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건(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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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강건
姜健 | Kang Kon


파일:강건.jpg

본명
강신태(姜信泰)
출생
1918년 6월 23일
경상북도 상주군
사망
1950년 9월 8일 (향년 32세)
북한 점령치하 경상북도 안동시
최종 국적
[[북한|

북한
display: none; display: 북한"
행정구
]]

종교
무종교 (무신론)
최종 계급
중장
주요 보직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정당

파일:조선로동당 한글.png


1. 개요
2. 생애
3. 장의위원회 구성
4. 여담



1. 개요[편집]


본명은 강신태(姜信泰). 북한의 군인, 정치인.

상당수의 혁명 1세대 정치인, 군인들이 북한 쪽 출생인데 반해 강건은 혁명 1세대 중에서는 흔치 않은 남한 쪽(경상북도 상주군[1]) 출생.[2]


2. 생애[편집]


어린 시절에 만주로 이주한 후 1933년 항일유격대에 입대했고, 어학 실력과 유격전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여 쾌속 승진했다. 1935년에 편성된 동북항일연군에서 저우바오중의 부하로 활동했고, 그 과정에서 김일성을 만나 그의 최측근이 되었다. 1930년대 후반에 일본군의 대토벌로 항일연군에 위기가 닥치자 김일성과 함께 소련 연해주로 피신했다. 이후 김일성과 가까이 지내면서 소련 극동군 상위로 제88국제여단 2대대 정치위원으로 활동한 핵심 측근이다.

1945년 광복 이후 대다수의 항일빨치산 동료들이 입북할 때 강건은 최광, 김창봉, 임철수 등을 이끌고 옌벤으로 가서 중국공산당 연변위원회 서기 등 1년 정도 활동하다가 1946년 여름 귀국 후 조선인민군 창군 작업에 참여했다. 1947년 5월 조선인민집단군 제2 경보병사단 사단장(☆), 1948년 2월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1948년 3월 북조선로동당 중앙위원, 1948년 8월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1948년 9월 민족보위성 부상(국방부 차관에 해당하는 직책)(☆☆) 등 각종 직책을 역임하였고, 1948년 12월 21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김광협, 김달삼, 김웅, 김일, 전태룡, 최용진, 무정, 박달, 박훈일, 최광, 최현, 김경석과 함께 국기훈장 2급을 수여받았다. 이듬해인 1949년에는 국기훈장 제1급을 수훈했다.

1950년 6월 6.25 전쟁이 발발하자 총참모장으로 북한군을 이끌다가 9월 8일 고향에서 멀지 않은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지뢰 폭발 사고로 사망했다. 9월 9일, 공화국영웅 칭호가 추서되었으며, 장례식에서는 김일성박헌영이 직접 관을 운구했다. 그 이후, 대성산혁명렬사릉이 만들어지자 안장되었다.

6.25 전쟁 당시 전과를 올린 북한군 2보병사단이 근위 칭호를 받은 후, 2보병사단의 초대 사단장인 강건을 기리는 목적으로 '강건' 칭호도 수여받아 '근위 강건 제2 보병사단'이라는 이름으로 개칭되었고, 평양의 강건종합군관학교는 본래 제1군관학교였다가 사후 그의 이름을 따 개칭되었다. 또, 황해북도 사리원에는 강건대학과 부속 병원인 강건대학병원이 있다. '강건거리'라는 지명도 생겼다고 한다.

3. 장의위원회 구성[편집]


  • 박헌영, 최용건, 허가이, 김달현, 박일우, 홍기주, 최경덕, 박정애, 한설야, 남일.

4. 여담[편집]


김일성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에 대성산혁명렬사릉을 빼고도 그의 동상이 추가로 세워졌는데, 다른 빨치산들의 동상은 다 자기 고향에 세워졌지만 강건의 고향은 북한의 통치권 밖이었기 때문에 대신 사리원에 세웠다.

일각에서는 강성산이 강건의 아들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6.25 전쟁 당시 조선인민군 작전국장을 하다가 소련으로 망명한 고려인 유성철은 1990년 한국일보에서 연재한 증언록에서 강건이 강성산의 아버지라고 썼는데, 와다 하루키 교수는 그렇게 되면 강건이 강성산을 13세에 낳은 것이 된다며[3] 그의 증언에 의문을 표시했다. 유성철을 제외하곤 강건이 강성산의 아버지라고 하는 사람은 없으므로 낭설이 되어가는 분위기인듯 하다. 그의 자손들은 북에 남아 있으며 손자로는 강승진이 있다.

빨치산 출신 중에 어린 축에 속했는데도 북한군 초창기에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이라는 높은 직책을 맡은 것으로 보아 특별히 김일성의 신임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때는 안길이 일찍 죽지만 않았으면 김일성이 그에게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이라는 높은 직책을 맡겼을 것이다. 다른 빨치산계 인물들은 최용건이나 김책 등을 제외하면 6.25전쟁 시기에는 대개 군단장이나 사단장, 여단장 등의 직책을 맡았다.

2006년작 대하드라마 서울 1945에서는 배우 故 송종원 씨가 연기했는데 비중은 크지 않으며 대사도 없지만 모습은 확실히 보여주었다. 다만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당시 강건은 30대 초반의 젊은 청년이었음에도 고위 장령급 군관이라는 부분 때문에 어색함을 줄이기 위해서인지 나이가 많은 배우가 연기하여 5, 60대의 중후한 중년으로 묘사되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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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現 경상북도 상주시[2] 2008년에 사망한 북한 전 부주석인 박성철경상북도 경주시 출생이다.[3] 강성산은 1931년생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강성산의 방중 당시 인민일보에서 발표한 약력과 북한에서 공개한 애국렬사릉 묘비에서도 증명된다.[4] 같은 예로 김일성 역시 당시에는 30대 중반의 젊은 청년 나이였으나 당시 40대 중반의 중후한 느낌을 가지고 있던 배우 박철호가 연기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