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노 가쓰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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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제5대 통합막료장
河野 克俊
가와노 가쓰토시 | Katsutoshi Kawano


파일:external/www.mod.go.jp/cos5_1.jpg

출생
1954년 11월 28일
홋카이도 하코다테시
재임기간
제31대 해상막료장
2012년 7월 26일 ~ 2014년 10월 13일
제5대 통합막료장
2014년 10월 14일 ~ 2019년 3월 31일
군사 경력
임관
방대 21(해사 31)
복무
해상자위대
1977년 ~ 2019년
병과
항해
최종 계급
해상막료장 (해상자위대)
최종 보직
통합막료장
주요 보직
오요도함장
해상막료감부 방위조정관
호위함대 제3호위대군 제3호위대사령
해상막료감부 방위과장
호위함대 제3호위대군사령
사세보지방총감부 막료장
해상막료감부 총무부장
해상막료감부 방위부장
호위함대사령관
통합막료부장
자위함대사령관
해상막료장

1. 개요
2. 생애
3. 기타



1. 개요[편집]


河野克俊 (かわの かつとし) 일본자위관. 5대 통합막료장(합참의장)이다.


2. 생애[편집]


홋카이도 하코다테시에서 1954년 11월에 태어났다. 아버지인 가와노 가쓰시(克次)는 일본군 해군 해군기관학교 40기 출신의 기관사관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잠수함 기관장으로 근무했다. 일본군이 해산된 후에 가쓰시는 해상자위대로 이동하여 제2술과학교장을 지내고 소장으로 전역했다.

1973년방위대학교 21기(해군사관학교 31기) [1]로 입학했고 1977년에 졸업해 해상자위대에 입대했다(직별항해).

1988년3등해좌, 1991년2등해좌로 진급했고 1996년1등해좌가 됐다. 1998년해상막료감부 방위부[2] 방위과 방위조정관으로 근무했고 1999년에 호위함대 소속의 제3호위대(第3護衛隊)[3] 사령으로 근무했다.

2002년에는 해장보(소장)로 진급했고 호위함대 소속의 제3호위대군 사령으로 영전했다. 2004년에는 사세보지방대 총감부의 막료장[4]이 되었고 2005년 해상막료감부 총무부장, 방위부장 등을 거쳐 소해대군 사령관으로 재직하던 중에 2008년 해장(중장)으로 진급하며 호위함대 사령관이 되었다.

2010년에는 통합막료부장으로 옮겼고 2011년에 자위함대 사령관이 되었다.

타치카제함 자살 설문조사 은폐사건으로 전임자인 스기모토 마사히코 해막장이 사퇴함에 따라 31대 해상막료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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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에 히로시마에서 수송함 오오스미가 대낮에 민간 어선을 갖다 박는 바람에 진심이 느껴지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방위대신 오노데라 이쓰노리와 사죄하러 나온 가와노 해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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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21일 해상자위대 간부후보생학교의 임관식에 참석한 해상막료장.

2014년 4월인민해방군 해군우성리 해군사령원과 5년 만에 중일 해군수뇌회담을 열 뻔 했으나 아베 신조의 발언으로 중국 해군이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을 초청하지 않기로 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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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붕 근데 4월 21일 서태평양 해군 포럼 환영식에서 15분 정도 비공식 만남을 가졌다고. 관련기사

