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 카스파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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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ry Kasparov
Гарри Кимович Каспаров
가리 키모비치 카스파로프

파일:attachment/가리 카스파로프/카스파로프.jpg
출생
1963년 4월 13일 (6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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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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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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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 SSR 바쿠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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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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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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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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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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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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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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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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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타이틀
GM (1980)
세계 챔피언
1985-1993
1993-2000 (클래시컬)
Elo 레이팅
2851 (최고 레이팅)
파일:Fide 아이콘.jpg

1. 개요
2. 생애
3. 슈퍼컴퓨터와의 대결
3.1. vs Deep Thought
3.2. vs 딥 블루 1차전
3.3. vs 딥 블루 2차전
4. 기풍
5. 여담




1. 개요[편집]


Garry Kimovich Kasparov. Гарри Кимович Каспаров (1963 ~ )

러시아의 프로 체스 선수. 약 1985년부터 2000년까지 무려 16년간 세계 챔피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체스 실력을 평가하는 점수인 Elo 레이팅 세계 1위를 2006년에 은퇴할때까지 유지했다. 그의 Elo rating 최고기록인 2851은 현재 망누스 칼센(Magnus, 노르웨이 발음)이 2014년 갱신했지만 실질적으로 은퇴 이후 8년간 그의 기록을 넘지 못했다는 것이 놀라울 지경. 바둑계의 이창호와 비슷한 체스계의 거장이다.


2. 생애[편집]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유대인, 어머니가 아르메니아인이다. 어릴적부터 체스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 10살에 유명한 러시아의 세계 챔피언 미하일 보트비닉의 제자가 되었고, 16살에는 이미 세계랭킹 15위를 찍었다.

21살이 된 1984년에는 세계 챔피언이었던 아나톨리 카르포프에게 도전기를 벌였는데, 이 결승전에서 두 선수는 5개월동안 48게임을 두어 그 중 40게임을 무승부로 끝내는(카르포프 5승, 카스파로프 3승) 전무후무의 대결을 벌였다. 이 때 세계 챔피언 결승전은 전체 게임 수와 관계없이 상대보다 먼저 6승을 따내는 쪽이 승리하는 독특한 룰을 갖고 있었기 때문으로, 카르포프가 첫 9경기에서 4승을 내리 따냈으나 정작 나머지 39경기에서 남은 2승을 채우지 못한 것. 경기가 너무 길어질 것을 우려한 FIDE 측에서 차년도에 24전제로 대회 재개하되 2승 우위를 가지고 있었던 카르포프가 차년도 대회에서 패배할 시 차차년도에 재경기를 진행한다는 조건으로 경기를 중단하였고, 결국 이 대회는 경기가 중단된 최초의 챔피언 결정전이 되었다.[1]

카스파로프는 다음 해 챔피언 결정전에 재도전하여 결국 챔피언 자리를 따내게 되고, 이후 FIDE와의 반목으로 협회를 떠나는 1993년까지 챔피언 자리를 연속 방어하였다. 참고로 카르포프와의 챔피언 결정전은 마지막 경기에서 승자가 결정됐을 정도로 팽팽한 경기였다.

1986년 챔피언 우승 이후 그랜드마스터 협회(Grandmasters Association: GMA)를 창설해 일종의 프로 체스기사 노조위원장직을 수행했다. 더 많은 그랜드마스터들이 더 자주 대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FIDE의 챔피언십 대회를 제한 시간에 따라 스탠다드, 래피드, 블리츠 등으로 세분화한 것이 GMA 위원장으로서의 카스파로프의 주요 업적이다.[2] 그러나 GMA 위원장으로 제직하면서 FIDE와 상당히 불편한 관계가 되었고, 나이절 쇼트와의 1993 월드 챔피언십을 앞두고 졸속으로 이뤄진 FIDE의 상금 모금을 문제삼아 협회를 떠나 PCA(Professional Chess Association: 프로 체스 협회)를 창설한다.

카스파로프가 협회를 떠난 후 체스 챔피언 대회는 두개로 분열되는데 각각 카스파로프를 계속 챔피언이라 인정하는 대회(PCA)와 새로운 챔피언(카르포프)으로 갈아탄 대회(FIDE)이다. 여기서 카스파로프는 2000년 블라디미르 크램닉과의 대결에서 패하면서 챔피언 자리를 내놓게 된다.[3]

1997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명예국민이 되었다.

2005년에 체스계에서 은퇴를 발표했다. 비록 챔피언 자리에서는 내려왔지만 레이팅 기준으로는 여전히 1위로 최정상인 상태였다.

정치에도 관심이 많아 은퇴 후엔 2008년 러시아 대선에 야당 대표로 출마하기도 했으나, 정치가로서는 별로 인기가 없어 중도 사퇴하였다. 2014년 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암살협박을 받았다며 크로아티아망명이민을 신청했고, 망명/이민이 허가되어 2014년부터 크로아티아 국적을 획득했다.


