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학교/학부/신학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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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편제
2.1. 신학과
3. 생활상
4. 학업
4.1. 학부과정 : 1~5학년
4.1.1. 병역이행
4.2. 대학원 연구과정 : 5, 6, 7학년
4.3. 교육 과정
4.4. 최근의 문제점
5. 신학교에 가려면
6. 신학생의 마음가짐
7. 본 문서의 주의점
8. 여담



천주교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 소속 황중호 베드로 신부가 올린 브이로그[1]


1. 개요[편집]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신학대학일반대학원 신학과를 설명하는 문서.

2. 편제[편집]


신학대학 (神學大學)
College of Theology
학과
전공
신학과
교직

-
1~4학년이 해당된다.

일반대학원 (一般大學院)
Graduate school of Theology
학과
전공
신학과
-
5~7학년이 해당된다.

2.1. 신학과[편집]




가톨릭대학교 신학과 공식 소개영상

3. 생활상[편집]


기본적으로 이 신학대학서울대교구, 의정부교구, 평양교구(대학원)의 사제가 될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이 외에도 수도회 및 선교회 소속 신학생들이 통학을 하기도 한다. 참고로 가톨릭에서는 "세례 받은 남자만이 (거룩한) 서품을 유효하게 받는다(가톨릭교회법 제1024조)." 즉 사제 지망은 남자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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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을 입은 신학생들

성신교정에 가면 이런 모습을 매우 자주 볼 수 있다.[2]

대한민국에는 6개의 가톨릭 신학교가 있다. 수원교구원주교구춘천교구함흥교구[3] 신학생들은 수원가톨릭대학교, 청주교구대전교구 신학생들은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광주대교구, 전주교구, 제주교구, 마산교구 신학생들은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인천교구평양교구(학부) 신학생들은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대구대교구부산교구, 안동교구 신학생들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공부한다.[4] 교구 신학생들 말고도 수도회 소속 신학생들도 있다. 평양교구와 함흥교구는 침묵의 교회지만 평양교구는 2009년부터, 함흥교구는 2017년부터 신학생을 받기 시작했다.

신학교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입학 전 1년 동안 해당 학년[5] 예신 모임에 개근해야 하는데, 한번이라도 빠지면 재수할 수도 있다.[6] 그리고 해당년도에 신학교에 들어가고 싶다면 무조건 인성검사를 받아야 한다. 받지 않으면 아예 신학교 지원이 불가능하다.[7][8]

대학수학능력시험 커트라인로만 보면 '뭐야 여기'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신과 수능을 모두 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세례성사견진성사천주교 신자로서의 자격을 모두 갖추어야 하는 것은 물론, 본당 신부님의 추천을 받고, 서울대교구 주교님 또는 의정부교구 주교님과의 면담까지 거쳐야 겨우 입학 자격이 주어진다. 사관학교와 비슷하게 특수대학의 성격을 가진다고 보면 된다.[9] 실제로 수능 성적이 입학생마다 차이가 매우 크다. 수능을 거의 만점에 가깝게 받고도 신부가 되기 위해 서울대 대신 가톨릭대 성신교정에 입학하는 학생도 있으며,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상당수 존재한다. 애초에 성적으로 오는 대학이 아니기에 입학할때 대입성적은 딱히 큰 필요가 없다고 봐도 된다.

연령 제한도 있어서, 만 29세 이하[10][11][12]까지만 입학이 가능하다. 크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는 일반 학생을 위한 전형이 있으며, 대학 학사/석사 수료 이상의 학력을 가진 학생을 위한 별도의 전형도 마련되어 있다. 때문에 미국 명문대 박사학위 출신, 사회에서 다른 직업을 가지고 일하다가 들어온 학생 등, 나이도 일반 대학에 비해서 다양한 편이다. 이는 성인이 된 후에 신부가 되기로 마음먹은 신자들을 위한 배려라 할 수 있다.

거기에 입학 후에는 성신교정에서 통학생을 제외하고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1학년 때는 외출금지, 2학년부터(2018년 현재) 일주일에 한 번, 3학년이 되어야 주말 외출이 가능하다는 교칙에 따라 외부와의 접촉이 거의 차단된다(그러나 친한 청년, 친구들을 불러서 잘만 노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참고로 성신교정은 일반인의 출입도 금지하고 있는 곳이다. 정확하게는 신학대학 건물 내부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이고, 교정 내 가톨릭 전례박물관이나 부속 성당 등은 일반인들도 출입이 가능하다.

사실 교칙 상으로는 외출 금지이지만 이것저것 특별 외출을 붙이다 보면 한 달에 한 번은 나간다. 의무외출까지 하면 2주에 한 번 꼴로 나갈 수 있다. 그리고 방학기간을 제외하면 1년 내내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니 오해하지는 말자.

교내에서 학생들이 입는 옷도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어서, 공동전례 시간에 1~3학년 신학생들은 검은 정장에 역시 검은 넥타이를 메고[13], 착의식을 한 4학년 이상의 신학생들은 수단이라고 부르는 검은색 성직자복을[14]입고 미사에 참례한다. 수업을 듣는 시간은 일반적인 의복이 가능하나, 반바지를 입을 수 없고, 옷의 앞섶을 풀고 다녀서도 안 되며, 화려한 색도 금지된다. 방학 때도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소속 본당에서 지내며 전례 실습을 견학하고 익히는 추가 학업 기간이라, 한시도 신앙생활을 게을리할 수 없게 꽉 짜여져 있다.[15]

2018년 현재는 본당 사제관에서 생활하는 신학생들은 약 30% 정도라고 보면 된다. 애초에 본당에 신학생을 수용할 공간을 마련하는 것 부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 2020년을 향해 가면서 신학생들의 의복에도 많은 변화가 있다. 덧신 양말은 기본이고 명품 로퍼, 찢어진 청바지, 멜빵 바지, 꽃무늬 셔츠, 8부 치노팬츠를 입는 등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헤어스타일도 마찬가지인데, 정말 자기 자신을 엄격히 다스리는 신학생이 아니라면 투블럭을 기본으로 한다. 심한 경우는 투블럭 안 쪽에 스크래치를 넣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극히 일부의 경우다.

입학생들 중 10명당 3명 정도가 도중에 학업을 포기한다. 결국 7명만 사제서품을 받는다는 것. 엄격한 규율과 어려운 공부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서품을 받는 마지막 순간에 평생 사제의 길을 갈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학교 측에서도 학생들의 이런 개인적 선택들을 무조건 존중한다. 또한 똘레[16]라고 해서 성적 미달이나 내규의 중대한 위반의 경우 퇴학시킨다.



2018년부터 영성의 해 규정 변경으로 이제는 2학년 신학생들도 양업관이 아닌, 소위 말하는 윗공동체(대건관, 강학관)에 거주하게 되었고 1주일에 1회씩 외출이 가능해졌다.

