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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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말년이 그린 간손미. 좌측은 이말년씨리즈 네이버 7화[1] / 야후 32화 '제갈공명전 下', 우측은 이말년 4컷 특급 39화 '조자룡이 간다' 편에서 등장한 장면이다.
簡孫麋
1. 설명
2. 기원
3. 이들의 실체
3.1. 저평가 받는 이유는?
3.2. 과연 범재일까?
3.3. 이들의 말년
3.4. 결론
4. 기타 창작물에서
5. 여담


1. 설명[편집]


삼국지의 인물인 , , 을 부르는 말. 능력은 있는데 능력치가 어중간해 정작 큰 일에는 쓸 수 없는 B급 문관들을 뜻한다.


2. 기원[편집]


'간손미'라는 단어는 삼국지 팬덤에서 예전부터 사용하던 단어다. 유래는 삼국지연의에서 세 사람 모두 도겸의 부하 문관이라는 공통적인 카테고리 때문인데 정사 기준으로 보면 미축도겸의 부하이며 간옹유비와 어렸을 때부터 친구로 지냈기 때문에, 손건도겸이 사라진 이후에 유비에게 등용되었으므로 각각 도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보통 '간미손'으로 쓰였으며, 그렇게 많이 쓰이던 용어는 아니였지만 주로 게임상에서 유비의 주요 측근인 이들의 능력치가 어중간하여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 말을 대중화한 사람은 이말년. 그는 웹툰 이말년씨리즈에서 송대관유행가트로이카 비하송 이미지를 심어준 엘롯기송을 기초로 간손미 트로이카를 조롱했다.

결국 어감 때문에 간손미가 된 건데, 실제 유비에게 등용된 순서로는 간옹 >> 미축 > 손건이며, 서열순으로는 미축 >> 손건 > 간옹이다. 미축이 서열상 가장 높은 건 여동생 미부인이 유비에게 시집을 가서 유일하게 유비의 인척[2]인 데다가 어마어마한 재산을 전부 유비를 위해 쏟아부은 대주주이기 때문이며[3], 간옹은 유비의 동네 친구라서 탁현 시절부터 유비를 따라다녔기 때문에 유비군에서 짬이 가장 높았다. 손건이 간옹보다 서열이 앞선 건 수많은 외교를 성사시킨 유능한 외교관으로서 실무능력이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다.

삼국지연의에는 사마휘가 유비에게 간손미 같은 인물들과는 큰 일을 도모할 수 없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이때 사마휘의 말을 좀 자세히 설명하면 관우, 장비, 조운은 능히 만 명의 적군을 상대할 정도로 용맹한 장수들이지만 그들을 제대로 부릴 인재가 없고, 간옹, 손건, 미축은 분명 시무에는 유능한 사람이기는 하나 백면서생이라 그저 행정업무에만 그칠 뿐이며, 유비에게 필요한 것은 좀 더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책사형 인재라는 이야기. 다만 사실 이 말은 이미 유비에게 '행정가', '장군'은 모두 있는데 넓게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고 나아갈 방향을 만들어줄 '전략가'(순욱이나 주유 같은 책사형 인물)가 없다고 한 것이니, 단순히 간손미가 까였다고 하기엔 사마휘도 이들의 행정 능력은 확실하게 인정한 것이다.[4] 그런데 삼국지의 인물들이 보통 단순하게 두 분류로 분류하면 무관/문관으로 나뉘다보니, 관우 장비 조운같은 무장들보다는 같은 문관 이미지인 간손미의 이미지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유방 휘하의 소하장자방이 같은 문관임에도 서로 맡은 바가 다르듯이, 문관 안에서도 행정업무를 보는 사람과 군략을 세우는 사람이 나눠지기 마련인 법이지만 '유비 밑에 문관인 간손미가 있음에도 이들을 평가절하하고 같은 문관인 와룡, 봉추를 추천했다!' 식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

삼국지연의를 기반으로 각색한 드라마 삼국에서도 똑같이 까였다. 대신 삼국에서는 미축 대신 미방이 들어가 있다.

선주가 익주를 평정하고 나자, 손건은 종사 중랑(中郞)에서 병충(秉忠)장군이 되었고, 예우는 미축 다음으로 하되, 간옹(簡雍) 등과 같이 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에 죽었다. -손건전-

사실 정사에서도 손건전을 보면 진수가 손건, 간옹, 미축을 트리오로 묶어 언급한다. 다만 열전에서는 미손간 순으로 언급했다.


3. 이들의 실체[편집]


저렇게 까이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게임상의 이미지 + 이말년 시리즈를 통한 밈화 + 제갈량의 초인적 재능에 비해 실제 능력이 딸리는 것일 뿐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사람들이었다. 간손미 밈을 만든 이말년도 훗날 개인방송에서 간손미를 이렇게 삼국지에 간손미급으로 기록된 것에서 이미 대단한 인물들이라고 평하였다. 그러지 않았다면 정사에 열전으로 남지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 역사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 자체로 비범한 네임드임을 잊지 말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긴 사람들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이는 지금도 유효하다.

이들에 대한 평가 논란은 정사에 열전이 남은 시대의 인재였음에도 그 정사에서 활약상에 대한 기록이 너무 적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정사에 기재된 작은 기록을 바탕으로 그들이 했을법한 일과 포지션을 추정하여 나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입장과, 활약이 대단했다면 정사에 자세한 기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 그들은 업적과 무관하게 촉의 중신이어서 열전에 이름을 올렸을 뿐이라는 입장이 대립할 수밖에 없는 것. 다만 어떠한 입장일지라도 이들이 유비 정권에서 중추적인 인물로 기록될 정도의 위치에 있었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정사에 열전으로 기록이 남은 인물들이 전부 유능하거나 획기적으로 큰 업적을 이룬 것은 아니며, 패악일지라도 당대에 잊을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면 기록이 남게 된다. 즉 정사의 기록은 이 인물의 능력을 증명하지는 않으나 최소한 유명도는 증명해준다 할 수 있다. 아예 무능하거나 사건사고를 친 인물들도 기록이 남는 상황에서, 높은 관직을 받았음에도 기록이 별로 없다는 것은 오히려 어느 정도 이상의 능력은 발휘했다는 의미이고, 인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유비군 특성상 상당한 도움이 되었음은 틀림없다.

이 셋의 업적을 정사의 기록보다는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이들이 늘 불안정했던 유비의 세력을 지탱해 온 유능한 집단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간손미 셋 모두 각 분야에서 유능하고 특색있는 인재들이다.

  • 간옹은 기록이 부실하여 가장 논란이 많은 인물이나 유비의 친구이자 촉한 짬밥 넘버 원, 그리고 참모와 지휘를 모두 할 수 있는 만능형 인물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간옹은 참모로서 활약하기도 하고, 자신이 몇 번 직접 군을 이끌기도 하여 본인이 받은 직위가 무관직인 소덕장군이다. 즉, 정욱이나 진등처럼 문관과 무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활약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그리 없다는 점에서 각각의 능력은 그냥 평이했다고 볼 수 있으나, 반대로 사고친 기록도 없다. 늘 인재난을 겪으며 도망치는 것이 일상일 정도로 불안정했던 유비 진영에서 끝까지 살아서 따라붙으면서 어떤 역할도 그럭저럭 수행할 수 있어 땜빵으로 돌려막기 좋은 간옹은 소중한 인적 자원이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간옹의 최대 공로는 유장을 설득하여 성도의 문을 열게 한 일일 것이다. 만약 유장을 설득하지 못해 무력으로 점령했더라면 유비군이 서촉과 형주를 무사히 합병하는 게 사실상 힘들었을 것이며 조조가 한중을 차지한 이후에도 그 통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엄청난 위기가 찾아올 것이 분명했다. 유비군이 서촉 합병 이후 과도기 기간이 길지 않았던 제일 큰 이유는 유장의 항복이었다. 당장 익주 평정 이후 5년도 되기 전조조와 한중에서 붙은 시점을 떠올려보면 된다. 대다수에서는 217년으로 보아 겨우 3년만에 20~30년간 유언 일족의 아래에서 정권이 바뀐 파촉의 상태를 안정시키고 세력을 증강시킨 셈인데, 만약 유비가 성도에서 칼들고 성 함락시키려고 싸웠다면 이런 기간은 꿈도 못 꿨을 것이다.
또한 간옹은 인간 유비의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즉 유비의 생각과 고민을 가장 가깝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그의 고민과 생각을 이해하여 다른 신하들과의 사이를 중재하고 유비 본인의 어려움을 듣고 공감해줄 수 있는 인물이다. 관련 기록이 없으니 이에 대한 증명은 어려우나 유비 진영의 최고참이라는 부분까지 고려하면 실제 이러한 역할을 맡았을 가능성은 충분히 예상하여 볼 수 있다. 비록 정사나 연의에서 기술된 바가 없긴 하지만, 분위기 메이커 역할과 중간 조율자 역할을 하는 인물은 조직의 결속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리 깨지고 저리 깨지면서 계속 유랑 생활을 하며 큰 세력에게 빌붙어 살던 유비 휘하의 장수들과 병사들이 그래도 끝까지 유비와 함께 하는 데에는 간옹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과격해지는 유비를 제어하는 역할을 담당할 때도 있었다.[5] 사적으로는 건방진 태도를 잘 보여줬지만 공적으로는 딱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개국공신이자 거병동지, 유비의 절친이라는 위치임에도 비리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점도 이 인물의 장점이다.[6] 게다가 간옹은 장비와 더불어 유비를 가장 오랫동안 모신 인물이라는 것이 상징성이 매우 크다. 즉, 촉한에서는 짬밥 랭킹 1위가 간옹인 것이다.

