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하라 신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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橿原神宮
카시하라 신궁 | Kashihara Shrine

파일:카시하라 신궁.png



소재지
나라현 가시하라시 구메초 934
(奈良県橿原市久米町934)
제신(祭神)
진무 덴노
히메타타라이스즈히메노미코토(진무천황후)
사격(社格)
구 관폐대사(官幣大社)
칙제사(勅祭社)
별표신사(別表神社)
창건
1890년(메이지 23년) 4월 2일
예대제
2월 11일 (기원제, 紀元祭)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external/www.kashihara-kanko.or.jp/021_1.jpg

1. 개요
2. 역사
3. 가는 법
4. 여담




1. 개요[편집]


일본 나라현 가시하라시에 위치한 신궁이다. 1890년에 세워졌다.

일본 초대 천황진무 천황을 제신으로 모시며 그의 본궁이 있었다는 자리에 지어졌다. 따라서 건축 양식을 보면 다른 신궁보다도 훨씬 동북아시아식 궁궐과 비슷하게 지어진 걸 알 수 있다.

경내 전각 중 본전(本殿)과 구 오다야카타(旧織田屋形)[1]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2. 역사[편집]


일본서기에 따르면, 기원전 660년 음력 1월 1일[2] 초대 덴노 진무가 우네비산(畝傍山) 남동쪽 가시하라(橿原)의 땅에 궁전을 세우고 즉위식을 거행하였다고 한다. 이 기록에 따라 진무 덴노를 신으로 모시고자 1889년에 우네비산 남동쪽에 신궁을 세우고 이름을 가시하라(橿原) 신궁이라 하였다.

이 신궁을 세울 때, 메이지 덴노교토고쇼에 있던 전각 신카덴(神嘉殿)을 떼어 하사하고는 카구라덴(神楽殿)이라 명명하였다. 카구라덴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지만, 1993년 2월 4일 화재로 소실되어 이후 재건되었다.

창건 이후 매년 2월 11일 기원절 때마다 이 신궁에서 기념식을 거행하는데, 특히 황기 2600년이 되던 해인 1940년에는 참배객이 무려 천만 명이나 왔다고 한다.[3]

현재도 매년 2월 11일에 기원제 행사를 거행한다. 이외에도 4월 3일 진무천황제[4] 등을 거행하고, 당대 천황의 생일이면 천장제(天長祭)[5]를 연다.


3. 가는 법[편집]


킨테츠카시하라선, 미나미오사카선, 요시노선카시하라진구마에역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다.

카시하라진구마에역에서 내려서 큰 길을 따라 쭉 걸어가다보면 나온다. 애초에 역 이름부터가 가시하라 신궁 앞이다. 해당 역은 노선이 3개나 겹치는 곳이기 때문에 모든 열차가 정차한다. 그리고 킨테츠 카시하라선 기준 이 역 바로 전 역인 우네비고료마에역진무 덴노의 능원에서 가깝다.


4. 여담[편집]


  • 파일:external/userdisk.webry.biglobe.ne.jp/127954701819616210183.jpg
가시하라 신궁의 면적은 약 50만 m²가량인데, 실제로 하늘 위에서 보면 대부분이 산이다. 신궁 바로 앞에는 가시하라 야구장과 가시하라 운동장이 있다. 이외에도 우네비산 북동쪽에는 진무천황릉이 있다.

  • 신궁 확장 과정에서 유골, 나무 기둥들이 발굴되었는데, 이 유적들을 미국 등 외국 연구소에 보내어 연대측정을 실시했더니 1930년대 후반 기준으로 약 2600년 전 무렵의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 지역 주변의 거대한 마을이 있었다고 추정되어 진무 천황의 도읍이 있었음을 뒷받침해준다.

  • 가시하라 신궁에서 북동쪽으로 7세기 말 지토 덴노 때 완성된 후지와라 궁(藤原宮)의 빈 터가 있다. 후지와라 궁을 중심으로 우네비산(畝傍山), 미미나시산(耳成山), 아마노카구산(天香久山)이 있는데 야마토 3산(大和三山)이라 부른다. 일본에서는 야마토 3산에 역사적 가치가 있다 하여 역사적풍토특별보존지구로 지정하였다. 세 곳 모두 별로 높지 않아서 제일 높은 우네비산이 고작 해발 199 m에 불과하다.

한 가지 역설적인 것은 야마토 3산 중 제일 신성시된 곳이 가시하라 신궁이 있는 우네비산이 아니라 아마노카구산이라는 점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후지와라 궁에서 볼 때 동지 때 아마노카구산에서 해가 뜨기 때문이란 설도 있다. 춘원 이광수가 아마노카구산에서 이름을 따와 창씨개명하였다.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600th_year_of_Japanese_Imperial_Calendar_stamp_of_20sen.jpg
기원 2600년(1940) 기념 우표로 가시하라 신궁의 내배전을 실었다.

  • 기원 2600년 봉축의 일환으로 가시하라 신궁을 확장하였는데, 이때 일본 전국의 학생 120만 명을 수학여행이란 명목으로 근로봉사를 했다고 한다.

  • 초대 천황을 제신으로 모시는 신궁으로서, 가시하라 신궁 또한 야스쿠니 신사메이지 신궁처럼 일본 민족주의의 성지로써 여겨긴다. 특히 기원절 때면 가시하라 신궁에 우익단체들이 단체로 방문하여 참배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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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조인(大書院), 겐칸(玄関)의 2동[2] 메이지 유신 이후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인의 정체성 형성의 일환으로 기원절(한국의 개천절과 유사한 건국기념일)을 제정할 때 이 날짜를 양력으로 2월 11일로 환산하여 국경일로 삼았다.[3] 당시 일본의 인구는 약 7천만. 즉, 일본 인구 7분의 1이 이 신궁을 참배했다는 말이 된다.[4] 진무 덴노의 죽음을 기념하는 행사[5] 일본 천황의 생일을 기념하는 행사. 늘 당대 천황의 생일을 따른다. 2019년에 나루히토가 즉위하여 천장제 날짜 역시 2월 23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