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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대 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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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tablebgcolor=#fff,#000><width=25%>
고밀후

등우 ||
광평후

오한 ||
교동후

가복 ||
호치후

경엄 ||
||
옹노후

구순 ||
무양후

잠팽 ||
양하후

풍이 ||
격후

주우 ||
||
영양후

제준 ||
역양후

경단 ||
안평후

개연 ||
안성후

조기 ||
||
동광후

경순 ||
낭릉후

장궁 ||
양허후

마무 ||
신후

유륭 ||
||
전초후

마성 ||
부성후

왕량 ||
축아후

진준 ||
참거후

두무 ||
||
곤양후

부준 ||
합비후

견심 ||
회양후

왕패 ||
아릉후

임광 ||
||
중수후

이충 ||
괴리후

만수 ||
영수후

비동 ||
창서후

유식 ||
||
산조후

왕상 ||
고시후

이통 ||
안풍후

두융 ||
선덕후

탁무 ||



후한서(後漢書)

[ 본기(本紀) ]
1권 「광무제기(光武帝紀)」
2권 「명제기(明帝紀)」
3권 「장제기(章帝紀)」
유수
유장
유달
4권 「화제상제기(和帝殤帝紀)」
5권 「안제기(安帝紀)」
6권 「순제충제질제기(順帝沖帝質帝紀)」
유조 · 유륭
유호
유보 · 유병 · 유찬
7권 「환제기(桓帝紀)」
8권 「영제기(霊帝紀)」
9권 「헌제기(獻帝紀)」
유지
유굉
유협
10권 「황후기(皇后紀)」
곽성통 · 음여화 · 명덕황후 · 장덕황후 · 효화황후 · 등수 · 염희 · 양납 · 양여영 · 등맹녀 · 두묘 · 효인황후 · 효령황후 · 영사황후 · 복수 · 조절 · 무양장공주 · 열양공주 · 관도공주 · 육양공주 · 역읍공주 · 획가장공주 · 평양공주 · 융려공주 · 평지공주 · 심수공주 · 평고공주 · 준의공주 · 무안공주 · 노양공주 · 낙평공주 · 성안공주 · 무덕장공주 · 평읍공주 · 음안공주 · 수무장공주 · 공읍공주 · 임영공주 · 문희공주 · 무양장공주 · 관군장공주 · 여양장공주 · 양안장공주 · 영음장공주 · 양적장공주 · 만년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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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기(本紀) ]
1권 「광무제기(光武帝紀)」
2권 「명제기(明帝紀)」
3권 「장제기(章帝紀)」
유수
유장
유달
4권 「화제상제기(和帝殤帝紀)」
5권 「안제기(安帝紀)」
6권 「순제충제질제기(順帝沖帝質帝紀)」
유조 · 유륭
유호
유보 · 유병 · 유찬
7권 「환제기(桓帝紀)」
8권 「영제기(霊帝紀)」
9권 「헌제기(獻帝紀)」
유지
유굉
유협
10권 「황후기(皇后紀)」
곽성통 · 음여화 · 명덕황후 · 장덕황후 · 효화황후 · 등수 · 염희 · 양납 · 양여영 · 등맹녀 · 두묘 · 효인황후 · 효령황후 · 영사황후 · 복수 · 조절 · 무양장공주 · 열양공주 · 관도공주 · 육양공주 · 역읍공주 · 획가장공주 · 평양공주 · 융려공주 · 평지공주 · 심수공주 · 평고공주 · 준의공주 · 무안공주 · 노양공주 · 낙평공주 · 성안공주 · 무덕장공주 · 평읍공주 · 음안공주 · 수무장공주 · 공읍공주 · 임영공주 · 문희공주 · 무양장공주 · 관군장공주 · 여양장공주 · 양안장공주 · 영음장공주 · 양적장공주 · 만년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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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11권 「유현유분자열전(劉玄劉盆子列傳)」
12권 「왕유장이팽노열전(王劉張李彭盧列傳)」
유현 · 유분자
왕창 · 유영 · 방맹 · 장보 · 왕굉 · 이헌 · 팽총 · 노방
13권 「외효공손술열전(隗囂公孫述列傳)」
14권 「종실사왕삼후열전(宗室四王三侯列傳)」
외효 · 공손술
유인 · 유량 · 유지 · 유흡 · 유사 · 유순 · 유가
15권 「이왕등내열전(李王鄧來列傳)」
16권 「등구열전(鄧寇列傳)」
17권 「풍잠가열전(馮岑賈列傳)」
이통 · 왕상 · 등신 · 내흡
등우 · 구순
풍이 · 잠팽 · 가복
18권 「오갑진장전(吳蓋陳臧列傳)」
19권 「경엄열전(耿弇列傳)」
20권 「요기왕패채준열전(銚期王霸祭遵列傳)」
오한 · 갑연 · 진준 · 장궁
경엄
요기 · 왕패 · 채준
21권 「임이만비유경열전(任李萬邳劉耿列傳)」
22권 「주경왕두마유부견마열전(朱景王杜馬劉傅堅馬列傳)」
임광 · 이충 · 만수 · 비동 · 유식 · 경순
주우 · 경단 · 왕량 · 두무 · 마성 · 유륭 · 부준 · 견담 · 마무
23권 「두융열전(竇融列傳)」
24권 「마원열전(馬援列傳)」
25권 「탁노위유열전(卓魯魏劉列傳傳)」
두융 ,두헌,
마원
탁무 · 노공 · 위패 · 유관
26권 「복후송채풍조모위열전(伏侯宋蔡馮趙牟韋列傳)」
27권 「선장이왕두곽오승정조열전(宣張二王杜郭吳承鄭趙列傳)」
복담 · 후패 · 송홍,송유, · 채무 · 풍근 · 조희 · 모융 · 위표
선병 · 장담 · 왕담 · 왕량 · 두림 · 곽단 · 오량 · 승궁 · 정균 · 조전,조계,
