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부자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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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부자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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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동양방송 로고_White.svg 연기대상 대상
이낙훈
장미희
(1978년)[1]

강부자
(1979년)


-[2]
(1980년)

파일:KBS 로고.svg 연기대상 대상
나문희
(1995년)

강부자
(1996년)


유동근
(1997년)

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김혜자
홍세미
(1976년)

강부자
김윤경
(1977년)

김혜자
강효실
(1978년)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의원
강부자
姜富子 | Kang Booja


출생
1941년 2월 8일 (81세)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읍
(現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본관
진주 강씨#
신체
AB형
배우자
이묵원[1]
자녀
1남 1녀
학력
강경중앙초등학교 (졸업)
강경여자중학교 (졸업)
강경여자고등학교 (졸업)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 / 중퇴)
종교
불교 (법명: 보광화)[2]
데뷔
1962년 KBS 2기 공채 탤런트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14

1. 개요
2. 활동
2.1. 농심 아줌마
3. 이야깃거리
3.1. 축구 사랑
3.2. 마담뚜?
4. 출연 작품
4.1. 드라마
4.2. 영화
4.3. 연극
4.4. 방송
4.5. CF
5. 소속 정당
6. 선거 이력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배우이자 정치인.


2. 활동[편집]


1962년[3] KBS 2기 공채 탤런트로 경력을 시작했지만 새로 설립된 TBC로 이적하였으며, 주조연을 넘나들며 수많은 히트작에 출연하였다. 사실상 TBC의 간판 배우였다.[4] 1980년 TBC 폐국 당시에는 생방송 중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똑같은 무대에서 눈물을 보여 한때 방송출연 정지까지 당한 가수 이은하와는 달리 방송출연 정지까지 먹진 않았다. 그래도 상당한 압력을 받긴 했다. 황인용과 함께 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은 며칠 강부자 없이 파행 진행되다가 시청자의 항의로 복귀하기도 했다. 그러나 달동네라는 TBC, KBS 합병기 최고 인기 프로그램의 주연이라서 커리어를 지속할 수 있었다. 종영 이후 요즘기준으로는 잠깐 휴식 수준의 공백을 가졌는데, 쉴새없이 신규 작품에 중복 투입되는 전속 시절엔 이 정도 패널티만 해도 배우에겐 큰 부담이었다. 그럼에도 KBS 높으신 분들께 사과를 하란 압력을 쿨하게 무시하면서 청춘을 바친 TBC를 위해 그 정도 눈물도 못 흘리냐고 항변했고, 1981년 KBS에서 그를 재기용했다는 점은, 당시 권위주의적 시대를 감안할 때 강부자가 얼마나 큰 인기를 얻고 있었는지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이후 80년대엔 신구 등과 KBS를 대표하는 연기자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여전히 인기를 유지했다.

포털 프로필에는 논산시 출신이라고 적혀 있는데 정확히는 강경 출신.[5] 강경여고를 나왔다. 이후 방송프로 등에서 간간이 고향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 남희석이나 최양락 정도는 아니지만...

드라마에서는 주로 불경을 외우는 할머니로 많이 나온다. 물론 프로필에 나오는 것처럼 실제 종교도 불교이다. 그리고 김수현 작가와 친분이 있어서 김수현표 드라마에 많이 출연하는 편.

1993년 3월부터 통일국민당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어[6] 통일국민당이 신정치개혁당[7]과 합당하여 신민당이 되자 그대로 신민당 소속이었고 1995년 신민당이 자유민주연합에 흡수되자 그대로 자유민주연합 소속 국회의원이었다. 1996년 다시 정치계를 떠나서 연기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통일국민당 시절의 인연으로 더불어민주당 조일현 전 의원[8]의 후원회장 역할을 맡고 있다.


2.1. 농심 아줌마[편집]





농심이 라면회사로서 상당한 발전을 이룬 1981년부터 1994년까지 10년 넘게 라면제품 전속 모델로 활약하였다. 푸근한 이미지와 더불어 특유의 웃음소리와 편안한 느낌의 목소리 덕분에 농심 아줌마 라고 불리는 등 사실상 농심 라면 CF 모델의 영원한 어머니[9]라고 할 수 있다.[10] 신라면, 안성탕면, 짜파게티, 농심 육개장, 사리곰탕면 농심 너구리등 농심 라면 제품의 CF에 단골로 등장하여 유튜브 같은 곳에 올려져 있는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농심라면 CF들을 보면 그녀가 십중팔구 등장할 정도로 그 비중이 막강했다.하지만 1993년에 국회의원이 되면서부터 농심 측에서 부담을 느끼다가 결국 이듬해인 1994년 5월 전속모델 계약을 종료하게 된다.