  • 손건외교 공작의 달인으로 적진을 뚫고 지나가 유비가 많은 세력과 연계를 맺게 하는 데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약소 세력이었던 유비의 뭘 믿고 유력한 인사들이 자신들에게 의탁하는 것을 허락했을까? 단순히 유비가 천운을 타고났다고 하기에는 부족하며 유리한 상황이 그리 많지 않았던 유비 진영에서 교섭외교를 주로 담당했던 손건의 역할이 컸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할 수 있다. 촉한이 성장한 것은 결코 전투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심부름꾼이라고 까기도 하지만, 당시에 약소 세력의 사자역이라는 일이 옆집 슈퍼에 가서 메로나 하나 사 오는 정도로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손건이 상대했던 상대들의 면면을 보자면 서주에서 도겸편에 서서 대립한 적도 있는 조조, 빈말이라도 사이가 좋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이복동생[7]을 토벌한 직후 찾아갔던 원소[8], 이후 여남에서 패배한 이후 유표에게까지 가서 받아달라고 했는데다, 유표에게 식객으로 지냈으면서도 삼대에 걸쳐 그들과 싸웠던 손가와의 동맹[9] 등... 단 한 번도 쉬워보이는 상대가 없다. 실제로 목이 달아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 사신 역할인데, 이를 잘 수행했다는 것은 고작 심부름꾼으로 매도될 일이 아니다. 이런 논리라면 소진, 장의, 역이기 등도 심부름꾼이 된다.
그리고 손건은 당시 대학자인 정현의 추천을 받아 관직생활을 시작한 사람이다. 인물의 평판을 중요시 여겼던 후한 사회에서 저 정도 학자에게 추천을 받았다면 예사로운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인물평에 더해 스스로의 외교 재능은 늘 목숨이 위태로웠던 유비 진영을 지옥의 구렁텅이 입구에서 여러 번 구해 냈고 그저 군소 지역 군벌 두목에 불과했던 유비를 한 나라의 왕으로까지 올릴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다.[10]제갈량 영입 이후에는 엄친아 제갈량의 외교 능력이 부각되지만 손건이 없었다면 유비는 제갈량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저 세상에 갔을 가능성도 높았다.

  • 미축서주부자로서 유비의 물주이자 스폰서였으며, 궁술이 뛰어나고 말을 잘 타는 무인이었다. 본인부터가 엄청난 부자였으며, 작품마다 약간의 묘사 차이는 있지만 자신의 재산을 다른 이들한테 자주 베풀었다. 그러다가 전 재산과 자신과 동생의 인생을 그때 당시 아무것도 없었던 유비에게 바치며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이는 유비가 세력을 구축하는 데 절대적인 힘이었다.[11] 예나 지금이나 물자 없이 전쟁은 못 치르는 법이다. 손오에서 노숙이 데뷔하던 일화를 떠올리자. 현대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은 엘비라 나비울리나 중앙은행장이 없었다면 군자금이 서방의 경제제제에 완전히 묶여서 진작에 패망했을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온 적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군대는 국가가 제공하는 예산으로 움직이는 집단이며 군자금이 없으면 전쟁은 시작조차 할 수 없다.
또한 미축의 중요한 가치는 인척이라는 점이다. 지금도 친인척은 기초적인 인재 풀로 불릴 정도이며 믿고 일을 맡길 때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현대에야 물론 낙하산 인사라는 인식이 있지만 공개채용시장 따위 없는 전근대에는 '백 퍼센트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친인척의 메리트가 굉장했다. 조조 역시 조인, 조순, 조홍, 하후돈, 하후연 등 친인척을 중용했다. 유비에게는 관우장비라는 의형제도, 간옹이라는 친구도, 제갈량이라는 능력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부하도 있었지만 미축은 더 깊은 인간 관계로 연결된 사람이다. 더군다나 미축은 유비가 어려울 때 자기 재산과 지위를 아낌없이 써가며 그를 지탱해준 존재이자 그 뒤에도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도 그를 배신하지 않고 함께 해왔다.[12] 간옹과 다른 입장에서 유비를 이해하고 고민을 함께 들어줄 수 있는 인물이 미축이었다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세 명은 유비 세력의 인사총무, 대외협력, 재무회계를 담당하고 있었다는 얘기인데, 사실 어떤 조직이든 위에서 언급한 3가지가 조직의 핵심[13]이라는 점에서 이걸 차지하고 있었던 3인방이 결코 만만한 인물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나 조조와 손권과 달리 제대로 된 기반세력이 전무하며, 영지도 이리저리 교체되고 잦은 패배로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하던 유비와 그 추종자들이 광활한 중국의 황야에서 굶어죽지 않은 것만 봐도 이 행정가 라인의 유능함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현대의 조직화된 국가들에서도 재정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는 엄청난 권력과 책임을 갖는 만큼 아무나 임명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고, 고대 중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국가가 아니라 현대의 중소 스타트업으로 생각해 봐도 이런 사람들은 개국공신으로서 훌륭한 인재들이다. 급할 때 아쉬운 대로 일을 맡기면 어떤 업무든 간에 1인분은 해내는 올라운더이자 회사 대표가 힘들 때마다 마음을 터놓고 의지할 수도 있는 절친, 업계에서 회사의 거래처를 뚫어주고 대표가 어딜 가든지 대접받을 수 있는 협약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직원, 경영위기의 순간에 급전을 땡겨올 수 있는 든든한 뒷배이면서도 그와 동시에 우수한 헤드헌팅 능력까지 겸비한 매니저까지, 어느 것 하나 스타트업이 궤도에 오르는 과정에서 버려도 될 역량이 없다. 대기업에서야 이도저도 어중간한 전문성이라 승진경쟁에서 뒤처져 일찍 명퇴를 할 운명이겠지만, 스타트업에선 오히려 어디에나 무난한 사람들이 더 필요하다. 괜히 중소기업에서 디자이너코딩을 하고 프로그래머가 영업을 뛴다는 얘기가 나오는 게 아니다.[14]

실제로 이 셋은 유비가 입촉한 후에 높은 대우를 받았다. 특히 전 재산 기부 및 처남이었던 미축은 안한장군에 올라 지위만 따지면 제갈량보다 높은 대우를 받았다. 물론 실권이 아닌 명목상의, 명예직에 가까운 직위였던 건 부정할 수 없다. 유비는 종래 좌장군이었고, 군사장군 제갈량은 이 좌장군부의 사무를 총괄하는 위치에 있었으니까 말이다. 따라서 안한장군 미축이 군사장군 제갈량보다 임관 기간도 높은 선배였고 직위도 높았으나, 안한장군은 실권이 거의 없었고 군사장군은 실권이 강했다. 하지만 미축의 공을 높게 사주지 않았으면 이렇게 명목상으로라도 높은 직위를 받을 이유가 없다. 사실 짬이나 군번으로 치자면 간손미보다 위에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특히 간옹이 그러한데, 간옹은 아예 도원결의 전, 즉 관우, 장비보다 더 오래전부터 유비를 따랐으므로 이 정도면 개국공신을 넘어서 거의 조강지처급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3.1. 저평가 받는 이유는?[편집]


간손미라 불리는 것에서 보듯 이들이 뛰어난 인재였다고 말할 수 있는지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사실 유비는 극히 짧던 서주목부터 원술 토벌, 여남시기까지 말고는 삼고초려 이전에 제대로 된 조직이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긴 하다. 황건동란 이후 동탁토벌부터 원소에게 의탁할 때까지 모두 지방군벌도 안 되는 용병 부대나 민병대 수준의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유비가 제갈량 등용 이후에도 오랫동안 조직의 전술 참모 역할을 스스로 수행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 간옹의 경우 솔직히 위에 서술된 확인되지 않은 사항을 제외하면 활약이 너무나도 없다. 물론 유비가 아무것도 없던 초창기 시절부터 변치않은 충성심은 칭찬할 만하나 그것은 관우나 장비도 마찬가지며 그들의 무장으로서의 활약에 비해 간옹 자신의 문관으로서의 역할엔 의문이 생긴다. 물론 여러 행정업무를 맡았을 수는 있으나 유비 자체가 서주목을 제외하면 떠돌이나 지방 한직에 불과했으니 특별히 공적을 세우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비슷한 직위에 있었을 합류 초기 방통에 대한 사람들의 대접이 어땠는지나[15] 조조 휘하 문관들이 행정력에 대한 기록을 남긴 것을 보면 간옹은 활약이라 할 만한 것이 전무하다. 또한 간옹 최대의 업적이라 할 만한 유장 설득 역시 간옹 자신의 능력이라고만 볼 수 없다. 유장은 유비군에 대해 두려워 했으며 낙성이 점령된 후 적의 군대가 거의 코앞이라 할 만한 곳까지 진격해서 항복을 권유하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유장이 성도에서 군을 빼지 못한 것이나 잦은 항복, 유비의 빠른 인심장악을 보면 유장은 익주의 민심을 얻지 못했던 것을 스스로 자각한 듯하다. 굳이 간옹이 아니라 누가 갔어도 항복했을 수 있단 것.[반론]

  • 손건은 분명 유비의 사자로서 꽤나 외교능력이 있었을 것이다. 간손미 중에서는 가장 확실하게 능력을 보여준 셈. 그러나 이 또한 모두 손건의 공으로 돌릴 수만은 없는 것이 언제나 유비는 모두에게 꽤나 인기가 있었기에 대다수의 군웅들이 유비를 포섭하기 위해 그를 받아들였다. 이건 유비 자체의 행동거지나 관리도 중요했지만 외교협상이나 자리에서 매번 유비에 대해 광고하거나 평하는 능력도 중요했기 때문에 손건의 역할도 매우 중요했다. 대표적인 것이 다름아닌 형주로 이동했을 당시 형주 호족 세력의 중심인 채모를 논파하고 유표에게서 유비를 받아들이라는 결정이 나오게 한 일이다.