28권 「환담풍연열전(桓譚馮衍列傳)」
29권 「신도강포영질운열전(申屠剛鮑永郅惲列傳)」
30권 「소경양후낭의양해열전(蘇竟楊厚郞顗襄楷列傳)」
환담 · 풍연
신도강 · 포영,포욱, · 질운
소경 · 양후 · 낭의 · 양해
31권 「곽두공장염왕소양가육열전(郭杜孔張廉王蘇羊賈陸列傳)」
32권 「번굉음식열전(樊宏陰識列傳)」
곽급 · 두시 · 공분 · 장감 · 염범 · 왕당 · 소장 · 양속 · 가종 · 육강
범굉 · 음식
33권 「주풍우정주열전(朱馮虞鄭周列傳)」
34권 「양통열전(梁統列傳)」
35권 「장조정열전(張曹鄭列傳)」
주부 · 풍방,풍석, ,유희, · 우연 · 정홍 · 주장
양통
장순 · 조포 · 정현
36권 「정범진가장열전(鄭范陳賈張列傳)」
37권 「환영정홍열전(桓榮丁鴻列傳)」
38권 「장법등풍탁양열전(張法滕馮度楊列傳)」
정흥 · 범승 · 진원 · 가규 · 장패
환영,환언, ,주총, · 정홍
장종 · 법웅 · 등무 · 풍곤 · 도상 · 양선
39권 「유조순우강유주조열전(劉趙淳于江劉周趙列傳)」
40권 「반표열전(班彪列傳)」
유평 · 조효 · 순우공 · 강혁 · 유반,유개, · 주반 · 조자
반표
41권 「제오종리송한열전(第五鍾離宋寒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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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권 「등장서장호열전(鄧張徐張胡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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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권 「진왕열전(陳王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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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권 「당고열전(黨錮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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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권 「곽부허열전(郭符許列傳)」
69권 「두하열전(竇何列傳)」
70권 「정공순열전(鄭孔荀列傳)」
곽태 · 부융 · 허소
두무 · 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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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권 「동탁열전(董卓列傳)」
73권 「유우공손찬도겸열전(劉虞公孫瓚陶謙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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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탁
유우 · 공손찬 · 도겸
74권 「원소유표열전(袁紹劉表列傳)」
75권 「유언원술여포열전(劉焉袁術呂布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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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권 「환자열전(宦者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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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권 「유림열전(儒林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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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권 「일민열전(逸民列傳)」
상장 · 봉맹 · 주당 · 왕패 · 엄광 · 정단 · 양홍 · 고봉 · 대동 · 한강 · 교신 · 대량 · 법진 · 한음노보 · 진류노보 · 방공
84권 「열녀전(列女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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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권 「동이열전(東夷列傳)」
86권 「남만서남이열전(南蠻西南夷列傳)」
87권 「서강전(西羌傳)」
부여국 · 읍루 · 고구려 · 북옥저 · ·
남만 · 서남이
서강
88권 「서역전(西域傳)」
구미국 · 우전국 · 서야국 · 자합국 · 덕약국 · 안식국 · 대진국 · 대월지국 · 고부국 · 천축국 · 동리국 · 율과국 · 엄국 · 엄채국 · 사거국 · 소륵국 · 언기국 · 포류국 · 이지국 · 동저미국
89권 「남흉노열전(南匈奴列傳)」
90권 「오환선비열전(烏桓鮮卑列傳)」
남흉노
오환 · 선비


