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식

덤프버전 :

}}} ||

[ 펼치기 · 접기 ]
'''《1군》
72 김창현 · 73 오윤 · 74 문찬종 · 78 홍원기 [[감독#s-1.1|

]]
· 80 마정길 · 85 권도영 · 87 이승호 · 89 박도현
· 90 박정음'''

《2군》
70 김동우 · 76 채종국 · 81 설종진 · 82 김태완
· 83 노병오 · # 박준태


《잔류군》
# 오주원 · # 이병규

프런트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군입대선수등록선수
다른 KBO 리그 팀 명단 보기




강병식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4.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04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5번
필립스
(2001)

강병식
(2002~2004)


이정호
(2005)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6번
피어리
(2004)

강병식
(2005~2007)


팀 해체
{{{#fff [[우리 히어로즈|우리]] / [[서울 히어로즈|서울 히어로즈]] 등번호 36번}}}
팀 창단

강병식
(2008~2009)


문성현
(2010~2012)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33번
클락
(2009)

강병식
(2010~2012)


조용훈
(2013)
{{{#fff [[넥센 히어로즈|넥센]] / [[키움 히어로즈|키움 히어로즈]] 등번호 77번}}}
정민태
(2009~2012)

강병식
(2013~)


현역



파일:키움 강병식 프로필.png

키움 히어로즈 No.77
강병식
姜炳植 | Kang Byeong-Sik

출생
1977년 4월 23일 (46세)
서울특별시 광진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성동초 - 신일중 - 신일고 - 고려대
신체
182cm, 85kg
포지션
1루수, 좌익수, 우익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96년 2차 8라운드 (전체 59번, 현대)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 (2002~2007)
우리-서울-넥센 히어로즈 (2008~2012)
지도자
넥센 히어로즈 2군 플레잉코치 (2012)
넥센 히어로즈 2군-화성 히어로즈 타격코치 (2013~2014)
넥센 히어로즈 1군 타격보조코치 (2015)
넥센 히어로즈 1군 주루·타격보조코치 (2016)
넥센-키움 히어로즈 1군 타격코치 (2017~2023)[1]
고양 히어로즈 수석코치 (2023)[2]
키움 히어로즈 재활·잔류군 야수코치 (2024~)
병역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0~2001)[3]
응원가
동요 '괜찮아요'[4]
종교
불교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선수 시절
2.2. 프로 경력
3. 지도자 경력
3.1. 2017년
3.2. 2018년
3.3. 2020년
3.4. 2021년
3.5. 2022년
3.6. 2023년
3.7. 2024년
4. 연도별 성적
5. 기타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KBO 리그 키움 히어로즈 재활·잔류군 야수코치.


2. 선수 경력[편집]



2.1. 아마추어 선수 시절[편집]


신일고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상무를 거쳐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했다. 1996년에 신일고 시절에 2차 8순위 지명을 받았는데, 사실 신일고가 3관왕을 차지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1997년의 일이니, 그는 그 시절의 바로 직전에 학교를 다니고 졸업한 셈이다. 그래도 고려대학교로 간 것을 보면, 고교 시절 활약은 괜찮았다. 대학에서는 주로 외야수로 활약했다.

2000년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입대해서 2군 홈런왕을 차지하였다. 프로 경험이 없는 타자가 2001년 퓨처스리그 홈런왕이 되었던 것을 볼 때,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는 점은 확실했다. 그리고 각종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활약한 경력까지 이를 인정한 현대 유니콘스도 재정이 좋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2002년 계약금 1억 6,000만 원을 주고 팀에 입단시켰다.


2.2. 프로 경력[편집]


파일:attachment/강병식/kp1_2060829w4028.jpg
현대 유니콘스 시절

그러나, 2000년대 초반의 현대 유니콘스는 사기급 라인업을 자랑하는 강팀이었기에 주전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클리프 브룸바라는 거물 외국인 선수가 있었고, 이숭용도 건재하던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외야로 가자니, 여기에도 심정수, 전준호, 송지만 등 걸출한 선수들이 즐비했다. 결국 계속해서 2군에만 머물면서 실력이 정체되었다. 아주 가끔가다 1군 선발출장 기회를 잡기도 했지만, 1군에서 살아남기에는 수비가 너무 수준 이하였다. 그래도 대타로는 꽤나 괜찮은 성과를 보여줬기 때문에 꾸준하게 프로 엔트리에 남을 수 있었다. 한국프로야구 통산 대타 홈런 3위로 9개를 기록했다.[5]
파일:넥센 강병식.jpg
넥센 히어로즈 시절

과거 영광의 멤버들이 대부분 흩어지고, 팀도 넥센 히어로즈로 바뀐 후인 2010년에야 비로소 기회를 많이 부여받았다. 데뷔 후 처음으로 1군에서 100경기 이상 출장. 1군 107경기 300타석에 출전해 9홈런 30타점에 0.287의 타율을 기록했다. 그 공헌을 인정받아 전년 대비 2,700만원이 오른 8,000만원의 연봉도 받았다.