이제 양업관에서 2학년이 1학년을 대상으로 집합시켜서 군기잡는 시대도 사라졌다. 요즘 그랬다간 당장 언론의 타깃이 되고 여론의 공격을 제대로 받게 되며 무엇보다 신학교 시절 기합과 폭력을 일삼은 역대 천주교 사제들의 신상까지 분명히 털리게 될 거고 더 나아가 한국 천주교 자체의 존폐를 생각해야 한다. '양업관 부제'도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영성의 해는 2019년부터 1학년, 5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4. 학업[편집]


모든 과정은 대개 10년 가량 걸린다. 과정은 다음과 같다.


4.1. 학부과정 : 1~5학년[편집]


일반 대학생들처럼 4년 동안 공부하며, 신학 학사학위를 취득한다.

현재 S.T.B(교황청인준 신학학사)이라는 과정의 도입으로 학부는 5년제로 바뀌게 되었다. S.T.L은 교황청인준 신학석사과정으로, 교구신학생기준으로 신학교 6학년, 7학년 2년제로 운영될 예정이다.


4.1.1. 병역이행[편집]


2학년을 마친 뒤에 모든 학생들이 일률적으로 군대를 간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모든 신학생들은 무조건 병역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할 때 신학교 졸업 후 사관후보생 같은 '특별한 방식'으로 입대하는 것은 제외하였기 때문에, 대부분 대한민국 육군 이등병으로 징집된다.

다만 군에 입대하는 것은 의무이며, 피치 못할 사정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2학년을 마치고 다녀오도록 되어 있다. 강력하게 본인이 희망할 경우, 육군 지원병[17]이나 육군이 아닌 공군 병이나 해군 수병/해병대 해병 모병 과정에 지원해서 자원입대할 수는 있다. 단, 장교부사관으로는 입대할 수 없다.[18] 이는 한 학년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한다. 물론 도중에 휴학하겠다는 사람을 막지는 못한다.

군종병으로 주로 입대할 것 같으나, 군대 T/O라는 게 꼭 맞아 떨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전투병과로 입대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19] 게다가 천주교 군종병 T/O는 잘 해봤자 사단급당 1명이기 때문에… 또한 군종 신부들이 신학생들의 군종병 복무를 탐탁치 않게 여기기도 해서[20] 이럴 경우 타 보직으로 전출시키기도 한다.

군 면제자들의 경우에는 동기들의 군생활만큼의 봉사활동이 부과되며, 군 전역 후에는 프락티쿰 (前 모라토리움[21])이라는 국외 지역 봉사활동 기간 1년이 부과된다. 단 이미 군대를 마치고 들어왔다면 국외지역에서의 봉사 1년만 하면 된다.[22] 사제 양성 과정이 지적인 것 외에도 영성적, 봉사적 마인드를 필요로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4.2. 대학원 연구과정 : 5, 6, 7학년[편집]


4학년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4학년 때 성직 입문이라 할 수 있는 착의식을 거치면서 처음 수단(soutane)을 입는다. 그리고, 형식적으로는 4학년을 끝으로 학사학위를 취득하나, 이후 사제 서품을 받으려면 석사학위를 받지 않더라도 대학원(5~7학년) 연구과정에는 필수적으로 등록해야 한다. 이 때문인지, 학교 측에서도 석사학위 과정에 등록하는 경우를 권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에 정식으로 성직자 청원서를 제출한다. 신학교에 입학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이 사람은 신부가 된다는 게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 기간에 성직자 청원서를 제출해야만 사제서품 후보에 오르게 된다. 실제로 이 기간까지 와서 성직자 청원서를 내지 않고 휴학하거나, 그만두는 사례도 있다.

5학년이 되어서 독서직을 받고, 6학년이 되어서 시종직을 받고 7학년 때 성직 3품 중 첫단계인 부제서품을 받는다. 부제서품을 받은 다음해 2월 경에 정식으로 사제서품을 받고 자신의 출신 본당에서 첫 미사를 집전한다. 새 사제의 첫 미사는 그야말로 본당의 경사이며 잔치. 미사 후에 새 사제는 참석한 모든 신자들에게 안수를 해 준다. 이후로도 교구의 여러 본당을 돌아다니며 순회 미사를 집전한다.

예전엔 '새사제학교'라고 해서 초임 신부들을 위한 재교육 과정이 있었다. 서울대교구의 경우에는 이 과정을 없애는 대신, 서품 전 단계 과정으로 넣었다고 한다. 때문에 2010년에는 8월 여름에 치러지던 서품식이 이듬해 2월로 미루어져, 2010년에는 서품자가 나오지 않았다.

세월이 세월인지라 사제 지망자가 점점 줄어들고, 실제 현장에서는 사제 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23]

그러나 서울대교구는 사정이 다른데, 인사적체 현상으로 2018년 현재 새로 서품 받은 신부가 주임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25년은 걸린다고 한다. 보좌신부로서 약 7~8년정도 여러 본당에서 직무 수행을 한 뒤 주임신부가 되는 일반적인 교구와는 사정이 너무 다르다. 그럼에도 서울대교구 측은 남아도는 사제들을 지방에 파견하기를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서울 본사 근무하다가 지방 발령 받은 직장인들이 그렇듯이, 신부도 각종 인프라 및 문화활동이 쉬운 서울에서 지방가라고 인사명령이 내려오면 순명때문에 군말없이 이동해야하지만 반갑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다만 서울대교구라고 해도 특수사목 분야는 여전히 일손 부족을 겪고 있다. 대표적인 특수사목으로는 군종사목, 교육사목(교구 산하 중고등학교), 원목사목(가톨릭 병원 파견) 등이 있는데 이곳들은 소히 말하는 험지 사목으로 불리기도 한다. 군종사목 같은 경우 군종신부의 부족으로 사단급 부대에만 파견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이유로는 사제들이 본당 사제만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특수사목은 들어오는 빨랑카(용돈)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신자가 아닌 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정말 사명감 있게 열심히 하는 신부들도 있지만, 이는 극소수이고 현실은 폭탄 돌리기이다.

물론 특수사목의 경우, 본당을 벗어나 사회속에서 사목을 해야하는 일반인 수준의 삶(각종 복지관, 사회시설 등에서 비신자들과 섞여서 파견근무을 하는 셈)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유혹이 많다 보니(물질, 이성 등), 순수한 사제의 삶을 살기 훨씬 더 힘든 점이 있다는 사실도 지적되어야 한다. 특수사목하는 사제들의 삶이 그만큼 힘들다.


