989)를 발표했다. 이른바 구조주의와 포스트 구조주의의 이론적 음미와 마르크스 『자본론』의 가치형태론을 동시에 분석했다. 또한 『은유로서의 건축』(1995) 영어로 번역되어 간행되었다. 일본의 80년대 소비사회와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고 「비평과 포스트 모던」(1985)과 함께 80년대를 풍미했다. 또한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이 간행되면서 예일대학 비교문학과 객원 연구원으로 이듬해에 미국에 체류한다. 테이프와 미디어를 활용해서, 자신의 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1984년에 와세다 대학에서 연구회의 강연인 「바흐친과 비트겐슈타인」를 발표했다. 1982년부터 와세다 대학에 재적하면서 당시 문학 연구회에 소속된 여러 사회학자들과 교류하며 가라타니 고진에게 영향을 받는다. 정작 이 당시에 가라타니는 『탐구』를 쓰기 이전부터 상당히 우울 했으며 비평적으로도 침묵을 유지했다. 1985년에 『내성과 역행』을 간행. 1987년에는 군상 신인 문학상에서 동상의 심사위원에 취임하고 1988년에 제 10회 노마문예 신인상에서 심사위원으로 취임한다.

1989년에는 횡단적인 비평 잡지인 『계간 사조』(1990)와 『비평 공간』(1991)을 창간하고 아사다 아키라와 함께 편집 위원을 맡았다. 아사다 아키라의 편집능력으로 당시에 이 잡지에 슬라보예 지젝을 일본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여기에는 에드워드 사이드, 프레드릭 제임슨과 같은 명망있는 비평가들도 포함되었다. 가라타니 고진은 90년대에 잡지를 중심으로 구조에서 실존, 그리고 개별성과 단독성, 일반과 보편성의 구분에 대한 논의를 칸트로부터 음미하기 시작했다.


2.4. 1990년[편집]


또한 1990년대는 포스트모던의 건축과 해체주의 건축의 대표적 작가인 이소자키 아라타, 피터 아이젠만, 모랄레스 등 건축가들이 주최한 건축과 다영역 대화의 장으로 국제회의인 ‘Any conference’(1991, 2001)에 참가. 디자인이나 건축 분야에서도 해체적으로 읽는다. L.A에서 열린 ANY의 제1차 회의에서 첫번째 패널로 데리다와 단상에 올랐다. 발언들은 『사상적 지진』(2020)에서 소개되었으며 당시 ‘Any’라는 주제답게 참석자들은 발표주제가 당일에 즉각적으로 정해졌으며 일본에 일어난 ‘지진’에 관해 가라타니는 발언한다. 1991년에는 걸프 전쟁에 반대하는 「문학가 성명」을 발표했다. 1991년에는 일본의 걸프 전쟁 참여에 반대하고 호소하는 문학자들을 중심으로 운동을 주도했다. 1998년에 앤디워홀에 대해서도 강연했다. 하지만 1999년 군상신인문학상과 노마문예신인상의 심사위원은 사임했다.


2.5. 2000년[편집]


2001부터 가라타니는 칸트마르크스를 시차적으로 읽으며 소비자와 협동조합의 비평공간 과 내용을 바탕으로 2000년 협회인 ‘국가와 자본에 대한 대항운동’을 이유로 NAM (New Associationist Movement)을 시작한다. 저명한 생태 활동가들과 다수가 참가하여 최대 700 명의 회원자격을 세웠다. 2001년에는 9 · 11 테러 발생했을 때, NAM 사이트에 '테러도 보복 전쟁에 반대한다'는 취지의 성명도 나왔다. 또한 비평 공간의 사이트에서 9.11 테러에 대한 가라타니 고진의 주석으로 글이 게재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1년에는 '비평 공간'의 편집자의 죽음을 계기로 해산했으며 가상화폐와 매체의 발전으로 인해 NAM도 해산하게 된다. 2003년에 지젝은 가라타니 고진의 저서를 평가했으며 헤겔적 비판으로부터 가라타니를 동시에 비판한다.

2004년에 긴키 대학에서 강의를 바탕으로 ‘근대 문학의 종말’을 발표하고 "청소년들에게 '문학'이 아니라 '현대문학'과 의미가 같지만, 다른 것을 실현하라고" 그 취지를 밝혔다. 이는 해리포터의 판타지 장르를 읽으며 근대문학을 읽지 않는 세대에 대한 비판이었다. 가라타니는 사실상 현세대가 문학비평을 실시하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다. 2003년에 MIT 출판에서 『트랜스크리틱』이 간행되었다.

