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순황귀비 타타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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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청나라 덕종 광서제의 후궁이다.
2. 생애[편집]
그녀는 13세 시절이던 1889년 언니와 함께 수녀선발에 참가하여 입선. 진빈이 된 뒤 진비로 진급했다. 광서제에게 가장 총애를 받았던 후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미인에 밝고 외향적인 성격 때문에 한때 서태후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정치에 간섭하고 매관매직을 했다는 이유[1] 로 서태후의 노여움을 사 귀인으로 강등되지만, 후에 진비로 복귀했다.
무술정변 후 서태후에 의해 자금성 내 냉궁에 유폐되었다. 1900년 의화단의 난이 한창일 때 서태후의 명에 의해 환관 최옥귀에 의해 우물에 던져져 죽었다. 서태후는 외모가 뛰어나 적들에게 강간당할 우려가 있으니 자결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진비는 끝까지 저항하며 버텼으나 소용이 없었다. 서태후와 광서제가 북경으로 돌아온 뒤 시신은 우물에서 건져져 각순황귀비로 시호되어 서릉에 있는 광서제의 숭릉비원침에 묻혔다.
진비가 투척된 우물은 자금성 내에 진비정(珍妃井)이라는 이름으로 현존한다. 생전에 거처했던 경인궁 옆 불당인 회원당(懐遠堂)에 언니 근비가 1920년경 베껴그린 정위통성(精衛通誠)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3. 미디어에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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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청나라는 매관매직이 합법이었다. 후궁들의 월급은 적은 편이어서 매관매직으로 돈을 버는 경우가 많았고, 서태후도 매관매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