  • 미축은 유비군 초창기에 가장 이름난 명사였다고 하니 적어도 보통은 가는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긴 한다. 그러나 사실상 가장 힘들 때 돈을 주고 그 이후 따랐다는 것을 제외하고 전공을 따지기엔 부족하다. 미축의 재산이 어마어마했다고 전해지지만 유비는 이미 여포에서 소패에서 쫓겨날 때부터 간신히 탈출하였고 관우가 하비에서 조조에게 항복할 때도 돌아가지도 못하고 패퇴한 군사만 끌고 겨우 원소에게로 향했다. 이후에도 매번 쫓기고 거점을 빼았기길 반복하였는데 이 재산이 온전하게 남아있었을 리가 없다. 이후 딱히 관우 사후까지 거론되는 적이 없으니 실무를 보며 문관역에 충실한 것으로 추정.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유비를 자신의 모든 재산을 처분해 도운 점, 중앙정부의 관리직을 버리고 따른 점은 쉽지 않은 결정임이 확실하다. 적어도 남들과 다른 비범한 모습은 보여준 셈.

간손미 자체가 모두 개국공신이고 결코 유비의 가장 힘든 시절부터 함께한 공이 적다고 하기 힘들지만 공적과 능력은 별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축은 분명 명사에 재산을 많이 투자했고 투자를 하는 안목을 높게 쳐줄지언정 결국 기록상에 남은 실무능력이 뚜렷하게 남아있지 않다. 간옹이나 손건 또한 마찬가지다. 또 이들의 벼슬이 높다고 해도 그것이 능력과 관련이 있다고만 볼 수 없다. 신하들이 자신에게 오랫동안 충성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개국공신의 능력이 어떻든 간에 대우와 보상은 낮아질 수 없다. 실제 어려운 시절을 유비와 함께한 것 자체가 유비 입장에선 크나큰 공이라 벼슬을 낮게 주기도 힘들다. 게다가 미축은 군주의 처남이다.

사실 이렇게 평가가 박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삼국지의 유명한 조연들 대부분은 전략전술, 계략, 행정면에서 큰 공을 세운 기록이 남아있다. 또한, 대부분의 독자들은 삼국지에서 가장 주목하는 부분이 장수들이 위풍당당하게 혼자서 많은 적들을 쓸어버리거나 호쾌하게 전장에서 무쌍을 하는 초인적인 전투장면에서 크게 흥미를 갖거나, 문관들의 경우엔 적들의 모든 행동과 심리를 마치 손바닥 보듯 꿰뚫어보며 지혜와 책략으로 무인들을 섬멸하며 전장을 자기 뜻대로 쥐락펴락하는 미래예지급의 초인적인 혜안에 탄복하는 등, 역사물이라기보단 히어로물에 가까운 느낌으로 기대하고 보는 경우가 많다.[16] 그렇기에 내실을 탄탄히 다져주고 화려한 겉무대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간손미에 대한 주목도도 내려가고, 동시에 평가도 그런 메인 무대에 활약하는 무장들에 비해 훨씬 내려가는 것.[17] 즉 다른 네임드 인물들에 비해 간손미는 유비 휘하로서 이름은 많이 알려졌어도 특별하게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기록이나 묘사가 없고 그럴 포지션도 아니기 때문에 인터넷 밈이 되어서 영원히 고통받는 것이다. 거기에 전술했던 것처럼 무관/문관 이분법에서 제갈량은 대체로 문관 쪽에 분류되기 때문에 관장조와는 달리 제갈량이라는 뛰어난 전략가+행정가와 비교당하는 것도 있다.


3.2. 과연 범재일까?[편집]


기록이 적은 것을 근거로 능력도 없고 활약도 특출나지 않은 범재라고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할 수 있다. 삼국지의 저자인 진수는 정사 삼국지 권38 촉서 제8편 허미손간이진전에서 미축, 손건, 간옹을 권말에 이적과 함께 묶어 '포용력 있는 태도로 풍자의 논의를 받들어 그 시대에 예우를 받았다.'고 평했다. 제갈량, 이엄, 법정, 유파와 함께 촉의 법률 체계인 촉과를 작성한 인물이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이적은 그 공로가 확실히 드러나는 신하이다. 열전을 기술할 때 한 권으로 묶는 것은 그 인물의 활약상이 서로 엇비슷하기 때문에 같이 서술하는 것인데,[18] 단순히 운빨이 좋거나 돈이 많은 것 이외에 내세울 것이 없는 잡문관 나부랭이면서 단순히 고참이었기 때문에 열전이 남았다고 한다면 간옹 손건 미축 셋만 따로 묶어서 '간옹손건미축전'을 만들고 '그 시류에 운이 좋아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와 같은 평이 있었어야지 '촉과'라고 하는 확실한 업적이 남은 이적과 같은 열전에 묶인 것, 그리고 이적과 같은 총평을 진수가 남겼다는 점이 설명되지 않는다.

더욱이 삼국지를 기록할 당시의 진수는 위, 진의 신하였으므로 같은 문신이라도 당연히 위의 문신의 활약에 대해 더 자세하게 기록할 가능성이 높으며, 촉서나 오서는 위서에 비해 기록이 부실할 수 밖에 없다.[19] 특히 촉은 남은 기록이 부실한 것으로 삼국 중 가장 악명높다. 이쯤되면 간손미는 운 좋게 기록에 남은 잡문관 나부랭이가 아니라 그 분량이 적기 짝이 없는 촉서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촉의 입장에서는 명망있고 귀중한 인재였다고 보는 것이 더 옳다.

그러나 이 역시 올바른 근거로는 볼 수 없는데, 본인 자신이 꽤나 신랄한 면이 있었고, 오랜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사서를 쓸 수 있었던 사마천과 달리 진수는 인물 평가와 분류에서 훨씬 심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촉서 뿐 아니라 오서나 위서에도 '시류에 운이 좋아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인물들 모음따위는 없다. 그저 '어느 시대 어디에서 어떤 유형의 일을 했는가?'가 분류의 기준일 뿐이다. 부정적인 분류가 있다면 오직 '공식적으로 처벌을 받은 상태에서 죽은 인물들'이 있을 뿐이다. 심지어 위연은 '반란하려는 의도는 없었던 것 같고', 등애는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 썼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공식적으로 그렇게 죽었다'라는 기준하에 대역죄인들과 같이 묶였다. 즉 '간손미'는 그 공적이 크든 작든간에 '외교가 아닌 내정이나 군사부문에서 실무 업적'을 남기지 못한 이상에는 '미손간전'으로 별도로 묶일 수는 없는 운명이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간손미가 그렇게 폄하받을 이유는 없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설령 그들이 범재였다고 한들, 유비 입장에선 정말 적절한 때에 적절한 역할을 해줘서 정말 맨주먹 그 자체였던 유비에게 위기 때 마다 살아날 길을 보여준 인재였다는 점에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고, 실제로 삼국지 게임에서 그 간손미조차 안 주는 코에이 삼국지 극초반 시나리오나 삼탈워 천명 시나리오로 해보면 이게 절실하게 다가온다. 괜히 제갈량이 없었다면 촉한 건국도 못했겠지만 간손미 없었으면 유비는 삼국지에 이름도 못 올렸을 거라고 하는게 아니다.

결정적으로는 이 셋은 유비가 가장 힘든 시기에도 다른 마음을 먹지 않고 죽을 때까지 유비를 따른 충성심을 무시할 수 없다. 보통 관우, 장비, 조운, 제갈량 등이 자주 충의가 언급되나 이 셋 역시 그 충의에 있어서는 관장조제에 지지 않는다. 거병 초기부터 험난한 삶을 살았으면서도 계속 유비를 따른 간옹, 갈 곳 없는 유비를 객장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목숨 걸고 외교관 역할을 한 손건, 가진 재산과 여동생까지 바치며 남김 없이 내줘 기반 없는 유비가 버틸 수 있게 해준 미축 모두 유비에 대한 진심어린 충성심이 없었다면 결코 할 수 없거나 하기 쉽지 않은 일들이다. 비록 능력이나 업적에 대한 평가는 갈릴 수 있을지언정 간손미의 충의는 높은 평가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유비는 평생 몇 번이고 패배하면서 세력이 와해위기였다가 일원들이 알아서 모여서 세력을 규합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나라를 세웠는데, 아무리 늦어도 서주 시절부터 함께해서 끝까지 버티다가 침대에서 죽고 열전까지 남겼다는 시점에서 단순한 범재로 볼 수 없다.

선주는 또 익주목을 겸했는데, 제갈량을 고굉, 법정을 모주, 관우, 장비, 마초 등을 조아, 허정, 미축, 간옹을 빈우로 삼았다. 동화, 황권, 이엄 등은 본래 유장이 임용했고, 오일, 비관 등은 또한 유장의 혼친이고, 팽양은 또한 유장에게 배척되었고, 유파는 예전에 기한한 자이나, 이들 모두를 현임에 두어 그 기량과 재능을 다하게 하니, 뜻있는 선비치고 다투어 힘쓰지 않는 이가 없었다.

