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엘 몽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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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GAEL.jpg

가엘 몽피스
(Gael Monfils)
생년월일
1986년 9월 1일 (37세)
국적
[[프랑스|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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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출신지
파리
신체 조건
193cm, 85kg
프로 데뷔
2004년
ATP 싱글 랭킹
최고 6위/현 211위[A]
ATP 더블 랭킹
최고 115위
개인전 통산 성적
519승 297패(63.6%)[A]
단식 타이틀 획득
11회
그랜드슬램 결과
호주 오픈 8강 (2016, 2022)
프랑스 오픈 4강 (2008)
윔블던 4라운드 (2018)
US 오픈 4강 (2016)
통산 상금 획득
$20,680,474[A]
배우자
엘리나 스비톨리나 (2021 결혼)
1. 개요
2. 커리어
3. 선수 경력
3.1. 주니어 시절
3.2. 2000년대
3.3. 2010년대
3.4. 2020년대
4. 플레이 스타일
5. 여담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조 윌프리드 송가, 리샤르 가스케, 질 시몽과 함께 2000~2010년대 프랑스 테니스를 대표하는 테니스 선수이다.

어릴 때는 육상 선수를 준비하기도 했던 슈퍼 유망주 출신으로 어마어마한 스피드와 유연성, 테크닉 등으로 아크로바틱한 테니스를 보여줘 어릴 때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으나, 지속적으로 꾸준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결국 탑급으로는 성장하지 못했다.

같은 세대의 프랑스인 조 윌프리드 송가, 질 시몽, 리샤르 가스케와 비슷한 커리어 궤적을 그렸고 개중에서는 2번째의 평가를 받는다. 후술할 묘기를 부리는 플레이스타일 때문인지, 대충하는 건 아니지만 약간 즐겜러식으로 경기에 임할 때가 많고, 그래서 그런지 승부욕이 대선수들만큼 강하지가 않다. 어쩌면 닉 키리오스와는 다른 형식으로 멘탈이 발목을 잡은 케이스.

젊은 시절 스피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테니스 선수들 사이에서도 전성기 시절 라파엘 나달보다도 빠르다는 평가를 받고, 현재까지도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굉장히 빠르다.


2. 커리어[편집]


2022년 1월 31일 기준
  • 개인전 통산 성적: 519승 297패
  • 단식 타이틀 획득: 11회
  • 복식 통산 성적: 26승 82패
  • 복식 타이틀 획득: 0회
  • 통산 상금 획득: $20,680,474

그랜드슬램 대회
  • 호주 오픈: 8강-2016[1], 2022
  • 프랑스 오픈: 준결승-2008[2]
  • 윔블던: 4회전-2018[3]
  • US 오픈: 준결승-2016[4]

기타 대회
  • ATP 월드 투어 파이널: 진출-2016
  • 마스터스 1000 시리즈: 준우승 3회
  • 올림픽 메달: X

가엘 몽피스의 연도별 메이저대회 성적표
연도
호주
프랑스
윔블던
US
2004

예선
불참
불참
2005
2라운드
1라운드
3라운드
1라운드
2006
1라운드
4라운드
1라운드
2라운드
2007
3라운드
3라운드
3라운드
불참
2008
불참
4강
불참
4라운드
2009
3라운드
8강
불참
3라운드
2010
3라운드
2라운드
3라운드
8강
2011
3라운드
8강
3라운드
2라운드
2012
3라운드
불참
불참
불참
2013
3라운드
3라운드
불참
2라운드
2014
3라운드
8강
2라운드
8강
2015
2라운드
4라운드
3라운드
1라운드
2016
8강
불참
1라운드
4강
2017
4라운드
4라운드
3라운드
3라운드
2018
2라운드
3라운드
4라운드
2라운드
2019
2라운드
4라운드
1라운드
8강
2020
4라운드
1라운드
취소[5]
불참
2021
1라운드
2라운드
2라운드
3라운드
2022
8강
불참
불참


3. 선수 경력[편집]



3.1. 주니어 시절[편집]


주니어 선수로 활동하던 2002년, 16세의 나이로 주니어 랭킹 4위까지 올랐다.

