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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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내각 부총리
강능수
姜能洙 | Kang Nung-su


파일:강능수 부총리.jpg

출생
1930년 2월 21일
사망
2015년 7월 20일
국적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정당

파일:조선로동당 한글.png

1. 개요
2. 생애
3. 참고문헌



1. 개요[편집]


북한의 정치인. 당내 예술전문가였다.

2. 생애[편집]


1930년 2월 21일, 태어났다. 젊어서 인민군에 복무한 이후 제대하여 김일성종합대학 조선문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문화 부문에서 사업하여 작가동맹중앙위원회 지도원, 당중앙위원회 창작실장, 작가동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4.15 문학창작단 단장 등으로 일했다. 1999년 9월 30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최재현의 뒤를 이어 신임 문화상에 임명되었다.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에 참석했으며 하페즈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사망했을때 시리아로 조문을 다녀왔다.

2001년 7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방문을 수행했다. 2001년 3월에 방북한 김한길 문화관광부 장관과 회담하였으며 2002년에는 임동원 대통령 특사를 맞이, KBS 교향악단과 MBC 교향악단의 방북 공연에도 참석하는 등 대남사업에도 두루 관여했다.

파일:강능수와 김한길.jpg
2001년 3월, 김한길 장관과 만나는 강능수

2003년 최고인민회의 11기 대의원에 선출된 것으로 시작으로 죽을 때까지 대의원을 지냈다. 2003년 11기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여운형의 딸인 려원구와 함께 부의장에 선출되었다. 2003년. 11기 최고인민회의가 소집되고 박봉주 내각이 출범하면서 최익규에게 문화상 자리를 물려주고 2004년부터 김일성화,김정일화위원회 위원장, 2006년 6.15공동선언 실천 북측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2006년에 전임 문화상 김진성이 6개월 만에 경질되면서 다시 문화상을 지냈다. 2008년 4월 최고인민회의 11기 6차 회의에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에서 소환되었다.

2009년 12기 최고인민회의가 소집되면서 문화상에 유임되었으나 2010년 2월, 중앙위원회 영화부장, 국가영화위원장으로 이동하면서 문화상 자리를 안동춘에게 물려주었다. 2010년 4월, 김중린 장의위원을 지냈다. 그러다가 2010년 6월, 최고인민회의 12기 3차 회의에서 김영일 내각이 붕괴되면서 김락희(1933), 전하철, 조병주, 한광복, 리태남과 함께 신임 부총리로 선출, 영화위원장 자리는 홍광순에게 물려주었다.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2011년 12월, 김정일 국가장의위원을 지냈다. 2014년, 부총리에서는 물러났으나 13기 대의원에는 재선되었고 조국전선 의장을 지내다가 2015년 7월 20일 사망하였다. 김정은이 조화를 보내주었다. 7차 당대회 개최 이전이었음에도 부고에 중앙위원회 위원이라는 직함을 달지 않은 것을 볼때 2012년 4차 당대표자회 시점에서 중앙위원회에서 소환된 것으로 보인다.

3. 참고문헌[편집]


  • 통일부 정세분석국 정치군사분석과,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 2017 (서울: 통일부,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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