2010 시즌을 끝으로 고령의 이숭용이 주장직에서 사임하자 코칭스텝의 결정으로 주장직에 올랐다. 이숭용 외에도 송지만이라는 훌륭한 베테랑이 있었지만, 역시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였기 때문에 그보다 더 젊은 강병식이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2011 시즌에는 허벅지 근육통 때문에 일단 2군으로 내려간 상황이었다. 첫 주전을 차지한 전년도에도 좋은 활약을 해 11시즌도 기대를 받았지만 4월까지의 기록이 2할 타율도 안 되는 처참한 성적을 찍어 버렸다. 그나마 출루율은 꾸준히 3할을 유지했던 게 다행이다. 그래도 5월 3일 아킬리노 로페즈를 상대로 3:3 상황에서 투런 홈런을 작렬하여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5월 들어서 타율은 2할까지 끌어올렸긴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이후 다시 2할도 안되는 타격감을 보이면서, 타율 0.174로 2011 시즌을 마감했다.

당시 성적이 워낙 처참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1군에 잘 나오지도 못하다 보니 '왜 강병식이 주장이 됐지?' 하고 의문을 가지는 넥센 팬들도 많았다.

2011 시즌 이후 FA 자격을 얻게 될 예정이었지만 팬들은 강귀태와 강병식보다 다른 선수를 데려오는 걸 희망하고 있었다. 송신영이라든가.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결국 2011년 시즌에 거하게 삽질을 했기 때문인지 FA 신청을 하지 않았다. 이건 강귀태도 마찬가지. 송지만, 김수경도 FA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2012년에 이택근이 돌아오면서 그의 존재는 다시 잊혀져갔다.

2012년에도 주장이었지만 2군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고, 잠시 1군에 올라왔다가 결국 7월에 주장을 이택근에게 물려주고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구단과 합의하여 8월 11일 이후로는 남은 시즌을 2군에서 플레잉 코치로 뛰었다.

화려한 선수 생활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훌륭한 인성 그리고 성실함으로 선수들과 코칭스텝으로부터 신망이 두터웠다. 팀 특성상 선수 이동이 대단히 잦아 팀 케미 유지가 힘든데 강병식은 성적은 부족했을지언정 선수단을 하나로 뭉치도록 해 주었고, 온갖 욕을 먹으면서 넥센에 온 심수창, 박병호와 자주 대화하면서 무리없이 팀 분위기에 융화시켰다. 성적으로는 뛰어난 족적을 남긴 야구선수는 아니었지만 훌륭한 야구인이라는 평가에는 부족함이 없다.


3. 지도자 경력[편집]


2011 시즌 종료 후 김시진 감독을 위시한 코칭스태프가 꾸준히 코치직을 제의했다고 한다. 성공하지 못한 선수 생활에 강한 미련을 갖던 강병식은 2012 시즌까지 선수생활을 이어 갔지만, 같은 포지션의 1루수 박병호가 대단히 뛰어난 기량을 보였고 지명타자로 나온 오윤오재일이 시즌 초까지만 해도 맹타를 휘두르고 있었다. 결국 1군에서 이렇다 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2군에서 전전하자 주장직을 이택근에게 넘긴 뒤, 얼마 후 구단과 합의하여 잔여 시즌 동안은 플레잉 코치로 활동하게 됐다. 커리어는 부족했지만, 주장과 코치직을 먼저 제안받은 걸 보면 노력과 인품은 인정받은 셈.