다음 해인 2003년에는 각종 퓨처스 대회를 참가하며 성인 무대에 일찍이 도약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연초에 퓨처스 대회에서 승리를 거두어 ATP 포인트를 얻으며 ATP 랭킹을 부여받기도 했다. 성인 퓨처스 대회들을 참가하며 주니어 대회에는 비교적 소홀해져 주니어 랭킹은 24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2004년, 다시 주니어 무대에 전념하면서 주니어 대회들을 휩쓸고 다녔고, 주니어 호주 오픈, 롤랑 가로스, 윔블던을 모두 석권하면서 전 세계의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같은 해에 성인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3.2. 2000년대[편집]


2005년, 성인 무대 데뷔 1년차에 소포트 오픈에서 투어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2006년 1월에는 도하 오픈에서 무실세트로 결승에 진출했으나 결승에서 로저 페더러에게 패배한다. 이후 20위권 진입. 로마 오픈에서는 토미 하스, 파브리스 산토로, 앤디 로딕을 연파하며 4강에 올랐으나, 4강전에서 라파엘 나달에게 2:0으로 패배했다.

롤랑가로스에서는 세 번 연속으로 풀세트 접전을 치루며 앤디 머리, 제임스 블레이크 등을 꺾으며 4라운드에 진출했다.

2007년 초반에는 투어 대회에서 8연패를 할 정도로 성적이 안 좋았지만, 5월에 페르차하 오픈에서 이형택, 앤디 로딕, 레이튼 휴이트를 연파하며 결승에 진출하며 지속되던 연패를 끊어냈다. 하지만 작년보다 전체적으로 부진한 시즌.

2008년에는 부상으로 호주 오픈을 포함한 연초 대회들을 못 나오다가 3월에 복귀했다. 이후 5월 롤랑가로스 4라운드에서 이반 류비치치, 8강에서 다비드 페레르를 꺾으며 커리어 첫 슬램 4강에 진출한다. 허나 4강에서는 페더러에게 3:1로 패배. 이후 랭킹은 10위권 중반대까지 올라갔다.

2009 시즌은 연초에 라파엘 나달을 도하 오픈 8강전에서 꺾으며 기분 좋게 스타트했다. 이후 로테르담 4강, 아카풀코 결승 등 꾸준한 성적을 내며 2월에 커리어 첫 Top10에 진입했다. 롤랑 가로스에서는 4라운드에서 노장 투혼의 앤디 로딕을 꺾고 8강에 진출했으나, 작년처럼 페더러를 만나 8강에서 탈락.

9월달 자국에서 열린 메츠 오픈에서 6연속 준우승의 설움을 딛고 4년만에 커리어 두 번째 우승 트로피를 획득했다. 연말 파리 오픈에서는 커리어 첫 마스터스 결승에 진출했다.[6]


3.3. 2010년대[편집]


2010년에는 브리즈번 오픈 4강, 요하네스버그 오픈 4강, 슈튜트가르트 결승, US 오픈 8강, 도쿄 오픈 결승 등등 무난한 성적을 내며 10~15위권 언저리의 성적을 유지했다. 10월 몽펠리에 오픈에서는 이반 류비치치를 꺾으며 투어 세 번째 우승 타이틀을 차지했다.

연말 파리 오픈에서는 작년에 이어 다시 각성, 앤디 머리로저 페더러를 풀세트 접전 끝에 이기며 결승에 다시 올랐다. 허나 이번에는 로빈 소더링에게 패배하여 준우승을 기록했다.

