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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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간신은 정말 간신인가?
3. 역사 속 간신들
3.1. 한국사
3.1.1. 간신
3.1.1.1. 고려 이전
3.1.1.2. 고려 전기
3.1.1.3. 무신 정권
3.1.1.4. 고려 후기
3.1.1.5. 조선 전기
3.1.1.6. 왜란 이후
3.1.1.7. 개항 이후
3.1.2. 권신
3.1.2.1. 고려 이전
3.1.2.2. 고려 전기
3.1.2.3. 무신 정권
3.1.2.4. 고려 후기
3.1.2.5. 조선 전기
3.1.2.6. 왜란 이후
3.1.2.7. 개항 이후
3.1.3. 역신
3.1.3.1. 고려 이전
3.1.3.2. 고려 전기
3.1.3.3. 무신 정권
3.1.3.4. 고려 후기
3.1.3.5. 조선 전기
3.1.3.6. 왜란 이후
3.1.3.7. 개항 이후
3.1.4. 애매한 경우
3.2. 중국사
3.2.1. 간신
3.2.1.1. 하·상·주
3.2.1.2. 춘추·전국 시대
3.2.1.3. 진·한
3.2.1.4. 삼국시대
3.2.1.5. 남·북조 시대
3.2.1.6. 수·당
3.2.1.7. 오대·십국 시대
3.2.1.8. 송·요·금
3.2.1.9. 명
3.2.1.11. 현대
3.2.2. 권신
3.2.2.1. 하·상·주
3.2.2.2. 춘추·전국 시대
3.2.2.3. 진·한
3.2.2.4. 삼국시대
3.2.2.5. 남·북조 시대
3.2.2.6. 수·당
3.2.2.7. 오대·십국 시대
3.2.2.8. 송·요·금
3.2.2.9. 명
3.2.2.11. 현대
3.2.3. 역신
3.2.3.1. 하·상·주
3.2.3.2. 춘추·전국 시대
3.2.3.3. 진·한
3.2.3.4. 삼국시대
3.2.3.5. 남·북조 시대
3.2.3.6. 수·당
3.2.3.7. 오대·십국 시대
3.2.3.8. 송·요·금
3.2.3.9. 명
3.2.3.11. 현대
3.3. 일본사
3.4. 몽골사
3.5. 기타 지역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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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은 '육사신(六邪臣)'의 하나로 '간사한 신하'를 이른다. 육사신(六邪臣)은 나라에 해로운 여섯 유형의 신하로 구신(具臣)[1], 유신(諛臣),[2] 간신(奸臣), 참신(讒臣)[3], 적신(賊臣)[4], 망국신(亡國臣)[5]을 말한다.

군주의 권위를 인정하는 한편[6], '권위'가 아닌 '권력'은 최대한 뜯어먹기를 바라며, 그 과정에서 전통사회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신하의 덕목을 크게 결여하거나 무시하는 신하라고 한다.

이와 다르게 군주의 권위에 복종하여 '아첨'을 부리게 되면 "영신"이 된다.[7]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반역자들도 간신에 들어간다.[8]

육사신에 간신만 있는 것은 아니나 간신이 제일 유명하여 다른 단어들은 묻혔다.

간신, 권신이 잘 구별되진 않는 편인데, 간신 → 권신 진화형들도 많지만 거꾸로 권신임에도 군주의 묵인하에서 살아남고, 군주의 묵인이 사라지는 순간 숙청되는 경우도 많기에... 결국 대개 확실한 "간신" 부류는 환관류 위주다.

게다가 권신 그 자체는 좋은 의미도 나쁜 의미도 없다. 권신이 자기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후대의 평가가 정해지는 것이지 권력을 많이 가졌다고 다 악한 짓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니 권신은 무조건 악하다는 편견은 틀린 것이다. 대표적인 권신이자 충신으로는 촉한 승상 제갈량이 있다. 승상 제갈량은 한열조 소열황제의 유언으로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으나 자기 권력을 사리사욕에 쓰기는커녕 평생 나라를 위해 분골쇄신하다 과로사한 권신이자 충신의 모범적인 사례이다.

일찍이 공자는 간신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5가지로 구분한 바 있다.
  • 마음을 반대로 먹고 있는 음험한 자
  • 말에 사기성이 농후한데 달변인 자
  • 행동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고집만 센 자
  • 뜻은 어리석으면서 지식만 많은 자
  • 비리를 저지르며 혜택만 누리는 자

명나라 충신 양계성은 당시 간신 엄숭의 죄악과 그 간행을 "십죄상"과 "오재상"으로 요약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황상의 측근을 뇌물로 매수하여 자신의 첩자로 만든다.(정보수집, 그에 따라 권력자의 입맛 맞추기)
  • 통정사를 조종하여 자신의 앞잡이로 만든다.
  • 창위관들과 혼인 관계를 맺어 자신에게 필요한 끈으로 만든다.
  • 언관을 농락하여 자신의 노예로 만든다(언론통제).
  • 자신을 따르는 신하들을 망라하여 자신의 심복으로 만든다(파벌 결성).
나름의 가치관을 갖고 있긴 해도 무능력하면서, 높은 직위에 오른 자 역시 정치적 적대자에게 간신으로 취급된다. 이쪽은 간신이라기보다는 우신(愚臣)인 듯하지만 말이다.

이미지는 대부분 군주 앞에선 살살 웃으면서 아첨을 떨지만 뒤에선 역모를 꾸미고 있다든지 하는 나쁜 놈들. 현대사회에서도 조심해야 할 사람들이다.

현대사회에서 간신의 특징에 부합하는 사람이 사회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어지간하면 사회 부적응으로 실패하거나 좌절할 일이 잘 없다. 왜냐하면 주변으로부터 간신배 소리 듣는 사람들은 적어도 인간관계를 교묘히 조율하는 처세술과 자기 이득에 따라 남을 이용해 먹는 정치적 권모술수, 그리고 높으신 분들의 눈밖에 나지 않으면서도 정적들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기회잡아서 도태시키는 스킬 하나는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오히려 능력은 좋은데, 사회성이 극도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사회 부적응을 겪기 쉽다.[9] 더군다나 조직생활에 있어서 높으신 분들은 능력은 좋은데 사회성 떨어지고 인간관계가 좋지 않는 사람과 능력은 그저 그렇지만 자신들의 비위를 잘 맞춰주고 언제나 고개숙여주고 맞장구 치며, 대인관계가 원만한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후자를 택할 것이다.

사대부 관료들이 군주의 측근들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구호. 조선시대에 가면 군주에게 서로 상대방이 간신이라면서 쫓아내라는 일종의 병림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른바 "소인" 낙인 찍기가 대표적. 간신 목록에 권신, 척신, 역신, 우신들이 이름을 올리는 이유기도 하다. 또한 간신의 전단계인 폐행이 있는데 이쪽은 사직을 말아먹을 만큼 망칠 수준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극에선 왠지 마르고 이방수염을 기르고 있으며 손을 비비면서 헤헤헤 웃는 그런 이미지로 묘사되었다. "어찌 그런 옳은 판단을 하시나이까" 같은 대사도 필수.

간신 중에는 천출이나 노비 같은 신분으로 태어나 평범하게 살다가 권력을 쥐니까 급격히 타락한 경우도 있는데, 김준, 신돈, 유자광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런 부류의 간신들은 권력을 손에 넣는 과정에서 기득권들을 대거 몰아내고, 권력을 쥔 이후 급격하게 흑화한다. 자신에게 밀려난 기득권 세력이 대대적 반격을 가하는 시점에서 절대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도 세력을 키우고 심복을 숱하게 심어야하는데, 대체로 이 과정 속에서 선정을 펼치기보단 권력투쟁에만 신경쓰게 된다. 이전에 쌓인 열등감도 한몫을 한다. 미천하니 무서울 것이 없다는 말도 한다. 그래서 이들의 평가는 엇갈릴 수밖에 없다. 김준의 경우는 무신정권의 정점인 최씨 정권을 붕괴시켰고, 신돈은 권문세가에 큰 타격을 줬고, 유자광은 연산군을 몰아낸 공로자이다. 대신 이들 역시 이들이 깨트린 집단과 한 때 타협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2000년대 사극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자들이 간신을 연기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예: 이덕화, 김응수, 박근형, 조경환, 이재용 등등). 하지만 사실 이들은 대개 권신.


2. 간신은 정말 간신인가?[편집]


임사홍 등이 대표적 사례. 그리고 왕안석, 한명회처럼 한쪽 면에서만 평가할 수 없는 존재도 있긴하다(사실 왕안석의 경우엔 성리학자들의 디스[10], 한명회의 경우엔 권신에 가깝다.[11]). 동양 국가 막장 테크의 주요 원인이던 외척, 환관들마저도 "생각보다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었다"란 재조명이 나오는 것이 현 상황이다. 또한 정쟁으로 죽은 사람을 후대에 복권시킬 때도 그게 군주의 뜻으로 죽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군주가 잘못해서 충신을 죽였다고는 할 수 없으니 "이게 다 간신 아무개가 모함해서 그렇다."라고 총대만 멘 신하에게 뒤집어 씌워 간신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케이스로 남곤이나 정철이 있다.