4.3. 교육 과정[편집]


교육과정은 크게 신학이론/실습/철학/외국어/비교종교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신학이론에는 구약 성경, 복음서 등을 비롯한 성경연구와 사목학, 전례학 등 각종 신학분야에 대한 공부이다. 가장 핵심적인 커리큘럼이다.

실습의 경우는 대개 미사를 비롯한 전례학을 기반으로 하여 각종 예식을 실습하는 과정이다. 주로 성직과정에 본격적으로 들어간 고학년에 배우는 과목들이다.

철학의 경우 신학에 필요한 사고력을 위해 존재한다. 사실 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고대 철학에서 그 개념이나 방법론을 취해서 성립해 간 경우가 많다. 이는 성서를 쓴 사도 요한이나, 사도 바오로에게서도 철학, 특히 고대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24]. 때문에 철학신학 공부를 위해서 필수. 일반대학 철학과 정도는 아니라도, 고대~현대 철학사, 인식론, 형이상학을 비롯해 철학의 주요 접근법을 배운다.(실상 학부 때 주로 배우는 것은 철학이고, 신학은 기본적인 것들만 다룬다.)

외국어는 우선 성서 원어연구에 필요한 히브리어그리스어, 그리고 교회 예식과 교회법, 교령 등을 연구하는데 필요한 라틴어를 중심으로 여기에 신학 연구에 필요한 독일어, 이탈리아어와 같은 서양 언어가 약간 곁들여진다. [25]

마지막으로 비교종교는 한국의 종교문화와 타 종교에 대한 이해를 통해 사목이나 타 종교와의 공존에 대해서 배우는 영역이다. 역시 고학년 때 몰려 있는 경향이 있다. 루터와 칼뱅, 츠빙글리 등 개신교의 여러 개혁신학, 불교에 대한 공부를 비롯해, 종교학, 심지어는 한국 무속신앙, 샤머니즘까지도 독립과목으로 개설하기도 한다.

덧붙여 여학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이분들은 수녀님이나 평신도 지도자 과정을 밟으시는 분들이다.

사실 사제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도 가톨릭 신학대학의 문을 밟을 수 있다. 만 3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평신도지도자 과정이 있어, 일반인도 사제서품과 관계없이 신학강좌를 들을 수 있고, 또 청강생으로도 들으시는 분들도 있다. 물론 이분들은 사제서품을 받을 분들이 아니므로 당연히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다.

교직과정이 개설되어있다. 교목이 되려는 신학생이나 가톨릭 종교교사의 꿈이 있는 신학생이 교직과정을 이수한다.

신학교의 시험은 모두 명예고사라는 방식으로 시행되어, 고사실에 감독관이 없다. 다만 부정행위를 하다 걸리면 무조건 퇴학. 그 이유는 부정행위를 하면 십계명을 어기기 때문이다. 만약 썰을 풀 능력이 안된다면, 장문의 편지를 교수신부님께 써보자! 예전에는 가끔 권총은 면하게 해 주시는 교수 신부님들도 계셨다. 양업관 기초 학문인 히브리어 희랍어 라틴어는 편지를 쓸 수 없다.

이제는 위 규정도 많이 약해진터라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되어 퇴학 당하는 경우가 몇년에 한 번씩은 발생을 하고[26] 따라서 이제는 교수 신부들이 교실에서 철저히 감독을 하고 있다.


4.4. 최근의 문제점[편집]


2000년대에 이후로, 사제 양성 과정에 상당한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앞서 말한 의복과 헤어스타일의 변화부터 생활양식 전부가 변화하고 있다.

먼저, 신학생들이 사제직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청빈한 삶'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지방의 모 신학교는 택배 문제로 수위실 직원들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의 인터넷 쇼핑이 취미인 학생들도 있고, 테니스 라켓, 자전거, 야구 글러브, 축구화 등 일반인들도 혀를 내두르는 가격의 고가품들을 사용하는 신학생들도 일부 있다. 심한 경우 300만 원을 호가하는 전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고. 물론 이런 생활상의 변화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제직의 청빈과 금욕을 훈련하고 양성하는 장소인 신학교에서 이런 세속적인 생활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분명 신학생들의 영성에 문제가 되고 있음에도, 학교 관계자들이 뚜렷한 대책을 세우지 않는 것이 분명한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신학생들의 양성 방법에 있어서도, 여러가지 긍정적인 개혁이나 선도를 해보기 보다는 그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불량품', '썩은 가지'로 부르며 신학생들을 일도양단 하는 것이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사실 이는 천주교 전체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성소가 줄어들고, 냉담률이 급증하는 문제에 대하여, 가톨릭교회가 신자들의 신앙문제에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려는 전반적 추세가 신학교에도 스며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27] 사실 중견 사제들은 80-90년대 민주화 시기 폭발적인 교세 성장을 경험한 세대인지라 현재 가톨릭 교회가 움츠러드는 징조를 보이는 상황에서도 사목상 혁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교수 신부들 대부분이 보좌 신부를 한 번(2년) 하고, 해외에서 10년 이상 유학을 한 뒤 바로 부임을 하는 터라 한국 천주교의 현실에 더욱 무딜 수밖에 없다. 그저 이상적인 '학업'만을 중시하며 실제로 사목 일선에서 필요한 것들은 철저히 배척하고 있다. 왜냐하면 교수 신부들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니까, 교수 신부들의 선민의식[28]이 사라지지 않고, 그저 신학생들을 외부와 차단시킨 채 치마폭에 감싸고 오로지 라틴어 한 글자 더 가르치는 것에만 치중하는 한, 실질적 본당 사목을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가르치지 않는 한 현 대한민국 천주교회는 갈수록 병들어 갈 수밖에 없다. 본당 실무는 그저 본당 사제에게 일임하고 있다. 문제는 본당 사제들은 시대 변화에 알맞은 생활양식으로 변화하고 있고, 이것이 교수 신부들의 방침과 충돌하고 있다는 것. 다만 이것은 본당 사제들의 '생활 양식'이 바뀌었다는 것이지 위에서 비판한 '시스템'의 변화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신학생들의 이성교제 관련 문제도 심각하다. 사실 정말 용기있는 신학생들 말고는 이성 문제를 숨기는 것이 현실이다. 괜히 잘못 이야기 꺼냈다가는 단칼에 똘레를 당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안으로 곪아 터지고 있다. 지방의 모 교구 신학생들은 방학 때면 타 지역으로 넘어가 클럽, 나이트, 부킹 술집, 모던바를 날 잡아서 놀러간다. 대표적인 신학생 양성의 어두운 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선배 사제들의 모습을 보고 배운 것이다.

이상은 교구 사제들의 문제점을 비판적 시각으로 나열한 것이다.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 중 극단적인 경우는 5% 정도이고 나머지 95%는 선량하되, 기도생활이 부족한 경우이다.

