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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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강종회(姜鍾會)
이명
강종팔(姜鍾八), 강종서(姜宗瑞)
생몰
1851년 3월 15일 ~ 1915년 12월 8일
출생지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도림리
사망지
전라북도 고창군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강종회는 1851년 3월 15일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도림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경복궁위장(景福宮衛將)을 맡았지만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본에게 넘어가자 낙향한 뒤 1906년 4월 최익현이 의병을 일으키자 아들 강영문과 함께 장사 수십명을 이끌고 여기에 참가하여 고용진의 부대에 소속되었다. 1906년 6월 16일 최익현 의병대가 순창에 도착했을 때 포군장(砲軍將)에 임명되었으며, 채영찬·김갑술(金甲述)로 수포수(首砲手)를 삼고 휘하에 3백명을 거느렸다.

그러나 태인에서 관군과 대치한 최익현은 동족끼리 싸울 수 없다며 의병을 해산시켰고, 강종회는 부하를 이끌고 기삼연, 박도경 의병장 휘하에서 일본군과 대적했다. 그러나 1909년 11월 3일 박도경이 일본군에게 항복한 뒤 이듬해 3월 18일에 옥중에서 자결하자, 강종회는 실의에 빠진 채 고향으로 돌아갔고 1915년 12월 8일에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강종회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2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그의 유해를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