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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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언론인, 정치인.
2. 생애[편집]
1939년 5월 8일 경기도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아버지 강영우(康永祐)와 어머니 김해 김씨 김묘덕(金妙德)[3] 사이의 두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본래 조선 후기부터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의업(醫業)을 세습하던 가문으로, 아버지 강영우는 1888년(고종 25) 식년시 의과(醫科)에 3등 8위로 급제하여# 종6품 내의원 주부(主簿)를 역임했으며, 증조부 강문욱(康文郁)과 고조부 강진창(康晉昌) 또한 의약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전의감(典醫監)에서 각각 종7품 직장(直長)과 종9품 참봉을 역임했다.
서울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 졸업 후 1964년 라디오서울 공채 1기 기자로 입사해 동양방송에서 보도국 정경부장, 주일특파원, 보도국 부국장으로 일했으며, 1980년 여름부터 KBS로 이직해 5년여 간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을 거치며 땡전뉴스 제작을 주도했으며, 1983년에는 이산가족찾기 방송본부장,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 한국방송단장을 각각 겸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대표위원실 보좌역을 맡아 노태우 대표위원을 보좌하기 시작했고, 1987년부터 노태우가 당 총재로 승격하면서 총재 보좌역으로 승격했다.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 뒤 1988년 1월에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가 발족됨에 따라 총무/의전위원을 맡다가 집권 후 1989년까지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1989년부터 1990년까지 공보처(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1990년부터 1992년까지 국무총리비서실장을 역임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국회의원 임기가 끝난 2000년 정계 은퇴를 선언하였으며 그동안의 국회 경험을 담은 책을 출간하였다. 이후 2002년부터 2년간 국회사무총장을 지내며 국회방송의 개국에도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그 외에 1992년에 '21세기방송통신연구소'를 세워 이사장으로 재직중이며, 2009년부터 3년 간 서울마주협회 회장을 지내다가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방송정책자문위원회의 위원장도 지냈다.
선거에 출마한 적 없이 전국구로만 국회의원 3선을 하고, 정계에서 은퇴하거나 낙선의 아픔을 겪은 중견 정치인들이 노리는 장관급 자리인 국회사무총장까지 역임을 했기에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관운이 좋은 인물 중 하나로 보기도 한다.
뉴스타파 인터뷰에서 과거 KBS 보도본부장 시절에 행해진 땡전뉴스에 대해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부역자 취급에 대해서는 불편해 했으며, "이제와서 반성하고 뭐해. 나 혼자. "라면서 회피하는 모습도 보였다.
3. 선거 이력[편집]
4. 수상 경력[편집]
- 국민훈장 목련장 (1983)
- 체육훈장 맹호장 (1988)
- 황조근정훈장 (1992)
- 청조근정훈장 (2005)
- 제22회 중앙언론문화상 방송·영상부문 (2010)
- 제5회 지속가능경영대상 지속경영인상 (2010, 황은미와 공동수상)
5. 저서[편집]
- 당신의 미래는 방송에 있다 - 중앙일보사. 1994.
- 인생은 짧지만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많다 - 미래지성사. 2000.
- 나의 방송 인생: 방송기자 1세대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이상용 대담) - 오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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