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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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업지구
開城工業地區
Kaesong Industrial Region



국가
북한
위치
개성시
설립년도
2004년 12월 15일
면적
66km2
종류
공업단지
상태
점거·무단 가동
1. 개요
2. 상세
3. 역사
3.1. 설립
3.2. 2005년~2013년
3.3. 2013년 4월 폐쇄
3.4. 2013년 9월 개성공단의 재개
3.4.1.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서 전문
3.5.1. 법안 전문
3.6. 2016년까지의 평가
3.6.1. 군사적 가치로 봤을 때의 비판
3.6.1.1. 유입금 북한 핵, 미사일 개발에 사용
3.6.2. 경제적 가치로 봤을 때의 비판
3.7. 2016년까지 북한에 미친 영향
3.8. 2017년~2018년
3.9. 2019년
3.10. 2020년
3.11. 2022년
3.12. 2023년
4. 교통
5. 남북통일 이후
6. 여담
6.1. 주소
7. 관련 문서

파일:external/fta.go.kr/1503FTA_34.jpg
개성공단 파노라마
파일:external/www.kidmac.com/GIDF_KO_01_01_03_img3.png
개성공단 업종별 배치 지도 (출처)


1. 개요[편집]


북한개성시 판문구역 봉동리[1](가동 중단 직전 황해북도 개성시 봉동리)에 위치한 공업지구이다. 햇볕정책의 일환으로, 남북공동 경제사업을 통한 경제적 교류를 촉진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

관계 법률로는 대한민국 측의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개성공업지구법)', 북한의 '개성공업지구법'이 있다.


2. 상세[편집]


개성휴전선과 가깝기 때문에 남한에서 접근하기 좋은 위치다.[2][3][4] 이 점에서 남북이 함께 공단을 조성하는 사업이 추진되었다. 취지는 남북교류를 활성화하여 통일 후 일어날 충격을 대비하는 목적과 더불어,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5] 북한 노동력을 활용해 경쟁력있는 상품을 생산하고 북한 역시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서로 윈윈을 목적으로 한 이해관계 때문이다. 쉬운 말로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의 개혁개방을 일부 유도하고,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학습시키겠다는 것.

개성공단 초기계획은 1990년대 초부터 있었다. 남포공단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북한이 소련붕괴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면서 외화벌이 사업에 뛰어들려고 했고, 남한 기업인들의 투자도 받아서 산업육성을 시킬려고 했던것이었다. 그리하여 1992년에 대우그룹이 북한 당국의 협조로 200만평에 달하는 공단을 설립하기로 합의보면서 남포공단 계획이 설립되었고 1995년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실제로 일부 옷공장만이 완공되어 가동되는 선에 머물러 북한의 경제난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이후 공장 확장 문제로 갈등을 빋다가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남포공단 계획은 흐지부지되었다. 2000년현대아산과 북한과의 실무합의가 시작됐으며, 2003년 6월 착공하였다. 2004년 6월 시범단지에 식기회사 리빙아트, 의류회사 신원 등의 15개사가 입주계약을 체결하였고, 2005년부터 업체들의 입주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2013년 4월~8월 한 차례 중단되었으며, 2016년 2월 10일 가동을 전면 중단하게 되었다.

2013년 4월 3일, 북한이 남한으로의 출경은 허용한 채 개성공단으로의 입경을 차단하며 9일에 북한의 노동자들이 철수하였고 5월 2일에 남아있던 남한의 모든 관리 인력이 모두 철수함으로써 5월 31일부로 일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되었다(1차 중단). 그 뒤, 남한과 북한 간의 7차례 실무협약을 통해 2013년 8월 14일 개성공단 재개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9월 10일, 남한의 일부 인원이 공단에 상주하게 되었고, 9월 16일부터 정상가동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불과 2년 뒤인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광명성호 도발로 인하여 2월 10일, 박근혜 정부의 대북제재 이행 발표로 가동을 전면 중단하였다.

3. 역사[편집]



3.1. 설립[편집]


2000 남북정상회담 이후 개성공단 설립에 대한 실무적인 합의가 시작되었고, 3년 뒤인 2003년 6월 착공에 들어가 2004년 12월 15일 최종 완공되었다. 개성공단 가동 후 처음으로 생산한 제품은 냄비인데, 훗날 남북한 양측에서는 이를 '통일냄비' 로 이름을 지었다.#


3.2. 2005년~2013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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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은 김대중 정부 당시 햇볕정책의 일환으로 현대아산과 그 외의 여러 중소기업들로 조성된 공업단지였다. 1998년 11월 17일에 시작된 금강산 관광에 이어 개성공단의 추진이 2000년대에 전개되었고 2005년에 업체들의 입주가 시작되었다. 한경기사 한겨레 기사

개성공단 내에는 편의점 보광 훼미리마트(현 CU)가 존재했었다. 지점은 3개가 있었으며 북한 직원들을 채용하였고 개성공단 직원들 외에도 조선인민군 장병들이 사용하기도 하였다. 화폐는 달러화만 받았다. 문제는 북한 직원에게는 달러를 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6] 개성공단에 들어와 있는 유일한 국내 시중은행으로 우리은행 개성지점이 있었다. 2016년 기준으로 임시 폐쇄되었고, 우리은행 본점에 임시 영업소가 운영 중이다.[7]

개성공단은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2007. 3. 6. 제265회 국회에서 임종석 의원 등 50인에 의해 발의, 통과되어 개성공단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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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수의 노동력이 몰려들면서 나중에는 개성 교외 수십 킬로미터 밖의 인력들까지 세 자릿수의 버스를 동원하여 통근을 도와주고 있다. (그래도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하단 서술 참고) 대부분의 기업체들은 아파트형 공장의 형태로 운영되고, 1차 계획에서는 단순 노동집약적 산업체만이 입주하지만 나중에는 첨단 IT 산업 쪽으로 확대하는 것을 노리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화폐는 미국 달러. 월급도 달러로 주고 안에서도 달러만 통하였다. CU(당시 훼미리마트)가 금강산에 이어 이곳에도 지점을 냈고 우리은행이 공단 안에 해외지점을 하나 냈다. 서울 계동 현대 사옥 앞에서는 아침저녁으로 통근버스도 운행하였다. 스펀지라는 TV프로그램에서 그것을 찾아내 탈 수 있냐고 물었으나, 불가라는 답변만 듣고 제작진 대신 인형 하나 실어 보냈다.

