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히딩크/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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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대한민국 내의 위상과 평가
3. 한국에 대한 애정



1. 개요[편집]


거스 히딩크의 대한민국과의 관계 등을 다루는 문서.


2. 대한민국 내의 위상과 평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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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세 번의 5:0 패배를 만든 인물이며, 그 중에 두번은 히딩크 본인이 대한민국 대표팀을 이끌고 당했다.[1][2][3]

한국 축구 역사상 많다 못해 지나친 성과인 4강 신화 덕분에 그의 한국내에서의 인기는 넘사벽으로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인기있는 감독.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레전드라고 일컫어지는 인물들중 유일한 외국인 레전드이며 KFA 명예의 전당 최초의 7인 중 1인이다. 명실상부한 국민 감독으로서의 입지가 1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탄탄하며 그 어떤 한국 감독보다도 훨씬 인기가 좋다.

그에 대한 한국 축구팬들의 애정과 그리움은 아직까지도 식을 줄을 모르고 있을 정도로 그의 한국 내 입지는 그야말로 언터쳐블이라 해도 무방하다. 여기에 대한 반작용인지 일본에서는 히딩크 감독의 안티가 많다. 게다가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아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을 박살냈으니, 싫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가 탈세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자 2ch 등지에선 축제 분위기였다가 오래가지 않아 풀려나자 도로 실망했던 적도 있다.

물론 위에도 서술했듯, 처음부터 이런 평가를 받은건 아니었고 한국에서도 처음에는 외국인 감독 하나가 굴러들어와선 개최국 망신 다 시키겠다고 어마어마한 비난에 시달려야만 했었다. 그 새끼 거들먹거리긴 그러나 히딩크는 월드컵에서 우리는 분명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모든 것은 그 때에 알게 될 것이다.라며 준비과정에서 흘러나오는 어떠한 비판도 수용할 것이라 하여 더더욱 언론을 벙찌게 만들었다. 거기다 언론이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비판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도 자신은 6월을 기다려 왔고 세계 유명 축구팀들이 비웃어도 반박할 필요 없이 월드컵에서 보여주면 된다 한한 자신감을 표출했다.

특히 "개최국으로서 16강만 넘으면 체면치레 하는거다."라며 대부분의 여론이 히딩크에게 16강 진출을 두고두고 강조할 때도 "한국 국민들이 원하는 16강은 나의 바람이 아니다. 내게는 그 이상의 바람이 있다."며 야망을 드러내었다. 당시엔 조별 예선이나 통과하고 그런 말해라는 반응이 많았지만 정말로 16강을 통과하고, 이후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라는 초절정 명언과 그에 걸맞는 성적까지 겹쳐지자 꿈을 현실로 만든 남자라면서 붉은 악마들의 정신적 지주로 등극했다.

감독으로서 히딩크가 평가한 한국 축구의 문제점은 공격수는 많으나 수비수의 자원이 부족한 것, 그리고 정신력이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이 부분은 2010년대의 한국 축구에도 어느 정도 들어맞는 편이다. 훈련 중에도 전술적, 기술적 실수는 문제삼지 않았으나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선수가 가장 싫다며 선수들의 정신력에 많은 비판과 조율을 요구했다.

한국 선수들이 기술은 유럽보다 딸리지만 붉은 전사 투혼만은 살아있다라고 생각했던 세간의 평가와는 정반대되던 셈. 그는 한국 축구의 기술이 유럽에 비교해서도 훌륭한 수준이라고 평가했으며 특히 양발잡이들이 많다는 점을 놀라워 했다고 한다.[4][5] 히딩크는 한국 선수들의 승리에 대한 의지는 제법 높게 평가했지만 그마저도 독일이나 이탈리아가 보여주는 그 무시무시한 승부 근성에 비교해보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히딩크가 가장 혹평했던 것은 한국 선수들이 공만 잡으면 지나치게 흥분하여 오히려 골 결정력에 방해가 되는 것과 어린 선수들이 고참 선수들을 무서워 해 기가 눌려있다는 것.[6] 특히 한국 특유의 선후배간 위계질서를 가장 좋지 않게 보면서 "그라운드에서는 반드시 나이를 막론하고 반말을 쓰고 위계질서에 관계없이 서로간에 대화를 하며 경기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며 모든 선수들이 훈련 중 반말을 쓰게 하고 존댓말을 쓰는 사람은 월드컵 안 데려가겠다고 으름장을 놨다고 한다.[7][8][9]