간신이란 정의 자체가 역사를 선과 악으로 이분하려는 춘추사관적인 태도가 짙다는 분석도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간신(이라고 알려진 사람)들 중에서도 정말로 악랄했던 것이 아니라 무능이나 다른 이유로 반대파에게 '간신'이라 낙인 찍힌 경우도 종종 있다.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군주의 방패막이라는 설도 있다. 차마 군주를 깔 수는 없으니, "간신이 임금님을 망친다!"는 식으로 깐다는 것. 그리고 유교 문화권에선 "사람의 됨됨이를 보려면 그 사람의 친구를 보면 된다" 라는[12] 말이 꽤나 지지받고 있었기에, 군주의 주변에 간신만 많다고 비판해도 간접적으로 군주를 비판하는 효과가 달성되기는 했다. 요즘 시점에서 보면 어지간히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 이상, 간신을 키우는 군주 쪽이 잘못이다. 이른바 간군(奸君). 대표적인 사례로는 남송의 휘종, 흠종, 고종, 명나라가정제가 있다.

욕받이는 당연하지만 유교문화권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은 평상시에도 군주의 외도를 남자다움의 덕목을 갖추어 나라의 위신을 살리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 때문에 군주가 혼외정사를 하는 것은 긍정적이었던 반면 그 대상이 되는 여자, 즉 군주의 정부는 항상 '요망한 창부'로서 욕받이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군주의 정부를 비난하는 건 국민 스포츠였고 이 비난은 왕후도 예외는 아니었다. 17세기에 들어선 뒤에는 신문의 발달로 한층 욕 수위가 업그레이드되고 추잡스러운 삽화까지 더해지면서 이런 음담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특히 루이 16세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재위기간 동안 항상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그동안의 왕비와는 비교도 안되는 모진 경멸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 이유는 어이없게도 루이 16세의 무능과 선왕들의 사치로 빚어낸 국가 경제 파탄과 부정부패의 방종 등으로 인해 프랑스가 막장이 된 걸 백성들이 "이게 다 오스트리아 출신 왕비가 우리 현명하신 임금님을 망쳐놔서 그렇다"라고 비난하며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책임을 전가했기 때문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당대 신문의 발흥기 때문에 온갖 성적인 루머에 시달리며, "호화로운 궁궐에서 국민의 혈세로 수십명과 줄지어 난교파티나 열고 있는 문란하고 멍청한 오스트리아 창녀"라고 만화 삽화까지 그려져 음해받기도 했다. 더구나 역대 프랑스 군주들과 달리 루이 16세는 여색에 관심이 없어서 정부도 들이지 않았는데, 국민들은 오히려 "이건 전부 바가지 긁는 왕비 탓"이라며 "왜 우리 임금님 기를 죽이고 그러냐!?"라고 비난했다. 또한 마리 앙투아네트는 역대 프랑스 왕비 중에서 가장 검소했지만 남편 루이 16세에게 정부가 없던 탓에, 보통 군주가 가장 총애하던 애첩(총희)이 열던 사교계 파티를 주최하는 역할도 맡아야 했다.[13] 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사치가 심하고 주체적으로 혈세를 낭비하는 재주가 있다"는 이미지가 씌워졌다. 또한 잡다한 프랑스식 의전을 귀찮아하고 간신을 멀리하려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귀족들과도 불화가 많은 편이었다.

프랑스의 국민들은 이런 음해에 선동되고 마리 앙투아네트를 옹호할 귀족들마저 줄어들면서(왕비를 보호해주겠다는 라파예트 자작 같은 이는 소수였다.)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졌고, 마침내 1789년 10월에는 대포까지 끌고 베르사유 궁궐로 쳐들어갔다.

결국 루이 16세가 국민들과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선언해도 "우리 착한 임금님을 꼬셔서 약속을 어기게 할 거다"라는 근거 없는 낭설이 나돌았고, 이에 분노한 아줌마들이 문을 때려부수고 경비병들은 궁의 방 문을 보이는대로 가구로 틀어막는 난리가 났다.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다가오는 아줌마들에게 겁을 잔뜩 먹은 마리 앙투아네트는 루이 16세의 침실로 도망쳐서 소리를 지르고 문을 때리며 들여보내달라고 애원했고, 주변이 소란스러워서 한참 동안 왕비의 목소리를 듣지못했던 루이 16세가 겨우 들여보내줘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경비병들을 잡아 참수해서 창끝에 효수해서 돌아다니며 잔뜩 살기가 오른 아줌마들은 6명의 대표를 꾸린 뒤, 루이 16세와 만나서 개인 아파트에서 담합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증오할수록 임금에 대한 긍정적인 환상에 사로잡힌 폭도들은 막상 루이 16세를 가까이서 대면하게 되자 프랑스의 군주라는 지위에 압도되어 1명은 기절해서 쓰러질 정도였고, 이후 궁의 베란다에서 루이 16세가 연설할 때는 "임금님 만세! (Vive le Roi!)라고 외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였다. 이와중에도 군중들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불러내라고 요구했고, 이에 황당해한 마리 앙투아네트가 당당하게 팔짱을 끼고 베란다에 서자 그녀에게 머스켓을 조준할 정도였다.


3. 역사 속 간신들[편집]


※ 신하로서 무능했는지의 여부는 간신과는 무관하므로 무능했다는 이유로 적지는 말아야 한다. 또한 부패했음에도 중앙 정치에 개입한 사례가 없다면 간신보다는 탐관오리로 분류하여 역시 제외한다.
※ 간신 중 군주에 영합하고 모조리 오케이하며 아첨하며 부정부패 등을 일삼았던 케이스는 간신, 군주를 무시하고 자기가 멋대로 권력을 휘두른 케이스는 권신(권력이 컸더라도 군주를 존중하고 그 아래에서 부패했다면 간신으로 분류), 권신을 넘어 아예 군주권까지 탐했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려 했던 케이스는 역신으로 분류한다. 카테고리에 동시에 포함될 시에는 역신>권신>간신의 순으로 넣는다. 반민족행위자들은 주동적 역할을 하였다면 역신, 수용하는 쪽이었다면 간신으로 분류한다.
※ 반정공신의 경우에는 반정을 당한 쪽의 입장에서는 역신이지만, 충성을 바친 쪽이 반정군주라는 점을 감안하여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역신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사서 등에서 간신으로 취급받았으나 실제로 간신이라고 보기 어려웠던 인물은 애매한 경우로 분류하고 그렇게 분류한 이유를 같이 서술한다.
※ 권력을 잡으면서 권력남용을 부리고 횡포를 일삼는 권신들과 직분보다 사리사욕을 우선시하여 실정을 저지른 간신이라 평가받은 관리들만 기재한다.
※ 나라나 왕조에 엄청난 해를 끼치거나 중대한 범죄행위를 저질렀을 경우 볼드.

3.1. 한국사[편집]




3.1.1. 간신[편집]



3.1.1.1. 고려 이전[편집]

  • 은부 - 태봉의 신하. 간사한 말로 아첨을 잘 함으로써 궁예에게 총애를 받았으며 참소하기를 좋아하였다고 서술되어 있으나, 태봉을 무너뜨린 왕건 세력에 의한 서술이기에 의심의 여지가 있다. 역사학자들은 궁예가 주도한 전제 왕권 강화를 도운 친위 세력으로 보고 있으며 이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 종간 - 태봉의 신하. 젊을 적 승려가 되어 간특한 행동을 일삼았으며 궁예의 신임을 받아 많은 이를 참소하였다고 서술되어 있으나, 태봉을 무너뜨린 왕건 세력에 의한 서술이기에 의심의 여지가 있다. 역사학자들은 궁예가 주도한 전제 왕권 강화를 도운 친위 세력으로 보고 있으며 이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3.1.1.2. 고려 전기[편집]

  • 박승중 - 이자겸에게 아부떨다가 그가 몰락하고 유배당했다.
  • 최홍재 - 이자겸의 심복으로 그의 정적 한안인을 죽였다. 이후 매관매직을 하다가 탄핵되기도 했다.
  • 최유칭 - 의종의 총애를 받던 신하로 대령후 반역 모의 사건 당시에 국문을 맡기도 했다. 고려사 열전에 의하면 성품이 사납고 자신과 뜻을 같이 하지 않는 자에게 모함을 일삼았다고 한다. 권세를 쌓다가 무신정변 때 피살당했다.
  • 척준경 - 이자겸과 한편으로 이자겸 실각 후 정지상에게 탄핵당하여 유배당했다. 순수한 무인이었을 뿐 정치적 식견을 따로 보여준 것이 없다지만 이자겸을 견제할 수 있는 위치에서 오히려 그에게 영합한 점이나, 이자겸 실각 이후 탄핵당하기 전의 행적은 이자겸과 그닥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참작의 여지가 없다.