우리나라에서 건설해 준 수도시설 덕에 개성공단 산업용수가 충당되고, 개성시 민간 생활용수도 함께 제공되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서 생활용수 쪽이 두 배가 넘게 더 공급이 되었다. 전력 역시 개성공단 외(개성 개발특구 중앙총국) 전력이 다른 곳으로 공급이 된 경우가 발생했고 개성공단 외 전력공급 추궁 개성공단에 전력이 공급되면서 소모되는 전력 요금을 국민의 부담으로 떠넘겼다는 주장(한나라당 엄호성의원)도 있다. ˝개성공단 전력공급 손실 1조

의료 봉사 단체로 선한의료인들이라는 단체가 2005년 1월 그린닥터스 개성병원을 개원해 남한 근로자 5만 명과 북한 근로자 30만 명을 무료 진료해 왔다. 이후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는 2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새로운 개성공단 응급의료시설을 준공했고, 2013년부터는 일산백병원이 시설 운영을 위탁받아 개성공업지구 부속의료원을 열어 남한 근로자들을 진료하였으며, 유사시에는 북한 근로자도 진료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고 한다.

개성공단 물건 중 몇몇은 장마당에 떨이로 팔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북한 장마당 내에서 팔리는 초코파이, 소시지, 라면 등의 간식거리와 커피믹스 같은 기호품이 다름 아닌 개성공단을 통해서 유통되었다. (자세한 건 항목 하단 참조.)

그러다 2009년 3월 30일, 북한이 현대아산 근로자 유성진을 억류했다. 유씨가 북한체제를 비난하고 북한 여성 근로자들에게 탈북을 책동했다는 것이다. 유씨가 북한 여성 근로자에게 반해 자유로운 사회에서 같이 살자라고 편지를 보냈다가 북한에 적발 된 것이다. 이후 한국 정부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이 직접 방북해 협상하여 137일 만에 유씨는 풀려났다.

3.3. 2013년 4월 폐쇄[편집]


개성공단은 남북 간 분위기가 나빠질 때마다 통행 제한이 걸리는 등 홍역을 치렀다. 2009년 키 리졸브 훈련 당시엔 3번이나 통행이 금지되기도 하였다. 2013년 3월부터 시작된 키 리졸브 훈련에 북한은 평상시보다 강도를 높여 반발심을 보였으며, 한국과 북한 사이 분위기가 살벌해지자 개성공단의 안위에 대한 우려 역시 높아졌다.

  • 4월 3일 북한이 개성공단으로의 입경을 차단했다. 즉 개성공단에서 나가는 것은 허가하되 들어오는 것은 금지한 것. 개성공단에 남은 식료품이 넉넉하지도 않고, 제품 생산에 필요한 자재를 들고 올 수도 없어졌기에 남아있던 한국인 직원들은 서둘러 빠져 나왔다. 자동차도 한번 나가면 두 번 다시 들어갈 수 없기에, 개성공단을 빠져나와 남측으로 입경하는 차량들은 짐들을 지붕이나 트렁크 등에 있는대로 최대한 묶어 실어서 가져오고 있다.123
  • 4월 4일 북한은 4월 10일까지 개성공단 전원 철수를 통보했다고 알려졌으나, 이는 귀환만 허락한 만큼 10일까지 귀환 계획을 요구한 것이 와전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 4월 5일 이날은 북한의 공휴일이므로 공장 가동은 예정에 없었으나, 생산 자재 부족으로 기업들이 하나 둘 운영에 차질을 겪기 시작했다.
  • 4월 6일 100여 명 규모의 남측 인원이 철수했다.
  • 4월 7일 문닫은 기업이 13개로 증가했다.
  • 4월 7일 일요일이라 개성공단에서 인원 철수 예정이 없었지만 환자 2명이 발생하여 후송하였다.
  • 4월 8일 북한의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가 대책을 협의한다는 이유로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그러고는 "남조선 보수당국이 개성공업지구 문제를 가지고 우리의 존엄을 모독하여 사태를 험악하게 몰아간 것으로 하여 공업지구의 운명이 경각에 이르게 됐다"는 발언을 하였다. 그리고 북한 측 근로자들을 모두 철수시키겠다고 발표. 존폐 여부도 검토한다고 한다.
  • 4월 9일 북한의 근로자들이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 9일 오전 8시 기준으로 남한 근로자 475명이 남아 있으며 당일 77명이 귀환했다.
  • 4월 17일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들 10명이 쌀과 의약품을 가지고 방문 신청을 했지만 북한은 뜻을 굽히지 않고 불허했다. 22일 방문을 요청했지만 역시 거절.
  • 4월 20일 개성공단 입주기업에서 물품을 납품 받아온 인도 바이어가 납품계약 파기 및 투자설비 반환을 통보했다. 바이어가 손을 뗀 첫 사례.

2013년 4월 26일, 남측 인원 또한 전원 철수를 결정해 사실상 폐쇄됐다. 남은 남측 근로자가 모두 되돌아왔다.

결국 몇 년 동안 북한 측이 온갖 협박을 하면서도 개성공단을 건드리는 일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았지만, 개성공단까지 건드리는 북한의 무리수로 인해서 남북한의 신뢰 및 경제적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하고 말았다.

남한은 당장 개성공단을 건설하는 데 소요된 자재 및 자산을 북한으로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부터 불투명한 실정이며, 특히 개성공단 건설로 인해 북쪽으로 물러난 조선인민군이 다시 개성공단 자리에 진지를 지을 가능성이 있다. 개성 공단에 진출했던 기업들이 전부 손놓고 있게 되면서 4월 30일까지 발생한 손실액은 상당하다고. 뿐만아니라 남한은 개성에 진출했던 수백 개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전부 망했다는,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입기도 하였다. 이들의 거래처는 이미 모두 도망간 지 오래고, 그 기업을 운영하던 야심있는 사업가들은 전부 길거리로 나앉게 생겼다.

북한 또한 남한의 전기와 물의 공급을 통해 개성시의 3분의 1정도의 인구가 그러한 혜택을 받았다가 그런 것을 포기해야 할 운명에 놓여 있어 북한 내부에서도 많은 손실을 가져다 줄 것으로 본다. 게다가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북한 주민이 5만 명이고 이들에게 1년에 나가는 임금이 1억 불 정도인데 이번 폐쇄로 이게 싹 날아가게 되었다. 5만 명의 일자리와 그들의 가족까지 합하면 20만 명분의 생계유지비도 같이 날아갔다.

2013년 4월 29일 7명이 미귀환했으며, 미수금 문제 등으로 인해 귀환이 늦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2013년 5월 2일 오후 5시 30분 잔류했던 7명이 귀환함으로 9년 만에 개성공단은 잠정 폐쇄 되었다. 북한은 졸지에 일자리를 잃어버린 5만여 명의 북한 근로자 중 타 지역 출신들은 고향으로 보내버렸다. 중국 측에 이번 사태로 남아돌게 된 잉여노동력을 써달라고 간청하고 있으나 중국 측에서도 난색을 표했다.

3.4. 2013년 9월 개성공단의 재개[편집]


개성공단에서 남측 인원들이 철수를 완료한 뒤로 남북한 당국은 폐쇄 책임과 원부자재, 제품 반출을 놓고 통일부는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및 관영 매체들과 한바탕 맞디스를 날렸다.