히딩크는 이런 수직적 관계가 축구의 창의성을 말살한다고 보았고 선배가 잘못을 하면 후배라도 반드시 지적하고 수정하라는 철학을 강조했다. 당시 몇몇 고참 선수들은 한국의 유교적 정서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고 혹평했으나[10] 지금에 와서는 대부분의 경우 대표팀과 축구계에 존재하는 위계질서나 권위의식을 타파하기 위한 신선한 시도였고, 결과적으로 20대 초반의 이천수, 박지성 등의 선수들이 기죽지 않고 활약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더불어 수비수 자원의 부족 및 유소년 발굴 시스템의 안일함 등등 제 3자인 외국인 감독의 시각에서 한국 축구 및 국가 대표팀의 문제점에 대해 냉철하게 분석, 지적했다는 점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 외에도 기존에 주목받지 못하던 선수들을 기용 및 발굴해 호평을 받았는데, 미리 선발된 선수 외에 선발되지 못한 쪽에도 더 좋은 선수가 많을테니 잔뜩 추천하고 계속 뒤져보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11]

그리고 해외에서 잘 나가던 선수들보다 한국에 오래 머물고 있어 경기력이 다듬어져 있던 국내 선수들의 체력 등을 더높이 평가했다고. 이 당시에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스타 선수였던 이동국은 탈락한 반면에 신참에다 당시 아무런 기대도 받지 못하던 박지성이 최종 엔트리에 합류하여 한일월드컵의 또 다른 스타가 된다. 박지성 본인에겐 히딩크가 축구인생의 은인이었던 셈이다.[12]

아무튼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히딩크는 내리막길 감독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났고 대한민국 내에선 국민영웅 대접을 받았다. 월드컵 시작하기 전에 오대영 감독이라고 그렇게 까대던 국내 언론들도 그를 거의 한국 축구의 성자로 떠받들며 매일 같이 찬양 일색이었다[13]. 혹자는 만약 독일을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더라면 국내에 히딩크를 숭배하는 종교가 하나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하기도. 근데 농담으로 안 들려서 더 무서워...[14]

2002 한일 월드컵홍명보 등 고참들이 안정적인 기량을 보이고 이영표 등 수비수들의 활약도 돋보였던데다 그 어려운 세대 교체마저도 완벽하게 이루어내면서 4강 진출이란 성과를 이룩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리즈 시절이었다. 동시에 히딩크 본인에게도 전성기이자 인생역전 그 자체였다 할수 있다[15].

이런 4강 신화의 업적을 인정받아, 히딩크 감독은 2003년 2월 25일 취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식에 문화 체육 학술 인사로 초청받아 참석하기도 했다.

3. 한국에 대한 애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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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재단을 통해 한국 축구의 발전에 꾸준히 기여중인 거스 히딩크.[16]

한국 팀을 박살 낸 뒤 한국 국대 감독을 맡고나서 인생역전을 이루어낸 만큼 한국에 대해선 당연히 애정어린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17] 월드컵 이후 PSV 에인트호번 감독으로 떠나기 전 인터뷰에서 한국과 정이 많이 들어 떠나고 싶지 않지만 자신이 참가할 큰 대회도 당분간 열리지 않을 것 같고 여기서 서로 헤어지는게 좋은 이별이 될 것 같다고 말하였다. 2012년 방한 후 기자회견장에서 수많은 기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자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며 감회에 젖기도 했다.

월드컵 전 2002년 5월에 한 인터뷰 역시도 화제가 됐는데, 단순히 이번 월드컵 무대만을 위해 뛰고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한국축구가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춘 강력한 팀으로 가는 길에 작은 기여를 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또한 한국 선수들의 첫인상에 대해선 착하고 순수하며 의지가 강해 그들을 매우 사랑한다고 애정을 드러내기도.

더불어 "과거의 한국축구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변방의 소속팀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속한 나라이며 내가 이끌고 있는 우리의 나라이다. 비록 국적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그 문화의 차이가 다르지만 내가 선택한 나라, 또한 가능성이 있는 나라이다. 남들이 뭐라 떠들든 나는 내가 생각한 길을 갈 것이며 궁극적으로 이는 성공으로 이어질 것으로 확신한다."며 비난여론에 대응하고 감독으로서 책임감을 드러냈다.