다음 해 4월에는 2년만에 다시 세계 랭킹 Top10에 진입했다. 롤랑 가로스에서는 다비드 페러를 접전 끝에 3:2로 꺾고 8강에 진출. 10월에 열린 스톡홀름 오픈에서는 케빈 앤더슨, 밀로스 라오니치를 연달아 잡으며 우승하였다.

2012년, 이번에도 연초 도하 오픈에서 라파엘 나달을 꺾으며 결승에 올랐다. 결승에서는 조 윌프리드 송가에게 패배. 몽펠리에 오픈에서도 결승에 올랐으나 토마스 베르디흐에게 패배. 결승전 승률이 정말 낮다.

5월 이후로는 오른 무릎에 부상을 입으며 4달간 결장했고, 그 다음 해에는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그래도 꾸준하게 투어 대회에서 성적을 거두며 2013시즌 연말에는 다시 30위권 안쪽으로 진입.

2014년의 시작을 알리는 도하 오픈에서 결승에 올랐으나 나달에게 패했고[7], 그 다음 대회인 호주 오픈에서도 나달에게 패배했다. 몽펠리에 오픈에서는 2년 전부터 결승전에서 5연패를 당한 설움을 씻고 간만에 우승하였다.

롤랑 가로스에서는 3라운드에서 파비오 포니니(15위, 이탈리아)를 풀셋 끝에 제압하고, 8강전에서 앤디 머레이를 만나 분전했으나 5세트에 가서 체력이 부족한 모습을 보이며 베이글을 먹고 패배했다. US 오픈에서도 리샤르 가스케(14위, 프랑스), 그리고르 디미트로프(8위, 불가리아)를 연파하며 8강에 올랐다. 8강에서는 로저 페더러를 만나 두 세트를 먼저 따내며 승기를 잡았으나, 이후로 내리 3세트를 내주며 리버스스윕 당했다.

2015년에는 마르세유 오픈 결승, 몬테카를로 마스터스 4강, 비엔나 오픈 4강 등등 나쁘진 않지만 굵직한 성적이나 우승 한 번 없이 무난무난한 성적을 내며 15~20위권을 맴돌았다.

2016년 호주 오픈에서는 스기타 유이치, 니콜라 마위를 잡으며 커리어 첫 호주오픈 8강에 진출했다. 이후 로테르담 4강, 인디언웰스/마이애미 마스터스 각각 8강, 몬테카를로 마스터스에서는 결승까지 진출하며 좋은 성적을 냈다. 그 이후로도 루옌쉰, 초리치, 즈베레프, 카를로비치를 연파하며 워싱턴 오픈 우승[8], 고팡, 라오니치를 연파하며 캐나다 오픈 4강에 오르며 꾸준한 성적을 내며 만개한 기량을 여실없이 뽐냈다.

US 오픈에서는 무실세트로 4강까지 진출했다. 4강에서는 조코비치에게 3:1로 패배. US오픈 포인트가 반영된 2016년 9월 12일자 랭킹에서 2011년 이후로 무려 5년 만에 다시 세계 랭킹 10위권 안쪽으로 재진입했다.

이후 도쿄 오픈에서도 4강에 진출하면서 랭킹 6위를 기록, 2011년에 기록했던 종전 최고 랭킹인 7위를 뛰어넘으며 다시 최고 랭킹을 갱신했다. 덕분에 커리어 첫 ATP 파이널스 출전 티켓을 확보하였다. 하지만 파이널스에서 도미니크 팀, 밀로스 라오니치에게 연패한데다 부상까지 당하며 남은 한 경기를 기권했다.

2017년에는 호주 오픈 4라운드에서 나달에게 탈락하며 작년 포인트 방어에 실패, 6위에서 한방에 12위로 내려앉았다. 이후 마르세유 오픈 결승에 진출하는 등 나름 꾸준히 성적을 올렸으나 8월 이후로 부상을 당하면서 경기를 몇 달간 못 뛰게 되었다.