賈復
(? ~ 55)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양한교체기의 인물로, 자는 군문(君文). 형주 남양군(南陽郡) 관군현(冠軍縣) 사람이다.


2. 생애[편집]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상서》를 익혔다. 그의 스승이던 이생(李生)은 자신의 다른 문하생들을 향해 가복을 칭찬하며 말했다.

"가군(賈君)의 용모와 뜻이 이와 같고 부지런히 공부하니 장상(將相)의 그릇이로다."

가복은 성인이 되어서 관직에 올라 현(縣)의 관리로 일했다. 한번은 하동(河東)에서부터 소금을 가져오는 임무를 맡았는데, 가는 도중 도적들을 만났다. 그와 함께하던 동료 십여 명은 모두 달아났음에도 홀로 남아 소금을 지키고 무사히 현까지 운반하니 사람들은 모두 믿음직스럽다며 칭찬하였다.

지황 4년(23년), 신나라가 무너져갈 무렵에 신시병(新市兵)이 기의하자 가복은 군중 수백 명을 모아 우산(羽山)에서 장군을 자칭했다. 얼마 안가 신시병은 하강병(下江兵)과 군세를 합쳐 녹림군(綠林軍)으로 발전하고, 경시제 유현(劉玄)을 옹립하며 현한 정권을 수립하였다. 이때 가복은 자신의 무리들을 이끌고 현한의 한중왕(漢中王) 유가(劉嘉)에게 귀순해 교위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낙양성을 차지한 이후 경시제의 정치는 난잡해졌고, 그의 장수들은 방종하였다. 이에 가복은 유가에게 진언했다.

"신이 듣건대, 요순(堯舜)의 일을 도모하다가 미치지 못한 자는 탕무(湯武)요, 탕무의 일을 도모하다가 미치지 못한 자는 환공(桓公)·문공(文公)이요, 이들의 일을 도모하다가 미치지 못한 자는 6국(六國)이요, 6국처럼 법률을 정비하여 편안히 잘 지키고자 하였으나 실패한 자는 6국에게 망한 다른 나라들입니다. 지금 한(漢) 황실이 중흥하려 함에 대왕께서는 친척으로서 돕는 번(藩)이 되시고, 천하가 채 평정되기도 전에 보존하는 것만을 선택하셨는데, 현재 보존하려는 바를 장차 계속 보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유가 답했다.

"경의 말(言)은 너무 커 내가 감당할 수 없소. 지금 하북에 나가 있는 대사마 유공(劉公)이라면 반드시 이를 시행할 수 있을 터이니 내 그대를 추천하는 글을 써서 그에게 보내도록 하겠소."

