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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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비아 공화국
Republic of The Gambia
[1]
파일:감비아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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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Progress, Peace, Prosperity
진보, 평화, 번영

상징
국가
For The Gambia Our Homeland
우리의 조국 감비아를 위해
역사
말리 제국의 속국 15세기
송가이 제국의 속국 16세기
대영제국의 식민지 및 보호령 선포 1821년 10월 17일
영국으로부터 독립 1965년 2월 18일
공화국으로 전환 1970년 4월 24일
세네감비아 연합 결성 1982년 2월 1일
세네감비아 연합 탈퇴 1989년 9월 30일
감비아 이슬람 공화국 2015년 12월 12일
감비아 공화국으로 국호 복귀 2017년 1월 29일
수도
최대도시
반줄
세레쿤다
면적
11,295km²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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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인구
2,753,184명(2023년) | 세계 141위
민족 구성
만딩카족 34.4%
풀라족 24.1%
월로프족 14.8%
졸라족 10.5%
세라훌리족 8.2%
세레르족 3.1%
만자고족 1.9%
밤바라족 1.3%
아쿠 마라부족 0.5%
기타 1.5%(2013년)
인구밀도
208명/km²(2019년)
출산율
5.25명(2020년)
공용어
영어
종교
이슬람교 90%
기독교 8%
토착 신앙 2%
군대
감비아군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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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구
1시 5구

43군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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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공화제, 단일국가, 대통령중심제
민주주의 지수
4.47점, 혼합된 체제(2022년)
(167개국 중 102위)
국가 요인
대통령(국가원수)
아다마 배로
부통령
(Muhammad B. S. Jallow)
의회의장
파바카리 자타
(Fabakary Jatta)
여당
국가인민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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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시장경제
명목 GDP
전체 GDP
$16억 4,424만(2018년)
1인당 GDP
$712(2018년)
GDP
(PPP)

전체 GDP
$39억 9,047만(2018년)
1인당 GDP
$1,706(2018년)
수출입액
수출
$1억 7,400만(2017년)
수입
$11억 6,000만(2017년)
외환보유액
$1억 9,200만(2018년)
신용 등급

화폐
공식 화폐
감비아 달라시
ISO 4217
GMD
국가 예산
1년 세입

1년 세출


ccTLD
.gm
국가 코드
GM
국제 전화 코드
+220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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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0
도량형
SI 단위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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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교현황
대한민국: 1965년 4월 21일
북한: 1973년 3월 2일
유엔 가입
1965년 9월 21일
무비자 입국
대한민국→감비아: 90일
감비아→대한민국: 비자 필요

여행경보
여행자제
전 지역[코로나19]

위치
파일:감비아 위치.svg



1. 개요
2. 역사
2.1. 독립 이전
2.2. 독립과 자와라의 독재
2.3. 야햐 잠미의 독재
2.4. 잠미의 실각 이후
3. 정치
4. 경제
5. 감비아의 행정 구역
6. 사회
6.1. 언어
6.2. 종교
6.3. 문화
7. 스포츠
9. 국가
10. 창작물에서
11. 교육



1. 개요[편집]


아프리카 대륙 서단에 위치한 세네갈에서 감비아 강을 따라 어귀로 나가다 보면 만나는 나라.

수도는 과거 배서스트(Bathurst)라고 불렸던 반줄(Banjul). 그러나 반줄이 서북 지역에 치우쳐 있는 데다가 면적도 한국의 1개 구 정도로 좁고 강 건너편 지역은 다리가 따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데다가 행정구역도 별개로 분류되기 때문에 제일 대도시는 반줄 근처에 있는 세레쿤다(Serekunda)이다. 다만 세레쿤다도 넓은 의미에서 반줄시이기는 하다.