그런데 북한은 원부자재, 완제품 반출에 대하여 자신들은 이미 허용하였으나 한국 정부로부터 묵살당했다는 내용의 팩스를 개성공단 기업가들에게 전송하였다. 또한 협의 일자를 잡자고도 전하였다. 전날까지 한국 정부는 원부자재, 완제품 반출에 관련하여 북한에게 협상을 요청하고 있었기 때문에 파장이 클 것으로 보였으나 통일부는 사실관계가 다르다고 지적하였다 북한이 대화 채널을 일방적으로 모두 끊은 상황에서 그러한 구체적인 논의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었다.

이렇게 세월을 디스와 디스로 날리는 와중에 북한의 조평통은 기업가들의 방문을 이미 승인한 상태이며 그들이 들어오면 제품반출 문제를 포함하여 공업지구 정상화를 협의하자고 제의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민간을 통한 해결이 아닌 당국간 회담을 제시하였다. 통일부는 당국 간에 공식적인 논의를 통해 해결 가능하며, 현재의 개성공단 사태를 방지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29일,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에서 팩스를 또 보내 개성에서 6.15공동선언 기념행사 관련 실무접촉을 갖자고 제의하였다. 남측위는 이에 통일부에 방북을 요청하였으나. 당국 간 회담 제의는 무시하고 민간을 통한 해결만을 고집하고 있다며 이를 비판하였다.

남한과 북한은 회담의 개최를 합의하는 듯하였으나 수석대표에 장관급이 출석하는 여부에 대한 문제로 북한에서는 다시 회담을 거부하고, 판문점 통신마저 끊었다. 이어서 미국에게 추파를 던졌으며, 중국으로 다시 김계남이 올라갔다. 일각에서는 남한과의 회담이 무산된 것은 명분을 쌓고 통미봉남의 전략을 이어가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2013년 8월 14일 서로 타협하여 극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재개 시점은 아직 미정이다. 다만 국내에는 일절 언급도 없고 여러 외신에서 8월 6일자 기사에 인도적 차원에서 6백만 달러를 유니세프를 통해 북한을 지원한다는 기사가 떴다. south korea approves 6million aid north korea 로 구글 검색해보면 여러 기사가 뜨는데 600만 불을 준 7일 뒤에 남북합의가 이뤄진 점이 의미심장하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북한의 의료시설 개선이나 아동건강 증진을 위한 용도로 쓰일 거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과거를 생각하면 이 돈이 북한 아동들의 의료서비스 개선을 위해 쓰일 지 북한 권력층의 사치품 구입에 쓰일 지, 핵개발에 쓰일지는 알 수 없는 상황.[8]

2013년 9월 2일 뉴욕 타임스기사에서 박근혜 정부가 북한에 840만 달러의 지원을 추가하기로 약속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외신들은 개성공단의 재개와 박근혜 정부의 840만 달러의 추가 대북지원이 관련이 있다는 논조의 기사를 보도하고 있다. 또한 해당 기사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7월에 북한에 유니세프를 통해 지원한 금액이 600만 달러가 아닌 740만 달러라고 보도하고 있다.

2013년 9월 16일 개성공단이 재가동되었다.

북핵문제 해결 시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검토 중이다.

3.4.1.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서 전문[편집]


개성공단의 정상화를 위한 합의서

남과 북은 2013년 7월 6일부터 8월 14일까지 개성공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7차례의 당국 실무회담을 진행하고,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를 위해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1. 남과 북은 통행 제한 및 근로자 철수 등에 의한 개성공단 중단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남측 인원의 안정적 통행, 북측 근로자의 정상 출근, 기업재산의 보호 등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

또한, 남과 북은 이번 공단 가동 중단으로 인한 기업들의 피해 보상 및 관련 문제를 앞으로 구성되는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한다.

2. 남과 북은 개성공단을 왕래하는 남측 인원들의 신변안전을 보장하고, 기업들의 투자자산을 보호하며, 통행·통신·통관 문제를 해결한다.

1) 남과 북은 개성공단을 왕래하는 남측 인원들의 안전한 출입과 체류를 보장한다.

2) 남과 북은 개성공단에 투자하는 기업들의 투자자산을 보호하고, 위법행위 발생시 공동조사, 손해배상 등 분쟁해결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

3) 남과 북은 통행·통신·통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면하여 상시적 통행보장, 인터넷 통신과 이동전화 통신보장, 통관절차 간소화와 통관시간 단축 등의 조치를 취하기로 하고 이와 관련한 실무적 문제들은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한다.

3. 남과 북은 개성공단 기업들에 대해 국제적 수준의 기업활동조건을 보장하고,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공단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1) 남과 북은 외국 기업들의 유치를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2) 남과 북은 개성공단 내에서 적용되는 노무·세무·임금·보험 등 관련제도를 국제적 수준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3) 남과 북은 생산제품의 제 3국 수출시 특혜관세 인정 등 개성공단을 국제경쟁력이 있는 공단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방안들을 강구한다.

4) 남과 북은 공동 해외 투자설명회를 추진키로 한다.

4. 남과 북은 상기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를 구성·운영하며, 산하에 필요한 분과위원회를 둔다.

이를 위해 남과 북은 빠른 시일 안에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고, 해당 기구들의 활동을 개시한다.

5. 남과 북은 안전한 출입 및 체류, 투자자산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며 개성공단 기업들이 설비정비를 하고 재가동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한다.

2013년 8월 14일

상부의 위임에 따라 개성공단 남북 당국 실무회담 남측 수석대표 김기웅

상부의 위임에 따라 개성공단 북남 당국 실무회담 북측 단장 박철수



3.5. 2016년 개성공단 가동 중단[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016년 개성공단 가동 중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5.1. 법안 전문[편집]