가복은 추천서를 받아서 진준 등 자신을 따라 유수에게 갈 뜻이 있는 무리를 꾸려 황하(黃河)를 건넜다. 가복은 백인(柏人)에서 유수 일행을 따라잡고 등우를 통해 유수와 접견하였다. 가복을 만나본 유수는 그를 기이하게 여겼고 곁에 있던 등우 또한 가복에게 장수의 절개가 있다며 칭찬하였다. 이윽고 유수는 가복을 파로장군에 삼아 도적 토벌을 맡겼다. 그렇게 접견을 마치고 막사에서 나온 유수는 가복의 말이 수척한 것을 확인하고 자신의 수레를 몰던 참마(驂馬)를 풀어 그에게 하사했다. 유수 휘하의 관속들은 후임인 가복이 자신들보다 후한 대접을 받는 것을 보고 분통하여 가복을 호현(䧚縣)의 위(尉)로 파견할 것을 상주하였다. 그러자 유수가 말했다.

"가독(賈督)은 천리를 꺾을 만한 위세가 있어 그 직책을 맡긴 것이니 함부로 멀리 보낼 수 없다."

가복은 이후 장군으로서 유수를 따라 하북 원정에 종군하였다.

경시 2년(24년), 한단(邯鄲)에서 거병한 왕랑의 군사에 쫓겨 유수와 함께 신도(信都)로 피신했을 때 편장군에 임명되었고, 여러 전투 끝에 한단성을 함락하고 왕랑을 주살했을 때는 도호장군으로 옮겨졌다. 비록 하북에서 가장 큰 위협이었던 왕랑이 제거되었으나, 아직 하북의 정세는 왕랑이 일어나기 전부터 날뛰던 도적떼들로 매우 어지러웠다. 이에 유수는 가복을 포함해 장수들을 거느리고 사견(射犬)에서 인근 지역을 약탈하던 청독적(靑犢) 등 10여 만의 도적떼 연합군과 맞섰다. 양군은 격돌하여 대회전을 벌였으나 해가 중천이 되도록 승부는 나지 않았고 적의 진영은 견고하였다. 유수가 가복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병사들이 굶주렸으니 아침밥을 먹이도록 하라."

가복이 대답했다.

"먼저 격파한 후에 먹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선봉에 올라 적군을 마구잡이로 학살하기 시작하였다. 가복의 분투를 따라 병사들도 마지막 힘을 다해 적을 밀어붙였고 마침내 적은 무너져 패주하였다. 가복의 용맹을 본 유수의 제장들은 모두 감복하였다.

경시 3년(25년) 4월, 가복은 다시 유수를 따라 진정(真定)에서 오교적(五校賊)과 싸워 적을 대파하였는데, 심한 상처를 입었다. 만신창이가 되어 군영에 돌아온 가복을 보고 유수는 크게 놀라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가복에게 별동대를 맡기지 아니한 것은 바로 그가 적을 가벼이 여기기 때문이었다. 과연 나의 염려대로 명장(名將)을 잃게 생겼구나. 마침 그의 아내가 임신을 하였다 들었다. 만일 딸을 낳으면 며느리로 삼고 아들을 낳으면 사위로 삼을 터이니, 가복에게 가서 처와 자식 걱정은 하지 말라고 전하라."

다행히 가복은 금새 상처를 회복하고 유수를 쫓아 그의 군대가 주둔해있던 계(薊)로 갔다. 가복이 멀쩡하게 복귀한 것을 본 유수는 몹시 기뻐하며 연회를 열어 그의 복귀를 축하하고 병사들을 배불리 먹였다. 가복은 다시 유수군의 선봉이 되어 도적들을 격파하고 업(鄴)을 평정하였다.

건무 원년(25년) 6월, 유수가 제장들의 추대를 받아 호현(䧚縣)에서 황제에 즉위하였다. 새로 등극한 광무제 유수는 가복을 집금오(執金吾)에 임명하고 관군후(冠軍侯)에 봉하였다. 가복은 드디어 별동대도 이끌 수 있게 되어 황하 너머에서 현한의 백호공(白虎公) 진교(陳僑)와 싸워 연거푸 격파하고 그를 항복시켰다. 또, 대사마 오한 등 여러 장수들과 함께 낙양성을 2개월 간 포위공격하여 낙양성을 수비하던 현한의 좌대사마 주유(朱鮪)의 항복을 받아냈다.