남아프리카에 있는 잠비아와는 이름이 비슷해서 혼동하기 쉽지만 전혀 다른 나라다. 우연히 국명이 비슷한 경우이며, 실제 지리상으로도 두 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는데 짐바브웨 위에 위치한 국가가 잠비아다.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서아프리카 4개 국가(감비아, 시에라리온, 가나, 나이지리아) 중 하나다. 그 영향으로 감비아를 포함한 이들 나라들은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했다.

대륙에 위치한 국가 중 최고봉이 가장 낮은 나라이다. 가장 높은 Sare Bissou Hill의 높이가 겨우 46m로 바티칸 시국의 바티칸 언덕보다 낮다!


2. 역사[편집]



2.1. 독립 이전[편집]


원래 이 지역은 말리 제국송가이 제국의 일부였으나 16세기부터 포르투갈을 시초로 유럽 열강들이 서로 세네갈/감비아 강과 바닷가 여기저기에 요새와 무역소를 세우고 해당지역의 무역권을 두고 경쟁하기 시작했다. 1677년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세네갈에서 몰아내면서 지역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후 프랑스와 영국이 이 지역의 패권을 두고 경쟁했는데 1758년 7년 전쟁 와중에 영국이 세네갈 지역의 프랑스 정착지를 모두 점령하면서 주요 무역루트를 전부 장악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1783년 미국 독립 전쟁에서 영국이 패전한 결과, 원래 영국소속이었던 감비아 강 유역의 정착지를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프랑스가 갖게 되었다.[2]

1821년에 영국은 이 지역을 자국의 식민지 보호령으로 지정했지만, 19세기에 이르르면 영국은 이미 프랑스령 세네갈에 포위된 감비아에서 더이상 뭘 할 수가 없었고, 프랑스는 주변 영토를 장악하면서 꾸준히 프랑스령 세네갈을 넓혀나갔다. 결국 1889년 기존의 정착지들과 그 영향권 정도의 애매한 구분을 넘어서 영국과 프랑스 간에 명확한 식민지 국경협상이 맺어졌고, 이게 현재의 세네갈-감비아 국경으로 굳어진다. 한편 19세기 초 노예무역을 금지한 영국은 이 지역에서 미국인 노예상들과 전투를 벌이면서 미국에 팔려갈 뻔한 노예들을 이 지역에 정착시켰고 이들이 현재의 감비아인들의 조상이 되었다.

이런 역사 때문에 대부분 프랑스의 식민지들이 많았던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감비아는 가나, 시에라리온, 나이지리아와 함께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몇 안 되는 서아프리카의 4개국들 중 하나이다.

사실 이 지역은 세네갈과 언어를 비롯한 문화적, 종족적으로도 차이가 없다. 그리고 감비아도 세네갈과 함께 역사적으로도 졸로프 왕국 소속이었는데 이 왕국은 감비아, 세네갈, 기니에 있었다가 풀라족들에 의해 멸망당했다. 이후 유럽 열강들의 아프리카 식민지 침탈 과정에서 세네갈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고, 감비아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별개의 나라들로 나뉘었던 것이다. 이런 역사 때문에 국경에 이웃한 나라가 세네갈 한 나라 밖에 없으며, 세네갈에 완전히 둘러싸인 일방면해국(一方面海國)이다.


2.2. 독립과 자와라의 독재[편집]


초대 대통령 다우다 자와라는 1981년 쿠데타로 실각 위기를 겪었으나 세네갈의 개입으로 자리를 보전하고 1994년까지 장기집권했다. 민족적으로 동일한 세네갈[3]과는 1982년부터 1989년까지 세네감비아 연합을 구성하여 통일을 구상했지만, 공용어의 차이 등 여러 가지 문제로 통합에는 결국 실패하고 세네감비아 연합도 해체됐다.[4] 다행히 서로 전쟁이나 영토, 국경 분쟁 없이 두 나라 모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장기집권해 오던 자와라는 부정부패로 인해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1994년 젊은 육군 중위 야햐 잠미(Yahya Jammeh)가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다.