3.1.1.3. 무신 정권[편집]

  • 박훤 - 최우에 빌붙어서 최우에 대한 온갖 미화작업을 펼친 인물이나 정작 최항에 대해 비판하자 유배당한 인물 중 하나다. 전반적으로 보면 김준과 더불어 최씨정권의 양대 간신이지만 최항을 비판해 유배갔다는 점에 대해서 참작이 가능하다. 드라마 <무신>에서 박승선이 이 인물을 모티브로 했다는 설이 있다. 정작 박훤은 충신으로 나오는게 함정.
  • 송길유 - 최씨 정권에 붙으면서 온갖 혹독한 형벌을 도맡아 했던 인물 중에 하나이며, 이로 인해 가신들이 숱하게 죽었다.
  • 송유인
  • 이광정(고려)
  • 최양백 - 최의의 편에 붙어 최의를 비호했던 인물이나 이후 김준에게 척살된다.


3.1.1.4. 고려 후기[편집]

  • 김횡 - 전라도 도순문사로 재직하면서 수탈과 착복을 자행하여 백성들에게 원성을 샀으며, 송분이 죽자 그의 처를 강제로 데려다 강간했다. 왜구에게 패하면서 위기에 처했으나 뇌물을 주어 화를 면했으며 신돈의 편에 붙었다가 유배되기도 했다. 전라도에서 또 한번 왜구에게 패했지만 환관들에게 뇌물을 주어 처벌을 받기는커녕 경상도 도순문사로 부임하며 전라도에서의 일을 반복하여 원성을 샀다. 공민왕때 합포에 침입한 왜구에게 대패하여 참형에 처해졌다.
  • 권한공 - 충선왕의 총신으로 인사권을 장악하고 많은 뇌물을 받았으며 심양왕 고를 추대하려 하기도 했다.
  • 고용보 - 원나라에서 일하던 고려인 환관으로 본래는 광산에서 일하던 광부 출신.[14] 충혜왕 폐위에 앞장서 그를 호송하는 일을 담당했고, 훗날 고려로 귀국하여 기철 일파로서 전횡을 일삼았다. 이후 공민왕이 즉위한 후 해인사로 도망가서 승려인 척하며 숨어 살았지만 공민왕이 보낸 어사중승 정지상에 의해 처형당했다.
  • 대집성
  • 송명리 - 충혜왕에게 아부하던 인물로 군주의 유흥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약탈을 벌였고, 경화공주가 강간당할 때 못 움직이기게 묶기도 했다. 충목왕 즉위 후 몰락할 뻔 했으나 고용보와의 친분으로 화를 면했다.
  • 최세연 - 충렬왕때 환관, 온과 뇌물자행 국정농단 주도하였다.
  • 송분 - 충렬왕과 충선왕의 사이를 이간질했으며 충선왕의 왕비 계국대장공주를 개가시키려는 시도도 했었다. 카다안의 침입 당시에는 개경 유수로 재직중이었으나 강화도로 튀었다.
  • 이엄 - 충혜왕 때의 폐신이자 간신으로 충혜왕에게 강간을 당한 경화공주원나라로 가기 위하여 말을 구하려 했을 때 윤계종과 함께 마시(馬市)를 금하여 공주가 말을 구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후 이엄은 1340년 충혜왕이 원나라 형부에 구금될 때 폐신으로서 이몽가 등과 투옥되었다가 풀려났으며, 1342년 조적의 난 때 충혜왕을 시종한 공으로 1등공신이 되었다.


3.1.1.5. 조선 전기[편집]


  • 박원종 - 중종반정의 공신이지만, 사치스럽고 부패한 생활로 악명이 높았다. 그와 함께 중종반정을 이끈 3명의 공신들 모두 평가가 좋은건 아니지만 박원종은 그중에서도 가장 안 좋다.
  • 유자광 - 남이 옥사, 무오사화의 핵심 인물이며 여러 군주들의 재위기간 동안 군주들을 대신해서 숙청을 도맡아 했다.[15] 그래도 중종반정에 가담했다는 것만 봐도 조선판 김준이라고 보면 된다.
  • 임숭재 - 임사홍의 아들. 간신인지에 대해 심한 의문이 남는[16] 아버지 임사홍과는 달리 임숭재는 확실한 간신이다. 죽을 때도 '오직 임금께 미인을 바치지 못하는 게 한스럽다' 라는 유언을 남겼다. 근데 그 임금님이 자기 부인과 간통을 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심지어 임숭재는 성종사위로 부인 휘숙옹주는 연산군과 남매지간이다.
  • 정언각 -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사실상 윤원형의 수하였으며, 문정왕후와 권신 이기 등을 비난하는 내용의 벽서를 발견하고 이를 왕에게 바침으로써 정미사화를 일으켰다. 몇년 뒤 그가 말을 타고 가던 중 낙마했다가 그대로 말에게 짓밟혀 죽자[17] 사람들은 그 말을 의로운 말(義馬)이라며 칭찬할 정도였다.
  • 홍윤성
  • 이발
  • 이산해 - 건저의 문제를 유발하였고 선조 시기에 당쟁을 더욱 심화한 주범. 북인의 수장으로서 서인에 강경한 입장을 취한 관계로 서인측이 쓴 기록에 폄하를 많이 당한 면도 있다지만, 무엇보다도 동문이자 훗날 남북인으로 갈라서는 유성룡이 왜란 시대에 동분서주하며 고생한 것에 비해 이 양반은 아무것도 한 게 없다. 현대에도 여기에 영향을 받은 문학가 박종화 등에 의해 간신으로 묘사를 당한다.

3.1.1.6. 왜란 이후[편집]

  • 기자헌 - 조선 광해군 때 신하로 방납을 통해 부정축재를 하던 인물이었다. 심지어 당시 군주였던 광해군마저 기자헌을 탄핵하는 상소를 쿨하게 씹어버렸다. 일명 조선판 임견미. 다만 부정부패와는 별개로 광해군에게는 충성을 다한 인물이기도 하다. 같은 대북임에도 이이첨과는 달리 정치적으로는 인목왕후의 폐모론에 반대했을 정도였다.[18] 인조반정 세력이 한교(韓嶠)를 보내 기자헌에게 반정에 참여할 것을 권했지만 거부하기도 하였다.
  • 김경징
  • 김류
  • 김개시
  • 김자원
  • 김자점 - 조청합병[19]을 실현시킬 뻔한 장본인. 사실 병자호란 당시에는 청군을 막기 위해 해 볼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상상을 초월한 청군의 진격속도 때문에 좌절한 것. 그 뒤에는 청나라를 등에 업고 권력의 정점에 오른 뒤에는 전횡을 저질렀다는 것이 문제다. 결국 효종때 거열형에 처해진다.
  • 신경진, 신경유 형제 - 신립의 차남과 3남. 불법 토지매매 매관매직 부정축제 온상이여서 조정에서 탄핵받고 귀양갔다.
  • 원균 - 간신+똥별+정치군인이라는 경악스러운 조합을 보여줬다. 이 자는 왕은 물론 조정 신료들까지 속여넘겼다.
  • 유영경 - 임진왜란 때부터 보신주의적 행태를 계속 보였으나, 줄을 잘 서서 영의정까지 쾌속 승진하였다. 이후 소북의 영수가 되어 영창대군을 지지하였으나 실패하고, 광해군에 의해 숙청당했다. 다만 뭘 확실히 잘못했다고 말하기는 애매하고, 그냥 상황에 맞춰 이리저리 줄을 잘 서다가 줄 한번 잘못 서서 훅 간 케이스.
  • 홍여순 - 같은 대북파도 홍여순을 싫어했는지 대북파의 시각으로 쓰여진 선조실록에서도 '품성이 흉험하고 몸가짐이 탐포(貪暴)하여 참으로 기탄이 없는 사람이다.' 라고 평가하였다. 이에 대해 선조수정실록에서 실록을 살펴보면 '대체로 포폄(褒貶)한 바가 애증(愛憎)에 따라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는데, 오직 여순의 경우만은 그 실상을 갖추어 썼으니 여순의 악함을 더욱 확인할 수가 있다.' 라고 평가하였다.