수도회, 선교회 사제들의 경우에는 성공회 신부들[29] 만큼 가난하게 산다고 생각하면 된다. 교구 사제들은 각종 축성비에 신자들이 찔러주는 빨랑카(용돈), 각종 식사대접 등으로 자신이 지출할 돈을 아껴서 탕진하는데, 수도회, 선교회 사제들은 성무활동비 약 80여만 원 정도로 한 달을 보내야 한다. 물론 집 걱정, 밥 걱정, 보험료 걱정, 적금 걱정, 옷 걱정 등등 각종 걱정들이 대폭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봉급 100만 원 이상에 성무활동비, 생활비, 각종 수고비 등등으로 3~400만 원은 우습게 쓰는 교구 사제들보다는 사제 본연의 임무에 더욱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교구의 경우 새 신부가 주임신부가 되려면 20~25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 동안은 보좌신부 및 부주임신부를 전전해야 한다.


5. 신학교에 가려면[편집]


위에서 보다시피 입학시험 자체는 쉬운 편이다. 서울이 컷이 가장 높은데, 아무리 높다고 해도 성소자 부족으로 4등급 언저리까지 내려간 수준이다. 편입이라고도 하는 대학 졸업자 전형은 거의 날로먹는 수준이다. 학점은행제, 독학사 등으로 4년제 학위를 취득하고, 영어 성경 해석과 예비신자 입교 교리서를 외우면 된다. 영어 성경은 읽어보면 알겠지만[30] 공관복음은 중등 영어 수준, 서간은 고등 영어 수준이면, 특수한 단어 몇개만 외우면 술술 읽히는 수준이다.

인성검사도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만 아니면 통과이고, 본당 주임신부와의 관계는 미사만 꼬박꼬박 참석하고 본당 주일학교 교사, 청년 활동만 무난히 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고, 신부로 가려는 남성이 계속 줄고 있는 만큼 소속 본당에서 심각한 문제아라고 주홍글씨가 찍히지 않는 이상은 본당 주임신부 입장에서는 신학교 진학한다고 면담하면 진심으로 환영한다.

지나친 신비주의로, 그 어려운 신학을 어떻게 공부하느냐 하지만, 들어가면 다 하게 되어있다. 일단 신학교의 보수적인 환경 탓에 20년 이상 같은 내용만 반복하는 교수 신부들이 많기에, Codex라고 하는 족보만 봐도, 시험기간에 조금만 열심히 하면 통과가 가능하다. 어차피 성적을 잘 받는다고 서품 후 인사이동에서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니기에, 과락(F 학점)만 받지 않으면 된다.

또한 성소자 부족으로, 사실상 백지만 내지 않으면 F를 주지 않는다. 따라서 Codex의 Codex, 곧 그냥 통과용으로 10줄 정도로 요약해서 그 내용만 쓰고 나와도 충분하다.

문제는 마음가짐이다.

따라서 무조건 성소자 숫자만을 늘리려는 식의 분위기에 묻어가려 하지 말고, 진정 신부의 길을 걷기 위해선 자신을 냉정하게 성찰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31]

1. 자신이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들마저 최소한 겉으로라도 미움없이 대할 수 있는가?[32]
2. 처음보는 사람과도 허물없이 이야기 하고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가?[33]
3. 다양한 상황에서도, 기도생활에 진정 충실할 자신이 있는가?
4. 주말에 하느님을 위하여 세속의 비(非)신자 친구들 만나는 것을 포기할 수 있는가?
5. 매주 월, 수, 금 새벽미사에 전날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도 자리를 중간에 파하고 일찍 취침한 후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할 수 있는가?[34]
6. 일정 기간만이라도, 절대로 음란한 생각을 하지 않고 보내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가?[36]

요컨데, 세속적인 행복이나 명예 등을 신앙과 그리스도를 위해 겸허히 봉헌하는 태도를 스스로 생활화할 수 있는지를 엄격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성찰하는 것이 성소나 목회자의 길로 진입할지 말지의 여부를 가리는 데 있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자신이 이런 면에서 부족하다면 바로 신학교 들어갈 생각말고 지속적인 기도, 고해성사, 영성체와 영성수련을 하며 계속 자질을 다져나가야 할 것이다.[37]

입학하면 변한다고 하지만, 신경써주는 사람들은 적으니, 본인이 먼저 변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이 없이는 절대 변화에 성공하지 못하므로 항상 삶의 마지막 날처럼 자신을 은총으로 갈고닦지 않는다면, 신학생이 되더라도 자비없이 사정회의에 올라가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38]

일단 신부 혹은 목회자의 삶은, 겉으로만 보기에는 매우 화려해보인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신자들에게 존경을 받고, 사실상 본당[39]의 연예인과 같은 삶을 누린다.

그러나 절대로 이것만 바라봐서는 절대 안 된다. 취미생활 단 하나만 빼고 세속적인 것은 모두 포기해야 한다. 일단 사회 친구는 거의 못 만난다고 보면 된다. 목사/신부가 본당 미사/예배를 펑크내고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는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평일 저녁에는 다음날 새벽미사를 위해 늦어도 11시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하며, 목사 역시 다음날 새벽예배나 부흥회 혹은 고난주간 예배 같은 일정이 있다면 일찍 잠자리에 들거나 설교준비에 몰두해야 한다. 거기에 신부들은 미사 전 고해성사(5시 40분 경)를 집전하기 위해 늦어도 새벽 5시에는 일어나서 씻고 준비해야 한다. 따라서 사실상 평일 오전과 오후 시간만 빼면 가용 시간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신부/목사들은 미사/예배진행과 강론/설교 외에도 이런저런 업무가 있다.

또 유의할 점은, 신학생의 밤에는 심각한 고독이 찾아온다. 신학생 때야 바로 옆방에 친구들이 있지만, 당장 서품을 받고 본당에 부임하면 시어머니 역할의 주임신부 밖에 없다.[40][41] 적적한 밤에 청년들을 부르자니, 친한 사람들만 모여서 술 한잔 하고 싶고, 그러다보면 편애한다는 소문이 돌고, 그렇다고 싫어하는 청년들과 만나자니 그건 싫고, 그러면 부를 사람이 없고, 또, 기회가 되어 친한 청년들만 모아서 술 한잔 한다고 해도 과음을 해서 새벽미사에 지장이 갔다가는 교구청에 소환을 당하고, 여자 청년에게 술김에 추파를 던졌다가는 얄짤없이 면직, 즉 사제직을 완전히 박탈당한다.[42]

신부가 성당의 왕이라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옛날에는 본당 숫자도 적었고, 본당 공동체도 어마어마하게 거대했다. 그런 환경에서 Excommunicatio(파면)를 시켜버리면(신자 OOO는 앞으로 성당 출입을 금한다.) 신자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고, 무서워서라도 신부에게 굽신거릴 수밖에 없었고, 신부들이 신자들에게 욕설을 하며 호통치는 경우도 많았다.[43]