남북교류협력에관한 법 제9조 (남북한 방문)
① 남한의 주민이 북한을 방문하거나 북한의 주민이 남한을 방문하려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통일부장관의 방문승인을 받아야 하며, 통일부장관이 발급한 증명서(이하 "방문증명서"라 한다)를 소지하여야 한다.
② 방문증명서는 유효기간을 정하여 북한방문증명서와 남한방문증명서로 나누어 발급하며, 다음 각 호와 같이 구분한다.
1. 한 차례만 사용할 수 있는 방문증명서
2. 유효기간이 끝날 때까지 여러 차례 사용할 수 있는 방문증명서(이하 "복수방문증명서"라 한다)
③ 복수방문증명서의 유효기간은 5년 이내로 하며, 5년의 범위에서 연장할 수 있다.
④ 통일부장관은 방문승인을 하는 경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범위에서 북한 또는 남한에 머무를 수 있는 방문기간(이하 "방문기간"이라 한다)을 부여하여야 하고, 남북교류·협력의 원활한 추진을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북한방문결과보고서 제출 등 조건을 붙일 수 있다.
⑤ 방문승인을 받은 사람은 방문기간 내에 한 차례에 한하여 북한 또는 남한을 방문할 수 있다.
⑥ 복수방문증명서를 발급받은 사람 중 외국을 거치지 아니하고 북한 또는 남한을 직접 방문하는 사람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은 제5항에도 불구하고 방문기간 내에 횟수에 제한없이 북한 또는 남한을 방문할 수 있다. 다만, 방문기간 내에라도 방문 목적이나 경로를 달리하여 방문할 경우에는 통일부장관의 방문승인을 별도로 받아야 한다.
⑦ 통일부장관은 제1항 및 제6항 단서에 따라 방문승인을 받은 사람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 승인을 취소할 수 있다. 다만 제1호의 경우에는 그 승인을 취소하여야 한다.
1.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방문승인을 받은 경우
2. 제4항에 따른 조건을 위반한 경우
3. 남북교류·협력을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는 경우
4.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는 경우
⑧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이하 "재외국민"이라 한다)이 외국에서 북한을 왕래할 때에는 통일부장관이나 재외공관(在外公館)의 장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다만, 외국을 거치지 아니하고 남한과 북한을 직접 왕래할 때에는 제1항에 따라 발급된 방문증명서를 소지하여야 한다.
1. 외국정부로부터 영주권을 취득하였거나 이에 준하는 장기체류허가를 받은 사람
2. 외국에 소재하는 외국법인 등에 취업하여 업무수행의 목적으로 북한을 방문하는 사람
⑨ 제8항에 따른 신고절차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전문개정 2009.1.30


3.6. 2016년까지의 평가[편집]



3.6.1. 군사적 가치로 봤을 때의 비판[편집]


북한의 군사시설이 이동했다는 성과가 있다는 주장에 따르면 입증하는 위성사진이 존재하는데 이것을 보면 2군단 6사단 직할로 보이는 탱크대대와 장갑차대대의 전차와 장갑차 50여 대가 머물고 있던 차량기지, 사단 포연대와 박격포대대 등이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결과로 다음 기사와 같이 휴전선이 북상한 효과를 얻는다는 기사도 있다. 개성공단 개발로 휴전선 사실상 北上

다만 여기서 핵심은 부대를 이동했다부대를 해산시켰다가 아닌것이다. 즉 주둔지만 바뀌었을 뿐 전력감소가 발생한건 아니고 인접구역이 개성만 있는 것도 아니니 개성 주변의 군단이 다른 지역으로 갔다는 것 가지고 굳이 성과라 말하기도 뭣한 상황. 거기에 군사전문가의 발언에 따르면 북한군은 애초부터 교리상 평지에 군사시설을 배치하는걸 엄중히 금지했기 때문에 개활지인 개성인근 부지가 개성공단 이전에도 유의미한 부대는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과거 포병부대가 후방 재배치 되었다는 것에 대한 실상도 실제로는 그 위치에 보병부대의 막사들만 있었던 것 처럼 북한 전방부대의 후방 재배치 언급 자체가 상당수 과장되었다고 지적했다.

거기에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북한의 남한방면 최전방군의 역할이 남한으로의 침공이 아닌 것도 큰데, 이들의 진짜 역할은 '선제 포사격으로 인한 공격군 이동로 확보 이후 지하갱도를 이용하여 현지 사수'이며 만약 전쟁이 발발했을 경우 남한을 침공하는 역할을 맡는건 이들이 아니라 후방에 있는 본대와 서해를 통해 침공할 해군과 특수부대인데 만약 진짜 만약의 경우로 개성 인근에 제대로된 군부대가 있었다거나 아니면 이후에 재배치된다 해도 이들의 역할이 전선 유지인 이상 이들을 좀 뒤로 미룬다고 해도 북한이든 남한이든 군사적 가치에 큰 이점도 손해도 없다.

물론 북한군 육상부대 주요 남하루트가 개성 공단쪽에 위치하긴 했지만 애초에 후방의 선봉대든 본대든 움직일 정도의 대규모 작전이면 현대시대에서 한미 정보당국이 지나칠정도로 일을 대충하지 않는 이상 못알아챌수가 없다.[9] 굳이 따지면 개성공단인근에서 부대를 물리게 함으로서 연평도 포격전같은 무력시위등을 예방하고 낌새를 빨리 알아채 방비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게 이점.

실제 6.25 전쟁에서 북한군이 보여준 이동 루트를 고려하자면, 임진강을 방어선으로 삼아 공방을 거듭한 개성시-파주시 축선보다 동두천시-의정부시 축선을 방어하던 국군이 매우 많이 고전을 면치 못했다. 만약 오늘날 북한군의 남침 루트를 예상하고 북한군의 도하능력까지 고려해본다면 임진강이 낀 개성-파주 축선보다는 동두천-의정부 축선 쪽이 아무래도 서울특별시의 방위에 더 위협이 될 수밖에 없는데,[10] 동두천-의정부 축선의 위협을 감소시켜 주지 못했기 때문에 개성공단의 존재는 수도권 방위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11]

위에서 언급한 비판점도 북한과 남한이 군대를 이용하여 전면전을 치룰 경우의 비판인데 여기에 북한의 비대칭전력 즉 핵무기 같은 것의 개발에 대해 매진하는것을 고려하면 군부대를 얼마나 미뤄봤자 별 의미가 없다는 비판도 있는데 실제로 북한이 개성공단을 포함해 햇볕정책으로 얻은 여러 수혜들을 어디다 때려박았는지 고려하면 이 경우 개성공단을 만들었다는것 자체가 군사적으로 우리에게 불리한 상황을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상술한 요소에 이어서 개성공단이 오히려 군사적으로 북한한테 이득이라는 주장은 더 있다. 해당 글 쉽게 풀어 쓰자면, 2차 한국전쟁이 발발한다면 이는 더 이상 북한의 기습으로 발생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북한 2군단의 개성 북쪽으로의 이전이 갖는 군사적 효과는 미미하다. 반면에 국군이 반격할 시 최대한 빨리 평양을 포위점령해야 하는데, 이 평양행 북진시 통과해야 하는 개성지역이 공단화 됨으로써 시가전 가능성을 높였고 이는 국군의 진격속도 저하와 장병사상률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12] 따라서 개성공단의 군사적 가치조차 남한이 아닌 북한이 가져간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있는 것이, 개성공단에서 시가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개성공단의 위성 사진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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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좀 드믄드믄 휑한 부분이 많다. 따라서 위의 위성사진에서 보이는 정도의 밀집도를 가진 1~2층짜리 건물[* 게다가 공장건물은 생산 제품에 따라 생산라인과 공장기계들의 배치를 다양하게 변경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내부 공간이 뻥 뚫린 구조이다. 오피스나 아파트 처럼 내부 구획이 복잡하지 않다는 얘기다. 한국의 경공업 생산 공장에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공장 내부엔 별로 숨을 곳도 없다.[13]