3.1.1.7. 개항 이후[편집]



3.1.2. 권신[편집]



3.1.2.1. 고려 이전[편집]

  • 목만치(?) - 일본서기에만 등장하는 인물이라 확실하지 않다. 구이신왕을 옹립하고는 태후와 불륜을 저지르며 전횡을 일삼다 천황의 명을 받고 일본으로 갔다. 구이신왕 사후 그의 세력은 비유왕 일파에게 제거당한 걸로 추정된다.
  • 아지태
  • 위홍 - 진성여왕의 치마폭에 매달려 근친상간을 저질러 성이 문란해졌고 권력남용까지 저질렀다. 가뜩이나 망해가고 있던 신라를 더욱더 붕괴시킨 주역 중 한 명인 셈.
  • 좌가려


3.1.2.2. 고려 전기[편집]

  • 왕광취 - 고려 의종의 심복으로 정함에게 붙어 같이 횡포를 부리던 간신이었다.
  • 정함
  • 이자겸 - 이쪽은 고려 인종의 장인이자 외할아버지이기도 하다.
  • 한뢰 - 이쪽은 의종, 김돈중과 함께 무신정변을 일으키게 한 3인방중 한명이다. 이 인간이 뺨만 안때렸으면 고려의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3.1.2.3. 무신 정권[편집]

  • 이의민 - 고려 무신정권의 4대 집권자. 본래 천민 출신으로 이의방 및 정중부의 부하였으나 1179년, 정중부가 경대승에 의해 처형당하자 집권의 기회를 노린다. 1183년에 경대승이 병사하자 마침내 정권을 장악, 13년간 무신정권의 수장으로 군림한다. 그러나 1196년에 최충헌한테 붙잡혀 처형당한다. 그의 집권기에 김사미&효심의 난(1193)이 발생했는데 이의민이 이를 지원했다는 설이 있다.
  • 이의방 - 무신정변(1170)의 주역 중 하나이자 무신정권의 초대 집권자. 1174년 정중부, 정균에게 제거당한다.
  • 임연
  • 정중부 - 이의방과 더불어 무신정변의 주역. 중방을 중심으로 권력을 행사하며 주요 관직을 독차지하였고 농장과 노비를 늘려나가는 등 각종 전횡을 일삼았다. 1174년에 아들 정균을 시켜 이의방을 제거하고 무신정권의 수장으로 등극했으나 1179년, 경대승에 의해 아들 정균 및 사위 송유인과 함께 숙청되어 처형당했다. 그의 집권기에 귀법사의 난(1174), 조위총의 난(1174), 공주 명학소의 난(1176), 망이&망소이의 난(1176) 등이 발생하여 고려 사회가 큰 혼란에 빠졌다.
  • 최충헌-최우-최항-최의까지 이어지는 최씨 무신정권


3.1.2.4. 고려 후기[편집]

  • 권겸 - 기철의 측근이자 권문세족의 일원이다.
  • 기철 - 그의 아버지는 충신이었지만, 자신의 여동생이 원나라의 황후가 되면서 권력 행세를 하여 스스로 고려를 팔아먹는 매국노 겸 희대의 간신이 되었다. 결국 공민왕한테 살해당한다. 그야말로 호부견자. 그 외에 기식, 기륜, 기준 등의 그의 동생들도 형 못지않은 막장 간신배들이었다.
  • 김준 - 노비에서 문하시중까지 오를 정도로 입지전적의 인물에 최씨 무신정권을 무너뜨리나 권력자가 된 이후로 급격히 타락해버린다. 권력을 잡고난 이후에는 최충헌과 다를 것이 없는 간신배가 맞으나, 그래도 최씨무신정권을 붕괴시킨 공이 크기에 간신배 치고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대체로 유자광과 비슷한 케이스라고 보면 된다.
  • 노책 - 기철의 측근이자 권문세족의 일원이다.
  • 윤시우 - 충정왕의 모후인 희비 윤씨의 오빠로 그들을 빽으로 삼아 군주의 외척으로써 권력을 차지하였다. 그 차지한 권력을 가지고 인사권을 좌지우지하면서 매관매직을 일삼는 등 전횡을 부렸다. 결국 공민왕이 즉위하자 이제현 등에게 탄핵을 받아 유배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이후 복직해 제주도 순문사로 기용되었지만 때마침 일어난 목호의 난에 휘말려 반란군들에 의해 죽었다.
  • 신예 - 환관 고용보와 함께 원을 도와 충혜왕 폐위에 앞장섰다. 그 뒤 충목왕이 즉위하자 매부였던 고용보와 연합하여 국정을 좌우하며 전횡을 일삼아 신왕(辛王)이라고 불리며 정권을 농락하였다.
  • 신돈 - 공민왕을 비롯해 조정 대신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개혁정치에 가담하나 이내 타락하여 총신이 되어 흑화된 인물. 고려말 대충신이자 학자인 유숙을 죽인 일로 유교계에선 간신배이자 반역자로 불리나, 불교계에선 충신으로 꼽히는 편. 중간 점을 찾자면 유행간처럼 폐행 정도의 인물이다.
  • 이인임
  • 임견미
  • 염흥방


3.1.2.5. 조선 전기[편집]

  • 류순정 - 중종반정을 박원종, 성희안과 함께 주도하여 사람들로부터 삼대장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권력 최고 핵심부에 자리잡은 후에는 뇌물을 좋아하는 등 부패하여 비판받았다.
  • 윤원로
  • 윤원형
  • 이기
  • 이량


3.1.2.6. 왜란 이후[편집]

  • 김석주
  • 김안로 - 권신이 숙청이나 희열을 느끼고 자빠져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 이이첨
  • 김좌근, 김문근, 김흥근 - (신)안동 김씨 중에서 최강의 권력을 자랑했으며, 수탈과 착복을 자행하여 (신)안동 김씨 계열 신하들 중에서 악명이 대단했던 신하들. 그럼에도 김좌근이나 김흥근은 흥선대원군 시기에도 숙청당하지 않고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편하게 생을 마감했다.
  • 조만영 - 헌종 시기 풍양 조씨 세도정치의 권신. 다만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맞으나 큰 범죄에 연루된 내용은 없다.
  • 홍국영 - 조선이 세도정치로 기울어버리는데 기여했다.


3.1.2.7. 개항 이후[편집]

  • 민승호 - 명성황후의 총애하는 오빠로서, 흥선대원군이 섭정에서 물러난 뒤, 국정농단은 물론이고 온갖 권력형 부정축제를 많이 저질렀고, 각종 뇌물을 받아 부를 누려왔다.
  • 민태호 - 임오군란 때 군납비리와 관련이 있다.
  • 민겸호 - 임오군란의 거대한 나비효과로 조선 군대를 박살내고 파국으로 내모는 주범. '선혜청' 당상 겸 병조판서를 지내면서 조선판 군납비리의 원인을 제공했다. 일본식 신식군대인 별기군이 창설된 후, 별기군에게 잘 대우받아 구식군대에게 갑질을 하고 13개월 동안 지급을 주지 않고, 그나마 준 쌀마저 모래와 겨를 섞어버려서 주는 만행을 저질러 항의했던 구식군대가 잡아다가 고문하고 처벌하여 크게 분노하게 만들었다. 결국 임오군란 때 남몰래 피신하다가 구식군대 발각되어 참살당했다.
  • 민영소
  • 민영휘(민영준) - 여흥 민씨[20]흑역사급 간신. 탐관오리로 지방관직을 지내면서, 곳곳에서 백성들을 수탈해 자기 재산을 챙겼고, 거기에 동학농민운동 시기에 청나라 군대를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해, 나비효과를 부풀렸고, 한일병합시기에 조선귀족의 작위를 받고, 일제 강점기에 부유하게 살았다.
  • 민형식


3.1.3. 역신[편집]



3.1.3.1. 고려 이전[편집]

  • 비담 - 선덕여왕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 어비류
  • 임자 - 백제의 좌평으로 신라와 내통하여 백제 멸망에 기여했다.
  • 해구 - 항목의 3번째 인물이다.


3.1.3.2. 고려 전기[편집]



3.1.3.3. 무신 정권[편집]

  • 이광정
  • 이고 - 무신정권의 초대 집권자인 이의방과 연합 정권을 수립하였으나, 무신정권 지도자 중 유일하게 역성까지 도전하려다 이의방에게 숙청당했다.