2.3. 야햐 잠미의 독재[편집]


야햐 잠미는 압도적인 지지로 2006년 3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자유를 보장하는데서는 비판을 받았다. 2010년 2월 유니세프의 한국인 대표 강민휘 씨를 특별한 이유 없이 추방시키기도 했다. 또한 대통령의 친척이 사망하자 사악한 주술 때문이라면서 마녀사냥이 발생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2010년 11월, 야햐 잠미 대통령은 아예 왕으로 등극하려고 한다는 보도가 있었으나관련 기사 이후 관련 동향은 없다. 같은 달에는 이란과 단교를 했다. 관련 기사 종교적 극단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이슬람교도가 많음에도 테러리즘 성향의 이슬람 단체를 추방하기도 했다. 2011년 4선에 성공했다. 2012년에는 27년 만에 사형집행을 재개시켰다. 2013년에는 영연방을 식민주의 잔재라는 이유로 탈퇴했다.

13개월 동안 국호가 '감비아 이슬람 공화국'이 된 적이 있었다. 2015년 12월 12일, 잠미는 "감비아는 전능하신 알라의 손에 있으며 오늘부로 우리는 이슬람 국가가 됐다."고 공개석상에서 선언했다. 이후 국명도 감비아 이슬람 공화국(Islamic Republic of the Gambia)으로 개칭. 당시 감비아 대통령실 사이트에서도 창 이름을 보면 '감비아 이슬람 공화국' 국호를 나타내고 있었다. 다만 잠미는 이슬람 국가로 하되 다른 종교에 대한 존중을 할 것이라고 선언해 이슬람 국가임에도 다른 종교에 대한 탄압은 없었고, 게다가 샤리아를 채택하지 않고 이슬람식 규율과 복장, 선교를 강요하지 않았기에 당시에도 감비아는 실질적으론 세속국가에 속한다. 그리고 잠미 정권이 실각하면서 국호도 2017년 1월 29일 도로 '감비아 공화국'으로 돌아갔다.

2016년 12월 2일 5선에 출마한 잠미 대통령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선거의 초기 개표 결과 잠미 대통령은 40%를 득표해 44%를 얻은 아다마 바로우 후보에게 패배가 유력한 상황이며, 잠미 대통령은 패배를 인정했다.# 하지만 선거 불복을 하면서 재선거를 치르겠다고 발표하면서 국제사회, 국내에서 비난을 받고 있다.# 12월 14일, 잠미를 지지하는 군인들이 선관위 출입을 봉쇄하고 길거리에 군경을 배치, 독재를 이어가겠다는 추태를 보이면서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좌절하고 분노한 감비아인들은 유튜브 및 sns를 통해 앞다퉈 잠미를 비난하는 온라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2017년 1월 17일에 잠미 대통령은 90일 간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감비아 정국에 혼란이 가중되고 감비아 장관 4명은 사퇴 후 세네갈로 도피했다.# 게다가 1월 18일에 감비아 의회는 대통령 퇴임 몇 시간을 남겨두고 잠미의 임기를 3개월 연장하기로 밝혔다.#

그러나 주변 서아프리카 국가들의 연합군이 잠미가 퇴진하지 않을 경우 무력 개입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최후 통첩을 내리자 잠미는 외국 망명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잠미는 1월 20일에 퇴진 직후 외국으로 망명할 예정이다. # 그런데 잠미가 기니로 망명하면서 국고를 빼돌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2.4. 잠미의 실각 이후[편집]


탈퇴했던 영연방에 2017년 2월 15일 재가입했다. # 감비아의 새 정부는 잠미 전임 대통령이 5천만 달러 이상의 국고를 횡령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2017년 4월 6일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바로우 대통령이 속해있던 여당이 국회 53석 중 31석을 가져가 과반 의석을 차지하면서 완전한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여당과 정당연합 관계이던 정당 4곳이 남은 22석 중 16석을 가져가 사실상 싹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들이 계속 우당으로 남을지, 아니면 여당과 마찰을 빚을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이다.