촉서 선주전


하지만 정사의 기록을 보면 이들이 범재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려운 증거가 있다. 정사에서 이들은 허정과 똑같은 빈우 취급을 받았고 익주 평정 이후에도 태수같이 중요한 관직을 담당하지 못하는 처지였다. 허정이 유비에게 저평가 받았음에도 중용받은 이유가 단순히 명성 하나 때문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미축, 간옹 또한 유비를 오랫동안 섬겨서 우대받았단 평가를 지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3.3. 이들의 말년[편집]


다만 씁쓸하게도, 공통적으로 셋 다 고생만 죽도록 하다가 정작 유비가 좀 살림을 제대로 펴고 살 때 쯤이 되자 하나하나 눈을 감았다는 서글픈 점이 있다.

우선 간옹은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다. 단지 유비가 이릉대전을 강행할때 누구의 설득도 듣지 않았다는 걸 토대로 그나마 유비를 말려볼법 했던 성격의 간옹이 당시엔 이미 죽고 없었으리라는 것만 짐작할 뿐이다. 그래도 촉 평정 이후에 죽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손건은 확실히 촉을 평정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을 마쳤다. 그리고 미축은 셋 중 가장 오래 살았으나 가장 험한 꼴을 당했는데, 유비에게 시집보낸 여동생인 미부인은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고 그나마 있던 동생이란 놈은 배신하고 오나라에 붙질 않나... 특히 그 동생 미방의 배신이 미축의 죽음에 결정타를 먹였다.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스스로를 결박해 죽여달라고 청할 정도였지만 유비는 그의 잘못이 아니라며 위로했다. 그러나 부끄러움과 슬픔을 이기지 못한 미축은 시름시름 앓다가 곧 화병을 얻어 눈을 감아버린다.

여담이지만 말년에 동생 때문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미축을 제외하면, 간옹이나 손건이나 유비 인생 최대의 황금기를 맛보고 세상을 떠났으니 가장 행복한 시기에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게 바로 이어지는 대참사인 이릉대전을 경험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축도 그나마 이릉대전은 안 보고 죽은 게 불행 중 다행. 씁쓸하게 죽었다고는 해도 주공의 입촉개국이란 필원을 이루고 나서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었으니 행복했다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촉의 원로라 할 수 있는 이들이 살아 있었다면 오와의 전쟁 반대에 더욱 중후한 목소리를 실어 유비의 복수심을 이릉대전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달래는 데 힘을 보탰을 가능성이 높다. 유비가 이릉대전을 일으킨 배경에는 의형제이자 촉의 주요 인사인 관우를 잃은 개인적인 복수심과 함께 요충지인 형주를 잃은 현실적인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이 당시 촉의 사정은 위를 무시하고 오와 전면전을 벌일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촉 내부에서도 전면전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많았지만 이 목소리는 유비에게 강하게 전달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 당시 촉의 내부 사정은 군과 정치 모두에서 핵심 공신들이 죽음을 맞아 반대 목소리가 있어도 무게가 실리기 어려웠다. 관우 이외의 군 핵심 인사였던 장비, 황충, 마초도 이 시기를 전후로 사망했고, 문신의 주요 인사이자 유비를 제지할 수 있는 드문 인물인 법정 역시 급사하여 유비의 분노를 달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말발이 가장 먹힐 수 있는 제갈량은 이 사태에 있어 매우 소극적인 행보를 보일 수 밖에 없었는데, 형인 제갈근을 비롯하여 일족이 오에 있었기에 내통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유비를 말릴 수는 없었다. 이들 이외에도 군사적으로 조운, 위연, 황권같은 장수가 있었고 문관으로는 나중에 촉한사영으로 불릴 장완, 비의, 동윤과 이회 등이 있었지만 이들 역시 유비의 의사를 꺾지 못했다. 장완이나 비의, 이회 등은 이 당시에는 촉 중앙 정치에 영향력이 미미한 듣보잡이었으니 반대를 한들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것이며, 황권은 유비를 말려 봤으나 실패하고 이릉대전에 위를 견제하는 역할로 참전했다 본대가 패배하면서 고립되어 위나라에 투항하고 말았다.[20] 그나마 유비에게 말을 하면 먹힐 수 있는 짬을 가진 조운도 말려 보았으나 실패하고, 오히려 이에 대한 처벌로 중앙에서 잠시 떠나 있어야 했다.[21]

이 때 촉 건국의 주역이었던 간손미 삼인방이 살아서 유비를 뜯어 말렸다면 현재 촉의 상황이나 여론의 심각성을 유비가 조금이나마 더 크게 느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아무리 관우를 슬퍼하는 유비라도 도원결의 전부터 함께 한 벗인 간옹, 전재산을 다 바쳐 아무 것도 없던 자신의 기반 자체를 마련해 준 처남 미축, 역시 한솥밥 먹으며 죽음을 무릅쓰고 의탁할 곳을 만들어온 손건의 위로와 설득은 오직 이치에 부합해 반대하는 다른 신하들의 의견과는 무게를 달리할 수밖에 없다. 관우의 복수를 반대할 때 “너희가 뭘 알어!” 하고 유비의 감정적인 반발이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는 게 바로 이들이기 때문이다. 즉, 간손미와 나머지 주요 인물들이 몇 년만 더 살아 있었어도 이릉대전이 역사처럼 촉의 완패로 끝나지는 않았을 가능성은 충분했으며, 유비와 촉 건국을 함께한 공신들이 죽음으로서 더욱 마음이 허하고 적적해진 것도 유비가 복수심을 자제하지 못한 것에 한 몫 했을 가능성도 높다는 걸 고려해 보면 이들이 건재해 주기만 했어도 원정나가겠다는 유비를 말려야 하는 사태까지 갈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22]


3.4. 결론[편집]


제갈량이 유비의 미래를 설계해 준 귀재라면 간손미는 유비의 현재를 만들어 준 인재들이자 정치적 동료들로서 평생을 함께 한 개국공신들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간손미는 일류 책사나 장군, 행정가가 아니기에 이력이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유비 세력이 하루하루 난세에서 생존하고 버티는 데 각기 제 역할이 있었고, 그 역할을 잘 수행하였다. 촉에서 간손미가 높은 서열로 대우 받은 것도 단순히 창업군주의 정치적 동료여서 뿐만이 아닌 이들의 인품과 능력도 조직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4. 기타 창작물에서[편집]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는 셋 다 사이좋게 클론 무장. 다만 제작진에서도 간손미를 세트로 취급하는지, 진삼국무쌍7 촉나라 스토리의 3 스테이지인 서주 방위전에서 셋이 함께 나온다. 심지어 손건은 본진을 수비하는 역할로 나오는 총대장이다. 다만 미축과 간옹은 전투 시작 후에 아군이 갈 수 없는 곳에 위치해 있는 데다가, 조조군 증원이 오면 트리거 때문에 자동으로 패주한다. 그리고 번외로, 미축은 6 엠파이어즈의 DLC 시나리오 중 하나인 재산 연합전에서 시나리오 한정 에디트 무장으로 등장한다. 실제로 미축이 부자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재산 명성으로 나온건 꽤나 적절한 배치일지도. 그와중에 간옹의 디자인이 잡혔다. 게다가 잘생겼다.

삼국전투기 검각전투(11)에서는 촉한의 멸망과 함께 촉을 세우고 지킨 주역들이 하나하나 이름이 언급되는데 이들만 간손미로 퉁친다.

여자 제갈량 특별편에선 간손미도 여성화만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본편에서 간옹은 정말 여캐로 나온다.

노블엔진의 라이트노벨 삼학연의에서는 모에화 되어[23] 등장했다. 여기서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건 여전하다.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서는 유비가 수경선생과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 인재가 없다고 말하는 사마휘에게 유비가 관우와 장비, 조운, 간손미를 언급하자 유비와 그의 부하들을 이끌어 재능을 살려줄 인재가 없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간손미 취급이 안 좋은 삼국지 미디어 매체 중 몇 없는 그래도 재능은 있는 사람들이라고 언급해주는 편.

정사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를 섞어서 만든 삼국전투기, 삼국지톡에서도 나름 비중 있는 독자적인 캐릭터를 얻었다. 삼국전투기의 경우 간옹은 타나카 소이치로, 손건은 찌빠, 미축은 깡통로봇으로 나온다. 손건은 심부름꾼으로 나오지만 세상을 뜨는 컷에서 조조, 강유에 버금가는 컷으로 이슈가 된 편.[24]

삼국지톡에서는 간옹과 손건은 토익 고수로 나오며, 미축은 TS가 되었고 재벌 회장으로 재해석되어 물주답게 큰 비중을 얻었다.

연희 시리즈에서는 손건미축은 나오지만 간옹은 등장하지 않아서 간손미가 성립되지는 못했다.


4.1. 삼국지 시리즈[편집]


게임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대대로 무력과 통솔력은 낮고 지력, 정치, 매력은 70~80대 정도의 어중간한 능력치를 지니고 있다. 군사로 기용하긴 힘들지만 장수가 부족한 초반부에는 주요 내정요원으로 써먹을 수 있고, 세력이 넓어지는 후반에도 빈 땅 채워두고 태수를 맡기고 내정향상을 시킬 수 있으니 장수진이 갖춰지면 써먹기 애매해지는 비슷한 능력치의 무관보단 낫다. 중반만 돼도 놀고 있는 땅이 넘쳐나서 간손미 수준의 밥값 할 수 있는 내정관은 많을수록 좋지만, 무관의 경우 어차피 전투 한 번에 참가 가능한 부대 수가 한정되어 있는지라 전투에 사용할 무관은 10명을 넘을 일이 별로 없고, 중후반이면 통솔, 무력 80~90대의 장수들로 이 머릿수가 차는지라 통솔, 무력 70~80인 간손미와 비슷한 등급의 무관은 중후반이 되면 동시에 여러 곳에서 싸움이 벌어지지 않고서야 전쟁에 나갈 일이 없기 때문이다. 예외는 극후반 시나리오(대략 230~240년 이후, 대략 제갈량 사후 시점이다.)로, 장수들이 늙어 죽는 상황에서 인재가 부족한 상황이라면 통솔, 무력 60~70짜리 무관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재가 된다. 또 부장 시스템이 있으며 통솔과 무력도 훈련과 치안처럼 내정에 써먹는 후기 시리즈도 예외다. 그리고 어중간한 능력치라고 해도 매력, 정치 70~80대면 절대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약소 세력이라면 저 정도 능력치도 핵심 인물이 된다. 단지 이들을 거느리는 군주가 조조와 손권 다음으로 뛰어난 인재 풀을 갖춘 유비라서 이들의 능력치가 상대적으로 어중간해 보이는 것이다.