부상에서 4개월만에 복귀한 도하 오픈에서는 결승까지 올랐고, 결승전에서 안드레이 루블레프를 꺾으며 우승 타이틀을 획득, 산뜻하게 시즌 출발하였다. 하지만 작년만큼의 성적도 내지 못하며 40위권까지 추락하였고, 컨디션 점검차 하나 낮은 급의 대회인 중국의 가오슝 챌린저 대회에 출전하였다.[9] 해당 대회 8강에서 어네스트 굴비스를 꺾고 4강에서 이덕희, 결승에서 권순우를 2:1로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2019 호주 오픈에서는 2라운드만에 50위의 테일러 프리츠한테 패배하였다. 몽피스가 2007년 이후로 그랜드슬램 2라운드 이하에서 패배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 그래도 로테르담 오픈에서는 다비드 고팡, 다닐 메드베데프를 잡고 올라 스탠 바브린카를 결승에서 누르며 커리어 두 번째 500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로도 캐나다 오픈 4강, US 오픈에서는 3년만에 그랜드슬램 8강에 오르며 32살 노장의 저력을 보여줬고, 비엔나 오픈 4강, 파리 오픈 8강 등 연말까지 꾸준하게 성적을 내며 연말 랭킹 10위로 시즌을 마쳤다. 연말 랭킹에서 10위 안쪽을 기록한 것은 2016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2008~2011 시즌에는 계속 아슬아슬하게 10위 안쪽에 들지 못했다.


3.4. 2020년대[편집]


2020년 2월에 몽펠리에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로테르담 오픈에서도 결승에서 펠릭스 오제 알리아심을 누르며 백투백 우승을 차지했다. 몽피스가 2주 연속으로 백투백 우승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몽피스는 결승에는 자주 올라도 준우승을 지독하게 많이 해서 한 해에 투어 대회를 두 번 이상 우승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 시즌에는 2월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두 번이나 우승을 했다. 말년에 들어가면서 결승전 승률이 확 좋아진 모습. 이번 로테르담 우승으로 통산 10번째 우승 타이틀을 차지했다.

두바이 오픈에서도 쾌조의 폼을 보이며 4강까지 올랐다. 4강에서는 조코비치를 만났는데, 그동안 절대적으로 열세였던(0승 16패) 조코비치를 상태로 첫 세트를 따내고 2세트에서도 매치포인트까지 잡으며 승리를 눈앞에 뒀으나, 타이브레이크에서 역전당하며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커리어 내내 패배했던 조코비치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는 마지막 절호의 기회를 놓쳤으니 안타까울 따름.

어쨌든 역대 개인 최고 기록인 12연승을 기록하며 작년처럼 제 2의 전성기를 이어가나 싶더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투어 대회 개최가 반 년간 중단되었다. 그래도 9월달에 투어 대회들이 다시 개최됨에 따라 몽피스도 복귀했지만 올해 초의 폼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며 4연패를 당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연말 랭킹은 11위.

2021년에 들어서도 7월 도쿄 올림픽까지 3승 7패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작년의 부진이 이어졌다. 코로나로 인해서 완전히 리듬이 깨져버린 모양새. 그래도 9월 이후로는 메츠 오픈 4강, 소피아 오픈 결승에 진출하며 한결 나아진 폼을 보여주었고, 20위권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2022년에는 연초 애덜레이드 오픈에서 무실세트로 우승하였다. 결승전에서는 카렌 하차노프마저 2:0으로 제압. 호주 오픈에서도 8강까지 진출하며 간만에 슬램 8강을 기록하였다. 몽피스 본인은 8강 진출 후 인터뷰에서 자신이 35살이긴 하지만 아직도 메이저 우승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3년전 US 오픈때처럼 이번에도 8강전 마테오 베레티니를 만나서 풀세트 접전 끝에 패배하고 말았다.