3.1.3.4. 고려 후기[편집]

  • 김용 - 본래 공민왕의 총신이었으나, 정세운 암살 사건을 주도한 후 이것이 들킬까 두려워 흥왕사의 변을 일으켜 공민왕의 시해를 도모하였다. 공민왕의 권위를 침범한 신하는 아닌 만큼 일반적인 역신보다는 간신에 가깝지만, 상황에 의해 역신이 된 케이스.
  • 송방영 - 충렬왕충선왕 부자를 이간질했으며, 충선왕의 귀국을 방해하기도 했다. 서흥후 전을 옹립하려다 실권을 잡은 충선왕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 오잠 - 전국에서 명기들을 색출하여 군주에게 아부했고, 충렬왕충선왕 부자 사이를 이간질하며 어진 신하들을 모함하였다. 충선왕이 즉위하자 심양왕 고의 일파가 되어 군주를 모함하고 원나라 원제에게 고려에 행성을 설치하여 아예 원의 직속령으로 편입시키자고 건의하며 고려의 명목상의 주권까지 없애려는 시도를 했다.
  • 왕유소 - 충렬왕충선왕 부자를 이간질하고 충선왕과 사이가 나쁘던 계국대장공주의 재가를 건의하여 새 군주를 옹립하려다 충선왕에게 살해당했다.
  • 유청신 - 심양왕 고 일파로서 고려를 원나라에 완전히 합병시키려 했다.
  • 채하중 - 충숙왕 때 심양왕 고를 추대하려고 군주를 모함하며 유언비어를 퍼뜨렸던 인물로 공민왕 때 승려 달선의 반역사건에 연루되어 자살한 뒤 효수되었다.
  • 홍륜


3.1.3.5. 조선 전기[편집]


3.1.3.6. 왜란 이후[편집]



3.1.3.7. 개항 이후[편집]

  • 김홍륙
  • 송병준 - 헤이그 밀사 사건 이후 황제 양위 운동을 벌여 친일 활동에 앞장섰고, 어전 회의에서 고종에게 메이지 덴노에 사죄해야 한다면서 자결을 하라며 소리쳤다. 정미 7적 중 한 명으로 한일 신협약 체결에 앞장섰으며, 한일 병합 이후 일제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는다.
  • 윤덕영, 윤택영 - 고종을 겁박하여 한일 병합 조약 체결에 앞장섰다.
  • 이완용
  • 임선준
  • 조중응


3.1.4. 애매한 경우[편집]


  • 김돈중 - 정중부의 수염을 불태워 그간 불만이 많았던 무신들이 무신정변을 일으키는 계기로 이어지는 사단을 만들었다. 그러나 젊은 시절의 치기 어린 행동이자 당시 문신들이 얼마나 무신들을 무시했는지에 대한 사례로 봐야지 그걸 간신 여부를 따지는 것에는 적합하지 않다. 또 나중에는 잘못을 인정하고 군인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군주에 직언을 하기도 했던 인물이라 이를 가지고 간신이라 판단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 남곤 - 기묘사화 과정에서 조광조와 대립한 대표적인 인물었으며, 사후 조광조 일파와 그 후학의 세력이 강해지면서 역적 내지 간신으로 취급되었다. 다만 조광조의 사사를 반대했으며, 부패나 비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기묘사화를 주도한 것은 대신들이 아니라 중종이었다. 하지만 중종을 욕하는 건 곧 역모나 다름 없으므로 남곤이 대신 책임을 뒤집어 쓰고 욕먹고 간신으로 규정된 것이다. 여인천하에 나오는 남곤은 조선왕조실록상의 내용과 매우 다름
  • 심정 - 남곤과 같은 케이스
  • 염장 - 장보고를 모살한 인물로 드라마 <해신> 등으로 재평가되었으나, 오히려 동국통감삼국사절요에서 꽤 악명높은 간신배로 알려진 인물. 한편으론 염장이 간신배면 문성왕은 꽤 암군이라는 것인데 동국통감에서 문성왕은 800년대 치세의 군주로 꼽는다. 즉 이 경우는 우리가 아는 간신 정도는 아니고 유행간처럼 간신의 전 단계인 폐행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 왕규 - 혜종 시기의 권신으로 왕규의 난을 일으켜 혜종을 시해하려고 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정말 난을 일으킨 것인지 아니면 후에 왕권을 차지한 왕요 세력의 조작일지에 대한 논란이 큰 인물이다. 후자에서는 오히려 왕규가 혜종의 친위 세력이었던 충신이고, 왕규의 난은 왕식렴의 난을 왕규에게 덮어씌워 조작한 거라고 보는 편.
  • 이홍로 - 유영경과 같이 소북의 인물로 광해군에게 간신으로 낙인되어 제주도에 유배된 후 사약을 먹고 죽었으며 사후 참시되었다. 인조반정 이후 신원되었다.

3.2. 중국사[편집]



3.2.1. 간신[편집]



3.2.1.1. 하·상·주[편집]


3.2.1.2. 춘추·전국 시대[편집]

  • 비렴(飛廉), 악래(惡來), 비중(費仲), 좌강(左疆) - 은주왕 제신의 심복4천왕. 비렴과 악래는 부자지간이다.
  • 곽개 - 조나라의 간신. 전국시대 최고의 명장으로 손 꼽히는 염파이목을 실각시켰다.
  • 백비 -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초나라 출신으로, 오나라로 피신. 똑같이 초나라 출신이자 오나라로 피신온 오자서가 동병상련을 느껴 그를 중용했지만 결국 오나라를 망하게 한 만악의 근원. 월나라의 구천은 그를 철저히 이용하고 오 멸망 후 백비도 오자서를 위해 복수한다는 명목으로 처형해버린다.
  • 비무기 - 위 백비 항목에서 오자서가 도망가게 한 만악의 근원. 심지어 이때 그는 출세를 위해 태자의 신붓감마저 NTR해서 당시 평왕에게 바치기까지 했다.
  • 수초, 역아, 개방 - 이른바 '제의 삼흉', 포숙아가 죽은 후[21] 제환공의 총애를 받아 국정을 좌지우지한 끝에 마지막에는 환공을 유폐시켜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 자지 - 춘추전국시대에서도 손에 꼽는 간신. 이름도 영 좋지 않다

3.2.1.3. 진·한[편집]

  • 석현 - 전한시대의 최초의 제대로 된(?) 환관 간신.
  • 양기 - 후한 시대 최대의 외척 간신. 제갈량조차 이 사람에 대해선 <출사표>에서 언급하며 치를 떨었다.
  • 이사 - 진나라의 간신으로 한비자를 죽였으며 이후에는 조고와 합을 맞추어 호해를 옹립했다. 결국 나중에 조고에게 죽었다.
  • 왕보 - 후한 말의 간신. 두태후에게 아첨을 일삼다가 제2차 당고의 금으로 권세를 잡자 관청의 재물을 독점해서 매매하는 행위를 했다.
  • 후람 - 후한 말의 간신. 농토를 차지해 노복, 빈객들이 나그네를 협박하고 노략질했으며, 제2차 당고의 금을 일으켜 수많은 청류 인사들을 죽게 했다.
  • 단경 - 후한후기 이민족의 위협에서 서-북방을 수호한 영웅이었지만 정계에 진출하고 나서는 환관에게 굽신대는 탁류의 첨병으로 전락하였다. 중국판 척준경.

3.2.1.4. 삼국시대[편집]