그리고 시즌이 끝난 뒤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고, 곧바로 2군 타격코치로 선임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2군 코치 시절에는 평가가 매우 좋았다. 2군 선수들을 세세한 부분까지 짚어서 지도를 잘 한다는 증언이 2군 경기를 직관한 팬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으며, 선수들의 성향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있는 사진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또 2군 수위 타자들이 1군으로 승격 및 트레이드된 상태에서도 2군의 타격 성적이 최상위권을 랭크하고 있자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파일:attachment/강병식/2013070701000278500014341.jpg

2013년 7월 7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은퇴식을 가졌다. 이날 유난히 많은 2군 출신 선수들이 출장했는데, 스승의 은혜에 보답이라도 하듯 맹타를 휘둘렀다.

사고를 치거나 부상과 부진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선수들의 공백을 메우고자 2군에서 1군으로 올라간 문우람, 김지수, 안태영 등이 맹타를 휘두르는 활약을 보여줘 "병식매직"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거기다 전전 캡틴약밍아웃을 해 팀 이미지를 손상시킨 것과 대비되어 혀갤에서는 내 마음속의 영구결번 강병식이란 드립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2014 시즌 후 2군 타격코치 자리에 은퇴한 송지만이 선임되면서 1군 타격보조코치로 보직을 이동했다.

2016 시즌 후 심재학 타격코치가 수석코치로 승격되자, 1군 메인 타격코치가 됐다.


3.1. 2017년[편집]


2017 시즌 신인왕 이정후를 배출하고, 개인이나 팀이나 타격 스탯 상으로는 중상위권을 꾸준히 마크하고 있지만, 찬스에서 심각하게 물타선이 되는 점으로 인해 선수 개개인을 지도하는데는 일가견이 있으나, 팀 전체의 타격흐름을 조율하는 1군 타격코치로서의 면모는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이 부분이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인게, 강병식이 1군 메인타격코치가 된 2017년 이후 넥센타선이 개개인의 성적은 그럴듯 하나 찬스상황에서 효율이 심각하게 떨어졌다는 점이다. 당장 목동보다 넓다는 고척돔으로 옮기고 박병호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팀 장타력도 크게 줄었다는 2016년에도 팀 타율 2할 9푼, 팀 득점권 타율 3할 7리[6]를 기록했는데, 2017년에는 팀 타율과 팀 득점권 타율이 모두 2할 9푼[7]이다. 거기에 잔루가 심각하게 증가했는데, 2016년과 17년 사이 팀 총 타석 수는 10여개밖에 차이가 안나는데 잔루가 200개 가까이 증가했다. 이는 출루시킨 주자들을 불러들이는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2016년 같이 50홈런 치는 4번 타자가 없어진 것도 아니고[8], 오프시즌 중 선수단에 그 외에 다른 심각한 전력누수가 일어난 것이 아닌데도 이렇다.


3.2. 2018년[편집]


2018 시즌 박병호가 돌아왔음에도 찬스상황에서의 타격 부진[9]은 여전하며, 4월 초 넥센이 기아와 롯데[10]를 상대로 졸전[11]을 펼치며 5연패를 하자, 그 원인이 된 타선 부진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감독과 함께 비판받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타선이 다시 맹타를 휘두르자 욕이 줄어들었다.


3.3. 2020년[편집]


2020 시즌엔 9월 이후 타자들이 단체로 삽질을 거듭하다 보니 엄청나게 까이고 있다. 지난 19시즌의 좋은 타격 성적은 히어로즈 역대 최고의 타자 용병인 제리 샌즈 빨이라고 폄하당하는 중.


3.4. 2021년[편집]


2021 시즌에는 팀 타선이 4월 15일 기준으로 2할 2푼 2리로 물타선이 되는 바람에 2020 시즌 보다 더 신나게 까이고 있다. 투수 코치진이 여러 번 물갈이 되는 동안 단 한번의 보직 변경도 없어 타코판 홍원기 소리를 듣고 있다.[12] 후반기 팀이 이정후의 이탈로 인해 15경기 36득점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키움 팬덤에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시즌 팀 타격 WAR가 8위이고, 그 밑의 팀은 꼴지 다툼을 하고 있는 KIA 타이거즈한화 이글스인 것을 고려하면 가을야구 경쟁팀 중 타격이 가장 부진하다. 물론 그 분의 마구잡이식 야수 운용도 영향을 미쳤지만, 기본적인 타격 지도 면에서의 강 코치의 책임이 있음이 분명하다.