호주 오픈 활약 이후로는 잔부상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꾸준히 성적을 내지 못했고, 5월달 이후에는 아예 경기도 못 뛰는 중. 롤랑가로스와 윔블던 모두 스킵했다.

2023년 드디어 긴 휴식기를 깨고 인디안웰스에 참가한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2010년대 테니스의 대표적 엔터테이너. 투어 관람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묘기 샷을 수시로 선보인다. 피트 샘프러스를 연상케 하는 점프 스매싱부터 가랑이 샷, 훼이크 샷, 우주방어 샷까지 다양한 묘기 플레이들을 보여준다. 이런 점은 닉 키리오스와도 비슷하지만, 키리오스와 달리 몽피스는 상대 선수와 심판, 관객을 존중하는 선에서 이런 묘기 샷들을 선보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인기가 많다.[10]

몽피스의 전매특허인 묘기 샷들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베이스라이너 스타일대로 플레이한다. 여기서도 몽피스의 특출난 점이라면 어릴적 육상 선수를 준비했을 만큼 투어에서 제일가는 달리기 실력을 바탕으로 한 코트 커버력.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슬라이딩 샷을 자주 선보이기 때문에 '슬라이더맨'이라고도 불린다.

포핸드와 백핸드에 있어서는 평소에 상당히 안정적이고 수비적으로 샷을 만들며 경기를 운영하지만, 선수 본인이 엔터테인먼트적 기질이 있기 때문에 가끔씩 풀스윙을 후리며 대포알을 꺼내기도 한다. 서브는 대체로 평범한 수준.


5. 여담[편집]



  • 악동은 아니지만 아크로바틱한 샷, 경기 중 콜라 마시는 기행등으로 지명도가 있다. 비판하는 사람들은 진지하지 못한 플레이라며 광대(clown)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 2014년 프랑스 오픈 어린이의 날 이벤트에서 비가 오는 와중에 로콜리와의 댄스 배틀은 꽤 볼거리였다. 영상

  • 호주, 프랑스, 윔블던 주니어 대회를 모두 휩쓸어 주니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뻔했다. 주니어 US대회에서 16번시드 트로이츠키에 패하며 3라운드 탈락으로 아쉽게 무산. (여담으로 그 대회 우승자는 3번 시드였던 앤디 머리였다.) 기대치만 본다면 미래의 그랜드 슬램 우승자&세계 랭킹 no.1이었지만 기대엔 미치지 못했다.



  • ATP에서 프로 선수들이 얼마나 테니스 역사를 잘 아는지 테스트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여기서 몽피스가 마린 칠리치와의 치열한 접전 끝에 유일하게 역대 남자 단식 세계랭킹 1위 선수 26명을 즉석에서 모두 나열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

  • 트위치 계정이 있다. 가끔씩 와서 게임 방송을 하며, 현재 구독자 수는 13만 4천 명.

6.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09 02:40:02에 나무위키 가엘 몽피스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A] A B C 2023년 8월 14일 발표.[1] 8강에서 밀로시 라오니치한테 1:3으로 패했다.[2] 준결승에서 로저 페더러한테 1:3으로 패했다.[3] 4회전에서 남아공의 케빈 앤더슨한테 1:3으로 패했다.[4] 준결승에서 노박 조코비치한테 1:3으로 패했다.[5]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대회취소[6] 결승에서는 조코비치에게 2시간 44분의 접전 끝에 패배.[7] 참고로 이번 패배로 몽피스는 20회의 결승 진출 중 우승은 단 4번에 그치는 처참한 결승전 성적을 기록했다.[8] 몽피스 커리어 첫 500시리즈 우승이기도 하다.[9] 당시 몽피스의 랭킹은 42위였고 원래 50위 안쪽의 선수들은 챌린저 대회에 출전해서 양학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대회 측에서 직접 선수를 초청한다면 10위권 바깥의 선수들은 출전 가능하다.[10] 자국의 8-90년대 선수 야닉 노아와 매우 흡사한 스타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