  • 가충 - 서진의 간신. 양호, 두예를 견제해 오 정벌에 소극적이면서 자신의 딸이 황후가 되도록 뇌물을 먹였다.
  • 곽도 - 당대 최강의 세력이었던 원소 세력을 사실상 혼자서 공중분해시켰다. 내놓는 계책마다 맞는 말이 없었던 삼국지 최악의 책사.
  • 동승, 오석, 충집, 양정 - 후한 말의 간신들. 우선 동승은 권력욕과 동료들과의 불화로 인해 황제를 여러 번 위기에 처하게 하였으며, 양정은 이각과 곽사에게 협력했다. 동승의 패거리였던 오석과 충집도 전형적인 간신이었다.
  • 만욱 : 손호대 오나라의 승상인데 거슬리는 자들을 손호 옹립을 후회한다고 참언하여 죽였다.
  • 봉서 - 후한 말의 간신. 매관매직을 하고 뇌물을 받아 반란군인 황건적과 내통했다.
  • 봉기 - 원소의 8명의 책사 중 하나. 전풍을 모함해 죽게 만들었다. 이후 원상을 부추겨 원가분열을 가속화시키다가 원담에게 죽는다.
  • 석숭 : 서진의 간신. 왕개와 함께 돈지랄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 손자 - 유방과 함께 조예의 총애를 받고 정치를 좌지우지해 자신과 친하게 지내지 않은 신비를 밖으로 내쫓아내거나 조예가 죽기 직전에 후사를 부탁한 신하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조상이 정권을 잡도록 유명을 조작하는 일에 가담했으며, 조상 휘하에서 사마의를 명예직에 불과한 태부에 임명하기 위한 조서를 쓰는 일을 했다.
  • 신평 - 원담 휘하의 간신. 곽도와 세트이다. 심지어 원소의 동맹 세력이었던 유표 역시 원가의 재앙은 곽도와 신평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 손홍 - 오나라의 간신. 이궁의 변의 핵심으로 훗날 손화의 죽음에도 개입한다.
  • 손노반 - 오나라 최악의 악녀. 전종의 아내.
  • 순욱 - 서진의 간신. 오 정벌에 반대하거나 개인적인 질투로 진수, 완함 등을 쫓겨나게 했다. 참고로 흔히들 알고 있는 순욱과는 동명이인이다.
  • 순의 - 서진의 간신. 그 순욱의 아들이다. 오 정벌에 반대하거나 가충의 일파가 되어 가남풍이 아름답지도 않고 덕이 적은 것을 알면서도 가남풍이 황후가 되도록 사마염 앞에서 미덕이 있다고 칭찬했다.
  • 십상시(장양, 조충, 하운, 곽승, 손장, 필람, 율숭, 단규, 고망, 장공, 한리, 송전) - 후한 말의 간신으로 현대에도 간신의 대명사로 꼽히며, 정권을 장악해 후한을 몰락시킨 자들로 그 중에서 장양, 조충은 황제로부터 각기 아버지, 어머니라 할 정도로 권세가 높았다.
  • 이엄 - 제갈량의 4차 북벌 당시 군량 보급을 소홀히 하여 성공 가능성이 높았던 4차 북벌을 실패로 이끌었으며, 제갈량이 귀환하자 황제에게 거짓 보고를 올려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물론 진상이 밝혀지자 제갈량에 의해 탄핵되었다.
  • 양의 - 유비 생전에는 유파와 항상 반목하였으며, 이로 인해 명예직을 받고 좌천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제갈량 시기에 다시 중용되었는데 그럼에도 제갈량 사후 장완에게 밀려 승상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라리 위나라로 귀순했어야 했다"는 발언으로 온 촉한을 충공깽에 빠뜨렸다. 위연의 난과 관련해서는 물론 위연이 제갈량의 군령에 대놓고 반기를 들면서 잔도를 불태워 아군을 궤멸의 위기로 몰아넣는 만행을 저지러서 죽음을 자초했지만 그 이후의 이 발언은 양의의 명백한 간신 행위이다.
  • 양축 - 동오의 간신. 육손를 모함해 죽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가 최후도 자신의 주 특기인 모함으로 인해 죽는다.
  • 여일 - 오나라의 간신. 손권을 총애를 믿고 고옹, 정주, 주거 등 여러 대신들을 무고했으며, 한 사람이 4번이나 죄상을 고발당했을 정도인데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귀양을 가고 사직했을 정도였다.
  • 오질 - 위나라의 간신. 조비의 총애를 믿고 황족인 조진이나 동료인 주삭을 놀리는 등 사람들을 함부로 대했다.
  • 유방 - 손자와 함께 조예의 총애를 받고 정치를 좌지우지해 자신과 친하게 지내지 않은 신비를 밖으로 내쫓아냈으며, 조예가 죽기 직전에 후사를 부탁한 신하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손자를 설득해서 조상이 정권을 잡도록 유명을 조작했다.
  • 잠혼 - 오나라의 간신. 손호의 총애를 받아 여러 건축 사업을 벌여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다.
  • 전종 - 오나라의 간신. 작피 전투에서의 공적의 대소 문제로 장휴, 고담과 자신의 일족인 전상 등이 대립하자 전상을 편들어 장휴, 고담을 모함해 죽게 하였다. 그런데 작피 전투는 전종 본인이 책임자였음에도 대패한 전투였다.
  • 전기 - 전종과 손노반의 장남. 손화파를 모함하는 것을 좋아했다.
  • 채모 : 자기 여동생의 조카와 결혼한 유종을 옹립하겠답시고 유표와 유기를 이간한 것도 모자라, 유표가 죽자마자 유종에게 형주를 조조에게 바칠 것을 진언하였다.
  • 풍담 - 서진의 간신. 양호와 사이가 나빠 오나라 정벌을 반대하거나 오 정벌의 일로 장화를 질투해서 사마염이 그를 기용하지 못하게 했다.
  • 하정 - 오나라의 간신. 손호의 총애를 받아 정사를 마음대로 주위 사람들이 불만이 많았다고 하며, 이욱, 서존 등을 모함해 그 가족들을 죽게 했다.
  • 황호 - 촉한의 간신. 비위 사후에 권력을 전횡해 자신의 무리에 끼지 않는 진수, 나헌 등을 좌천시켰다. 촉한이 몰락한 후에는 뇌물을 바쳐 살아남는다.

3.2.1.5. 남·북조 시대[편집]

  • 사마도자 - 천자(효무제)의 동생이라는 신분으로 당시 명재상 사안을 실각시켰으며 갖은 전횡과 토지겸병을 일삼아 원성을 샀다. 이는 비수의 전역이라는 국난을 극복한 동진이 오히려 북부군과 서부군의 대립, 손은&노순의 반란 등 난세로 돌입한 원인이기도 하다.
  • 양준 - 서진의 간신. 황족인 사마량을 쫓아내고 정사를 개판으로 처리했다.
  • 화사개, 목제파, 한장란, 고아나굉, 조효징, 유도지 - 고담, 고위 악정하의 간신들. 화사개가 대표적으로 국정을 농단했으며 사후에는 나머지 이들이 이어받았다(...) 특히 고아나굉은 북제가 멸망할 때 황족들을 북주에 넘기고 항복했다가 이후 모반이 실패하여 참수. 유도지는 온갖 몹쓸짓의 앞잡이였다.[22] 조효징은 한때 이들과 대립하다 쓴맛을 보고 눈까지 멀은 이후 결국 이들에 영합하고 곡률광 모함에도 앞장섰다.[23]
  • 정역 - 주선제의 첨신으로 선대의 간신이자 후대의 개국공신이라는 타이틀을 보유. 북주를 정복하여 종실에서 가장 명성이 높았던 제양()왕 우문헌을 모함하여 주살하게 하였으며 고명을 받고도 양견을 끌어들여 권력 독점과 왕실 전복에 앞장섰다. 수문제 즉위후에는 상주국 패국공의 최고작위에 올랐으며 불효로 견책을 받기도 했지만 악률을 정비하여 아악의 제정에 공헌하였다.

3.2.1.6. 수·당[편집]

  • 내준신 - 측천무후 때의 간신이자 혹리. 총애를 받기위해 신하들에 대한 갖은 무고와 혹형을 일삼았다.
  • 노기 - 당 시대의 간신. 죽어서도 4년간 덕종이 그의 악행을 모를 만큼 철저한 면모를 보였다.
  • 무삼사 - 측천무후의 친척으로 측천무후 사후에도 2년 동안 간신이자 권신으로 집권했다. 결국 절민태자에게 처형되어 죽었다.
  • 양국충 - 친척 양귀비의 치맛바람으로 간신이자 권신이 된 사례. 아래의 이임보를 밀려나게 한 간신. 이간제간(간신으로 간신 견제)의 사례다.
  • 양소 - 수나라 시대의 간신. 수양제와 짝짜꿍이 잘 맞아 결국 2대 만에 수를 멸망하게 한 만악의 근원. 그리고 수양제도 암군이자 폭군으로 유명했다. 즉 유유상종.
  • 우세기 - 남조 진, 수대 대문장가. 수양제 시절 우문술, 곽연, 배구, 배온과 같이 5귀로 중용되나 망국의 와중에서도 양제에게 아첨하고 뜻을 헤아리는 데만 열중하며 우문화급의 반란시 양제와 같이 살해된다. 이후 정관정요에서도 이로 인해 까이기도. 정작 우애가 남달랐던 동생 우세남은 부귀를 탐하지 않았으며 당태종의 능연각 24 공신이 되었다.
  • 단달 - 수당교체기 시절 낙양을 수비하던 황태주를 보좌하고 황태주가 양제의 후계자로 제위에 등극했을때 진국공(陳國公) 작위에 7귀로 중용받았지만, 왕세충에게 빌붙어서 다른 동료 권신들을 살해하고 왕세충의 찬탈 및 황태주 살해에 협력. 이후 왕정(王鄭) 정권의 사도로 권세를 누렸지만 당태종의 낙양 함락으로 왕정이 멸망할 때 특히 죄악이 큰 9흉으로서 낙양 저자에서 효수되었다.
  • 이의부 - 당현종 때의 간신. "소리장도"(웃음 속에 비수를 갖춤)의 주인공.
  • 이임보 - 간신의 전설이자 희대의 정치술로 천수를 누린 몇 안 되는 간신. 당나라 현종때의 간신이자 고사성어 구밀복검의 주인공. 안록산이 반란 준비를 마쳐놓고도 그가 죽을 때까지 기다렸을 정도. 양귀비의 엄청난 총애를 받았던 양국충도 감히 이임보가 누리는 재상자리를 넘보지 못했다. '이림보'라고 읽기도 한다. 간신들은 다 한다는 부정부패를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고, 여러 가지 개혁을 꾀하기도 했는데 왜 간신인가 하면 자신의 권력을 위해 파벌을 쪼개놓았고, 안사의 난에 당나라 전체가 휘청인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3.2.1.7. 오대·십국 시대[편집]


3.2.1.8. 송·요·금[편집]

  • 고구
  • 야율을신 - 요나라의 간신. 촉망받던 태자 야율준과 황후 소관음을 모함하여 죽이는 등 국정을 농단하였다. 요나라 쇠퇴의 원인 제공자.
  • 정대전 - 진회, 한탁주, 가사도로 이어지는 간신 라인의 숨은 일원으로 가사도에 버금가는 남송 이종 시기의 간신이다.
  • 증포
  • 채경
  • 한탁주 - 남송의 간신.
  • 황잠선 - 남송 시대의 간신. 진회와 맞먹는 중국 역사 최악의 매국노.

