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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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강관순 독립운동가.jpg

출생
1909년 4월 8일
제주도 제주 구좌면 연평리
사망
1942년 8월 6일
함경북도 청진시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296호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일제강점기 제주도에서 혁우동맹을 조직하고 조선공산당 제주도 야체이카의 책임자로 활동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2005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2. 생애[편집]


1909년 4월 8일 제주도에서 태어나 우도면에 있는 영명의숙에서 4년 과정을 수료한 후 1926년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후 영명의숙의 교사로 재직하면서 계몽극을 만들고 공연하며 야학을 통해 문맹 퇴치 운동을 하였다.[1]

1930년 3월 제주도 구좌면 세화리에서 제주청년동맹과 그 산하지부들이 일제의 탄압을 받고 활동이 어려워지자 조선공산당원인 신재홍, 오문규 등과 함께 사회주의 비밀조직인 혁우동맹을 창설하였다. 혁우동맹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사회주의 사상을 설파하고 대중들을 계몽시키기 위한 활동을 이어갔고 강관순은 청년부의 책임자가 되어 청년단원들을 포섭하였다. 1931년 6월에는 조선공산당 제주도 야체이카로 조직을 새롭게 정비하고 당외기관 책임자로 선임되었다.[출처]

제주도 야체이카는 주로 해녀들을 대상으로 항일의식을 고취시켜 독립운동 단체들을 지도하였는데 1932년부터 제주도 전역에서 일어난 해녀들의 항일운동도 지도하였다. 당시 제주 해녀들은 해녀어업조합이 어용화되고 해산물 매수가격을 둘러싼 부정이 일어나자 이에 항의하며 시위를 전개하고 1000여명이 세화주재소까지 몰려가며 여파가 거세졌다. 이에 일경은 관련자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였고 강관순도 강창보 등과 함께 배후로 지목되어 체포되었다.[출처]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룬 후 일가와 함께 함경북도 청진으로 이사하였으나 고문후유증으로 투병생활을 이어가다가 1943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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