친애,혐오관계가 묘사된 작품(11,14)에 경우 간손미는 서로 친애 관계로 설정된다.

삼국지 2에서는 3명 다 지력과 매력이 70을 넘으므로, 내정 및 태수로 적절하다. 하지만 3명 다 지력이 80을 넘지 못해 군사로 쓰진 못한다. 그리고 매력이 91이나 되는 손건을 어떻게 써먹을지는 플레이어의 자유.

삼국지 3에서는 훌륭한 상업 요원. 정치가 50만 되더라도 장기 상업용 배터리로 훌륭한데 이들의 능력치는 그 중에서도 최상급이다. 어중간한 군사나 장군보다는 무관, 문관 중 최상위권 능력자가 더 눈에 띄기에 절대 병풍이 아니다. 이 중 손건은 매력마저 90을 찍으므로 훌륭한 인재 요원이다.

삼국지 6에서도 내정 요원으로 좋다. 꿈도 적절하게 대의, 할거 등이며 의리도 높은 편인데다 내정 요원은 넣어두기만 하면 자동으로 내정을 하므로 후방에 넣어두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삼국지 7에서는 손건과 미축은 80대의 정치력을 지닌 준수한 내정 요원으로 나오지만, 간옹은 무력 36, 지력 68, 정치 61, 매력 63이라는 영락없는 잡장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대표적인 장수제 시리즈인만큼 플레이어가 직접 이들 중 한 명을 맡으면 수련을 통해 무력 100의 맹장이 될 수도, 제갈량 못지 않게 뛰어난 군사가 될 수도 있다.

삼국지 8에서는 손건만 매력형이고 나머지 둘은 성장 타입이 평범이라는 굴욕을 얻었다. 손건과 미축은 그래도 특기와 정치/매력이 좋아 내정 요원으로는 B+ 정도지만 간옹은 능력치가 낮은데다 의리마저 그리 높지 않다. 레어한 특기인 천문이 있지만 간옹이 참모로 나갈 일은 없으므로 말 그대로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건 셈이다.

삼국지 9에서는 손건>미축>간옹순 능력치. 무력과 통솔은 셋 다 시궁창이라 버려지고 지력이 71/71/65, 정치가 86/83/72. 아무래도 내정을 주로 하게 된다.

삼국지 10에선 대부분의 삼국지 작품이 그렇듯 손건>미축>간옹 순으로 능력치가 좋다. 특기도 순서대로 7, 6, 5개다. 특히 손건은 정치력과 매력이 모두 80대. 미축은 설전 특기인 논파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명사를 들고 나온다는 게 좋고 간옹은 설전 특기가 논파의 하위 버전인 반박이다. 간옹에게 주호 특기가 있어서 의형제 만들긴 좋지만 간옹은 어차피 시나리오 1부터 유비군이다.

삼국지 11간손미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간옹과 손건은 논객이라는 S급 특기를, 미축은 부호라는 꽤 괜찮은 특기를 들고 나와서 전작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소중한 인재가 되었다. 논객 특기는 타세력과의 외교에서 무조건 설전을 이끌어내는 특기인데, 플레이어 성향에 따라 제갈량의 신산이나 관우의 신장보다도 뛰어난 최고의 특기 중 하나로 보기도 한다. 저런 전투용 S급 특기들은 전투를 쉽게 이기게 만들어주는 정도이고 하위호환 특기를 가진 더 낮은 수준의 장수로도 판만 잘 짜면 어떻게든 이길 수 있는데, 전투 없이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강대한 타세력과 날로 동맹을 맺거나 정전을 맺어서 전선 하나를 종결시켜버리는 것은 논객 특기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간옹은 화술이 2개지만 서적 하나 쥐어주면 모든 화술을 쓸 수 있으니 간단히 해결되고, 성격 또한 설전용으로 가장 좋게 평가받는 대담 성격이다. 손건 역시 설전에서 무난히 사용하기 좋은 냉정 성격에, 기본 지력도 높은 편이라서 간옹보다 키우기가 쉽다. 이 때문에 유비군으로 플레이한다면 논객 삼인방인 등지, 손건, 간옹의 중요도가 이루 말할 수 없을만큼 높아진다. 미축의 부호 특기는 도시 하나의 수입을 1.5배 뻥튀기시켜주는데, 도시 수가 많은 대세력에서는 효과가 눈에 띄지 않지만 유비군은 많은 시나리오에서 도시를 1개만 갖고 시작하기에 세력 전체의 수입을 50%로 뻥튀기시켜주는 미축은 유비군의 힘든 초반에 큰 힘이 된다.

또한 삼국지 11 특유의 내정 시스템 또한 간손미에게 유리하다. 삼국지 11의 내정은 장수를 3명씩 투입할 수 있기에 에이스급 문관 한두명보다는 간손미처럼 정치력 70대의 B급 문관 여러 명이 있는 것이 더 효율이 좋다. 그래서 진궁 개인의 능력은 간손미를 능가하지만, 문관이 진궁 하나뿐인 여포군보다 간손미 3명을 가진 유비군이 내정 올리기가 훨씬 수월하다. 또한 이전 시리즈에서는 내정이라도 종류별로 다른 능력치를 요구해서 정치 하나만 높은 문관의 효용성이 낮았는데 삼국지 11부터 대부분의 내정이 정치 능력치만의 영향을 받도록 통합된 탓도 크다.

삼국지 12에서는 손건, 미축은 궁병과 관련된 전법 각각 궁공격 강화, 사정 강화 간옹은 수성의 달인의 전법 파괴력 약화이지만 간옹, 손건빼고 미축은 별 볼일 없다. 알다시피 미축은 통솔, 무력이 매우낮고 손건의 궁공격 강화써도 미축은 씨알도 효과가 없다. 간옹, 손건은 엄청나게 쓸만한데 미축은 내정용으로 굴려야 한다. 즉 미축이 이번 작에서 간손미의 왕따다. 다만 이번 작에서도 능력치 총합만큼은 미축이 간옹보다 높아서 여전히 손건>미축>간옹. 물론 전투 외적으로는 상업, 명사 특기가 모두 있는 미축과 명사 특기가 있는 손건, 상업 특기가 있는 간옹은 시장용 배터리로는 최고의 인재들 중 하나다. 특히 유비군에 장군은 많은데 내정 요원이 지독하게 부족한지라 더욱 귀중하게 느껴진다. 상업와 명사가 둘 다 있는 장수는 조조군에도 그리 많지 않으므로 미축 같은 경우 어느 나라에 가든 우대 받는다.

삼국지 13에서 미축은 통무지정이 각각 통무지정 순으로 33/29/78/83이고 중신특성은 농업중시, 전법은 기병선동, 병과적성은 창C/기C/궁B. 특기는 농업(5), 교섭(4), 상업(3)인데 미축이 서주의 부호임을 생각하면 상업 레벨은 지나치게 인색하게 준 능력치다. 물론 삼국지 13이 특급 장수는 특기를 죄다 몰아주고 아닌 장수는 레벨 2~3대에서 놀고 심지어 1특기 1레벨인 장수도 발에 치일 정도로 많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 정도만 해도 많이 봐준 셈이지만 그걸 제쳐두고서라도 지금까지 상업의 스페셜 리스트였던 미축이 왜 농업 특기가 더 높은건지 의아할 정도. 농업을 1~2 정도로 낮게 주고 상업을 6~7 수준으로 주면 이전 시리즈까지의 미축과 비슷해진다. 손건은 34/33/79/84. 중신특성은 화기생재이고 전법은 창병동요. 병과적성은 창C/기C/궁C. 특기는 교섭(7), 언변(6), 농업(6), 상업(2), 수영(1). 교섭과 언변은 그가 외교관이자 달변가라는 고증이 잘 된 편이지만 설파가 없다. 마속은 셋 다 8레벨인데... 간옹은 20/32/75/71. 중신특성은 화기생재. 전법은 창병수비진. 병과적성은 창C/기C/궁C. 특기는 교섭(7), 상업(2), 농업(3)이다. 어째 전형적인 B급 문관 능력치다.

이처럼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선 대체적으로 능력치 총합이나 보유 특기가 손건>미축>간옹 순으로 정해지는 편이다. 때문에 간손미보다는 손미간이란 표현이 뭔가 더 적절해 보인다. 실제로 정사 삼국지 촉서에서도 이들이 한 권으로 묶여있는데, 그 순서는 미손간이다. 삼국지 6유비사마휘를 만나서 와룡봉추를 소개받는 역사 이벤트를 보면 사마휘가 이들을 손미간이라고 칭한다.


4.2. 영걸전 시리즈[편집]


흥미롭게도 간손미가 유비 진영인 영걸전과 공명전에서는 대체로 문관 계통의 병과로 나오지만 조조군 시점인 조조전에서는 모두 무관 병과로 나온다. 아무래도 순욱, 순유, 곽가, 정욱, 가후 등의 뛰어난 책사들이 있는 조조군 입장에서 간손미가 얕잡아 보이는듯.