그래도 농심라면 전속모델 답게 실생활에서도 농심에서 출시한 라면을 즐겨 먹었다고 전해지며, 안성댁이란 별칭이 붙을 정도로 자신이 출연한 CF들 중에서 가장 비중이 높았던 안성탕면에 대한 애착이 상당한 듯하다.[11] 그리고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전속모델로서 나름 프로정신이 있었는지 모델로 활동하는 기간에 타회사 라면은 먹지 않았다고 한다.[12] 라면 CF모델의 대모로서 요즘 라면 CF들을 보면 못마땅할 때가 있다고 한다. 그 이유가 과거에 자신이 CF모델을 했을 때는 일부러 국물을 입 주변에 흘려가면서까지 맛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 CF들을 보면 그와 같은 열정을 찾아 보기 힘들어서라고. 현재도 라면은 농심 제품만 먹으며 다른 회사 라면은 입맛에 안 맞는다고.때문에 오뚜기와 삼양 직원들은 강부자에 아주 광적인 극성 안티라는 설이 있다

2021년 3월 29일 본인이 13년동안 cf 모델로 활동한 농심그룹의 창업주인 신춘호 초대 회장이 별세하자 신춘호 회장의 빈소를 찾았다.

강부자는 "늘 존경해오던 분인데 안타깝다"고 고인을 애도했고 조문을 마치고 나서면서 "제가 13년간 농심에서 활동했는데, 신 회장님이 저를 예뻐했다고 들었다"면서 "요새 새로운 광고를 재생해도 옛날 광고를 보시면서 저를 생각했다고 들었다. 원래 뜻이 훌륭하시고, 사업 마인드가 훌륭해서 늘 존경해오던 분인데 안타깝고, 애도의 뜻 전한다"고 했다.


3. 이야깃거리[편집]


자신의 모교인 강경여자고등학교(現 강경고등학교)에 가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학생들이 떠들고 집중을 안해서 다시는 그 학교에 오지 않겠다고 말했고, 만약 강경고에서 서울대를 간다면 본인이 학비를 전부 부담한다는 말이 있다.

2017년 4월 29일, 강경고에 장학금을 무려 1억 원을 기탁했다.

다만, 후배들에게는 엄하고 무섭게 대하는, 이른바 군기 잡는 선배로 알려져 있다. 다른 중견 배우들에게는 적당히 인사하던 어린 연예인들이 강부자가 나타나자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서 깍듯하게 인사하던 모습 때문인 듯. 이 무서운 선배라는 이야기에 대해 본인은 "자기들이 잘못한 게 있으니까 무섭다고 하는거지 안 그러면 내가 왜 무서워? 난 후배들에게 한 번도 권위를 내세운 적이 없어요."라는 말을 하기도... 가만히 계셔도 포스가 있는 선배님. 아무래도 여성 연기자 중에는 이제 선배가 몇 없을만큼 고참이라, 그럴 수밖에 없다. 개그콘서트 10주년 특집 때는 분장실의 강선생님에 출연해서 군기잡던 후배들을 전부 순한 양으로 만드는 개그를 선보였다. 특히 김미화에게는 이주일 오빠 심부름도 제대로 못해서 맞고 살았으면서 살판났다는 드립을 쳤다.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하여 학창시절 교장을 찾은 적이 있다. 당시 교장선생님의 나이가 100세인지라 살아계실지도 불확실했지만 결국 생존해 계신 것을 찾아냈고 정정한 모습으로 방송에 등장하였다.[13] 그리고 방송 나온 다음 해 교장선생님은 돌아가셨고, 마지막 가시는 길에도 참석을 하게 된다 강부자가 직접 밝힌 바에 의하면 벽에 기대어 기도를 하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영상


3.1. 축구 사랑[편집]


힐링캠프에서 밝히기를 거의 50년 동안 축구를 봐 오셨다고 한다. 엄청난 축빠이며, 대한민국 축구사는 물론 해축에 역대 월드컵 역사까지 줄줄이 꿰고 있다. 그 중 좋아하는 한국 선수는 기성용박주영, 염기훈. 2019년 3월 29일에 첫 방송된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조우종, 한준희와 함께 나와서 자신의 축구 지식을 뽐내기도 했다. 선수들 등번호를 보며 이름을 바로바로 맞추는 것은 물론 옛 시절의 축구썰, 자신의 꿈이 '축구 해설을 해보는 것'이라는 것, 호날두에 대한 마음까지 푸는 등 엄청난 지식을 뽐냈다. 이 정도면 전문 축구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가히 축구 전문가 수준이다.