2014년에 하타카제함에서 괴롭힘으로 21세의 승조원이 자살하자 승조원 유족의 자택에 방문해 사죄하는 일도 있었다. 이래저래 사고[5]가 많이 났음에도 일본의 안보환경이 중국과 충돌하고 있고 그에 따라 해상력에 무게를 실어주는 방향으로 2014년 10월 13일부터 다케이 도모히사에게 해상막료장을 이임한 뒤에 이와사키 시게루의 뒤를 이어 통합막료장(2014/10/14 ~ 2019/3/31)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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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5일통합막료감부(합동참모본부)에 출근하여 취임(착임)식을 했다. 미국통으로 알려진 전임 이와사키 시게루 통막장과 달리 가와노는 자위대에서는 비교적 드문 중국통에 가까운 편이고 중국군과 교류를 하려는 의욕이 강한 편이다. 해상막료장 시절에도 불발되긴 했지만 5년만에 해군수뇌회담을 열려고 했고. 물론 이런 교류가 친중이다 이런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가와노는 중국의 탄도 미사일 발사 등에 대응하는 해양력 확대에 목적을 둔 제복군인의 수장이다.

2015년 9월에는 자신의 해상막료장 시절 해상자위대 선임오장이었던 미야마 해조장을 통합막료감부 최선임하사관으로 보임하였다.

구마모토 지진에서 일본 정부가 자위대가 구호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적극 홍보하는 탓에 그의 언론 노출도 잦고 있다. 아베 총리와 동행한 사진 2006년 이후 통합막료장이 총리와 만난 게 100여회인데 이 중에서 2012년 말 이후 아베 신조가 만난 것이 76건에 이를 정도이다. 한 달에 두 번 꼴로 총리와 회동하고 있는 셈. 동아일보의 관련기사

총리의 신임이 좋은지, 2016년 6개월 정년을 연장했고, 2017년에 다시 정년을 1년 연장했다.

사실 총리의 신임이 좋다기 보다는, 아베 정부에서 후임자로 오카베 도시야를 점찍어뒀는데 임기가 맞질 않아서 오카베 도시야가 충분히 통합막료장에 오를 만큼 육상막료장 재임기간을 맞춰주려고 늘렸다는 얘기도 있다. 근데 문서 은폐 사건으로 오카베 도시야가 갑자기 퇴직하게 되면서 스기야마 요시유키가 다음 통합막료장으로 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근데 그 스기야마도 2017년 12월에 갑자기 퇴역했다. 오노데라 방위상이 항공막료부장을 8일 동안 직무대리로 내세운 걸 보니 갑작스러운 은퇴인 모양. 2017년 10월에 발생한 헬기 구난 사고[6]에 대한 책임으로 나간 것인지 나가버렸다. 가와노가 오래 재임하면서 후임 대장들이 다 먼저 나가고 있다.

2018년 4월에는 사과할 일이 여럿 생겼다. 이라크 파병 당시 자위대 고위급들이 문민 상관들에게 보고를 은폐한 것을 두고 사과했다. 사과1 며칠 뒤에 현직 자위대 장교(소령)가 야당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폭언을 한 탓[7]에 직접 의원실을 방문하여 사과하기도 했다. 사과2

2018년 5월에 다시 정년이 1년 연장되었다. 2년 6개월이나 연장하게 되었다.

2019년 3월 31일에 퇴임했고 야마자키 코우지가 뒤를 이어 통합막료장으로 취임했다.

제대 후 2019년 4월 25일에 방위성고문으로 취임했다.


3. 기타[편집]


1대 통합막료회의의장이었던 하야시 게이조(3696일)에 이어 두번째로 길게 통합막료장 생활을 하고 있다.세번째는 오리키 료이치(1043일)이다.

본래 통합막료회의의장은, 1990년 이전 한국의 합동참모의장처럼 명예직 대장에 가까웠던 직위인지라 대부분 2년을 못 채웠다. 자위대 초기라서 장교단의 젊은 연령 때문에 자리를 오래 유지했던 하야시 게이조만이 이례적인 케이스였다. 그에 비해서 자위대 최고 작전지휘관이 된 통합막료장은 대부분의 직책자들이 2년 이상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8] 이는 책임 있게 정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일본 정부에서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아버지는 일본군 해군에서 근무하다가, 해상자위대로 옮겨서 근무했다고 한다. 본인의 별명은 도라에몽이라고 한다. 출처는 2014년 취임 당시 산케이신문 기사