4.2.1. 삼국지 영걸전[편집]


저 셋의 능력 자체는 고만고만하지만 레벨 노가다를 하게 될 경우 저 셋이 엄청나게 커진다. 간옹은 궁병으로서 스탯은 잉여이긴 하지만, 제일 초반부터 등장하기 때문에 레벨 노가다를 했을 때 후반에 들어오는 다른 장수들보다 레벨이 꽤 높아져서 최종전 참가 엔트리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게다가 궁술지침서를 쓰지 않았을 경우 별동대로 빠지는 장수 중에서 유일한 궁병계다.), 손건과 미축의 경우 둘다 회복계 직업이라(손건은 수송대, 미축은 군악대) 힐노가다를 조금 해 주면 이들의 레벨이 올라가는 속도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극한이 노가다인 1599 플레이를 한다면 실제 역사에서 제갈량 마저 누르고 높은 벼슬을 받았던 것처럼 최고의 경험치 이벤트를 빠지는 관우나 합류 시점이 늦은 제갈량 보다 먼저 99를 달성하는게 다반사이며 1599 까지는 아니어도 노가다를 조금하면 셋 다 레벨 빨로 능력치를 커버하고도 남는다. 간옹은 웬만한 맹장 이상의 딜을 뽐내고 손건과 미축은 대규모 회복 책략을 펑펑 써대며 핵심전력이 된다. 짬빨로 능력치를 커버한다는 이미지를 완벽히 고증(…)

손건이야 책략 보급 능력이 없고, 문관 주술사들이 들어오면 보급계가 해결이 되니 그렇다 쳐도,[25] 책략치를 자동 보급하는 미축의 중요성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뒤에 가면 마속 혹은 이적, 유봉(장판파를 노린 고취구 사용) 같은 대체재가 있으나 레벨에서 상대가 안 되고, 방통-조운의 별동대 때문에 엔트리가 빠질 때만 쓸모가 있는 정도다. 단 이건 노가다를 했을 경우고 노가다를 안 하면 셋 다 초반에 좀 쓰다가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손건은 초반에 유비가 고생하던 시절에 사자로 파견가서 교섭을 성공시키고 돌아오는 장면이 은근히 나온다. 게임이다보니 이런 공적은 스토리상 당연한 진행으로 여겨져 그냥 넘어가고 전투 내에선 능력치가 어정쩡해 또 못 대접받는다.

4.2.2. 삼국지 공명전[편집]


일단 간옹은 더미 데이터로만 존재하고, 손건과 미축은 초반 9개 전투에서만 등장하고 이후 등장하지 않는다. 영걸전에 비해 식량대와 군악대가 하향되어 있어서 효율은 매우 좋지 않다. 1막 종료 이후 이회와 등지-장완이 대타로 들어온다. 여담으로 미축은 미방이 배신하자 유비의 곁을 떠나며, 손건은 이릉전투에서 전사했다고 언급된다.


4.2.3. 삼국지 조조전[편집]


적으로 등장한다. 병과가 사라진 관계로 셋 모두 궁계 무장으로 등장. 미축은 기록을 반영했는지 삼략(방어력 상승 보조구)을 낀 궁기병으로 나오나 능력치가 보잘것 없고, 아이템 획득을 위해 동생 미방(+육도)과 함께 세트로 장판파에서 사망처리당하는 것으로 처리되었다. 체감상은 미축의 등장이 좀 잦다. 등장이 잦아보이는 이유는 서주 침공전에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유비 일행이 오기 전에 도겸 주변을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데 그중 네임드가 미축뿐이다. 등장 횟수로만 따지면 오히려 손건이 가장 높다. 손건은 여포 토벌전에서도 우군으로 등장했었다. 미축은 서주 구원전에서 하후돈과 조성의 일기토 직후에 선택지를 유비의 구원을 우선한다로 택한 후 유비의 HP가 다 닳거나 선택지를 하후돈의 원수를 갚는다로 택했을 때 미방, 손건과 함께 잠깐 등장한다.

손건과 간옹은 궁병으로 사실모드에서는 유비가 사망한 뒤인 양평관 전투에서도 등장하며 성도 침공전에서 죽고, 가상모드에서는 검각 전투에서 사망한다. 궁병의 책략이 사라진 조조전으로서는 그냥 잡무장에 불과하다.


4.2.4.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편집]


CBT 참여 보상 중 군량이 있었는데 포대 현물 20kg씩으로 이름이 각각 조조미(찹쌀), 백미(햅쌀), 간손미(현미)였다. 다른 참여보상인 군마는 조황비전이라고 이름 붙여진 샤오미 전동 킥보드, 적토마라는 이름의 삼천리 자전거, 적로라고 불리는 쏘카 3시간 이용권이었다.

인게임에서는 각기 특색있게 병과까지 따로 들고 나온다. 간옹은 영걸전부터 계속 이어온 궁병으로, 손건은 풍수사로 등장하게 되며 미축은 책사로 등장한다. 거기에 본작에서는 확실히 평가를 좋게 받은 모양인지 전용 대사[26]와 조형까지 갖추고 있는지라 대접도 제대로 받은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임협원직의 패에서 무료로 해금시킬 수 있는 간옹과 달리 미축과 손건은 봉추사원의 패에서 금화 전용 해금 장수로 등장한다. 그렇긴 해도 1616 금전이라 부담되는 정도는 아니다.

성능은 섬멸전은 손건 > 간옹 > 미축, 연의 등의 컨텐츠에서는 손건 >> 미축 >> 간옹으로 비교된다.

손건은 코스트가 낮은 편에 속하면서도 연속 공격 면역, 사신 소환이라는 걸출한 장수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풍수사들 중에서 최고의 출전율을 자랑하며 초보자들에게도 추천 많이 된다. 추후 패왕항우의 패에서 상위호환인 항백이 나오긴 했으나 사신 소환이 필요할 때가 많고 항백은 클론 무장이라 상위권에선 성능 보고 항백을 골라도 그 이외엔 외형이나 음성을 보고 손건을 자주 쓰기도 한다. 간옹은 2019년 2월 패치로 혼란 공격 30%를 받아 혼란 면역 보패를 끼고 지원 공격과 혼란 공격을 끼면 장강이나 난투에서 세미 딜러 겸 디버퍼로 사용할 수 있다. 반면 미축은 섬멸전에서 쓸 수 있는 특성이 아무것도 없어 섬멸전 기준으론 셋 중에 가장 안 좋다.

반면 셋 모두 각종 촉나라 연의에 꾸준히 나오는데, 80레벨 정도로만 키워놔도 촉나라 연의 캐리머신이라 불리는 위연도 한 수 접어줘야 할 정도의 대활약이 가능하다. 손건은 회귀가 사용 가능한 풍수사이니 키워두면 당연히 연의에서 도움이 되며, 미축은 특성이 없어도 책사계라서 직접적인 화력 지원이 가능하며, 도겸전 마지막판 등 몇몇 스테이지에서는 메인 딜러로 사용해야 할 일이 많이 나온다. 다만 간옹은 지원 공격이 90레벨 특성이라 최종 승급을 하지 않으면 지원 공격을 쓸 수 없고, 지원 공격이 없으면 궁병이 딱히 연의에서 활약하기 어렵다보니 가장 효율이 안 좋고, 80까지는 키우는 게 추천되는 앞의 둘과 다르게 아예 안 키워도 별 지장이 없다.

2019년 3월 인연 시스템 패치로 셋을 묶은 인연 "촉한의 대들보" 가 패치되었다. 셋을 동시에 출진시키면 보너스 효과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장수 개별 성능이 애매한 편이라 셋을 한꺼번에 출진시키는 부담이 크다.

한편 조조전 온라인에서 간손미에 비견한 조합은 가상인물이긴하나 만강유가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은 문서 참조.


4.2.5. 토탈 워: 삼국[편집]


DLC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손건과 미축은 도겸군에 속해있으며 간옹은 유비군에 속해있다. 손건과 미축은 모사(水) 타입이지만 간옹은 감시자(金) 타입으로 일선에서 탱킹 역할을 하는 무장으로 차별화됐다. 간옹만 유비군에 소속된 건 정사 반영이라 그렇게 된 것이다.

셋 다 고유 초상화나 모델링은 없다. 손건과 미축은 그나마 '충직한 애국자'와 '믿을 수 있는 통치자'라는 고유 배경이라도 있지만 간옹은 '사무원'이라는 일반 배경을 갖고 있다.

하지만 사무원의 특성인 '상국이나 후계자가 될 때 건설 시간 -2턴'이 겉만 번지르르한 다른 고유 배경들을 압도할만큼 굉장히 좋아서 이런 간옹을 초반부터 확정적으로 갖고 있는 유비에게는 오히려 이득이다. 덕분에 간옹은 유비군으로 플레이하면 십중팔구는 상국에 오른다.

특히, 간옹만 Make Them Unique 사용 시 전설 장수로 격상되어 간옹과 손건, 미축의 차이가 더욱 벌어진다. 물론 손건과 미축도 Total Unique Pack을 추가해주면 준전설 수준으로 격상된다.


5. 여담[편집]


인터넷상에서는 실존 인물과 가상 인물을 불문하고 특정 분야에서 행적과 활약이 애매한 세 명을 묶어서 간손미로 칭하거나 간손미와 엮기도 한다.

난다 난다 니얀다에서 카잘 선생, 카발레리나, 삐치크를 이름의 첫 글자를 따서 카카삐로 묶어서 칭한다. 이 명칭은 애니 38화 A파트에서 언급되었으므로, 사실상 선라이즈가 공인한 조합이자 정식 명칭이다. 카카삐 3인 모두 분명 출연 빈도는 많은데 비중은 그다지 많지 않으며, 비중이 많을 때는 꼭 일을 벌이다가 피해를 입는다.

