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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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위로부터의 개혁과 아래로부터의 개혁
3. 개혁들
3.1. 정치개혁
3.1.1. 국내의 사례
3.1.1.1. 19세기 이전
3.1.1.2. 20세기 이후
3.1.2. 외국의 사례
3.2. 화폐금융개혁
3.2.1. 국내의 사례
3.2.2. 외부의 사례
3.3. 제도개혁
3.3.1. 국내의 사례
3.3.2. 외국의 사례
3.4. 군제개혁
3.4.1. 국내의 사례
3.4.2. 외국의 사례
3.5. 농업개혁
3.5.1. 국내의 사례
3.5.2. 외국의 사례



1. 개요[편집]


개혁(, 영어: Reformation)은 제도기구 등을 새롭게 만들거나 재(再)제작하는 상황에 사용되는 단어다. 긍정적인 어휘로 받아들여지는 단어이지만, 좋게 바꾼다라는 뜻의 '개선(改善)'과 달리 그저 새롭게 바꾼다는 뜻만 있다.

한국사, 세계사 중간중간에 등장해 언제나 실패하고 의의만 남는 것. 애초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국가 막장 테크를 착실하게 밟아 나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실패하는 게 오히려 당연한 수준이고, 성공 사례는 진짜 손가락에 꼽는다. 오죽하면 개혁이 혁명보다 더 어렵다는 말까지 있겠는가?[1]

다만 성공한 사례도 제법 있는데, 보통은 정치 관련 개혁이 대부분 실패하고, 화폐나 군제 개혁과 같이 전문직기득권의 이득을 직접적으로 침해하지 않거나 침해하더라도 그 정도가 낮은 개혁들이 어느 정도 성과가 있다. 즉, 어떠한 권력자라도 권력은 곧 전문직 기득권 세력의 지지에서 나오며, 정치 개혁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 권력을 떠받치는 전문직 기득권 세력과의 마찰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 위로부터의 개혁과 아래로부터의 개혁[편집]


아래로부터의 개혁은 국민들이나 지역 공동체가 엘리트 지배계층에 대항해서 자발적으로 이루어낸 개혁을 말한다. 반면 위로부터의 개혁은 지배계급이 개혁을 주도하여 위에서 아래로 이식되는 형태의 개혁을 말한다. 자세한 내용은 위로부터의 개혁 문서로.


3. 개혁들[편집]



3.1. 정치개혁[편집]



3.1.1. 국내의 사례[편집]



3.1.1.1. 19세기 이전[편집]

  • 공민왕의 개혁[2]
  • 정도전태종의 개혁[3]
  • 조광조의 개혁
  • 흥선대원군의 개혁
  • 갑오개혁
  • 을미개혁
  • 광무개혁


3.1.1.2. 20세기 이후[편집]



3.1.2. 외국의 사례[편집]




3.2. 화폐금융개혁[편집]



3.2.1. 국내의 사례[편집]


  • 1953년 화폐개혁[4]
  • 1962년 화폐개혁[5]
  • 금융실명제


3.2.2. 외부의 사례[편집]




3.3. 제도개혁[편집]



3.3.1. 국내의 사례[편집]




3.3.2. 외국의 사례[편집]




3.4. 군제개혁[편집]



3.4.1. 국내의 사례[편집]




3.4.2. 외국의 사례[편집]


직선형 대형 사용과 파이크의 길이 단축, 10kg에 달하는 머스킷의 경량화, 중기병의 갑옷 간소화[6], 기병의 전법 재정비와 하카펠 기병 육성[7], 소구경 대포 도입 및 기마포 부대 설립 및 운용, 근대적 개념의 예비군, 직업군인 제도의 도입등이 있다.


3.5. 농업개혁[편집]



3.5.1. 국내의 사례[편집]




3.5.2. 외국의 사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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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영삼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회고록에서 남긴 말이다. 민주 투사로서는 끝내 민주화를 쟁취하며 성공한 혁명가가 되었으나, 정작 대통령이 되어서는 1997년 외환 위기 대처에 실패한 대통령이 되어 초라하게 떠난 것을 일컬어 한 말이다.[2] 하지만 공민왕의 개혁은 실패로 끝났다.[3] 개혁의 방향성만 약간 달라졌을 뿐 정도전의 개혁과 태종의 개혁은 그 방식과 조항이 거의 동일하다. 사병 혁파, 행정망 재편, 군제개혁과 세폐개혁, 법률 재정비 등등 두 개혁은 서로를 빼다박은 모양새이다.[4] 대한민국 100원(구) = 1환[5] 대한민국 10환 = 1원 (현재의 대한민국 원)[6] 이 개혁 이전에는 아직도 중세시대 마냥 전신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싸웠다고한다.[7] 스웨덴군과 대다수의 유럽군은 돌격용 기병과 카라콜용 기병을 나뉘어 편제하는 방식이였는데 이를 하나로 통합해 운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