2018년 초에 독재 정권의 반인도범죄를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송코 전임 내무장관이 스위스 법정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야햐 잠미 전임 대통령이 재임 당시에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2021년 12월 4일에 감비아 선관위는 배로 대통령의 재선을 승인했지만, 야당측에서는 부정선거라고 주장했다.# 2022년 4월 9일에 실시된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했지만, 과반 확보는 실패했다.#


3. 정치[편집]




민주주의 지수
4.47점[5]
2022년, 세계 102위[6]
부패인식지수
34점
2022년, 세계 110위[7]
언론자유지수
59.82점
2022년, 세계 109위[8]
독립 이후 자와라의 독재가 있었지만, 야히야 잠미의 쿠데타로 인해 실각되었다. 쿠데타 이후 야히야 잠미는 1994년부터 집권했으나 2016년 대선에서 패배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이후 배로 대통령이 재선해서 집권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2021년 대통령 선거 때 구슬로 투표를 했다#


4. 경제[편집]


서아프리카경제
[[카보베르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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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보베르데]]
[[모리타니#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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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타니]]
[[세네갈/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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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
[[감비아#경제|

파일:감비아 국기.svg

감비아]]
[[기니비사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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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니비사우]]
[[기니#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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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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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시에라리온 국기.svg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경제|

파일:라이베리아 국기.svg

라이베리아]]
[[말리#경제|

파일:말리 국기.svg

말리]]
[[부르키나파소#경제|

파일:부르키나파소 국기.svg

부르키나파소]]
[[코트디부아르#경제|

파일:코트디부아르 국기.svg

코트디부아르]]
[[가나#경제|

파일:가나 국기.svg

가나]]
[[토고#경제|

파일:토고 국기.svg

토고]]
[[베냉#경제|

파일:베냉 국기.svg

베냉]]
[[나이지리아#경제|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

나이지리아]]
[[니제르#경제|

파일:니제르 국기.svg

니제르]]


감비아의 경제 정보[9]
인구
2,487,000 명[10]
2022년, 세계 141위
경제 규모(명목 GDP)
21억 6,600만 달러
2022년, 세계 183위
경제 규모(PPP)
67억 9,200만 달러
2022년, 세계 171위
1인당 명목 GDP
844 달러
2022년, 세계 184위
1인당 PPP
2,646 달러
2022년, 세계 177위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
85.0%[11]
2020년


5. 감비아의 행정 구역[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a-map.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heGambia_Divisions.png
감비아는 1개의 시와 5개의 지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 반줄 (Banjul): 수도
  • 강 상류 구 (Upper River)
  • 강 중류 구 (Central River)
  • 강 하류 구 (Lower River)
  • 북강둑 구 (North Bank)
  • 서부 지방 (Western)

최대도시 세레쿤다는 반줄 구와 서부 지방에 걸쳐 있다.

딱 강 유역만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유럽의 아프리카 침략 당시 영국이 강 유역만 차지했다가 세네갈과 감비아가 따로 독립했기 때문이다.


6. 사회[편집]


기니기니비사우 등 다른 국가에 비해서는 그래도 좀 나은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다. 잠미 집권 당시 취약국가지수도 62위에 불과하여 아프리카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 다른 국가와 달리 정치적으로는 그럭저럭 안정되어 있고 외부 개입으로 인한 혼란도 없다.

문맹률이 높아서 선거에서는 투표용지를 사용하는 대신 구슬로 투표한다고 한다. 관련 글.


6.1. 언어[편집]


공용어는 영어지만, 월로프어, 만딩카어, 소닝케어 등 일부 소수 언어 사용자가 존재하고, 국토가 세네갈에 둘러싸여 있어서 프랑스어가 일부 쓰이기도 한다. 또한 감비아는 프랑코포니 참관국으로 가입해 있다.