러브라이브!에서 히데코, 후미코, 미카를 칭하기도 한다. 작중에서 μ's의 서포트를 담당하는데, 은근히 많은 활약상에 비해 출연도가 미묘하여 간손미가 떠오른다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후속작인 러브라이브 선샤인에서도 요시미, 이츠키, 무츠가 이 포지션을 이어가고 있다. 러브라이브 니지가사키이로바, 쿄코, 아사기,[27] 러브라이브 슈퍼스타에서는 나나미, 야에, 코코노가 이 포지션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팀 CJ 엔투스 프로스트의 미드라이너 정민성, 윤하운, 이창석 3명을 간손미급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이후 3명 모두 팀을 탈퇴하고 신진영이 미드로 들어왔다. 그리고 CJ Entus의 멤버인 헬퍼, 트릭, 맥스가 새로운 CJ의 간손미가 됐다.

그리고 CJ의 간손미드 자리는 삼성 갤럭시가 물려받았다. 이쪽의 경우 각 멤버들의 아이디 이니셜[28]에서 따와서 간손미드 ABC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삼성의 간손미드는 CJ와는 결말이 달랐는데, 에이스와 블리스는 프로무대에서 버티지 못하고 팀을 나왔으나, 셋 중 기본기가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던 크라운은 눈물나는 노력 끝에 LCK에서 손꼽히는 실력을 자랑하는 미드라이너로 성장하며 롤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2017년에는 엄크펀성블이라는 정글러 5인방이 생겼다. 빠갱막이나 ABC라인처럼 한팀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포텐 있던 팀에서 고의트롤을 의심할정도의 경기력을 보여줘서 널리 쓰이는중. 서머시즌에는 이 각성하고 이 롤챔스를 떠나 만 남았다. 18시즌 이후부터는 성이 대오각성을 하고, 블이 롤챔스를 떠나며 엄크펀성블은 그렇게 끝난다.

2018년 롤챔스 서머 우승팀인 kt롤스터의 코치진 오창종 감독+정제승&손승익 코치를 묶어 오정손으로 부르기 시작했는데, 위의 간손미와 완전히 같은 맥락. 이지훈 감독이 슈퍼팀의 부진을 이유로 사퇴한 후 기사의 댓글 등에서 이지훈을 자른 뒤엔 어떤 감독을 쓸 거냐며 kt의 프런트를 비판했는데, 그중 많은 공감을 얻은 의견이 kt는 결국 코치진에 능력치 어정쩡한 오정손 라인밖에 없고 그 슈퍼팀 라인업을 데리고 번번히 우승을 못해 무능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2019년엔 젠지가 쿠잔-리치-플라이로 또다시 미드 3인방을 돌리며 간손미드를 부활시켰다. 스프링 시즌 7위라는 15년 이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였고 그 과정에서 약점으로 지목받은 미드를 보강하기 위해 경력 굵직한 쿠잔과 이세계 페이커라 불리는 리치를 영입했지만, 세 명 모두 약점을 노출했고 결국 탑라이너인 로치를 다시 한번 미드로 출전시키는 등 4명의 미드를 쓰는 등 최악의 엔딩을 맞이했다. 팀 성적도 전 시즌에 비해 1계단 오른 6위로 마무리하며 플옵도 못가고 선발전도 가지 못하는 최악의 1년을 보내게 되었다.

2020년엔 그리핀과 한화생명이 간손미드의 악명을 이어갔다. 그리핀은 탑 라인 소드-운타라-호야, 한화생명은 원딜 라인 라바-비스타-제니트로 3명이나 있는 것. 문제는 그리핀은 그나마 간손미가 셋 다 토종 탑솔러인데 한화생명 원딜 간손미 중에서 라바는 미드/비스타는 서폿에서 포변으로 원딜이 된 거라 더욱 심각하다. 그나마 한화생명은 비록 간손미여도 라바를 다시 미드에 돌려보내는 식으로 어떻게 수습에 성공했지만, 그리핀은 끝내 그러지 못하고 강등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다.

2021년 스프링에는 T1이 로스터에 정글러 3명 엘림, 커즈, 오너를 등록시키며 우려를 자아내었고 결국 2라운드 시작과 동시에 3명 모두 출전하면서 돌림판을 돌리고 있다. 1라운드에는 1경기를 제외하고 모두 엘림이 출전하였지만 팀 성적이 부진하자 커즈와 오너 모두 출전하게 되었다.

대도서관이 자신의 팬클럽 비공식명으로 써먹었던 적이 있다. 다음에서 방송할 시절 문명 방송을 할 무렵에 시청자들이 책략을 짜준 것이 어중간하자 "여러분은 간손미 같아요"라고 농담한 게 그 근원이다. 아프리카로 넘어간 이후에는 쓰지 않는다.

하스스톤 스트리머 공혁준, 타요, 얍얍을 묶어서 간손미라 부르기도 한다. 본래 룩삼이 얍얍 자리였으나 합방 약속 때문에 일찍 일어나기가 싫었던 룩삼이 당시 하꼬였던 얍얍을 타요에게 추천해 얍얍이 룩삼대신 들어가게 되었다.

야인시대에 간손미처럼 특정 캐릭터를 부르는 표현으로, 아구, 갈치, 휘발유를 칭하는 아갈휘가 있다. 이들 3인방은 극빈하게 살면서 옛 큰형님인 김두한에게 붙어먹고 살아서 팬들에게 셋 다 묶어 부르는 명칭이 아갈휘가 된 것이다. 비공식 명칭이지만 SBS에서도 아는지 유튜브에 올려진 영상의 제목을 보면 아갈휘를 볼 수 있다.