그러나 현재, 신자들의 의식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젊은 청년들은 성당의 주인은 신자라는 민주주의적 생각이 가득하다. 사실, 가톨릭 교회론을 엄밀하게 따지자면, 개신교면 몰라도 가톨릭의 경우 불변하는 교계 제도가 명확히 있기에 민주주의적 태도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식의 태도 역시 문제가 있다. 본당 주임신부야 어차피 임기만 채우고 떠날 사람인데, 왜 자신들에게 간섭이냐는 가치관을 형성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완고한 태도로 공동체가 파탄나기라도 한다면, 그 꼬리표는 다른 본당을 가서도 따라붙게 되고, '폭탄'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간혹 신학생들 중에 변화하는 교회 사정을 모르고 '내가 수녀보다 높은 지위에 있으니 앞으로 나에게 보고하세요.'라는 철없는 소리를 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목자로서, 자신이 보기에 잘못된 행동을 하는 신자가 있을 때, 신부, 신학생, 수녀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의 회개를 위해 꾸준히 기도하고 온건한 태도로 사랑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끈기있게 타일러야 할 것이다.

"자매님/형제님! 당신은 문제가 많으니 앞으로 성당 나오지 마세요!!" 라고 하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에 어긋난다. 또한 절대 인격적 모욕은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정신적 상처를 받은 신자는, 10분 거리의 다른 성당에 가면 된다. 그리고 신부가 임기를 채우고 떠나면, 다시 원래 본당에 복귀하면 그만이다.[44]요즘 가뜩이나 청년들이 귀한 상황에서 청년들을 잘못된 방식으로 꾸짖거나 호통을 쳤다가 청년들이 안 나오기라도 한다면, 그 비난은 전부 성직자, 수도자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직자, 수도자 모두 '자신이 본당의 왕'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모범적 신심생활로 본을 보이고 신자들을 교리적으로 올바로 대하고 올바른 교리와 행실을 가르치는데 전력을 다하되, 폭력적이거나 강압적으로 대하지 말고 사랑으로 대함과 동시에 잘못된 것은 온화하게 교정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신자들을 섬기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말이다. 그리고 사제 성소 문제는 만 29세까지 시간이 있으니 세속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영성을 고려하며 서둘지 말고, 천천히 식별하며 생각해도 무방하다.

6. 신학생의 마음가짐[편집]


자신이 현역 신학생이라도 이 지침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같이 살아내지 못 한다면, 그 삶은 필시 불행할 수밖에 없다. 물욕, 소유욕 등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참 사제의 길, 십자가 고행의 가시밭길이기 때문이다. 인간이기에 나약할 수밖에 없다지만, 신자들은 그것에 상처를 받고 성당을 떠난다는 것을 명심하자.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와 지속적인 회개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이 독실한 신자분들보다도 기도를 더 열심히 하는지 되돌아보자. 바빠서 못 한다는 핑계는 말이 안 된다. 어쨌든 쉬는 시간은 날 테고, 그것을 쪼개서라도, 공부와 독서는 못 하더라도 기도는 열심히 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도야말로 거룩한 삶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사제로서의 완성된 삶은 하루종일 기도만 해도 행복한 경지에 올라야 기쁜 삶이 되는 것이다.[45] 여기서 말하는 기도란 관상기도를 말한다. 아침저녁기도, 묵주기도성무일도는 사제 지망자라면 기본중의 기본이라 논외로 친다.

또한 고해성사를 주기적으로 충실히 보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자격미달 신학생들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꼽히는 것은, 첫째, 자신의 동료 신학생들에게 꾸짖음과 훈계를 넘어서 각종 폭언, 욕설, 협박을 일삼는 모습이다. (예시로 그들만의 꼰대문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 신부님, 신학생들은 그들 안에서 술문화가 매우 빡세다. 그래서 많은 신학생들이 방학때 본당으로 파견되면 술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신학교의 구조상 외부와 차단되어 담벼락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모두 신학생들의 마음 속에 묻는다. 그리고 그들은 방학을 하거나 본당에 나온다면 그 말을 일체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발설하지 않는다. 가족에게 말하면 걱정할 것이 뻔하고 주위사람들 특히 신자들에게 말하면 교회에 대한 매우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학생들은 각자 자기마다 한 두 가지의 말 못 할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이를 좋게 해소하고 풀어가며 하느님안에서 하나 될 수 있는 덕목이 매우 필요하다. 둘째, 여성 청년 신자들에게는 한 없이 너그럽고 관대하면서, 남자 청년들에게는 정색을 하며 위의 동료 신학생들같이 대하는 모습이다. 또한 자신이 무슨 대단한 지위에 오른 것마냥 행동하는데, 누차 말하듯이 만약에 그 상황에서 청년이 대들고 주먹다짐까지 간다면 불리한 것은 신학생 자신일 수밖에 없다. 아니, 그것을 떠나서 모든 도덕적 비난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신자분들이 신학생을 좋아하는 것은 신학생 사람 뒤에 있는 하느님을 보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지 인간 xxx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신자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신학생은 사제가 될 자격이 없다. 사제는 성직자 이기 이전에 참 인간이 되어야 한다.)

간혹 부모님과 일가친척들의 기대 때문에, 본당 신자 분들의 기대 때문에, 신학교 동료들 때문에, 신학생이라는 부와 명예(?) 때문에, 나가면 먹고 살 길이 없어서 꾸역꾸역 '버티는' 신학생, 신부들이 있다. 부모님 때문에 학교를 나가지 못하는 것을 일명 어머니, 아버지 성소라고 한다. 신학교에서 나가면 소속 본당에서는 거의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 이미 매우 긴 기간 본당에서 온갖 기대와 사랑을 받았는데 갑자기 어느날 돌연 신학생이 나갔다고 생각해 보아라... 그래서 어떤 교수 신부님은 신학생들이 나가고 싶지만 주위의 눈치(부모님, 본당 신자들, 본당 신부님)때문에 나가지 못한다면 차라리 시험지 백지를 내라고 한다. 일반대학에서 백지 시험지는 재시를 봐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신학교에서 백지 시험지는 담당과목 교수, 특히 담당과목 교수가 신부님이라면 이건 그 신부님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앞뒤 꽉 채워서 완전 오답인 답지 10장이 백지 시험지 보다는 훨신 낫다. 교수 신부와 신학생은 일반 대학에서 말하는 교수와 학생의 사이가 아니다. 일반대학은 교수는 취업하거나 졸업하면 보지 않을 사람이지만 교수 신부는 본당에서 주임을 나갈 가능성이 매우 크고 신학생이 신부가 되면 교구, 지구, 운이 안 좋다면 본당 주임, 보좌로 만날 수도 있다.[46] 교구의 한참 선배 신부님이기 때문에 교수 신부와 신학생은 매우 민감한 관계이다.