3.2.1.9. 명[편집]

  • 모문룡 - 명나라를 패망시킨 악명높은 부패한 탐관오리이다. 조선에서도 악명이 매우 높았다.
  • 왕진 - 토목보의 변을 일으킨 주 원인이 되는 환관. 토목보의 변 참조.
  • 엄숭 - 3대 간상(奸相, 재상급 간신)중 하나. 나머지 둘은 진회와 이임보이다.
  • 엄세번 - 엄숭의 아들. 아버지의 권력을 믿고 갖은 악행을 자행했다.
  • 온체인 - 숭정제의 총애를 받으면서 8년간이나 수보(재상)자리를 지킨 간신.[24] 뒤에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숭정제의 성지를 받을 때 보란듯이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먹고 있다 너무 놀라서 젓가락을 떨어뜨렸다는 일화까지 전해진다(...).

3.2.1.10. 청[편집]


3.2.1.11. 현대[편집]


3.2.2. 권신[편집]



3.2.2.1. 하·상·주[편집]



3.2.2.2. 춘추·전국 시대[편집]


3.2.2.3. 진·한[편집]

  • 곽광 - 사서에는 충신으로 기록된 한나라의 대간신.[25]
  • 조고 - 3년만에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 진나라를 말아먹은 주범이자 중국 역사 최초의 황제 시해자. 그 수법이 너무 치밀하고 대담해서 조나라를 멸망시킨 진나라에 대한 복수라고 믿을 정도였다.

3.2.2.4. 삼국시대[편집]

  • 손준, 손침 - 둘은 사촌형제 사이로 대를 이어 오나라 대도독 겸 승상을 겸했다. 문제는 이들은 차라리 위나라의 똥별인 하후무가 훨씬 나을 정도로 엄청난 짓들을 저질렀다. 거기다 인간성도 개차반이었으니 이 버러지들 때문에 오나라에서는 등윤, 여거, 왕돈, 손영[26], 제갈각 등등 기라성 같은 인재들이 쓸데없이 희생당했다.[27] 괜히 부관참시당하고 성씨를 ()씨로 개명당한 것이 아니다.
  • 조상, 조훈, 조언, 조희, 정밀, 이승, 하안, 환범 - 조상 형제는 대장군 조진의 아들인데 조예의 탁고대신임에도 조방을 꼭두각시로 삼아 온갖 전횡을 부렸다. 정밀 등은 이들의 부하로 같이 전횡을 부렸다.

3.2.2.5. 남·북조 시대[편집]

  • 모용평 - 모용황의 작은 동생. 조카손자 모용위의 시대에 정권을 잡았고 조카 모용수의 능력을 시기하여 전진으로 망명하게 만들었다. 전연이 망하고 항복한 이후에도 보살 부견 덕택에 후대받고 잘먹고 잘살다 갔다.
  • 이주영 - 정치인이 될수 없는 명장의 케이스. 북쪽으로 갈영, 서쪽으로 묵기추노, 남쪽으로 양나라&북해왕 연합군을 모두 평정하고 6진의 난 이후로 어지러워진 북위를 안정시켰지만 하음의 변으로 선무영태후 이하 문치에 찌들었던 황족고관들을 몰살시키는 등 공포정치로 반감을 샀기에 효장제에게 숙청. 이후로 일족인 이주조 등의 행적은 동탁-이각&곽사 등의 관계와 다를바 없다.

3.2.2.6. 수·당[편집]


3.2.2.7. 오대·십국 시대[편집]


3.2.2.8. 송·요·금[편집]

  • 가사도[28]
  • 진회 - 악비를 죽인 만악의 근원. 중국 역사에서 간신의 대명사 중 하나.

3.2.2.9. 명[편집]

  • 위충현 - 중국 역사상 최강, 최악의 간신이자 환관.

3.2.2.10. 청[편집]


3.2.2.11. 현대[편집]


3.2.3. 역신[편집]



3.2.3.1. 하·상·주[편집]


3.2.3.2. 춘추·전국 시대[편집]

  • 투월초 - 탁월한 무예솜씨에 비해 간사하여 젊은시절부터 삼촌인 투누오도가 흉상이 있다고 꺼렸다. 초목왕 때 승승장구하며 왕공가인 약오씨의 관례에 따라 영윤에까지 올랐지만 초장왕 때 기존 귀족들의 권한 제한 정책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약오씨 전체가 풍비박산났다.

3.2.3.3. 진·한[편집]


3.2.3.4. 삼국시대[편집]

  • 동탁 - 배송지가 삼국지의 주석으로 이르기를 동탁, 원소, 원술, 유표는 후한의 4대 간신이자 4대 역적이라 했다. 4명 모두 황제의 제위를 탐냈으며 그 중 원술은 실제로 칭제했고 유표는 복장과 수레 등에서 황제의 격식을 차리는 등, 실질적인 칭제나 거의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 이각곽사, 장제, 번조 - 이 셋은 꼭 한 패키지로 묶여서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이놈들의 정체는 그냥 동탁의 하위호환이었다. 기존에는 장제의 간신 여부가 애매하다고 적혀 있었으나, 사실 장제가 떨어져나간 건 이각이 번조를 살해한 이후이다. 그 전까지는 이각과 뜻을 같이했다.
  • 종회 - 종요의 아들이자 종육의 동생이다. 촉 정벌 당시 제갈서를 모함해 휘하 군사를 빼앗아 본인이 군사를 독점했고, 등애가 먼저 유선의 항복을 받자 오히려 등애를 모함하여 압송하게 한 뒤 익주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위관에게 진압되었다.
  • 조조
  • 유비△ 유씨라 하더라도 스스로 한중왕에 오르는 월권 행위를 보였으며,[29] 천자만이 둘 수 있는 태부를 고작 왕 따위가 임명하기도 하였다. 조비가 헌제에게 선양받자 멀쩡히 살아있는 헌제가 조비한테 죽었다고 속이면서 본인이 황제로 즉위했다.

3.2.3.5. 남·북조 시대[편집]

  • 후경 - 양나라의 간신. 양무제 소연의 실정을 틈타 반란을 일으켜 양나라를 멸망으로 몰아넣었다.
  • 이주조, 이주세륭, 이주중원, 이주천광, 이주도율 - 이주영 사후 반역을 도모했던 일족들. 그래도 막대한 공적에 찬탈의 의사를 아직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이주영에 비해 천자 시해라는 명백한 죄악이 있는 이들은 얄짤없다.[30]

3.2.3.6. 수·당[편집]


3.2.3.7. 오대·십국 시대[편집]


3.2.3.8. 송·요·금[편집]

  • 흘석렬호사호 - 금나라 시대의 간신. 한탁주의 개희북벌 당시 남송군을 격파했으나, 평소 포악하고 잔인한 성품 때문에 악명이 높은데다가 몽골군을 방어하는 데 실패하여 위소왕과 황제의 측근들이 호사호를 처벌하려 하자 호사호가 반란을 일으켜 위소왕을 죽여 버렸다.

3.2.3.9. 명[편집]

  • 유근 - 명나라 정덕제 때의 환관. 황제의 총애를 믿고 부정부패와 매관매직을 일삼다 나중에는 간덩이가 부어 모반을 꾀했으나 발각되어 무려 6천 번을 칼질당한 능지형에 쳐해진다.

3.2.3.10. 청[편집]


3.2.3.11. 현대[편집]

  • 린뱌오 - 마오쩌둥의 개노릇을 자처하여, 대륙에서 국민당을 몰아냈고, 문화대혁명을 주도하는 등 반동행위로 일관. 말년에는 권력욕에 취하여 마오조차 암살하려고 시도했다가 발각되고 소련으로 도주하다 폭사. 한간으로도 등록되어 있다.

3.3. 일본사[편집]



3.4. 몽골사[편집]


  • 카마 - 원 혜종 대의 간신. 기황후의 총애를 얻어 명재상 토크토아를 실각시킨 뒤 독살하는 데까지 개입한다.