사실 이에 대해선 개성공단을 한국 측이 회수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갈린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국군과 미국이 끊임없이 감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소규모 도발은 몰라도 전면전 시 필수불가결한 대규모 부대의 이동은 감시망에 걸리지 않을 수 없기에 전쟁 발생시 개성공단에 대규모 부대 주둔은 이런 감시망에 걸릴 수도 있다. 따라서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예처럼 한국군, 미군 기갑부대가 기습적으로 포위 섬멸하거나 우회하고 후속부대로 처리를 맡길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이럴 경우 개성공단의 폐허화는 피할 수 없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철수등이 선행되지 않은 개전의 경우 개성공단에 거주하는 국민들이 인질이 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태평양전쟁기 당시에 일본군은 미군포로를 주요도시에 배치하기도 했으며, IS나 알카에다는 민간인들을 인간방패로 사용하고 있다. 북한군 스스로도 노치전투에서 미군 포로들을 인간방패로 사용한 경험이 있다.

3.6.1.1. 유입금 북한 핵, 미사일 개발에 사용[편집]

2016년 개성공단 중단 선언 당시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자금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우리와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핵실험에 이어 또다시 장거리 미사일 발사한 것은 묵과할 수 없는 도발"이라며 "매년 국제사회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는 형편에서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 붓는 이러한 행태가 계속 반복되도록 그냥 둘 수는 없다"고 밝혔다.기사

2019년 북한이 무기개발에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임금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기사

이에 대해 개성공단 북한 유입금은 연간 약 1억 달러 수준인데, 큰 액수라고 할 수 있지만 북한의 70~80억 달러 수준의 연간 대외무역에 비하면 1%가 약간 넘는 액수이고 여타 대외적 활동(해외 노동자 파견, 해외 북한식당, 관광사업 등)을 통해 획득한 외화까지 계산하면 북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보다 훨씬 더 낮으며,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할 때 북한의 돈줄을 차단하겠다는 의미에서의 개성공단 중단이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비판도 있었다.기사

3.6.2. 경제적 가치로 봤을 때의 비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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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이 우리나라에서 매우 가깝고, 겉 보기에는 북한의 노동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이 중국이나 베트남의 노동자들의 임금에 비하면 낮아 보이기 때문에 이익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14]이에 따르면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곳은 거리도 멀기 때문에 개성공단에 비하면 디메리트라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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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는 겉보기에만 그렇고 속을 알고 보면 별로 이익이 아니었다는 주장이 있다. 높은 기회비용까지 합한 실질적인 임금은 딱히 낮은 편이 아니며 오히려 베트남보다도 높은 수준이며 실질 인건비 대비 노동 생산성도 낮은 수준이었다는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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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문제는 임금 문제 말고도 개성공단의 경제적 가치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의 60% 이상이 적자를 입고 있었으며, 이 적자를 세금으로 보전하고 있다.(대략 2500~3000억 이상) 따라서 세금이 잘못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하는 의문 또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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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고질적인 문제점으로는 인력수급에 큰 차질을 빚고있고 시설 충원 또한 안 되고 있었다는 점이 있다. # 통일부 자료를 보면 입주기업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지만, 물론 이것이 개성공단이 어느 정도 사업성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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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비율만 봐도 문제가 심각하다. 국내에 비해서 3.5배 정도 부채가 많은 데다가 개성공단에 투자한 기업들 가운데 자기기금을 투자한 경우는 31.6%밖에 안 되고 45% 가까이 되는 경우가 남북경협기금(즉 세금)[16]으로 온 것이었다. 즉 정부지원과 홍보 저임금만 생각하고 왔던 것이다. 또한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통관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 이것은 곧 비용 증가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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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FTA 관련해서 최혜국 관련해서 KDI에서 나온 것인데 국내법으로는 국내에서 60% 이상 투자했으니 한국산이라고 하는 게 가능하지만 수출에서는 불가능하며 최혜국 대우를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중국이나 베트남에 투자하는 것도 위험하니 북한에 투자하는 게 더 안정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것이 위험하긴 해도 거긴 최소한 민간 차원의 일이며 어디 가나 있는 일이다. 또한 중국과 베트남은 국제 사회에서 그래도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국가들이고,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국제 사회에서 절대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불량 국가이다. 개성공단의 경우 정부 차원의 일이며 심심하면 북한쪽에서 300% 임금인상 또는 폐쇄를 들먹이며 협박한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어느 쪽이 더 위험한지 자명해질 것이다. 즉 통관, 통신, 통행 등의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3통문제 문제나 남북관계에 의한 정치적 리스크가 존재하며, 남북관계가 좋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에 빠져들면 최악의 경우 개성공단 동결같은 조치가 취해질 수도 있었다. 또한 평소에도 어떻게든 더 뜯어내기 위해서 개성공단의 안정성을 흔드는 발언을 하였다는 것을 보면, 안정되어 있어도 잘 안 되는 판국에 정치적 리스크가 다른 리스크보다 너무 크다.

우석훈[17]의 말처럼, 정말로 개성공단을 필두로 한 대북 사업이 메리트가 큰 사업이라면 정부 말을 안 듣는 한이 있더라도 돈의 논리를 따르는 삼성을 필두로 한 한국의 재벌들이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대북사업에 뛰어들었을 것이고 개성공단에는 그들이 직접적으로 투자한 고부가가치 산업단지들이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재벌 중에서 개성공단을 필두로 한 대북 사업에 뛰어든 재벌은 거의 없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산업입지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2010년 9월까지 생산 유발효과는 약 47억 달러에 달하고,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약 14억 달러, 수입 유발효과 약 9억 달러, 27547명의 취업유발효과, 약 2만 명의 고용유발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참고로 개성공단의 매출액에 대해서는 "조사기업 111업체 중 매출규모가 500억 원이 넘는 기업은 19개사로 전체의 17.1%의 비중을 보이고 있음. 반면 매출규모 50억 미만 기업 비중도 27.9%를 보이고 있음" 이라는 서술이 있다.