그리고 일부 신학생들 사이에선 잘못된 미신이 있다. '신학생이나 수도자, 신부가 옷을 벗으면, 100% 후회하고 불행하게 산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또는, '에덴동산에서 떠났기 때문이다.'라는 것인데, 그것은 가톨릭 교리와도 전혀 맞지 않는 낭설일 뿐이다. 물론 사제의 길을 걸으면서 하느님께 드린 서원은 매우 중대하다. 하지만 신부가 될 올바른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 서원은 오히려 하느님의 이름과 가톨릭 교회, 사람들의 구원에 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이 준비 없이 사제의 길을 간다면 진지하게 성찰하고 서원을 해제받는 것도 방법의 일종이다.(휴직, 정직, 면직, 옷을 벗는 데는 이 과정을 거친다. 최소 1년에서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의 시간이 걸린다. 시간이 긴 이유는 긴 시간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면서 나간다고 했더라도 다시 교회로 돌아오기 위해 기회를 주는 것이다.)

진정한 사제로 기쁘게 살아낼 확신이 없어서, 기도생활은 하나도 안 하고 신자들 앞에서만 거들먹거리기나 하는 '사기꾼'이 될 것 같다면, 차라리 거룩한 사제의 길을 그만두겠다는 그 모습이 더 멋진 모습일 것이다. 또한 오히려 성령의 축복이 가득할 것이고, 그것이 구원의 길일 것이다. 반대로 입만 살아서 평생 사기꾼으로 살며 각종 변명만 쏟아내는 부패한 사제들이야말로 스스로를 옭아매는 지옥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그리고 똘레 당할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올바르고 합당한 똘레라면 장상에게 순명하는 마음으로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다만, 사정회의에서 해당 신학생의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퇴학처분시키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데, 신학생 본인들이 '파리목숨'이라고 하는 것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47][48]

끝으로 만약 자신이 문제가 많은 사제들의 신선(神仙)놀음 같은 삶이 부럽다는 이유 하나로, 그러니까 세속적인 이유만으로 사제직을 가지기를 원하는 경우의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사제의 길을 굳이 걷지 않고도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 라이프로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49]

그러므로 사제가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진지하게 생각이 드는 신학생들은, 과감하게 그만두도록 하자. 사제직은 신성하고 거룩한 길이지만, 신학교 밖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은 많고, 가톨릭 신자로서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길은 세속에 머물면서도 충분히 있다. 또한 꼭 사제가 되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안 맞는 곳에 일생을 살기보다는 정말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이 글을 전부 읽고도 영성과 구원의 사명보다, 신부로서의 부와 명예와 권력에 미련이 남는 예비 신학생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7. 본 문서의 주의점[편집]


이 문서는 인터넷에서 가톨릭의 신학교에 대하여 검색했을 때 가장 먼저 찾게 되는 문서인데, 가톨릭 신학교와 일부 일선 본당 사제들의 다양한 문제점을 잘 지적하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내용들에 있어 다소 주관적일 뿐만 아니라[50] 일부 측면에서는 지나치게 편향적인 면모로 그 서술 의도까지 의심되는 수준이다. 특히 비판받을만한 점은 가톨릭교회와 신학교 생활의 상당수 요소를 공격적으로만 바라보고, 신학교와 사제의 본당사목에 있어서 부정적인 면만을 과도하게 강조하며, 특히 가톨릭의 상당수 교의와 교계 제도, 교수 신부들을 비하하는 논조가 깊게 서려 있다.

어느 단체나 종교단체라도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가톨릭 교회의 본당과 신학교도 결국엔 사람들이 운영하는 기관이기에 어두운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빛도 있다는 것이다. 정말 웬만한 종교 성직자들이 존경할 정도로, 자신의 봉급 대부분을 교회 기관이나 시설을 위해 기부하고 구두가 다 해어지고, 해어지면 고쳐신고, 끌러지(성직자 옷) 역시 색이 다 바랄 정도로 입고 다니는 사제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사실, 위 항목들의 내용들의 대다수는 문제가 많은 교구 신부들에 대한 비판일 뿐이다.

따라서 모든 사제들을 사기꾼으로 취급하고 불신하는 자세는 곤란하다. 사제들도 사람이기에 실수할 때가 있는 것이고, 가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그 유혹의 구덩이에서 다시금 회개하고 돌아서는 것이 중요하다 할 것이다.

신학생들 역시 '본인은 절대 그런 사제가 되지 않겠다.'며 반면교사 삼고, 열심히 살아가는 부류도 상당히 많다.

결론적으로 한 쪽만을 과장되게 부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 문서의 서술만 가지고 가톨릭의 신학교와 사제 생활에 대해 지나친 부정적 오해를 갖지 않도록 함이 중요하고, 무엇보다 본질상 개인의 주관적인 가치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비객관적인 나무위키의 일부 서술이 가톨릭 사제생활과 성소자 식별의 전부라는 오해를 가지지 말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일반인 뿐 아니라 성소를 식별하는 가톨릭 신자들은 특히 유의해야 할 점으로, 이 문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현재 신학교 및 사제의 사목현황에 있어 이러저러한 문제점이 있고, 사제의 길에 이러한 다양한 어려움들이 있으니, 사제의 길을 선택할 때는 이 어려움들을 은총으로 극복해나갈 생각을 하고 또 섣불리 선택하려 하지 말고 신중히 선택하여야 한다'는 것이지, 마치 다양한 문제점이 있으니 무조건 조금의 맘에 안드는 점만 있어도 신학생도, 사제도 되기를 포기해라는 식의 글이 절대 아님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사제로 살아간다는 건 하느님을 따르는 삶이다. 그 과정에서 보이는 교회라는 인간이 만든 조직과 그 조직의 규율, 사제단의 인간적 모습은 성소의 본질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나의 성소일 뿐이지, 내 눈앞의 지도신부나 옆에 보이는 선후배, 동기 신학생이 아니다. 사제의 삶을 택하든 다른 삶을 택하든, 후회하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에게만 집중하자.