2023년, NBA 플레이오프에서 마이애미 히트는 동부지역 최하위인 8번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상대는 승률 전체 1위인 밀워키 벅스.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탈 등 악재가 겹친 마이애미가 밀워키 벅스에게 상대가 안될 것이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마이애미는 맥스 스트러스, 케일럽 마틴, 게이브 빈센트라는 언드래프티[29] 출신들이 맹활약하며 밀워키 벅스를 4-1로 격파한 뒤 전체 2위 팀인 보스턴 셀틱스까지 4-3으로 잡아내며 동부 지역을 재패하고 NBA FINAL에 진출하였다. 이에 NBA 팬덤에서는 세 사람을 마이애미의 간손미라고 불렀으며 실제 국내 중계 방송에서도 '이정도 활약이면 간손미가 아니라 관장조(관우, 장비, 조운)'라는 표현을 쓰며 그들의 놀라운 활약을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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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화에서는 백하팔인도 나온다. 링크[2] 유비에게 미축은 처남이 된다.[3] 그래서 대주주인 미축의 지위와 의전서열은 전문경영인 CEO 역할인 제갈량보다 높았다. 당연히 실권은 능력이 뛰어난 제갈량 쪽이 훨씬 컸지만.[4] 즉 한나라 건국삼걸인 한신(장군), 장량(전략가), 소하(행정가)로 보면 전략가가 부족하다는 예시.[5] 간옹의 몰년은 정확한 기록이 없으나 220년 이전에 죽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유비가 관우의 원수를 갚겠다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릉대전을 일으켰을 당시 법정말고도 유비의 행동을 제어할 수도 있었을 인물이었을지 모른다.[6] 간옹하고 비슷하지만 말년에서 갈린 인물이 바로 한고제의 동네친구였던 연왕 노관이 있다. 노관도 간옹 비슷하게 딱히 뭐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유방과 같은 동네에서 태어난 날짜까지 같은 불알친구로 유방이 거병했을 때부터 배신없이 충직하게 따라다녔다. 그러나 노관은 유방에 의해 왕이 되지만 숙청당할까 두려움 끝에 흉노에 투항하며 친구의 뒤통수를 제대로 쳤다. 그나마 간옹과 비슷하게 1인자의 오랜 친구로 옆에서 충실히 보좌를 맡고 친화력을 바탕으로 조직 내부의 갈등이나 문제를 조율하던 인물로 이오시프 스탈린의 오른팔 클리멘트 보로실로프가 있다. 보로실로프는 군사적으로는 무능한 낙하산이였지만 어쨌든 군부의 원로로 군부를 통제하고 스탈린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며 대숙청에서 살아남은 주코프나 이반 코네프 등 유능한 인재들을 보호하려 애를 썼다. 겨울전쟁의 졸전으로 꼬투리를 잡은 스탈린에게 대놓고 깽판을 치면서 "네가 유능한 장군들 다 죽였잖아!"고 외치며 대숙청의 책임이 있다고 목숨을 건(!) 간언을 한 것은 덤. 스탈린 역시 보로실로프를 총애해서 영불 양국과 협상을 했을 때 자신을 대리해 전권을 위임했을 정도였다.[7] 실제로 원술은 말년에 자기 형인 원소에게 몸을 의탁하려 했고, 원소는 자기 아들까지 보내 맞이하려 하면서 형제로서의 예를 다 하려 했다. 그러나 원술이 진작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모든 수가 다 떨어지고 나자 원소에 의지한 것은 원소에게 있어 별로 예뻐보이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것도 원술을 공짜로 도와주는 게 아니라 원술이 원소에게 옥새를 팔아서 안전을 사려 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거래이지 형제의 예가 아니다. 원술은 원소를 서로가 제후가 되기 이전부터 끊임없이 욕하고 비방했으며, 원술-공손찬 라인으로 원소와 실제로 생사를 걸고 다투었다. 원소가 권모술수에 능하고 표리부동했던 것으로 미루어 보면 딱히 원소가 마지막을 훈훈하게 끝내려 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어렵다. 차라리 원술의 잔당이나 명분을 꿀꺽한 다음 시간이 지나 조용히 죽였으면 모를 일이다. 원술을 마지막에 도와주려 한 건 옥새만 먹고 째려는 원소의 심보라는 것이 정확하다.[8] 이건 손건이 유비가 황족이라는 점을 최대한 이용해서 원소에게 그걸 홍보했기에 가능하다. 애초에 원소가 공손찬과의 싸움에서 명분을 얻은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공손찬이 황족인 유우를 처형했기 때문인데 이 상황에서 원소가 유비를 처형해버리면 결과부터 말하자면 공손찬 같은 황족 백정이 되고 말기 때문에 원소는 유비를 필연적으로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도 공손찬은 유우를 죽인 이후부터 인망이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손건은 이를 최대한 이용했으며 그래서 원소가 유비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 것이다. 원소와의 외교에서 손건의 큰 공훈이란 이런 점에 있다.[9] 다만 유표는 군사에 대해 완벽한 문외한이며 유표와 손가의 불구대천은 손견이 원술의 명을 받고 형주를 공격하고 황조가 손견을 죽이면서부터 시작되었고 손건은 아마도 이를 잘 알고 있었던 모양으로 모든 화의 근원을 황조에게 몰빵시켜서 손가와의 동맹을 성사시켰을 수 있다. 실제로 풍칙황조를 죽인 이후부터 손가는 유표 세력에 대한 공격성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손건은 여기에서 인맥을 최대한 이용했는데 그 대상은 다름아닌 손권의 가신인 제갈근이다. 손건은 제갈근을 이용해 그 제갈근의 동생인 제갈량이 유비를 섬기고 있다는 점도 같이 어필했으며 유비와 손가가 힘을 합칠 명분을 하나라도 더 제공했다.[10] 또한 손건이 교섭에 실패했으면 손건의 목숨뿐만 아니라 유비 세력 자체의 안위에도 문제가 생긴다. 유표나 원소같은 거대 세력권 수장의 보증과 허가가 없으면 유비의 패잔병은 말그대로 영토없는 도적떼에 불과할 것이고 유비군의 인재나 자산 등을 노리고 지방 영주들이나 도적들이 수시로 약탈을 일삼거나 조조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토벌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11] 유비의 입촉 이후 상석을 논할 때, 간옹은 제갈 군사를 상석에 놓을 바에는 차라리 자신이 앉겠다고 했으나, 미축의 이름이 호명되자 잠자코 인정했다고 한다.[12] 같은 인척인데 배신의 대명사가 된 미방은 잠시 잊자(...)[13] 이와 더불어 또 하나의 핵심이 조직의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고 그에 맞게 미래를 대비하는 전략기획인데, 유비는 갖출 거 다 갖추고도 이 인재가 없어서 고생했으나 결국 제갈량을 영입하여 날아올랐다.[14] 지금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거나 대기업으로 성장한 기업들의 성장 스토리를 보아도 전문성있는 사람들보다 조직을 대내외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만능 잡캐같은 사람들이 끼어있기 마련이다. 일례로 게임회사 블리자드만 봐도 무명 뮤지션이였던 빌 로퍼나 게임 디자이너 크리스 멧젠같은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게임을 만드는 프로그래머는 아니였지만 자기 분야 외에 회사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이였다. 특히 좋좋소같은 실화에 경험한 직장 드라마만 봐도 업무능력이 뛰어나진 않지만 중간만 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안 잘리고 오래 살아 남는 자기만의 노하우나 생존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중소기업에 상당히 많다. [15] 노숙이 방통은 그 정도의 그릇이 아니라며 자기 세력도 아닌 방통을 변호하고 제갈량도 방통을 옹호했다.[반론] 비록 유장이 유약한 성격이고 패배가 기정사실인 상황이라곤 하나 항복시키는 것은 엄연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자신들이 승리했다는 식으로 꼬장꼬장한데다 너무 뻣뻣한 태도로 윽박지르면 구 유장군 세력들에게서 "가뜩이나 항복 요구하러 온 주제에 예의까지 없네? 저런 무도한 녀석들에게 우리가 패배하게 되었다니..."라는 태도로 반감만 사서 이후 반란 등이 생길 요량이 되고, 너무 항복해달라는 듯 설설 기게 된다면 역으로 "유비도 의외로 약한 면이 있다."라면서 항전을 요구하여 싸우게 되거나 아니면 항복한다고 해도 이후 유비 정권을 만만하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논란이 거의 없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익주를 안정화시켜 한중으로 나아간 것으로 볼 때 간옹이 선택되어 유장의 투항을 받아낸 것은 유비나 제갈량 등의 입장에서 상대 유장군의 현실이나 이후 자신들에게 편입되는 그 인수인계 과정의 첫 장인 항복과정의 절차를 수행하는 데에 간옹이 적합하다고 본 것이다.[16]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나 진 삼국무쌍을 비롯하여, 삼국지 인물들 개인이 초인으로 나와서 수천의 적을 혼자 상대하거나 인외의 괴물을 상대로 무쌍을 찍는 배틀물 게임이 현재까지도 롱런하는 이유도 이에 기반한다. 애초에 독자들은 삼국지의 영웅들 = 일기당천의 슈퍼히어로이라는 인식이 있고, 게임들도 그 니즈를 충족할 물건으로 나오기 때문. 삼국지가 정사보다 연의쪽이 훨씬 지명도와 인식이 높은 이유도 동일하다.[17] 보급담당으로 유명한 초한지소하 역시 이와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소하는 워낙 보급의 중요성을 묘사하는데 거의 필수요소급으로 들어지는 예시일 정도로 이 분야의 입지가 탄탄하고, 재상으로서도 명재상으로 평가받고 다른 행적도 많이 남아서 묘사되기에 간손미와는 달리 이러한 저평가가 보기 힘들다. 또 초한지는 삼국지와 달리 항우같은 특정 몇몇 맹장을 제외하면 장수들의 무쌍열전같은게 주가 되는 소설이 아니기에 간손미와 달리 문관이라고 크게 묻히기도 어렵다.[18] 예를 몇 가지 들자면, 권9 위서 제9편 제하후조전은 하후돈, 하후연, 조인, 조홍 등 조조의 인척 가운데 활약이 많았던 장수들 위주로 묶은 것이며, 권40 촉서 제10편 유팽요이유위양전은 유봉, 팽양, 요립, 이엄, 유염, 위연, 양의 등 능력은 있었으되 경솔하여 말년에 험한 꼴을 당한 장수들이 묶인 편이고, 권54 오서 제9편은 주유노숙여몽전인데 이들은 손권이 황제를 칭하기 전에 최고위 참모로 군권 전반을 통솔했다는 공통점이 있다.[19] 단순히 편수만으로 따져도 위서는 이민족에 대한 기록을 제외하고도 29편, 촉서는 15편, 오서는 20편이다.[20] 황권의 투항 원인 제공자가 유비 본인이라 황권의 일족을 연좌제로 처벌하지 못하고 감쌌다.[21] 물론 유비가 조운을 지방으로 보낸 것은 간언에 대한 무조건적인 처벌이 아닌 전쟁 시 불안해질 수 있는 후방을 안정화시키고, 전황에 따라서 예비대로 쓸 목적이기도 했다. 실제로 조운은 이릉대전 막판에 외통수에 몰린 유비를 구하며 맡긴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22] 다만 미축은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거나 못했을 수 있는데, 일족이 오나라에 있어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던 제갈량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도 아닌 친동생 미방의 배신 때문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미축으로서는 자기를 대신 벌해달라고 했던 것이 실은 형제가 짜고 관우의 뒤통수를 친 뒤에 벌인 쇼 아니냐는 모함에 시달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23] 정확히 따지면 빙의. 이 작품에서의 삼국지 이름은 칭호에 가깝다. 자세한 건 삼학연의 문서를 참조하면 된딘.[24] 찌빠를 그린 화백이 만화계 대선배라서 그걸 희화화 시킨 게 캐릭터 선택 오류라고 최훈이 후회한 것도 있다.[25] 그러나 반대로 초반에 회복 능력 때문에 경험치를 많이 몰아줄 수 있고 레벨이 높다는 점을 이용해서 고취구를 주어 군악대로 클래스 변경을 하면 손건도 끝까지 쓸 수 있다. 물론 지력 80대 중반인 법정이나 이적을 바꿔 쓰거나 혹은 처음부터 군악대 클래스인 마속을 대체하는 경우도 고려해볼 법 하지만 영걸전에서 군악대는 다른 능력치는 거의 쓸모 없고 오직 레벨 원툴이기 때문에 초반 책략 사용 클래스 + 초기 합류 멤버 특성상 레벨이 미축 다음으로 가장 높은 손건을 군악대로 쓰는 게 나름 유용하다. 특히 고취구는 여남의 전투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입수할 수 있기 때문에 손건 미축 둘이 딱 달라 붙어 다니면서 책략치 노가다를 하면 미축의 레벨도 덩달아 같이 오르는 보너스도 누릴 수 있다.[26] 손건의 경우 "셋 중에 심부름은 제일 잘한다오." 가 있으며, 간옹은 특유의 익살스러운 말투와 취한 뉘앙스, 미축은 "물심 양면으로 돕겠습니다."가 있다. 셋 다 고증에 충실한 대사. 성우는 각각 김혜성, 김영찬, 박성태.[27] 니지동은 거기에 더해 제갈량도 있다.[28] Ace 김지훈, BlisS 박종원, Crown 이민호[29] NBA 진출시 팀들의 지명을 받지 못하고 추후에 별도 계약으로 들어온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