3.7. 2016년까지 북한에 미친 영향[편집]


북한 내부에서는 개성공단이 꿈의 직장으로 통했다고 한다. 남측이 북측에게 주는 월급이 1인당 120$였으며 (달러화는 북한 정부가 갖고 근로자에게는 북한 정부가 배급을 준다.) 남측에서 보기엔 봉급이 턱없이 적어보이지만 북한에서는 타 직장은 월급이 없다시피 해서 몸만 다니는 편이지만[18], 북한에서 귀한 간식이나 기호품(커피, 과자, 라면)을 매일 맛볼 수 있고 거기에 그 간식을 장마당에 가져가 팔면 추가 수입을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냉난방도 되고 온수목욕까지 할 수 있었다.[19] 특히 초코파이는 장마당 최고 인기 간식이라 몇 십 배의 가격으로 팔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 임금 지급 방식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하자면, 먼저 남한 기업이 북한 당국에 임금을 현물 달러화로 지급을 한다. 그러면 북한 당국에서는 자체적인 기준에 따라 개성공단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주게 된다[20]. 이때 북한 당국은 노동자들에게 달러화나 북한화폐를 주는 것이 아니라, '특별 상품공급권'을 준다[21]. 그러면 개성공단 노동자들은 개성 시내에 있는 '특별상품상점'에서 그 공급권을 이용해 원하는 상품을 제약 없이 구입할 수 있다. 이 특별상품상점은 북한의 일반 상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북한 중앙 당국에서 관리하는데, 농산품, 가공 식료품, 생활용품, 피복류, 사치품, 전자제품, 가구류, 수입 제품 등이 고루 갖춰져 있는, 일종의 중소형 마트다. 원래는 공급권을 타인에게 판매 혹은 양도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유야무야되었다. 언론 매체에서는 초코파이나 공단에서 빼돌린 물건이 공단 노동자들에게 큰 경제적 혜택인양 이야기 했지만, 사실 이 특별공급권을 양도해서 얻는 수익은 초코파이 따윈 문제가 아닐 정도로 상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애초에 공급권을 통해 원하는 상품을 제한 없이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은 북한 내에서 특권에 해당한다.

다만, 북한 당국과의 협상을 통해 임금이 인상되면, 인상된 만큼 공급권의 수가 인상되지 않았다는 문제는 있다. 또한, 북한은 남한 기업과 협력 당국으로 부터 임금뿐만 아니라 각종 세금, 사회 서비스 제공 비용 등을 뜯어 냈기 때문에, 상당한 외화를, 그것도 현물[22]로 챙겨갔던 것이다. 게다가 개성 출신 탈북자가 최근에 증언한 바에 따르면 이 돈은 예상대로 북한 주민들에게 단 한 푼도 가지 않았다는 게 문제가 있다.[23]

초코파이를 통해서 개성 인근에 남한과 자본주의 사회에 호의적인 분위기가 널리 전파되었고, 결국 이 출신 노동자들도 현재 농촌에 배치된 이유도 여기서 나왔다고 하니 사실이라면 할 말이 없다. 뒤에 보듯 전쟁 위협에 대해서도 북한주민들이 별로 쫄지 않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고.

미혼 근로자들은 남한 남/녀가 이상형으로 바뀔 정도였으며, 북한 사회 전체에도 '통일되면 남한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환상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은 만나볼 일도 거의 없어서 몰랐지만, 북한 사람들 입장에서 보기에 남한 사람들은 큰 키에 잘 신경 쓴 외모이며 북한 이성들보다 훨씬 세련된 이미지와 진보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 물론 북한 사회가 사회이니만큼 공공연하게 떠들 수는 없지만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개성공단 입주 이후 북한 사람들의 남한 이성에 대한 은근한 동경이 생겼다고 한다.


북한 측에게 남한의 우월한 경제적 발전상을 자랑하고 싶었던 건지, 약 530억원을 들여서 유독 크고 아름다운 건물을 개성공단에 지어 놓았다. 그 이름하여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남북관계 경색국면으로 인해 2012년 초에야 간신히 입주를 시작했다. 남북이 시설을 함께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 당시엔 이 건물 일부를 임시로 사용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앞에 있는 4층짜리 단독 건물을 개보수하여 이전했었다. 2020년 6월 16일,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 철거하면서, 그 충격으로 종합지원센터의 유리면이 작살이 난 장면이 국군의 열상감지장비에 포착되었다. 북한이 이를 보수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종합지원센터 역시 폐건물화될 가능성이 높다.

보다시피 딱 보기에도 으리으리하고 위풍당당한 풍채를 하고 있는데, 이런 걸 북한 측에서 좋아할 리도 없고, 실상은 텅텅 빈 상태로 방치에 가깝게 운영되고 있었다. 너무 높은 건물은 자기네 군사상 안보에 위협이 됐다. 남북관계의 경색이 가장 큰 원인일 것으로 진단하고는 있었지만, 남북관계의 해법이 원체 보이질 않아 빠른 정상화는 여전히 요원했다.

북한의 고위층에게는 개성공단이 자신들의 체제를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했을 것이다. 북한 일반인들이 남한의 실제 모습을 알게 되면서, 과거의 김일성, 김정일이 실시한 정책의 실패를 깨닫게 되면 체제에 대한 불만을 가질 것이라고 인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북한에게는 성공한 남한의 존재가 자신들의 실패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남한이 빠진 소위 대동강의 기적을 원했다.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과 달리 김정은은 개방 없는 개혁을 추구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에서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주장하면서, 폐쇄적인 체제를 계속 유지하면서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을 가졌었다. 또한 2017년까지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국제적 고립을 자초했다.


3.8. 2017년~2018년[편집]


2016년 개성공단 폐쇄 이후 2017년이 되어도 개성공단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2018년 10월 초 기준으로 남북정상회담이 3번 열리고,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고 2018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되는 등 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되면서 개성공단 가동 재개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9월에 방북한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의회 명예회장에 따르면 한 겨울에 배관이 얼지 않게 누수를 차단하는 등 2년 동안 북한이 개성공단 시설물을 관리했다고 한다. #

2018년 3차 남북정상회담 에서 발표된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조건이 가능한 때에 재개하자는 내용이 명시되었다. 이때 정상회담에 동행한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에 따르면, 북한 측에서 무보수 혹은 생활용품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 등으로 제재를 피해서 빨리 재가동하자는 의욕을 보였다.#


3.9. 2019년[편집]


2019년 1월 1일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없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제재를 피해 무보수로도 재가동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교착된 문제를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던 2019년 북미정상회담이 합의문 없이 결렬되고, 3월 8일 미국이 반대의사를 밝히면서 난항을 겪게 되었다.

그러다가 2019년 5월 17일에 통일부가 3년만에 개성공단 기업인의 방북을 승인하였다. 이에 공은 다시 북한으로 넘어갔다.