3. 슈퍼컴퓨터와의 대결[편집]



3.1. vs Deep Thought[편집]


카스파로프가 처음 세계 챔피언에 올랐을 무렵, IBM에서는 "세계 챔피언을 이길 수 있는 체스 컴퓨터를 만들자!"는 목표로 체스 인공지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IBM에서 내놓은 첫 모델은 1989년에 나온 깊은 생각(Deep Thought)인데, 이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오는 거대 컴퓨터의 이름을 딴 것이다.

카스파로프에게 야심차게 도전장을 던졌지만 4게임 중 한판도 따내지 못하고 완패했다. 당시 깊은 생각의 Elo 레이팅은 약 2500 정도로, 평범한 그랜드마스터 수준이었다.


3.2. vs 딥 블루 1차전[편집]


파일:external/sysrun.haifa.il.ibm.com/4506VV1001.jpg
딥 블루

파일:external/searchengineland.com/kasaprov_vs_deep_blue.jpg
1996년 1차전. 카스파로프(4–2, 승)와 딥 블루[4]

1996년, IBM은 깊은 생각을 업그레이드한 딥 블루(Deep Blue)를 제작하여 카스파로프에게 재도전하였다. 딥 블루는 IBM의 메인프레임인 RS/6000 SP를 메인으로써 체스에 특화되게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는데다 체스 전용 칩을 16개나 가지고 있었다.[5] 이 경기에서 딥 블루는 6경기 중 첫 경기를 이겨, "공식 경기에서 세계 챔피언에게 한판을 따낸 최초의 체스 컴퓨터"가 되었다.


3.3. vs 딥 블루 2차전[편집]


파일:external/en.chessbase.com/kasparov04-1997.jpg
1997년 2차전. 카스파로프와 딥 블루(3½–2½, 승)

비록 한 게임이지만 승점을 따낸 것을 보고 IBM에서는 확신이 들었는지 정말로 작정을 하고 덤벼들기 시작했다. 체스 전용 칩을 16개에서 480개로 늘리고 알고리즘 또한 개선했다. 다수의 그랜드 마스터들을 고용하였고, 그동안의 카스파로프의 기보를 분석해 파훼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97년 IBM은 딥 블루를 다시 업그레이드하여 카스파로프에게 재도전하였다. 이 경기에서는 5경기까지 1승 3무 1패로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다가 마지막 한판을 딥 블루가 따내면서 딥 블루의 승리가 되었다. 이로써 딥 블루는 "공식 경기에서 세계 챔피언에게 승리한 최초의 체스 컴퓨터"가 되었고, 카스파로프는 "컴퓨터에게 패배한 최초의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즉, 요약하자면 1996년에는 카스파로프가 딥 블루를 제압했지만 1997년에는 딥 블루가 복수에 성공했다. 한국에서는 유독 이상하게 카스파로프가 딥 블루에게 진 것만 부각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1997년 딥블루는 1996년의 딥 블루와는 다르며 '컴퓨터가 인간을 이겼다'라는 것이 인공지능 역사의 획을 긋는 대사건이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6]

1경기 44수에 딥 블루가 뜬금없이 자기 을 희생시키는 수를 뒀는데, 실은 이 수가 딥 블루의 버그로, 소프트웨어 오류로 탐색이 불가능해서 최후의 수단으로 아무 수나 둔 것이라는 게 나중에 밝혀졌다(1게임은 45수를 둔 후 카스파로프의 승리로 끝났다). 영어 기사일본어 기사일본어 기사 번역 이 버그는 다음날 고쳐졌다. 하지만 문제는 이 수 이후 새로운 효과적인 공격루트를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계산한 카스파로프는 이 반 직관적인 희생을 '컴퓨터가 기물희생을 통한 새로운 루트를 고려하고, 인간의 방심까지 유도할 정도로 뛰어난 지능을 가진 증거'로 생각했고 이후 다음 경기들에서 너무 고평가해서 의식한 나머지 패배까지 이어진 것 같다고 회고했다.[7]

이 경기 이후, 이후로 컴퓨터와 같이 사람을 상대로 대결을 하거나 컴퓨터, 사람 파트너가 다른 컴퓨터, 사람 파트너 상대로 대결을 하는 등 여러가지 조합들이 실험되었다. 게임을 두다가 화장실 가서 폰으로 다음 수를 검색하는 반칙자도(...) 생겨나자 룰도 더 엄격해졌다.

이 부분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 기묘한 이야기 극장판 "체스"의 모티브가 되었다.

2016년 3월 9일 이세돌알파고대결을 지켜보고 동병상련을 느낀다며 이세돌이 극복하길 기원하는 트윗을 올렸다. #


4. 기풍[편집]


수읽기와 변화수 계산 능력이 뛰어났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 복잡한 포지션으로 들어가는 것을 즐겼으며, 난전 속에서 역동적이고 공격적인 전술로 승리를 가져왔다. 굉장히 포지셔널한 플레이었던 라이벌 아나톨리 카르포프와는 정 반대.

현 챔피언 망누스 칼센은 카스파로프에게서 교습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인터뷰에서 그때 배운 것은 복잡한 포지션에서의 계산 능력이었다고 말했다.