이렇듯 히딩크는 대한민국에 대해 유독 각별한 애정을 표하고 있는데, 이는 결코 단순한 립 서비스라고 볼 수 없다. 대한민국 대표팀을 맡지 않았더라면 자기 자신도 자칫 한물간 3류 감독 신세가 될 수 있었기 때문.[18] 거기에 각종 상금과 CF[19] 출연료 등으로 거액의 돈까지 벌어들인데다 한국에서는 거의 "한국 축구의 은인" 이라며 감독 인생 동안 받아본 적이 없을 만큼의 영웅 대접을 다 받았으니 대한민국 활동을 통해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쥐었다고 할 수 있다. 히딩크 본인도 이때가 자신의 Career high였다며 그리워하는 발언을 후에 남기기도 했고 특히 인천국제공항에 존재하는 외국 국가원수 전용 비밀 출입문인 더블 게이트를 이용하는 국가 원수급 대접을 받아본[20] 인물이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고. 생각보다 한국에서의 위상은 훨씬 더 대단하다.

심지어 그를 한국으로 귀화시켜 '희동구'라는 한국 이름을 주고 상암 희씨의 시조로 삼자는 애정어린 농담까지 돌아다녔을 정도. 월드컵 직전에 돌아다녔던 유머 중에는 우리나라가 16강에 진출시, 8강 진출시...등으로 국민 반응을 예측한 것이 있었다. 해당 유머에 따르면 8강 진출시 정몽준 당시 축구협회장과 히딩크 감독이 원내 1위 정당을 설립, 4강 진출시 헌법개정으로 히딩크 감독 대통령 취임 등등. 동아일보 기사...어? 물론 이는 그 빛나는 성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찌됐든간에 성과가 나왔기에 이 정도의 대접을 받을수 있었던 것. 실제로 2002년 7월 명예국민 지위가 수여되었다.

여담으로 만화가 허영만관상을 소재로 한 만화 에서 히딩크를 다루며, 수재민 연금으로 겨우 5천만원(!?)을 냈다고 비판한 관상가 인터뷰를 실은적이 있다. 사실, 네덜란드 사람들은 1945년 전후 2차례의 불경기를 겪으며 근검절약이 몸에 배었다.[21] 히딩크가 그 정도 액수를 '쾌척'한 것이 대단한 것이다. 게다가 2010년대 들어 5천만원은 살짝 적어보이지만 IMF 구조조정 사태 터지고 얼마 안지난 상황에서 당시 5천만원이면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사실 자발적으로 하는 기부에 "한국에서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는데 적어도 얼마 이상은 내야된다"라는 기준을 부여하는 것도 우습긴 하다. 하지만 조세 피난처를 이용해 탈세한 혐의가 인정돼 유죄판정을 받은 만큼 진퉁 짠돌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흘러 2002 월드컵 10주년 기념 올스타전에 초청되었을 때도 "한국 사람을 세계 곳곳에서 만날 때마다 언제나 환영받는 느낌이 떠오른다."며 "한국에 그동안 여러 번 와서 2번째 고향 같다."라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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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올스타전 경기에서 박지성이 골을 넣고 포르투갈 전에서의 그 유명한 세레머니 포즈를 취하며 달려오자 기다렸다는 듯 일어나 어퍼컷 모션을 취하며 포옹, 10년전의 명장면을 재현하여 많은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한국 축구선수들 및 인사들의 그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평이 대부분이고 이 월드컵으로 스타가 된 한국 선수들과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아직까지도 교류가 활발하다. 이당시 거미손 골키퍼로 이름을 떨친 이운재가 힐링캠프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2년전부터는 홍명보, 박지성, 안정환, 이운재 등과 함께 2002 월드컵 계모임을 시작해 얼굴을 보고있다고 한다. 회장은 홍명보. 홍명보가 자신의 팀으로 와 지도자 연수를 받을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이영표, 박지성의 경우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자신의 팀으로 데려가 해외 진출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등 신경도 많이 쓰는 편이다.

선수들의 히딩크에 대한 인상은 호랑이처럼 엄하지만 할아버지처럼 푸근했다고 한다. 특히 선수들에게 주눅들지 말라며 자신감을 심어준 것과 끝까지 믿어준 것에 감사한다는 평이 많은 등, 정신적인 면에서 선수들을 지탱해 준 것에 대한 감사도 많이 받았다. 심지어 월드컵에 출전도 못해보고 2002년 당시 벤치신세를 지켰던 선수인 윤정환 역시도 당시에는 벤치 신세로 만들어 서운했지만 그럼에도 히딩크에게서 정말 많이 배웠다며 자신의 평생에 가장 존경하는 감독이자 롤모델로 히딩크를 뽑았다. 선수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능력이 매우 탁월하고 냉정한 분석력이 있으며 선수에게 끊임없이 다가서려 하는 면모를 특히 존경한다고.