2019년 6월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방미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워싱턴D.C.의 싱크탱크를 돌며 개성공단 재개를 호소했지만, 미국내 여론은 싸늘하다고 하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도 힘을 보태고 있지만, 쉽지 않은 모양. #

3.10. 2020년[편집]


개성공단 재가동이 요원해 보이는 가운데, 청와대 국민청원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발병사태에 대응해 개성공단에서 마스크를 생산하자는 청원이 올라왔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에 긍정적인 입장이고, 통일부에서는 취지는 공감하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들이 있다고 밝혔다.[24][25]

2019년 들어 기존 황해도 개성시에서 어느 도에도 속하지 않은 특별시로 승격된 가운데, 경제활동이 자유로워진 가운데 향후 가능성이 기대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를 비웃듯 2020년 6월 16일 오후 2시 49분경 북한은 남한과의 아무런 합의 없이 개성공단 내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함께 바로 옆 건물인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도 피해가 나버렸다. 개성공단 자체의 회생 가능성을 더더욱 비관적으로 만든 사건이었다.


3.11. 2022년[편집]


2016년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에 대한 위헌 확인 심판 청구가 기각·각하되었다. #

자유아시아방송에 따르면 의류공장에서 무단으로 교복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


3.12. 2023년[편집]



개성공단의 시설을 북한 당국이 무단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특히 이곳 시설에서 만든 밥솥을 북한제로 취급하여 생산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전기는 이미 2020년 6월 연락사무소 폭파 직후 한국측에서 송전되는 것은 아니다. #

한국 정부는 4월 북한이 중국 자본을 이곳에 유치시키려고 한다는 정보에 통일부 장관까지 나서서 크게 반발하였다. #

2023년 6월 7일데일리NK의 보도에 따르면, 5월 말에 조선로동당 개성시당위원회에서 진행된 '주요 기관 기관장, 당비서들 대상 집중 강습회'에서 개성공단을 두고 "적들이 우리에게 갖다 바친 노획물"로 특별히 지정하고, "인민생활 개선에 도움이 되도록 만년대계로 꾸리는 사업을 필수로 간주해야 한다."라고 떠들어 댔다고 한다. 기사(데일리NK) 남의 투자 재산을 제멋대로 '적이 바친 노획물'로 규정하고 제 것마냥 가져다 쓰는 행태는 소탐대실 그 자체로, 향후 대외관계가 개선되더라도 투자를 받기 힘든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오피니언(조선일보) 영상(KBS)[26]


4. 교통[편집]


서울-개성간 시외버스가 한때 다니긴 했으며, 공단 주위로 판문역봉동역이 존재한다.


5. 남북통일 이후[편집]


개성시남북통일/이점 문서 참고.


6. 여담[편집]


대북 유화 정책을 긍정하는 쪽은 개성공단의 효과를 과장하거나, 부정하는 쪽은 단점을 과장하는 경우가 있다. 전자가 주로 진보였고, 보수는 후자였다. 그런데 개성공단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편을 가르기 어려운 상황도 있다.

개성공단이 체제선전의 효과가 있다는 시각이 있다. 이건 어느 쪽에 장점인지 알기 어려운데, 문재인#, 태영호#가 둘 다 대북지원의 체제선전 효과를 긍정한 적 있기 때문이다. 후자가 좀 더 상호주의에 근거한 공세적인 대북 정책을 추구하여, 제한적인 경우[27]에서 지원을 찬성한다는 차이는 있다. 2009년, 현대아산의 유성진 씨는 북한에서 '공화국의 정치체제를 비난했다'며 억류된 적 있었다.# 실제로 북한 여성과 교제한 뒤에 북한의 정치체제를 비판하게 만들 사실[28]을 알려준 뒤 탈북을 권유했다는 것이다.# 데일리NK는 2020년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당시 북중 국경지대의 사람들은 탈북자가 경제를 어렵게 한다는 체제 선전#을 믿었지만, 개성 인근 주민들#은 북한 당국을 비판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남한 주민과의 교류로 민주주의 의식이 커졌고, 남한이 물러가면 자신이 못살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 대한민국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점은 개성시와 그 근교 주민들을 부유층으로 만들어내면서 한 동안 개성을 북한내에서 부유한 도시로 만드는데 공헌했고 각종 남한산 물품들이 개성평양간 고속도로을 통해 평양, 남포, 사리원 등 북한 주요도시로 대대적으로 유통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1990년대부터 연변, 단둥 등 중국 동북지방을 통해 남한산 물품들이나 따오판 DVD 등이 알음알음 들어오기는 했지만 이 당시에 중국 기준으로는 남한산 물품들이 심하게 비싼감이 있었기에[29] 남한산 물품들을 대대적으로 들여놓기에는 어느정도 한계가 있던 만큼 고속도로를 통한 직접적인 유통망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이점이었다.

또한 상당수의 개성주민들이 개성공단에 취직하면서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각종 남한산 떨이물품이나 잡화물들을 팔아치우며 부수입으로 짭짤한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거기에다가 북한의 통제를 받는 특성때문에 남한기업에서 근로자들에게 대놓고식의 갑질을 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에 남한기업에 대해서 더욱 긍정적인 이미지 플러스 효과가 있었으며 고난의 행군 이후로 제대로 개보수되지 않았던 상하수도망도 대대적으로 확충되면서 이전보다 위생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하니 개성과 그 근교주민들이 남한에 대해서 더 좋게 생각하게 만들었으며 이 점에 있어서 개성공단은 단단히 제몫을 해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보는 물론 보수도 나름 고민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초코파이 지급도 금지하고자 하여 근로자의 근로 의욕을 감소시키는 북한 당국의 행태는 의문이다. # 북한은 단순히 사장의 갑질을 막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근로자들에게 갑질을 해댔다는 것이다. 개성공단을 통해 시장 경제적 마인드를 북한 주민에게도 제대로 심어줄 수 있었다면 보수도 시장 경제의 가치를 내걸기에 환영했을 것이다. #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진보 진영의 측면에서도 남북 교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문제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개성공단 운영에 대한 평가와 재개와 같은 문제는 이런 사항이 얽혀 있다.

재미있게도 탈북민이 개성공단에 한국 기업 소속으로 들어가 근무한 경우도 있었다. 이 탈북민은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란 중국 화교 출신인데 탈북 후 중국 내 가족의 보증으로 화교 신분이 인정되어 중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고, 한국에 합법적으로 입국하여 귀화한 뒤 개성공단에서 일하게 된 것. 탈북민 출신은 신변의 위험 때문에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이 사람은 엄밀히 말하자면 정식 탈북민이 아니었기 때문에 통일부에서도 신원조사로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북한측도 마찬가지. #

2011년 3월 이후 이곳을 단 1회라도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은 미국 입국 시 B1 비자를 받아야 한다. ESTA 평생 이용 불가능.

