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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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호
강거선우(羌渠單于)

난제(攣鞮)

강거(羌渠)
생몰기간
???년 ~ 188년
재위기간
179년 ~ 188년
1. 개요
3. 창작물에서의 등장



1. 개요[편집]


고대 후한 말기 남흉노의 제18대 선우.

어부라호주천의 아버지이자 거비의 형으로 《후한서 집해》에 따르면 원굉의 《한기》에는 강심(羌深)으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성씨는 난제(欒提)였다.


2. 정사[편집]


178년 호징 선우가 즉위할 때 우현왕이 되었으며, 179년에 호징 선우가 사흉노중랑장 장수와 반목했다가 장수에게 살해되자 선우가 되었다.

184년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아들인 우현왕 어부라에게 군사를 이끌게 하여 황건적 토벌을 도왔다.

187년 중산 태수였던 장순선비족을 이끌면서 한나라반란을 일으켜 여러 을 공격했는데, 영제가 군사를 일으켜 유주 유우에게 배속해 반란군을 토벌하게 하자 좌현왕을 보내 유주로 나가도록 했다.

188년 흉노 내부에서 끊임없이 한나라를 위해 군사를 동원하는 것을 두려워 해 우부의 혜락, 휴저각호의 백마동이 100,000여 명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강거 선우가 공격을 당해 죽임을 당했고, 반란을 일으킨 이들은 수복골도후(須卜骨都侯)[1]를 선우로 삼았다. 살해당한 강거 선우의 뒤는 아들인 어부라가 이었다.

후한에 예속되어 번병으로 활동했던 남흉노의 당시 상황과 분열을 알 수 있는 역사적인 인물이다.


3. 창작물에서의 등장[편집]


소설 《삼국지 여포전》에서는 정원의 요청으로 여포를 공격하기로 했으며, 정원을 만나면서 그의 휘하에 등고가 없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는데, 등고가 없으면 정원을 두려워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곽태와 함께 여포군을 공격했지만 여포에게 직접 사로잡혔다가 장료에게 참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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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골도후는 이름이 아니고, 흉노 수복씨족의 수령을 일컫는 명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