이 중 박지성과는 말할 필요도 없이 서로 최고의 은사-제자라고 치켜세울 정도로 한국 선수들 중에서도 가장 총애하여 아직까지도 둘은 축구팬들에게 모범적인 사제지간의 대명사로 기억되고 있다. 박지성이 에인트호번을 떠날 때 히딩크가 만류하며 섭섭해했다는 이야기가 나와[22] 둘 사이가 틀어지는 것은 아니냐 했지만 이후 박지성이 맨유에서 힘든 적응기를 겪자 언론을 통해 박지성은 훌륭한 선수이고 더많은 기회를 받을 가치가 있다며 그를 끊임없이 옹호해주는등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했다. 아직까지도 볼때마다 너무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운 제자라고 각별하게 생각할 정도.

박지성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이 여러 매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히딩크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표현한 바 있으며 항상 히딩크를 자신의 축구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해왔다. 박지성이 자서전에 쓴 내용에 따르면 부상당한 그에게 정신력이 훌륭한 선수라고 찾아와 칭찬을 해준것이 자신의 남은 인생을 바꿔주었다고 할 정도. 그만큼 히딩크 감독에게 심적으로 많이 의지했다고 한다. 무명 선수와 다를바없는 박지성을 히딩크가 월드컵 전부터 끊임없이 칭찬하고 언론의 비난세례를 받아가면서까지 그를 기용하고 지지해주었던 점을 생각하면 둘이 서로를 각별하게 최고라고 칭찬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박지성이 은퇴하기 전 히딩크에게 미리 통보를 했는데 흔쾌히 지지해줬다고 한다.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씨 역시 박지성에게 히딩크는 그의 재능을 알아봐 준 감독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연락을 자주 하고 잊을 수 없는 감독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 고마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기도.. 그리고 은퇴식에서 박지성은 인생 최고의 감독으로 히딩크를 꼽으며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감사하고 있다고 인사했다.

한국 요리는 그다지 입맛에 맞지 않았는지, 갈비생선전 외에는 좋아하는 한국 요리가 없다고 한다. 그 중에서는 산낙지를 매우 질색하였다고 한다.[23] 그래도 한국이 결승에 진출하면 먹겠다고 말한 적은 있었다.[24] 의외로 마늘은 스테미너에 좋다고 해서 좋아했는데, 선수들과 고깃집에 갔더니 외국 사람은 마늘 싫어할 거라 생각한 주인이 안 주는 바람에 따로 요청하기도 했다고. 물론 생마늘을 쌈장에 찍어먹는 스타일이 아니라 고기랑 같이 구워먹는걸 즐겼으며 이는 자서전에서도 언급되었다.

2014년 1월 5일, 무릎 관절 수술과 복부지방제거, 이마거상수술을 받기 위해서 방한 예정이라고 한다. 기사 연인 엘리자베스도 따라왔다고. 이후 홍명보 감독을 포함한 축협 간부들이 총출동하여 병문안을 가는 진풍경이 나왔고 히딩크 감독도 한국은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첫 경기 러시아전을 최소한 비겨야 할 것이라는 조언을 하였다. 그리고 정말로 비겼다. 그리고 멸망했다

한국이 처참하게 월드컵을 마무리한 후에 올스타전과 박지성 결혼 때문에 방문했을 때는 한국 팬들이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투의 인터뷰를 했다. 정 아니면 자신이 했던 것처럼 장기 합숙도 한 가지 방법이긴 하다고.[25]