건무 2년(26년), 양(穰)과 조양(朝陽) 두 현이 식읍으로 더해졌다. 당시 경시제는 이미 적미군에게 살해당했음에도 현한의 언왕(郾王) 윤존(尹尊)을 비롯해 복종하지 않은 채 각지에서 할거하는 현한의 제후와 장수들이 매우 많았다. 광무제는 장수들을 소집해 이 안건에 대해 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장수들이 대책은 커녕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니, 광무제는 목간으로 땅을 한 번 두드린 뒤 다시 말했다.

"언성(郾城)이 가장 강성하며, 완성(宛城)이 그 다음이오. 누가 마땅히 이들을 격파할 수 있겠소?"

광무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복이 나서서 말했다.

"신이 언성을 치겠습니다."

이에 광무제가 웃으며 말했다.

"집금오가 간다면 짐이 무엇을 근심하겠는가! 그렇다면 대사마는 완성을 치도록 하라."

광무제는 가복을 보내면서 기도위 음식(陰識), 효기장군 유식을 부장으로 붙여주어 그를 돕게 했다. 가복의 군대는 오사진(五社津)을 건너 언성을 공격해 한 달만에 점령하고 언왕 윤준을 항복시켰다. 가복은 승세를 타고 그대로 나아가 현한의 회양태수 폭범(暴氾)까지 공격해 그의 항복도 받아냈다. 그 해 8월에는 군대를 이끌고 남하하여 여남군 소릉(召陵), 신식(新息)을 공격해 함락시켰다.

건무 3년(27년) 봄, 좌장군에 제수받아 별동대를 거느리고 신성(新城)과 민지(澠池)의 사이에서 적미군을 공격해 연달아 승리했다. 이후 의양(宜陽)에 지둔해 있던 광무제의 친정군와 합류하여 적미군을 항복시켰다. 가복은 지금까지 광무제를 따라 전장에 나서면서 패배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장수와 병사들이 적진에 고립되어 위기에 빠지면서 몸소 뛰어들어 이들을 구했다. 덕분에 그의 몸에는 눈에 보이는 상흔만 12군데나 있었다. 논공행상을 할 때마다 다른 장수들은 스스로 자신의 전공을 말했지만 그는 자신의 공을 보고하지 않았다. 이에 광무제가 말했다.

"가군(賈君)의 공은 내 이미 알고 있소."


건무 13년(37년), 대사마 오한과 보위장군 장궁 촉(蜀)을 평정하고 수도로 개선하면서 천하가 통일되었다. 광무제는 이를 기념하여 모든 공신들의 식읍을 늘려주었다. 이때 가복은 교동후(膠東侯)로 개봉되고 욱질(郁秩), 장무(壯武), 하밀(下密), 즉묵(卽墨), 정호(梃胡), 관양(觀陽) 여섯 현이 식읍으로 추가되었다. 가복은 광무제가 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문덕(文德)을 행하고 싶어하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고밀후 우장군 등우와 합심하여 휘하의 병력들을 전부 해산시키고 장군직을 반납한 뒤 유학 공부에 힘썼다. 광무제는 좌장군, 우장군 자리가 모두 빈 것을 기회로 삼아 두 관직을 폐지시켰다. 가복은 이후 열후로서 특진이 더해졌다.

가복의 사람됨은 강직하고 의연하였다. 그는 관직을 내려놓은 후 집의 문을 닫아걸고 학문만 익혔는데, 주우 등은 가복의 재능을 썩히는 것이 안타까워 그를 재상으로 천거하였으나 공신을 중히 쓰지 않으려는 광무제의 정책 방향과 어긋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가복과 고밀후 등우, 고시후 이통(李通), 이 3명의 제후는 열후로서 조정에 들어가 광무제로부터 정치 자문을 받는 고문 역할을 맡았을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다.

건무 31년(55년), 가복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 가충(賈忠)이 작위를 이었다. 시호는 강(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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