3.5. 기타 지역[편집]


  • 아브넬 - 이스라엘 왕국의 군주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필리스티아와 전쟁에서 전사하였고 사울의 부하장수였던 아브넬은 사울의 4번째 아들이었던 이스보셋을 왕위에 앉혔다. 이후 권력의 대부분을 장악하였으며 다윗에게 대항하여 전쟁을 치렀으나 패배하였고 사울의 후궁까지 범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이스보셋이 "이것 보시오, 어찌 돌아가신 부친의 첩실과 잠자리를 같이 한 겁니까?"라고 기가 막혀서 따지자 오히려 크게 화를 내며 "내가 사울의 개 대가리란 말이냐? 고작 음탕한 여자 하나때문에 날 내치려 해?!"라고 악을 쓴 뒤 다윗에게 투항하려 하였으나 다윗의 부하장수 요압에게 죽임을 당한다.[31]
  • 요압 - 다윗이 유다 왕에 즉위한 이후부터 사실상의 다윗 군의 사령관으로서 크고 작은 주요 전투들을 수행하였으며 나가서 싸웠다 하면 족족 승리를 거머쥔 뛰어난 명장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권력을 탐한 비열한 권력자라는 이중적인 면을 지닌 독특한 인물이다. 다윗 왕 말년까지 이스라엘 최고의 권신으로 살았지만 그동안 쌓아온 악행이 솔로몬을 통해 한꺼번에 되돌아오면서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 인물.
  • 세야누스
  • 루카스 노타라스 -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문서 참조.
  • 플라비우스 리키메르 - 서로마 제국 멸망의 1등 공신, 지나친 권력욕으로 로마를 부흥시키려 노력했던 황제들을 마구잡이로 시해하고 로마제국의 영토를 이민족에 넘겨주는 등의 매국행위를 일삼아,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 마요리아누스 등이 간신히 제건한 제국의 역량을 완전히 박살낸 인물로 평가받는다.
  • 윌리엄 롱챔프 - 리처드 1세의 섭정이었으나 하라는 통치는 안하고 축재에만 신경써서 쫓겨난다.
  • 1대 버킹엄 공작 조지 빌리어스
  • 마누엘 고도이 - 카를로스 4세 문서 참조.
  • 그리고리 라스푸틴 - 이 분야의 전설로 니콜라이 2세의 신임을 등에 업고 러시아 황실을 구워삶아 국정을 농단하고 민심 이반을 야기하여 러시아 제국을 멸망시킨 장본인이다. 얼마나 주위에서 라스푸틴을 미워했는지 결국 암살당했다.
  • 에리히 루덴도르프 -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를 꼭두각시로 두고 자신이 정권을 좌지우지했으며 전후에도 배후중상설을 퍼뜨렸다. 전권을 쥔 한 명의 독재자가 국가와 결합해 국가 동력을 제한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점에서 원류 파시즘의 선구자로도 꼽힌다. 심지어 독일 제국 멸망 이후에도 뮌헨 폭동에서 아돌프 히틀러를 돕고, 그의 말을 받아들여 대선에 출마하기까지 했다. 정작 이 때는 히틀러와 사이가 틀어지던 시기였고, 힌덴부르크가 히틀러를 총리로 기용하는 것에 극구 반대한 인물이기도 하다
  •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 하일레 셀라시에가 총애하던 신하였으나 쿠데타를 일으킨 뒤 시해하였다. 물론 하일레 셀라시에가 민심을 잃어가고 있긴 했지만, 멩기스투는 무능해서 그 황제보다도 못한 실정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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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리만 차지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신하.[2] 아첨을 떨며 목숨을 부지하려 드는 신하.[3] 온갖 악한 술수를 부림에 거리낌이 없는 신하.[4] 왕에게 반기를 드는 신하.[5] 나라를 망하게 하는 신하. 그 매국노 이완용도 망국신이다.[6] '군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군주의 권위를 일부러 추켜세우는'이 적당한 말인지도 모르겠다.[7] 흔히 말하는 예스맨[8] 이는 멋들어진 앞서의 정의에도 어느 정도 허점이 있음을 보여준다.[9] 아스퍼거 증후군 등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하거나 아니면 눈치, 배신, 사기 등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꿰거나 기회만 되면 타인을 뒷통수 치는 스킬이 저조한 사람이 조직생활에서 절대 살아남기란 불가능하다.[10] 필원잡기에 따르면, 어느날 집현전 학사들이 "왕안석을 어느 전기에 놓아야 하느냐"는 토론을 하니 대부분 사람들은 "간신전에 놓아야 한다"고 했으나 후에 사육신의 한 사람이 되는 유성원만이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후에 송사(宋史)가 조선에 들어오니, 역시 왕안석이 간신전에 있지 않았다고 한다.[11] 그런데 이게 또 애매한게, 한명회신숙주와 함께 소위 세조의 원상집단의 리더로 그들의 세력이 강해질수록 세조는 이들을 통해 관료들에게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관계였고 세조도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한명회, 신숙주, 권람 등에게 특권을 부여했다. 물론 세조 치세 말기로 가면 세조도 이들의 세력을 견제하기 시작했지만... 또 한명회의 권력행사가 세조의 권력을 심하게 침해했다고 보기는 힘든 게, 이시애의 난 때 세조는 한명회와 신숙주를 뻔히 헛소문인거 아는 내통 소문을 이유로 잡아 가두고도, 나중에 무죄로 밝혀져 풀어주면서 데꿀멍하기는 커녕 "니들이 알아서 조심했으면 이런 일 없었지!"라고 큰소리까지 쳐댔다. 물론 이건 한명회에게 권력이 없던 게 아니라 세조의 왕권이 개쩔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12] 일단 현대까지 널리 통용되고 있는 한자성어 중에서만 보자. 근묵자흑, 근주자적, 유유상종, 맹모삼천지교 등등.[13] 단 프랑스 대혁명 원인은 왕실과 귀족의 사치가 아니라 국가부도위기에도 국토40%나 차지한 귀족들이 면세특권을 고집하는 추태에 평민계급이 폭발한 것이다.[14] 광부고려에서 천민 계층에 속했다.[15] 다만 그 두 사건에는 군주의 의중이 포함되어 있기는 했다. 처형당한 주요 당사자들이 스스로 화를 자초한 일인 것도 맞고.[16] 갑자사화를 부추겼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임숭재가 미치지 않고서야 작정하고 사화를 의도했을 리는 없다. 임사홍의 정치적 적은 사림인데, 갑자사화의 명분인 "폐비 윤씨의 복수"는 기본적으로 폐비 당시의 세력들이자 임사홍의 동지들인 훈구세력을 겨누는 문제이기 때문. 훈구세력이 없어지면 오히려 사림의 힘이 더 커지고 임사홍의 입지는 오히려 줄어들 것이 뻔하다. 그 정도 계산도 못 하는 사람이라면 과거에 급제할 수도 없다. 연산군에게 자신의 충성을 과장하다가 그만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린 것 뿐이다.[17] 한쪽 발이 등자에 걸린 상태로 낙마했다. 말에게 짓밟히면서 끌러다니는 바람에 사람 모습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18] 어찌보면 기자헌은 정치적으로는 충신이라고 볼 수 있지만, 도덕성 면에서는 간신이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이이첨 같은 경우는 정치적으로는 간신이지만, 도덕성 면에서는 청렴했었다.[19] 결국 만주 청나라가 중국에게 먹혔으니 멀리보면 한중합병이다.[20] 이쪽도 만만치 않았으나, 조정을 휘어잡은 (신)안동 김씨에 비해 권력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네임드급 관리도 많지 못한 편이다.[21] 관중 사망 후 습붕이 재상이 되었으나 곧 죽고 이후 포숙아가 재상에 올랐는데 포숙아는 올곧은 사람이라 이때까지는 삼흉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는데 오히려 융통성이 있었던 관중 때보다 더했다고 한다. 물론 포숙아도 죽고 환공의 고삐를 죌 마지막 보루가 사라지자...[22] 영안왕 고준(高浚), 평양왕 고엄(高淹), 낭야왕 추존 초공애제 고엄(高儼), 곡률광 처형[23] 이때문에 그의 아들인 조군언에게까지 불똥이 튀는데 수나라 시절 뛰어난 문재에도 중용되지 못하고 홀대받다가 결국 이밀 수하에서 수나라 전복에 협력했다.[24] 숭정제는 의심이 많아 17년간 재상을 50명이나 갈아치웠다.[25] 이 경우는 당대부터 평가가 갈렸다. 민생을 안정시키고 황음무도한 군주를 폐위한 다음 명군을 세운 공로가 있기 때문이다.[26] 손권의 장남이었던 손등의 아들이다.[27] 다만 제갈각은 자기가 자기 무덤 판 것도 있다.[28] 중국사에서는 평가가 엇갈린다.[29] 유비는 경제의 후손으로 후한에서는 황족 취급을 받지 못했으며, 후한에서는 광무제의 후손이 아니면서 왕위에 오른 유씨는 없는 상황이었다.[30] 또한 관중의 명가 화음홍농 양씨를 효장제의 거사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몰살시켰는데 여기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도망친 양준언은 고환에게 의탁하여 이주씨 토멸에 앞장섰고 이후 북제의 명재상이 된다.[31] 아브넬은 이전 요압의 동생이자 다윗의 조카 겸 용사대의 일원인 준족의 소유자 '노루발' 아사헬을 죽인 악연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