8. 여담[편집]


  • 나무위키에서 최초로 단독문서가 개설된 한국의 가톨릭계 종합대학에 부설된 신학대학이다. 그리고 최초로 단독문서가 개설된 가톨릭대학교의 단과대학이다.
  • 나무위키에서 최초로 단과대학과 일반대학원이 통합되어 서술된 문서이다.
  • 개신교 신학대학과 불교 불교대학은 각자마다 라이벌 관계가 있는 신학대학, 불교대학이 있지만 가톨릭 신학대학은 그런 것은 딱히 없다. 교구 별로 신학대학이 분리되어 있고 학계를 제외하면 서로 교류할 일도 없다.
  • 타 가톨릭계 신학대학교도 신학생의 생활상과 교육과정은 가톨릭대 신학대학과 크게 다를게 없다. 하지만 가톨릭계 신학대학 중에서는 가톨릭대 신학대학이 규모가 제일 크다. 다른 가톨릭계 신학대학은 수원교구의 수원가톨릭대를 제외하고는 신학생이 좀 적다. 어차피 신학생들은 원하는 신학대학에 진학하는게 아니라 소속된 교구에 따라 지역별 신학대학에 배치되는 것이기에 큰 의미가 없긴 하다.
[1] 신학교의 대략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2] 우스갯소리로 "양복 100명이 와도 수단 1명을 이길 수 없다"고들 한다. 이는 아래 후술하는 위계질서 때문이다. 수단을 입은 신학생은 최소 학부 4학년 이상이며 검은색 양복을 입은 신학생은 3학년 이하의 신학생들이다. 일반 학교에서도 하급생이 상급생에게 항명하기 힘든데 교회 내 위계질서 준수와 순명을 원칙으로 삼는 가톨릭 교회의 원칙을 고려할 때 그냥 양복은 수단에게 안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3] 2017학번부터 입학.[4] 부산가톨릭대학교는 2019년 신학대학을 폐지했다. 이후 부산교구 신학생은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마산교구 신학생은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수학한다.[5] 고등학교 졸업 후에 신학교를 지망하는 사람들이라면, 일반 예신모임을 개근해야 한다.[6] 한두 번까지는 봐주고, 그 이상 빠지면 좋게 보지는 않는다. 그리고 상고나 공적인 일로 빠졌다고 "너 재수해!" 라고 말할 정도로 잔혹하진 않다[7] 예를 들어 2022학년에 입학하려 한다면 2021년에 하는 인성검사를 받아야 한다.[8] 그러나 신학교에는 천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인성 검사를 통과했나 싶을 정도로 괴팍한 사람들도 있다. 신학생들 사이에서 손가락질을 받지만, 꼭 그런 사람들은 선배들의 비위는 잘 맞추는 터라 80% 이상은 신부가 된다.[9] 즉, 커트라인과는 무관하게 수능 고득점자이지만 해당 분야로 나가려는 학생들도 제법 있다.[10] 엄밀히 말하면 신학과(대신학교) 자체에 입학연령 제한은 없다. 그러나 교구사제가 되기 위하여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신학생 예비과정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만 28세 이하여야 한다. 예비과정은 약 1년이니 결과적으로 만 29세가 마지막 기회다. 물론 사제 과정이 아니라 일반 학생으로 입학하겠다면 받아는 준다.[11] 다만 어느 정도 예외나 융통성은 있으며, 신학생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30대 초중반까지는 받아주기도 한다. 실제로 2014년에 사제서품을 받은 서울대교구 신부님들 중에는, 34세에 신학교에 입학한 분도 있다. 다음은 관련 기사. #[12] 교구 소속이 아닌 수도회에 적을 두고 사제서품을 받기 위해 입학하는 수사님들 또한 연령 제한에서 제외된다.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선 무려 50세에 사제품을 받은 분도 계신다. 단 이 경우는 해당 수도회의 사제품이기 때문에 일반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할 수는 없다.[13] 정복이라 한다[14] 이전에는 사제복이라 되어있었다. 수단은 사제만 입는 옷이 아니라 부제도 입는, 그러니까 성직자라면 당연히 입어야하는 옷이다.[15] 가끔 방학기간이 되면 사람들이 수사님 하면서 인사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대부분 방학을 맞아 소속본당으로 돌아온 신학대생이다. 그리고 방학이 끝나고 복귀할때 미사 마지막 본당 공지사항 공지 시 반드시 인사를 한다.[16] Tolle, 라틴어로 "내보내다"라는 뜻이다.[17] KATUSA, 기술행정병, 전문특기병, 동반입대, 연고지 복무[18] 예외적으로 대학수료자전형(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입학하는 경우)으로 입학한 신학생이 입학 전에 학사장교를 지원해서 신학교를 입학만 하고 장교로 병역을 이행한 경우는 있다. 또한 신부로 서품 받고 나서 군종 신부로 발령 나는 경우에는 병장으로 전역한 신부 중에 지원자를 우선 선발하며, 장교훈련을 받도록 하고 장교로 임관한다.[19] 사실상 아무데나 다 간다고 보면 된다.[20] 사제들도 사람인지라 혹시라도 사제로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해 신학생의 신앙심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21] 모라토리움(중단, 중지라는 뜻.)이란 단어에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들어있다는 이유로 2017년부터 프락티쿰이라는 단어로 바뀌었다. 실습이라는 라틴어.[22] 2014학번부터 시행된다.[23] 원인은 지속적인 출생률 감소와, 천주교 청년신자의 냉담률 증가, 대를 잇는 것을 중시하는 사회 풍조도 있다. 가톨릭 사제는 결혼을 할 수 없기 때문. 그래도 사제가 될 사람은 된다. 주보에 소개되는 사례를 보면 아들 둘 있는 집에서 둘 다 사제가 되는 집이나, 외아들이 사제가 된 집도 있을 정도. 물론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24] 토마스 아퀴나스나 초기 교부들은 두말할 나위 없고, 당장 요한복음만 봐도 '로고스'와 '포르마' 등의 개념을 능수능란하게 동원한다. [25] 심지어 국어도 배운다.[26] 책상에 라틴어 단어 몇개 써둔 것을 봤지만, 동료라서 차마 밀고하지 못 하고, 어차피 누가 그랬는지도 못 잡고 학년 전체가 욕을 먹을테니 그냥 넘어간 경우도 있다.[27] 일반 평신도들의 신앙심 및 성당생활의 약화의 단적인 예가 본당 주일학교와 레지오, 청년단체 시스템이다. 청년성서모임 등은 그런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주일학교와 레지오, 청년 단체는 고사 직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야 놀 거리가 별로 없어서 성당에 나와 노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세상 재밌는 것이 천지에 널렸는데 누가 성당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겠는가? 게다가 청년 단체가 하는 활동이라고는 미사 도우미 역할 밖에 없다. 개신교의 경우는 이러한 변화에 발 맞추어 청소년과 청년사목에 있어 여러 개혁이나 변화를 시도하지만, 천주교는 그런 것이 별로 없다. 아울러 성당 노년층의 인식도 문제인데, 물론 다 그런 건 절대 아니지만, 성당 내 청년들은 그저 본당 예산이나 축내는 사람들 내지는 본당의 일꾼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현 상황에 대한 진지한 해결책이나 사목 방침을 고민하지 않고, '나 젊었을 적에는 주일마다 성당 청소도 도맡아서 했는데 요즘 것들은 술이나 쳐 마시러 다니고 쯧쯧' 하는 발언들이 자주 눈에 띄기도 한다.