3.5. 2022년[편집]


2022 시즌 초반에는 키움 선수들의 인터뷰에서 강 코치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모습도 종종 나왔다. 하지만 그 뒤로 팀 타율 10위, 팀 타점 및 득점 8위, 팀 OPS 9위 등 주요 지표에서 최하위를 달리고 있어 타격 멸망의 주범으로 찍혔고, 온갖 해괴한 훈련이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팀의 타자 유망주들이 죽을 쑤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으며, 결정적으로 KT로 이적한 박병호가 전성기 시절의 몸통 스윙으로 시즌 초반부터 홈런 1위를[13] 달리는 모습에 반해 점점 정신 못 차리는 외국인 용병을 보며 팬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타선 내에서 이정후가 엄청난 하드캐리를 하고 있는데다 최상위권을 자랑하는 투수진, 특히 불펜 투수들 덕분에 팀 자체는 SSG, LG와 함께 엄청 선전하고 있어 강병식이 어느정도 묻히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다. 6월 이후로는 키움 팬들 사이에서 강병식을 투수코치(...)라고 부르는 등 아예 타격코치 취급조차 하지 않는 웃긴 밈까지 생겨버렸다. 그리고 불펜진이 지치면서 후반기 불펜 평자가 최하위를 기록하며 팀이 내리막을 걷자 2군으로 내리라는 팬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8월 25일 홍원기 감독이 분위기 쇄신차 송신영 투수코치를 2군으로 말소시키자 팬들 사이에서 차라리 강병식을 말소시키지 그랬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8월에 부진했던 키움 타선이 9월에 다시 반등하였는데 특히 9월 29일 문학 SSG 랜더스 전에서 9번 타자 송성문이 멀티 홈런 포함 6타점을 쓸어담았다.

2022 시즌 팀 최종 타격 성적은 타율 .236(리그 8위), 장타율 .302(리그 9위), wRC+ 75.9(리그 9위)로 대부분의 타격 지표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 이도형이 양반으로 보일정도로 평가가 매우 좋지 않았다.


3.6. 2023년[편집]


벌써 6년차지만 올 시즌에도 보직 교체 없이 타격코치를 맡게 되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답답한 팀 타격으로 키움 팬들에게 철밥통이라고 욕을 먹고 있다.[14] 7시즌 동안 1군 타격코치를 역임하고 있는데, 여태껏 한 것 없이 팀 타선만 홀라당 말아먹었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이도형도 저 정도는 아닐 정도로 심각하다.

결국 타격 부진의 책임을 지고 4월 11일 팬들의 바람대로 1군에서 말소되면서 고양(2군) 수석코치로 내려갔다. 공석이 된 1군 타격코치 자리는 기존의 보조코치를 맡던 오윤이 맡는다.

강병식 코치가 2군으로 내려간 이후에 키움 타격이 잠시 살아나는 듯 했으나, 얼마 안가 다시 죽어버리면서 키움 팬들은 이제 강병식 탓조차 못하게 됐다며 답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박주홍이나 주성원,박찬혁의 2군 타격 성적은 유의미하게 상승한것을 보고 몇몇 키움 팬들은 차라리 2군이 체질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3.7. 2024년[편집]


2023년 10월 15일 발표된 2024년 시즌 코칭스태프 명단에서 잔류군 야수코치로 보직을 옮긴 게 확인됐다. 하지만 키움 팬들 사이에서는 당장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아도 모자란데 어찌어찌 살아남는데 성공했다며 여전히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15]


4.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2000
현대
군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1
2002
89
.208
27
3
1
6
20
16
0
11
3
35
.281
.385
.665
2003
43
.138
9
0
1
2
11
6
0
12
1
17
.282
.262
.544
2004
16
.176
3
1
0
0
1
0
1
3
0
5
.286
.235
.521
2005
94
.247
45
10
0
6
20
25
2
27
4
44
.357
.401
.758
2006
93
.218
29
7
1
4
25
16
1
19
4
28
.333
.376
.709
2007
91
.274
37
4
0
4
17
11
0
13
0
24
.333
.393
.726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2008
우리
71
.269
32
8
0
4
17
12
0
14
3
18
.355
.437
.792
2009
서울
54
.250
19
4
0
2
14
9
2
13
3
21
.376
.382
.758
2010
넥센
107
.287
72
9
1
9
30
32
2
34
11
51
.391
.438
.830
2011
77
.174
29
8
1
2
17
16
2
15
2
53
.249
.269
.518
2012
26
.200
6
2
0
0
2
4
1
5
1
9
.333
.267
.600
KBO 통산
(11시즌)
761
.236
308
56
5
39
174
147
11
166
32
305
.334
.376
.710


5. 기타[편집]