호날두는 제가 좋아하는 이유가 자선도 많이 하고 사생활이 너무너무 깨끗하고[14]

... - 마리텔 시즌2 중에서


2019년 5월 5일 K리그1 10라운드 슈퍼매치수원염기훈 선수가 초대해서 시축을 했다.[15]

2019년 5월 18일 김동완, 조우종과 함께한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 트위치 라이브 때 에우제비우를 "유세비오"라고 말하는 모습이 보였다.[16]

또 위의 힐링캠프나 2019년 마리텔 방송 녹화 등을 봤을 때 본인이 축구에 능통한 팬인데다 연예인 축구단과도 인연이 있는지라 현대가와 인연이 없을 래야 없을 수 없는 듯 하다. 통일국민당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축구만 좋아하지는 않고, 다른 스포츠들도 좋아한다.


3.2. 마담뚜?[편집]


노현정KBS 아나운서결혼식에 느닷없이 등장하여 사람들의 추측이 난무했고, 스포츠신문 기사까지 나왔다. 사실 90년대부터 강부자, 명세빈 이런 식으로 떠돌던 루머였다.[17] 이후 정치인, 재벌가와 연예인을 맺어주는 연예계 대표적인 마담뚜라고 하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4. 출연 작품[편집]



4.1. 드라마[편집]




4.2. 영화[편집]


  • 1966년 《만져만 봅시다》
  • 1967년 《공주님의 짝사랑》
  • 1967년 《일지매 삼검객》
  • 1967년 《위험은 가득히》
  • 1969년 《겨울 부인》
  • 1969년 《남편》
  • 1969년 《원님댁》
  • 1970년 《구혼 작전》
  • 1971년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 말숙 역
  • 1979년 《우리는 밤차를 탔읍니다》
  • 1983년 《아내》
  • 1992년 《사랑과 눈물》
  • 2003년 《오구》 ... 황씨 할매 역
  • 2005년 《초승달과 밤배》 ... 할머니 역


4.3. 연극[편집]


  • 2008년 ~ 《오구》
  • 2009년 ~ 《친정엄마와 2박3일》 ... 최여사(엄마) 역


4.4. 방송[편집]


  • 1980년~1992년 KBS 제2라디오 《안녕하세요 황인용 강부자입니다》 DJ
  • 1983년 KBS1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MC
  • 1992년 BBS 라디오 《강부자의 아침저널》 DJ
  • 1993년 KBS 제1라디오 《환경일기》 DJ
  • 1993년 BBS 《피안을 향하여》 MC
  • 1996년 KBS1 《TV는 사랑을 싣고》 게스트
  • 1997년 SBS 라디오 《안녕하세요 강부자 송승환입니다》 DJ
  • 2011년 MBC 《공감토크쇼 놀러와》 343회
  • 2011년 KBS2 《다큐멘터리 3일》 220회 : 웃당뫼의 가을걷이 - 전남 진도군 소포마을 - 내레이션
  • 2011년 MBC 《고향을 부탁해》 내레이션
  • 2013년 JTBC 《패티김 쇼》 13회
  • 2014년 KBS2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 143회
  • 2014년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139회 3~5부
  • 2014년 KBS2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 179회
  • 2015년 MBC 《울엄마》 MC
  • 2017년 KBS1 《KBS 스페셜》 859회 : <석가탄신일 기획> 돌고 돌아 봄 - 불영사에서 나누다 - 내레이션
  • 2019년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
  • 2020년 MBC every1 《비디오스타》
  • 2021년 MBC 《생방송 행복드림 로또 6/45》- 게스트 962회

4.5. CF[편집]


  • 마마전기 (1977년 ~ 1982년)
  • 오양맛살 (1983년)
  • 해태음료 써니텐 (1985년)
  • 농심 (1985년 ~ 1993년)
  • SK케미칼 트라스트 (1996년 ~ 1997년)
  • 롯데칠성음료 콜드주스 (1997년)
  • LG정유 보너스카드 (1998년)
  • 제일약품 케펜텍 (1999년)
  • 차티스 (2008년)
  • 리치리치:부자되는법 (2019년)

5.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통일국민당|
파일:통일국민당 글자.svg
]]

1992 - 1994
정계 입문

파일:신민당(1994년) 흰색 로고타입.svg

1994 - 1995
합당[18]

[[자유민주연합|
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1995 - 1996
합당[19]

[[무소속|
무소속
]]

1996 -
탈당
정계 은퇴


6.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지역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통일국민당|
파일:통일국민당 글자.svg
]]

3,574,419 (17.37%)
승계 (8번)
초선[20]


7. 둘러보기[편집]