5. 여담[편집]


  • 표준편차 24 기준 IQ가 191이다. 검사를 치렀을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IQ를 가지고 있었으나 주목을 받는게 싫었는지 기네스 기록을 신청하지 않았다. 다만 주로 많이 쓰이는 표준편차 15 기준으로는 IQ 158이다. 게리 카스파로프의 IQ는 MIT 교수가 Elo rating을 IQ 지수로 단순히 환산한 것이라 한다. 슈피겔지에 의하면 1988년 수랑 언어 관련된 문제로 이루어진 테스트에서 135를 기록했다고 한다. 135면 Sd24 정도, 즉 156으로 저 정도로 높은건 아니다. 이후에 높게 나왔거나 저 정보가 잘못됐거나 스탠퍼드 스케일을 사용했거나... 물론 도형쪽 테스트에서는 체스경기에서 매번 하는 패턴인식이니 훨씬 높게 나올 수도 있다.

  • 현재도 종종 체스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참고로 체스 레이팅은 시간제한이 긴 스탠다드 체스 레이팅[8] 뿐만 아니라 시간제한이 짧은 래피드, 블리츠 체스 레이팅을 따로 매기는데 거기서도 2018년 2월 기준 세계랭킹 10위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특이하게 스탠다드 체스는 두지 않는데 아마 나이가 발목을 잡는걸로 보인다. 2021년 7월에 진행되었던 크로아티아 그랜드 체스 투어 블리츠 부문에 참가하였다. 다만, 블리츠이기도 하고 나이가 나이인지라 상당히 부진했다. 이후 몇몇 래피드 및 체스960 대회에 참여하여 괜찮은 성적을 내면서 폼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과시했다.

  •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의 컨설턴트로 참여했다.

  • 블라디미르 푸틴에 반대하는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크로아티아로 망명한 이후 푸틴을 지속적으로 비판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반대 입장을 드러냈으며 전쟁이 푸틴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러시아어)

  • 은퇴 당시 레이팅은 2812로 상술했다시피 세계 1위인 상태였다. 현재는 inactive 상태가 되어 순위에는 표시되지 않는다. 22년 기준으로도 이보다 레이팅이 높은 선수는 망누스 칼센 뿐이다. 그래서 레이팅으로 참가 자격을 주는 대회가 생길 때마다[9] 카스파로프가 복귀하면 참가 확정이라는 농담이 돈다. 물론 실제로는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조건이 더 붙는다.

  • 최초로 레이팅 2800을 넘긴 선수다. 22년 현재도 레이팅 2800을 넘긴 적이 있는 선수는 모두 14명 밖에 안된다. 그나마도 대부분은 레이팅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받아 2010년대에나 달성했는데 카스파로프 혼자 20세기에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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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체스협회 측은 너무 길어진 경기로 두 선수가 건강을 해칠 것이 우려된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지만, 정작 두 선수는 게임을 계속하길 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결정이 이해도 되는 것이, 실제로 방어 중인 아나톨리 카르포프는 대회 기간 동안 체중이 10kg 정도 빠졌다고 한다(!).[2] 이 세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것이 체스의 트리플 크라운으로 꼽히는데,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선수는 40년 내내 망누스 칼센 단 하나밖에 없다.[3] 참고로 2006년 이후로 체스 챔피언 대회는 다시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카스파로프 스스로가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고 결국 사라졌다. PCA의 크램닉이 통합 타이틀을 우승하면서 현재 FIDE는 1993~2006년 시기의 PCA 챔피언을 공식 챔피언으로 인정하고 있다. 가리 카스파로프(1985~2000) 블라디미르 크램닉(2000~2007)[4] 참고로 사진 속의 남자는 펭슝수라는 인물인데 훗날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알파고 대신 바둑돌을 놓아주는 아자 황이라는 인물이 그와 비슷하게 생겨서 아자 황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5] 몇 가지 최적화가 있긴 하지만 딥 블루의 메인 알고리즘은 당대에 널리 쓰이던 alpha-beta pruning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물론 완전히 똑같지는 않고 필요하면 탐색 깊이를 더 늘릴 수 있도록 경험적인 방법이 함께 도입되었다.[6] 이원복 교수의 시사만화 <현대문명진단> 1997년 5월 22일자 '인간이 기계에게 굴복하는 날...' 편에 따르면 카스카로프 본인도 2010년부터 체스 챔피언을 기계가 영원히 차지한다고 예언했고, 저자 역시 앞으로 인류가 기계에 지배당할 거라 비관적으로 전망했지만 딥 블루를 비롯한 당시의 인공지능들은 사회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기엔 부족한 면이 많았고 덕분에 미래학자들의 낙관적인 전망만 믿고 공격적으로 투자를 감행한 사람들은 전부 쪽박을 찼다. 그리고 당시 미래학자들이 제시했던 사회의 모습은 20년 뒤 알파고를 위시한 딥러닝 기반 인공지능들이 등장하고 나서야 천천히 실현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인공지능/논란 문서를 참조.[7] 막경기에 카스파로프의 실수로 19수만에 게임이 종료되었다.[8] 체스 레이팅이라고 하면 거의 이것을 의미한다.[9] 예를 들어 챔피언 도전자 선발전에 결원이 생길 경우 최고 레이팅 보유자에게 참가 자격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