6.1. 주소[편집]


해당 주소지가 북한의 치하에 있기때문에 동 같은 것을 쓰지 않고 '황해북도 개성시 개성공업지구 *단계 ~'식으로 사용되던 모양이다.#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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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 이북 5도 행정구역상 경기도 개풍군 봉동면[2] 분단 이후 6.25 전쟁 이전까지는 38선 이남이라 대한민국의 영토였다.[3] 이전 MBC PD수첩에서 취재를 갈 당시 1시간 내외가 걸렸다.[4] 다만 이북 5도 체계상 엄밀히 말하면 개성공단의 위치는 개성시가 아니라 개풍군이고 시내에서도 약 7km 가량 떨어져 있는 교외지역이다. 이곳을 개성이라 부른다면 남한이 수복한 임진강과 군사분계선 사이의 장단군 지역도 개성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북한은 미수복 경기도 전 지역을 개성으로 묶어 버렸기에 현재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개성이 맞기는 하다. 전통적 중심지가 아닐 뿐.[5] 헌법상으로 대한민국 국민인 북한 사람들에게 현행 대한민국의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주냐며 반발의 목소리가 있지만, 많은 나라에서는 경제격차가 클 경우 지역별로는 최저임금에 차등을 두는 경우가 많다. # 실제로 탈북한 사람은 남한사람 처럼 최저 임금을 받는다. 독일은 통일 당시부터 동일 임금을 주면서 이렇지 않았는데, 대신 지금의 남북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통일 전에도 교류가 많았다. #[6] 개성공단의 가동이 중단되기 이전에는 멀쩡히 운영되었지만, 수요는 적었다. 그리고 북한이라 좀 아스트랄하다. 그리고 결국 2016년 개성공단 중단과 함께 운영이 잠정적으로 멈추었다.[7] 당연히 해외점포로 간주되며, 공용 화폐도 원화가 아닌 달러화를 사용했다. 또한 모든 거래는 온라인 거래가 제한되는 관계로 전표로만 처리됐다.[8] 문제는 이런 식의 대북송금은 대중매체에 잘 노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 이 송금방식은 불법은 아니다.[9] 애초에 제2차 세계대전때부터 여러 기술의 발전으로 전면전 상황에서의 병력의 기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명되었다.[10] 그러나 38선과 휴전선을 비교하면 중부와 동부와 북진하고 서부가 남하했기 때문에 임진강이 있다 하더라도 개성-파주 축선으로 남침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38선때는 연천군포천시 북부가 북한 영토였기에 동두천-의정부 축선으로 손쉽게 남침할 수 있었던 것이다.[11] 동두천-의정부 공방 당시 우리 군이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은, 채병덕 참모총장이 이승만 대통령의 "사수"명령을 지키는 데에 급급했던 것에도 원인이 있다. 사실 중국군 출신의 김홍일, 일본군 출신의 김석원 등 전투 부대를 지휘해본 경험이 있는 원로(?)들은 하나같이 (이제는) 한강 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12] 개성공단은 토지만 북한것이지 그 위에 만들어진 시설과 그 외 투자자금은 전적으로 남한측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깡그리 밀어봤자 주로 손해보는건 이곳에 투자한 남한이 된다.물론 전쟁까지 벌어진 시점에서 개성공단을 이후에 다시 돌릴수 있을지는 둘째치고[13] 다만 개성공단 초안은 현재 규모보다 훨씬 거대하게 조성될 예정이었다.[14] 물론 북한 내에선 높은 수준이긴 하다.[15] 참고 자료: KDI [16] 대출이라고는 하는데... 어느 세월에 갚으려고?[17] 88만원 세대를 쓴 그 사람 맞는다. 진보적인 경제학자가 개성공단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 이런 비판을 할 정도면...[18] 당시 북한 일반 직장 봉급이 월 3,000~4,000원 선이었다. 장마당 환율로 1달러에 8,000원이라 쌀 1킬로 강냉이 2킬로 밖에 살수 없는 가격이다. 참고로 경수로 공사 일로 북한에서 1년 동안 지내다 온 만화가 오영진이 그린 <남쪽손님>을 보면 우연히 1달러를 주워다가 알던 북한 관계자에게 줬더니 좀 당황해하면서도 좋아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1달러 값어치가 우리돈으로 몇 만 원급이라고.[19] 거기에 내복이나 양말 같은 의류를 만드는 공장이라면 몰래 한두 벌 이상(개성지역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심지어 7겹을 겹쳐입은 적도 있었다고) 빼돌려서 화장실 등에서 입고 나가 장마당에 팔아서 생계에 보탬을 하기도 했다. 당시 걸래짝 같은 북한의 옷감과는 달리 부드럽고 따뜻한 데다가 더 질겨서 인기가 굉장했다.[20] 보통 임금의 50~70%의 가치에 해당하는 양만큼의 공급권을 지급했다고 한다.[21] 북한 당국이 화폐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 당국에서 운영하는 하나의 상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공급권은 구매력과 관계 없이, 북한 당국으로 다시 회수된다. 이는 노동자들에게 배급을 하되 배급받을 물건에 대한 선택권을 부여한 것과 다르지 않다. 또한, 공급권이란 게 저축을 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도 아니기 때문에 임금의 지급이 곧 경제적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쉽게 이야기해서, 물질적 풍요는 어느 정도 허용할 지라도 노동자들의 경제적 계층 이동은 막겠다는 의지이다.[22] 북한에게 달러 대금을 지급할 땐 국제 금융망을 통해 지급한 것이 아니라, 달러 현물로 지급했다. 그래서 매달 달러 결제 시기가 오면 1톤 탑차에 달러 상자를 가득 실어 북한 협력 당국에 건냈었다.[23] 이 탈북자의 증언을 보면 항상 월급이 아닌 식용유 한 통, 쌀 몇 킬로 이런 식으로 달마다 약간의 현물을 준 것이 고작이었다고 하며 개성공단 근로자들은 대체로 이것과 초코파이를 비롯한 개성공단에서 빼돌린 물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빼돌림이 가능했던 이유는 기업마다 방침이 다르지만 몇몇 방직공장의 경우 상황을 알기 때문에 자투리 천을 약간 빼돌리는 정도는 눈감아줬기 때문이라고 한다.[24] 대북 제재 같은 법적인 문제는 넘겨두더라도 이제까지 멈춰져있던 설비를 재가동시키는 데만 한세월 걸릴 뿐더러 북한의 코로나 감염 사태도 심각한 마당에 또다른 감염처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25] 또한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개발에 대한 제재조치로 북한에 인도적 지원 외에 다른 지원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는데, 만일 한국이 무시한다면 세컨더리 보이콧을 얻어맞고 나라가 박살날 수 있다. 이게 얼마나 무서우냐면 그 중국과 러시아조차도 대놓고 지원하진 못할 정도다.[26] 2023년 5월 26일자 공개, KBS 1TV '남북의 창'의 공식 유튜브 코너인 '남북의 썰' 시즌3 20회. 패널은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이다.[27] 한국 지원 사실을 주민들이 알아야 하고, 군부로 많은 돈이 흘러가는 건 막아야 한다고 여긴다.[28] 김씨 일가의 사생활 등[29] 2021년 기준으로 남한과 중국의 소득격차가 3:1이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10:1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