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전국구 제14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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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BS 공채 동기라고 힐링캠프에서 밝혔다. 부부가 같이 CF도 찍은 적이 있다.[2] 김용림, 전원주와 더불어 연예계에서도 알아주는 대표 불자이기도 하다.[3] KBS TV가 개국한 61년 12월에 국내 최초의 TV탤런트인 1기생을 뽑고 3개월 만인 62년 3월에 2기생을 뽑았다고 한다.[4] 초기엔 곽규석 등이 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할 정도.[5] 국사책에 나오는 것처럼, 조선 말기~일제강점기의 충청권 대표적 물산 집산지이다.[6] 1992년 총선 당시는 낙선했는데 전국구로 당선되었던 정주영제14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해 사퇴하여 기존에 결정된 비례대표 순번에 따라 국회의원직을 승계한 것이다.[7] 박찬종이 1992년 창당한 정당.[8] 현 더불어민주당 홍천군·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 지역위원장. 1992년 당시 통일국민당으로 홍천군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선되고 2000년까지 자민련에 남았으나(이후 두 번의 선거는 모두 낙선), 2004년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당선되고(열린우리당 붕괴 당시는 탈당) 지금까지 민주당계 정당에 남아 있다.[9] 이와 더불어 코미디언 구봉서 역시 동시기에 농심라면 전속모델로 활약하여 농심 아저씨로 불렸는데, 물론 강부자와 부부사이로 설정되어 출연하는 경우도 꽤 많았다.[10] 실제 이 당시에 다시다김혜자, 미원고두심 등과 함께 식품계 CF 전속모델 트로이카를 이루고 있었다.[11] 2011년 오랜만에 출연한 안성탕면 CF 촬영 현장에서 다른 사람들 모두 점심식사로 밥을 먹을 동안 본인 혼자 안성탕면을 끓여 먹기도 했을 정도(...) 식품 CF 촬영현장의 실상을 알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 수 있는데, 먹는 장면을 최대한 맛깔나게 촬영하는 것 때문에 CF 모델은 해당 제품을 수십번 먹어야 하는것이 기본인지라 아무리 맛있는 라면이라 할지라도 질리다 못해 입에 대기도 싫을 정도 수준이 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부자는 이걸 점심으로 따로 먹고 싶다고 자처 할 정도니 보통 내공이 아닌 것이다(...)[12] 본인이 밝힌 일화로, 1980년대 초반 경쟁사인 삼양식품에서 컵라면을 국내 최초로 출시하여 엄청난 인기를 끌어 컵라면 먹는 것이 유행이던 시절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끼니를 떼우기 위해 차를 타고 같이 가던 사람들이 자판기에서 컵라면을 뽑아서 먹을 때 강부자는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당시에 농심은 아직 컵라면을 출시하지 못했고 강부자 자신은 농심 라면 모델이니 타회사 라면을 먹으면 안된다고 스스로 거부한 것.[13] 강부자 또한 선생님이 아닌 교장선생님인지라 아무리 낮게 잡아도 90세는 넘으셨을꺼라 할정도로 걱정을 많이했다. 90년대 평균연령이 지금과 달리 극히 낮았다는 점을 봤을때 찾을때까지 엄청 걱정했으나 다행히 정정한 모습으로 방송국에 나오셨다.[14] 사생활이 깨끗하다고 말한 이유는 주기적으로 헌혈하고, 난치병 소아환자들을 찾아가 위로를 하기 때문이라고... 물론 탈세 혐의나 여성 편력 문제가 있긴 하지만 좋은 일도 많이 하기 때문에 관점에 따라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은 태도의 논란과 함께 사생활이 문란하다는 이미지가 더 강해졌다.[15] 염기훈은 강부자와 동향이기도 하다.[16] 말이 헛나온 것이 아닌가 싶겠지만, 당시에는 그게 언론의 표기 방법이었다. 영어권 외 다른 나라 사람들 이름이나 발음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시절이며, 주로 일본을 통해 알려지면서 외래어, 인명, 지명 발음이 더욱 왜곡되었던 때다.[17] 노현정의 시어머니인 이행자 여사는 한 인터뷰에서, 아들(정대선)이 노현정과 결혼하겠다고 하니 시동생인 정몽준, 그리고 "친분"이 있는 강부자를 통해 그녀에 대해 알아봤다고 밝힌 적이 있다. 즉, 통일국민당 국회의원을 지내서 그런지 현대가와 나름 친분이 있는 건 맞는 것 같다.[18] 신정치개혁당과 신설 합당[19] 자유민주연합에 흡수 합당(법적으로는 신설)[20] 1993.2.9. 의원직 승계
(전국구 3번 정주영의 대선 출마를 위한 의원직 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