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클리니우스 마이케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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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ius Cilnius Maecenas(BC 70~BC8)

1. 개요
2. 생애
3. 기타
4. 대중매체


1. 개요[편집]


로마 제국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이다.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의 충실한 조언자 역할을 맡았고, 베르길리우스호라티우스를 후원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이를 통해 후대 유럽 르네상스기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과 함께 문화예술 진흥의 대표격 존재로 평가받는다.


2. 생애[편집]


오늘날의 중부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아레초 태생이다. 고향과 이름에서 드러나듯, 에트루리아 사람으로 조부때부터 엄청난 부자로 유명했다. 기원전 42년 필리피 전투에서 옥타비아누스를 만나고,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의 제2차 삼두정치를 이룩했으며, 기원전 30년 로마의 내전을 끝내는 데 기여했다.

그 후, 복고를 표방하는 아우구스투스의 신체제 밑에서 베르길리우스와 호라티우스는 마이케나스의 지원을 받으며 아우구스투스가 이룩한 팍스 로마나를 찬양하는 시를 썼다.[1]

기원전 17년의 세기제 때에 호라티우스는 축전가를 만들었다. 그가 마이케나스에게 소개한 베르길리우스는 농경시로 권농 정책을 지원하고, 장대한 서사시 아이네아스에서 세계 지배의 사명을 진 영웅 아이네아스(전설상의 로마 민족의 시조)를 노래했다.

그 후, 마이케나스는 기원전 30년~기원전 8년까지 아우구스투스의 개인 고문을 역임했으며, 아우구스투스의 또다른 친구이자 중신이자 장군인 아그리파와 대립하기도 했다. 기원전 8년에 전 재산을 아우구스투스에게 넘기고 62세에 죽었다.

기업으로부터의 문화 예술에 대한 후원을 가리키는 메세나라는 단어의 어원이 된 사람이다.


3. 기타[편집]


  • 살아생전 에트루리아 혈통이나 이 지방 출신 기사계급들도 많이 후원하고, 그들을 아우구스투스에게 추천해 여럿 프라이토리아니에 넣어주고 이들을 근위대장이나 대대장이 되는데 힘을 쏟았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로마 역사상 최악의 간신이자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단명을 초래한 세야누스와 그의 아버지 세야누스 스트라보.



4. 대중매체[편집]



4.1. 드라마[편집]



4.1.1. ROME[편집]


시즌 2부터 출연, 여기에서는 어째 뒤에서 책략을 꾸미는 능글맞고 음흉한 책사 포지션으로 나온다. 첫 등장부터 지원군 사령관인 아울루스 히르티우스가이우스 비비우스 판사 카이트로니아누스를 모종의 방법으로 난전중에 암살하고 휘하 병력들을 흡수, 그 와중에 '슬프지만, 정말 운이 좋군~ 승리의 영광은 모두 우리 차지니까'라며 이죽대는건 덤(...) 친구이자 같은 위치의 최측근인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는 군무쪽 몰빵에 우직한 스타일이라면 마이케나스는 비서실장 + 국정원장에 돈 많은 한량의 느낌.


4.2. 게임[편집]



4.2.1. 도미네이션즈[편집]


마에케나스의 히터가 유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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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라티우스는 카르페 디엠으로 특히 유명한데, 후원자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마이케나스를 찬양하는 시도 썼다(Hor. Od.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