2005년에는 아사히 신문의 서평위원 2006년에 킨키 대학의 운영에 불만을 가지고 대학에서 사임하고 2006년에 마지막 강의 이후 외국인을 포함하여 대학에서 세미나를 실시하진 않았다. 그나마 최근에 자택 근처에서 반년에 한번씩 무료공개강의를 진행했다. 2010년 이와나미 문고에서 『세계사의 구조』(2010)를 간행했다. 2011년 원전 지진 후에 “데모를 할 때 사회를 바꾸는 것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시위로부터 일본사회는 사람들의 참여로부터 사회가 변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신주쿠 알타 광장에서 연설했다.

2014년에 듀크대학 출판부에서 『세계사의 구조』가 영어로 번역되었다. 한국에선 가라타니 고진의 전집들이 주로 이와나미 문고에서 번역되며, 번역가들 중에서는 문학평론가인 조영일과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인 박유하도 있다. 당시 일본의 비평에 영향을 받았던 박유하의 교수의 주장들이 한국에선 비판받기도 했으며, 재판까지 회부됐기 때문에 여전히 평가에 있어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3. 여담[편집]


당시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1980)은 한일양국에서 화제가 되었다. 원 저작은 70년대에 나왔지만 당시 인문계열 대학원생이라면 한번씩은 읽을만큼 유행했고, 한국에서는 90년대말에 본격적으로 번역되어서 한국에서 당시 인문계열 전공자들은 읽었을 정도다. 2000년대 아즈마 히로키로부터 한국에서도 서브컬쳐 평론이 범람하면서 이 저작도 김윤식과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타는 혀』의 이명원과 표절시비로 유명했지만 김윤식 교수만이 아니라 90년대에 가라타니 고진의 문학론은 문학적 내면론에도 영향을 끼쳤다.

연쇄살인범 출신 작가인 나가야마 노리오가 1990년 작가 아키야마 슌, 가가 오토히코의 추천을 받아 일본문예가 협회에 입회를 신청했지만 협회에선 연쇄살인마였던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입회를 거부했고, 이에 항의하여 나가가미 겐지 및 츠츠이 야스타카와 함께 일본문예가 협회를 탈퇴하기도 했다.

고진은 일본 사상가들이 의도적으로 일본문화에서 한국을 배제하고 있다고 말하며, 한국의 영향을 강조하고 있고, 한국에 자주 강연을 왔을 때 본인이 생각했던 근대문학과 정치활동이 한국에는 최근까지도 남아있다며 데모와 같은 정치적 활동이 일본에선 갖지 못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2022년에 베르그루엔 철학상을 수상했다. 100만 달러를 수여받았으며, 일부는 지역협동조합에 기부하고 나머지는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4. 가라타니 고진의 저작[편집]


이와나미 문고판(B 컬렉션)

1. 『세계공화국으로』
2. 『역사와 반복』
3. 『네이션과 미학』
4.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5. 『근대문학의 종언』
6. 『정치를 말하다』
7. 미간(未刊), 혹은 『탐구』
8. 『문자와 국가』
9. 『세계사의 구조』(대표작)
10. 『자연과 인간』
11. 『트랜스크리틱』(대표작)
12. 『세계사의 구조를 읽는다』
13. 『철학의 기원』
14. 『제국의 구조』
15. 『헌법의 무의식』
16. 『윤리21』(정치비평집)
17. 『유동론』
18. 『사상적 지진』(강의록)
19. 『문학론집』(문학비평집)
20. 『나쓰메 소세키론 집성』

이외

1. 『은유로서의 건축』, 한나래, 1998
2.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 이산, 1999
3. 『근대 일본의 비평』, 소명출판, 2002
4. 『현대 일본의 비평』, 소명출판, 2002
5. 『유머로서의 유물론』, 문화과학사, 2002
6. 『언어와 비극』, B, 2004
7. 『일본정신의 기원』, 이매진, 2006
8. 『탐구Ⅰ·Ⅱ』, 새물결, 2010
9. 『가능성의 중심』, 궁리, 2015 (대담집)
10. 『세계사의 실험』, 비고, 2021
11. 『하루키의 풍경』, 비고,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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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능성의 중심』, 궁리, 가라타니 고진 참조[2] 한국에서는 소설 <키친>을 쓴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버지로 유명하다.[3] '집 없는 억만장자'로 알려진 니콜라스 베르그루엔에 의해 2016년에 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