6.2. 종교[편집]


이웃 세네갈과 마찬가지로 감비아도 대부분의 주민들이 이슬람교를 믿는다. 국민들 중 90% 이상이 무슬림이라 이슬람권 국가로 분류함에도 불구하고 국교를 정한 바 없다. 그 밖에 기독교와 토속신앙이 있다. 이슬람 휴일과 기독교 휴일이 모두 공휴일이다.

감비아의 이슬람교는 세네갈과 마찬가지로 샤머니즘수피즘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수피즘의 영향이 강한 편이다. 종교적으로 감비아는 관용적이고 세속 경향이 강하다. 다만 잠미 전 대통령의 집권 시기 한때[12] 13개월 동안 감비아의 국명이 '감비아 이슬람 공화국'으로 바뀐 적도 있었다. 잠미가 물러난 뒤에는 다시 감비아 공화국이 되었다.


6.3. 문화[편집]


감비아는 인사가 매우 길기로 유명하다. 한국에서 '안녕하세요?'나 영어의 'Hello'처럼 짧은 인사말이 아니다. 감비아에서는 상대방을 만나면 우선 '당신에게 평화가 함께하기를'로 시작하고, 상대방도 '당신에게도 평화가 함께하기를'이라고 말한다. 그 이후로는 가족들은 어떤지, 경제적 문제는 어떤지 등 대화를 나누다가 마지막에는 '좋아요, 신께 감사합니다.'로 끝난다. 이렇게 인사를 하니 보통 1~2분 정도 걸리며 짧아도 30초 정도는 된다.

또한 감비아에서는 어른 눈을 똑바로 보면 존경심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러면 안 되고, 어머니가 아닌 여자 어른은 아줌마, 아버지가 아닌 남자 어른은 아저씨라고 부른다.


7. 스포츠[편집]


아프리카 국가답게 축구인기 있으며 2005년 17세 이하 월드컵때 감비아 응원단이 경기가 끝나고 도착할 예정이어서 경기를 못 볼 상황이 되자 제대로 된 시간에 도착해서 볼 수 있도록 대통령의 지시로 전세기가 연료가 떨어졌다고 관제탑에 거짓보고를 하여 경기가 열리는 곳 근처에 비상착륙해서 경기를 보았다. 관련 기사

또한 2007년 FIFA U-20 월드컵에서 1위인 멕시코에게 감비아는 0-3으로 완패했지만, 포르투갈을 2-1로 물리치며 조 2위로 16강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4강에 진출한 오스트리아에게 16강전에서 1-2로 져서 탈락했지만... 그밖에 2010 남아공 월드컵 지역예선에선 최종예선에 진출할 하기도 했다.

한편 한국인에게 잘 알려져 있는 축구선수로는 EPL의 스완지 시티에서 활약했고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도 2020년에서 2022년까지 뛰었던 모두 바로우가 있다. 2020 시즌 막바지 전북과 우승 경쟁 중이던 울산 현대 축구단을 상대로 김기희의 백해딩 실수를 골로 잘 연결해 내면서 더욱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 또한 평택 시티즌에서 뛰었던 압둘라이 고메즈도 있다.

2023 FIFA U-20 월드컵 아르헨티나에서는 한국과 같은 F조에 배정되었으며, 같은 조 프랑스, 온두라스를 이기고 한국과 3차전에서 비기며 승점 7점을 기록, 조 1위로 16강전에 진출했다. 16강 상대는 우루과이다.

이 나라의 국가대표팀에 관한 사항은 감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8. 외교[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감비아/외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국가[편집]





감비아의 국가 <우리의 조국 감비아를 위해>는 1965년에 감비아의 국가로 제정되었다.

영어
For the Gambia, our homeland, we strife and work and pray. That all may live in unity, freedom and peace each day.
Let justice guide our actionsto work man's common good, and join our diverse people, to proof man's brotherhood.
We pledge our firm allegiance, our promise we renew. Keep us, great God of nations, to the Gambia ever true.