  • 별명은 뵹식씨, 강캢 등이 있다. 뵹식씨는 '봉식씨~' 하는 사채 광고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다. 넥센 히어로즈 갤러리 한정으로 주자분쇄기, 주자살인마 라는 별명도 2010 시즌 자주 쓰였다. 루상에 주자가 없으면 타격이 김현수급이지만 만일 주자가 나가있으면... 또 못할 때는 강병신이 된다. 하필 초성도 같고, 그가 주장직을 맡았을 때는 '강캡 + ㅄ'이 되어 강캢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2군 타격코치가 된 후 넥센 히어로즈 2군이 불빠따를 앞세워 2군을 평정하자 갓병식이란 별명도 자주 쓰인다.

  • 강병식의 현역 시절 응원가 '괜찮아요'는 안태영이 이름만 바꿔서 물려받았는데, 안태영이 2군에서 있던 시절 강병식이 아껴줬다고 한다. 둘이 수비 포지션도 비슷하다. 우투좌타라는 점도 같고.

  • 강병식이 현역 시절 사용한 25(현대), 36(현대, 넥센), 33번(넥센)과 지도자 시절 사용하는 77번은 마치 이승엽 감독의 등번호를 연상케 한다. 이승엽 감독은 현역 시절 36번(삼성, 지바 롯데), 33, 25번(요미우리), 3번(오릭스)과 감독 데뷔 후 77번(두산)을 사용했다.[16] 우연히도 두 명의 포지션 역시 1루수이며 좌타자이다.[17] 하지만 이승엽이 감독으로 부임한 후 두산은 초반 승승장구하고 있지만[18] 강병식 코치가 지도하는 키움의 타격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6. 관련 문서[편집]


[1] ~4월 10일[2] 4월 11일~[3] 마해영의 경우처럼 프로 지명을 받은 뒤 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를 먼저 수행한 뒤 팀에 입단했다.[4] 넥센 히어로 안타 강병식! 안타 강병식! 안타 강병식! 넥센 히어로 안타 강병식! 날려버려 날려버려 안타 강병식![5] 1위는 이재주의 20개.[6] 팀 타율은 2위, 팀 득점권 타율은 1위이다. 팀 장타력이 떨어졌다는 평에도 불구하고 넥센이 정규시즌 3위를 기록한 원동력 중 하나.[7] 팀 타율은 4위, 팀 득점권 타율은 7위이다. 다만 1위팀인 기아를 제외하고는 2위부터 7위까지 차이가 6리 정도고 2할 9푼이 그렇게까지 낮은 수치는 아니긴 하지만, 작년에 비해 상당히 떨어진 상태다. 특히 9월 이후 이기고 있던 경기를 추가점을 못내서 뒤집힌 사례가 폭증함에 따라 이 부분이 훨씬 뼈아프게 다가온 것이 사실.[8] 물론 이 부분은 현재진행형 이었으므로 참작의 여지는 있다.[9] 팀 득점권 타율이 4월 12일 현재까지 2할 2푼 4리밖에 안된다. 당연히 꼴찌[10] 4월 11일 전까지 2승 11패로 그야말로 최악인 상태였다.[11] 4월 12일 경기에서는 선발투수 송승준이 허벅지 통증으로 2회 1사 후 급작스레 교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7회 2사 김하성의 안타가 나올때까지 퍼펙트로 꽁꽁 묶였다. 경기는 결국 12:0 완패.[12] 이 분은 팀의 대표적인 철밥통 코치였다가, 감독까지 승진했다. 이 때문에 차기 감독까지 예정된 게 아니냐는 말이 돌고 있다.[13] 5월 12일 기준 벌써 12개의 홈런을 쳤다.[14] 특히 4월 7일 경기까지 무홈런이다.[15] 다만 2023년 키움이 최하위로 시즌을 마쳐 대대적인 팀 개편이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팀을 떠나게 된 코치는 박재상 작전코치, 김지수 주루코치밖에 없고, 나머지는 기존 코치들의 보직을 조정하거나 은퇴한 박준태를 신규 코치로 선임하는 것에서 그치는 등 코칭스태프 개편에서 큰 차이가 없는 편이었다.[16] 3번만 제외하면 순서 상관없이 거의 비슷하다.[17] 강병식은 우투, 이승엽은 좌투.[18] 5월 이승엽 감독의 두산은 4월에 비해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0 03:32:47에 나무위키 강병식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