[28] 일선 본당의 일반 사제들보다 자신들이 훨씬 우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이 주교 욕심을 내고 있다.[29] 독신 생활하는 가톨릭 신부와 다르게 성공회 신부는 부양가족이 있는데다가 교단에서 주는 봉급도 가톨릭에 비해 비교도 못 할 정도로 적다.수도자 수준이다. 일례로 성공회의 교구 사제 연수때 11인승 스타렉스에 15명 이상이 끼어 탄다고 한다. 가톨릭 교구 사제 연수가 초호화 맛집투어인 것에 비교했을 때 상당히 부끄럽기 그지없다. 성공회는 천주교와 마찬가지로 정해진 봉급 이상 지급하지 않는다. 천주교 본당에도 존재하는 '사례비'의 개념은 있으나 그마저도 '여유가 되는' 본당의 경우 본당이 교구가 지불할 성직자 봉급을 지원하는 형태이고, 그마저도 작금의 성공회 본당에선 실질적으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봐야한다.[30] 이건 어디까지나 한국 천주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NABRE 기준이다. NRSV는 이것보단 영어수준이 더 높다.[31] 아래의 덕목은 개신교 목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해당되니 목회자의 길을 가려는 개신교 친구가 있으면 함께 알려주자.[32]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처럼[33] 사목이나 목회에 있어서 사교성은 중요하다.[34] 개신교 버전으로는 '매일 하는 새벽예배, 수요예배, 부흥회, 고난주간 예배, 수련회를 앞두고 친구들과 자리를 중간에 파하고 일찍 취침한 후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할 수 있는가?'라고 하면 딱 들어맞는다.[35] 그렇다고 해서 이들 역시 음란한 생각을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당장 이들 역시 이 생각을 못 이기고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불륜행위를 하다가 적발될 시에는 목사직/신부직을 박탈당한다.[36] 특히 개신교 목사나 성공회 신부는 가정을 꾸릴 수 있고, 수도회는 폐쇄된 공간에서만 생활해서 이 문제에서 조금은 자유롭지만[35], 신부는 사회와 노출된 환경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위에 기술된게 모두 가능하다 해도 이게 불가능하면 신부로서 장래희망을 갖는거에 진심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37] 개신교 버전으로는 QT, 성경통독, 기도, 회개라는 수단을 통해 계속 자질을 닦아나가야 한다고 말하면 딱 들어맞는다.[38] 개신교 목사 버전으로는 자신이 자진해서 자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다고 보면 된다. 개신교 같은 경우에는 성폭행이나 부정행위와 같은 중범죄 혹은 학사경고를 상습적으로 받은 것이 아닌 이상 퇴학당하지 않는다.[39] 개신교 버전으로는 예배당[40] 어쩔 수 없는 게, 본당 보좌신부는 주임신부가 되기 위한 일종의 수련 과정이라서 그렇다.[41] 개신교 목사들은 그나마 이성친구를 사귀거나 가정을 꾸릴 수 있어 외로움은 덜하지만 그래도 번아웃 증후군에 노출되기 쉬운 직업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42] 개신교 목사 역시 이성 청년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순간 해당 교회에서 쫓겨나는 것은 물론 목사직도 박탈당한다.[43] 일례로 약 10년 전만 해도 어린이 복사단은 본당 신부, 수녀에게 매맞는 것이 일상이었다. 지금 그랬다가는 아동학대로 고소 당하기 딱 좋다.[44] 하지만 이것도 5년~10년 동안 성당을 다니며 신앙이 어느정도 쌓여있는 신자들이나 이러지, 교리 교육을 받고 있는 예비신자나 세례성사를 갓 마치고 다니고 있는 새신자들 앞에서 이러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 모습을 본 순간부터 다음날 냉담자가 되버리거나 더 심한 경우 가톨릭에 대한 종교혐오와 편견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들의 눈에 사제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예수의 이미지 그대로를 이어받은 완전한 사람 그 자체로 보이기 때문에 '사제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라는 인식 자체가 없다. 실제로 음주와 흡연을 하는 사제를 보면서 놀라는 예비신자와 새신자들이 있다.[45] 사실, 이 점은 평신도에게도 역시 동일하게 적용된다.[46] 더 나아가면 교구의 주교로 만날수도 있는데 대표적인 예시가 서울대교구손희송 주교. 20년을 넘게 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를 지냈다.[47] 사정회의에 올라가는 신부님들도 과거 신학생으로서 비슷한 경험을 했고, 사정회의 자체에 여러 신부님들이 참여하기에 명분없이 제명을 하지 못한다. '판단력 부족'이라는 주관적인 기준의 존재와 제명되는 사람의 명예를 지켜 주기 위해 학생들에게 제명 사유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는 시스템으로 인해 학생들이 자기를 파리 목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긴 하다. 그러나 솔직히 사정회의의 결정으로 신학생 인생 막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건사고 하나도 없이, 사정회의에 참가하는 여러신부들이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신학생을 제명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주장하는 신부 입장에서도 어려운 일이다.[48] 그러나 정말 신부가 되고 싶다면 현재 관구(교구의 상위 개념)에서 불가능할 뿐이지, 수도회, 선교회, 타 교구, 타국(일본, 미국, 호주 등) 전입도 충분히 가능하다. 되려 강제추행 등 성 관련 문제를 일으킨 경우에도, 나이 40이 넘어서도 잘만 들어간다는 문제점이 제기되기도 한다.[49] 2019년 기준 최저시급에 의한 월급은 약 180여만 원이다. 최저시급이 이렇다는 것이지, 능력만 있다면 더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연애, 노후 등을 전부 포기하고 한 달에 200여만 원을 전부 용돈으로 써 버리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사제들보다도 더 유유자적하게 살 수 있다. 사제들의 생활양식을 그대로 벤치마킹하는 것이다.[50] 특히 신학교 생활/또는 문제가 많은 본당의 신앙생활을 했다가 그만둔 전직 신학생의 주관적 서술로 보여지는 부분이 많은데, 본인 기준의 이상적인 종교생활과 합치되지 않은 것에 개인적으로 상당히 실망했는지, 신학교 생활과 사제직무, 사제들이 수행하는 본당 사목 생활의 중립적인 면, 긍정적인 경우는 거의 하나도 들지 않고 오로지 안좋은 면, 어두운 면만 한국 가톨릭 전체에 만연한 문제인 것처럼 확대하여 집중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국 가톨릭에는 해당 서술에 전혀 해당되지 않는 모범적인 신학교 지도신부/본당사제들도 매우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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