한국어
우리의 조국, 감비아를 위하여 우리는 애쓰고 일하며 기도한다. 그것들이 조화할 때 자유와 평화는 매일 함께 하리라.
정의는 우리의 행동을 이끌어 준다.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모두가 함께함은 모두의 형제애에 대한 증거이다.
우리는 확고한 충성을 맹세하고, 우리는 새롭게 변화할 것을 약속한다. 위대한 하느님이 우리의 나라에 계속 있는 한 감비아는 항상 진실되리라.


10. 창작물에서[편집]


미국에서 '뿌리'가 처음 출간되었을 때 쿤타 킨테의 고향이 감비아라는 것이 알려져 국가단위로 유명해졌다. 이 이름을 딴 유네스코 세계유산 쿤타 킨테 섬도 있다. 감비아에 있는 단 둘 뿐인 세계유산인데 다른 하나는 세네갈과 공동 등재했기 때문에 감비아 단독 등재된 세계유산은 이 섬이 유일하다. 인접한 모리타니와 비교하면 다소 적은 세계유산 개수이다.

11. 교육[편집]


감비아 내에는 두 개의 대학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감비아 대학(University of The Gambia, 이하 UTG)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국제 대학 서아프리카 캠퍼스(American international university west africa)이다.

UniRank[13] 기준 UTG의 세계순위는 10418위이며, 미국 국제대학 서아프리카 캠퍼스는 세계순위 10660위이다.

UTG는 세레쿤다에, 미국 국제대학 서아프리카 캠퍼스는 반줄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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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어에서 이 나라의 이름 앞에는 정관사를 반드시 붙인다.[코로나19] 외교부 해외안전여행[2] 이때 감비아 강에서 운용하던 영국의 전열함 대포가 닿는 지역까지가 영국의 영토가 되었다는 일화도 있지만 실제 전열함 사거리보다야 감비아 영토의 폭이 넓기에 그냥 지어낸 얘기로 보인다. 딱히 포 사거리가 닿는데까지 우리 영토 그딴얘기는 없었고. 영국이 프랑스령 세네갈을 점령한 건 7년 전쟁 때랑 나폴레옹 전쟁 때 두번인데, 7년 전쟁때는 보다시피 그냥 프랑스령 세네갈 전체를 접수했고, 나폴레옹 전쟁 때는 전쟁 끝나고 나서 그냥 반환한 것이다.[3] 프랑스의 식민지였다.[4] 드물게도 세네감비아 연합은 지도층이 추진했지만 민중들의 반감이 더 셌다. 당시 프랑스와의 무역에 특혜를 준 세네갈과 상대적으로 자유무역을 허락했던 감비아 간의 암무역이 성행했는데, 특히 인근 지역 감비아 주민들은 연방 성립으로 인해 줄어든 수입과 수백년간 이어진 분단으로 인한 소속감 부재로 인해 연방 지속에 반감이 큰 편이었다. 반면 각국 지도층은 쿠데타나 분쟁으로 인한 갈등요소 때문에 연방을 선호했으나 이반한 민심 수습을 위해 감비아 측에서 연방 지속을 거부함으로써 결국 갈라질 수밖에 없었다.#[5] 야히야 잠미가 물러난 이후 민주주의 지수가 2점대에서 4점대로 상승했다.[6] 10점 만점이다. 점수가 높을수록 민주주의가 잘 실현되고 있다는 뜻이다.[7] 100점 만점이다. 점수가 높을수록 부패도가 낮아 청렴하다는 뜻이다.[8] 100점 만점이다. 점수가 높을 수록 언론의 자유도가 높다는 뜻이다.[9] https://en.wikipedia.org/wiki/Economy_of_the_Gambia [10]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and_dependencies_by_population [11]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public_debt [12] 2015.12.~2017.1.[13] 4년제 대학들만 랭크를 매기는 사이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