2021년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닛케이신문에 일본의 위기 대응 능력이 취약하다며 이를 중점 과제로 다뤄줄 것을 요청하는 기고를 쓰기도 하였다. #

전역 후에 중국과 대만 문제에 지속적으로 기고를 하고 있다. #

퇴임 후 문예춘추와의 인터뷰에서 문민통제란 방위성 관료의 내부 부국이 제복조를 누르는 게 아니라, 총리가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며 아베 신조 총리가 자신을 신임했던 것을 인상 깊게 술회하였다. 방위성 내부에선 모리야 사무차관이 "방위성의 천황"이라 불릴 만큼 영향력이 있었다고 한다. #

문춘과 인터뷰에서 한국과의 관계도 회고하였다. 자신이 입대한 70년대 말부터 한국이 역사 문제를 강조하며 한일관계에 어려움이 생겼고, 1990년대부터 이지스함 등의 도입을 위해 한국이 일본과 군사적 교류를 시작하였다고 기억하였다. 1996년에 자위대 연습함대가 한국에 입항한 것으로 한일관계의 신시대에 돌입했다고 보았다. 이는 일반 한국인들의 한일관계 인식과는 다른 일본 고위 군인들의 인식을 보여준다. 가와노 제독은 국제관함식에서 해상자위대의 깃발 거부나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문재인 대통령의 대일 발언 등을 한일관계의 변곡점으로 보았다. 가와노 제독은 자신은 조선인민군 해군의 깃발도 존중한다며, 한국측의 태도가 기본적인 국제관례를 벗어나는 무례한 행동이라고 주장하였다. 발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북한군의 군기도 존중하고 우리 군의 군기도 존중합니다. 이것이 매너입니다. 상식이에요. 이를 내리라고 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은 결코 용납 할 수 없는 거죠. 이것은요, 우리 세계의 감각에서 보면 또 무례를 넘기고 있는 것입니다.

군대라는 것은 국익을 맡아 몇몇 장면에서는 서로 싸운다. 다만, 그 근방의 싸움과는 달리 별도로 군끼리 증오해서 싸우는 것은 아니에요. 서로 국익을 담당하고 있는 위대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공유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군끼리 서로 존중하는 것이예요.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깃발이며, 군이 서로 깃발 아래 싸우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상대의 군기를 존중하는 것은 군의 상식이며, 신사 협정이며, 매너입니다. 아마도 문재인 정권의 청와대가 이런 지시를 내렸다라고 생각합니다. 출처


일본제국의 조선 식민통치가 나쁘다는 것은 자학사관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버릴 것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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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 29대 해군참모총장 최윤희 제독하고 입학(1973년) 및 임관(1977년), 부임(2017년) 년도에서 동년배로 합동참모의장(2013.10~2015.10)을 역임한 경력이 있음. 출생 및 부임 년도는 상이함. 최윤희 제독은 1953년 생으로 2011년 10월에 부임(2013년 9월 전역), 가와노 제독은 1954년 생으로 2012년 7월에 부임(2014년 10월 전역)하였음.[2] 대한민국 해군 해군본부의 기획관리참모부에 해당하는 부서이다.[3] 일본 해군에서 전단급 부대는 군(群)/대군(隊群)이며 전대급 부대는 그냥 대(隊)이다.[4] 한국의 참모장에 상당한다.[5] 일본에선 방위불상사라고 표현한다.[6] 공자대 소령 등 4명이 구난 헬기가 추락해 실종됐다.[7] 일본에선 5.15 사건이나 2.26 사건을 떠올리기 쉬웠다.[8] 통합막료회의의장에서 통합막료장으로 바뀌었던 맛사키 하지메를 제외하면, 사이토 다카시(2대), 오리키 료이치(3대), 이와사키 시게루(4대), 가와노 가쓰토시(5대) 모두 2년 이상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