2014년 연말에 네덜란드 국왕과 함께 방한했다. 경제 사절단 담당 특사 자격으로 왔고, 양국 정상회담을 하는 자리에도 배석이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무릎이 좋지 않아 한국에서 줄기세포 치료를 받았다. 상태가 심각해서 한동안 휠체어 신세를 지기도 했는데, 현재는 골프칠 때 카트 타지 않아도 될 정도로 회복을 했다고. 여러모로 한국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2016년 10월 한국 방문에서는 미친 포텐을 터트리고 있는 손흥민에 대해서 프리미어리거 수준을 넘었다고 호평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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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0일에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가 펼쳐진 강릉 아이스 아레나를 찾아 직관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히딩크는 "솔직히 네덜란드인으로서 네덜란드를 응원하지만, 한국에 워낙 좋은 선수들이 많아 어려운 경기가 될 것 같다"라고 말했고, 결국 히딩크가 금메달을 기대했다던 싱키 크네흐트는 남자 1,500m에서 한국의 임효준 다음으로 결승선을 통과, 은메달을 땄다. 그 시간에 강릉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3,000m에서는 네덜란드가 금,은,동메달을 싹쓸이했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기간에는 미국 폭스 스포츠에서 스튜디오 분석가로 참여하고 있는데 (현지 시간) 2018년 6월 18일 한국이 속한 F조의 독일 vs 멕시코 경기 종료 후 같이 분석가로 참여중인 멕시코 출신 모이세스 무뇨스(Moisés Muñoz)[26]가 "멕시코는 이미 독일을 잡았으므로 (스웨덴, 한국) 쉬운 경기만 남은 셈이다" 라고 코멘트하자 "한국을 무시하지 마라, 한국은 투지가 있는 팀이고 충분히 반전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서 대한민국의 편을 들어주는 의리를 보여주었다.#[27]

다음날 대한민국 vs 스웨덴 경기 전에는 폭스 스포츠 해설위원인 알렉시 랄라스감독 선임 논란에 대해서 질문하자 내가 더 이상 있어야 할 곳이 아나다라고 하면서 거절했다고 하고 신태용 감독 체제에서 과정이 불안하긴 했지만 발전했다고 신태용 감독을 좋게 말했다. 또한, 손흥민, 황희찬 등 유럽 리그에서 뛰고 있는 경험 많은 선수들이 차이를 만들 것이라고 하면서 대한민국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동시에, "내가 보기에는 수비가 (대한민국의) 유일한 약점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만약에 수비에 부담이 지워지면 아마도 무너질 것입니다." (That's only weakness, that I have. I think their defence when they are under pressure, they might collapse.)라면서 냉철한 평가를 동시에 하기도 했다. 그리고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졸전 끝에 패배한 이후 경기 종료 후에는 실망하는 표정을 감추지 않으면서 자포자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히딩크 감독의 발언은 신태용호가 스웨덴에게 졸전 끝에 패배한 이후에 뒤늦게 알려져서 실망해있던 팬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독일전 승리후 거스 히딩크 감독은 대한민국 대표팀에 대해서 "상당히 자랑스럽다"고 말하면서, 대한민국이 패배한 이후 대한축구협회에 있는 지인들과 통화했을 때 사기가 상당히 저하되어 있었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들이 상당히 끈기있고 침체되어 있다가도 한 시간 뒤에 바로 일어선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들은 오늘 일어섰다고 말했다. 그리고, 신태용 감독의 1% 승률 발언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말했을 것이라고 하고 결과에 대해서 대한민국 대표팀 스스로도 놀랐을 것이라고 하면서, 독일이 대한민국이 원하는 플레이 스타일을 허용함으로써 선수들이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분석했다.##

최근에 과거 네덜란드 방송에 출연한 영상이 공개되었는데#, 자신의 커리어 중 "한국에 있었을 때가 가장 자랑스러웠다"며 회고하며, 그 자리에서 태극기를 꺼내보였다.[28]

4.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재부임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017년 히딩크 감독 선임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7년 9월 6일 YTN 단독 뉴스에 따르자면 지난 6월 슈틸리케 감독이 사임할 당시 관계자를 통해 "한국 국민들이 원한다면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을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다고 한다. "히딩크, 한국민이 원한다면 국대 맡을 의사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축구협회 측에서는 그가 다시 돌아온다 해도 과거와 같은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며 히딩크의 한국 국대 감독 재선임 문제를 일축했다. 의향 있다는 히딩크, 협회는 불신 2002년은 2002년일뿐

실제 한국팀 국가대표 감독을 맡게 될지는 미지수이나 적어도 한국을 향한 히딩크의 애정이 각별함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측근을 통해 "연봉과 상관없다"[29], "슈틸리케보다 적게 받아도 상관없다." 등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그런데 정작 이 소문들을 흘린 당사자로 추정되는 히딩크 재단 노제호 사무총장은, 히딩크가 6월 당시에 대표팀을 맡을 의향이 있다고 듣기는 했으나 자신이 축협에 이걸 전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성과를 기대했다가 처참하게 망하면 책임질 수 없기때문이고 망할 경우 2002년의 4강신화의 명예까지 훼손된다고... 관련기사 이에 대해 한 매체에서는 노제호 사무총장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 해당 기사

9월 14일, 히딩크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이 원한다면 어떤 역할과 자리라도 맡겠다"면서 3개월 전, 그러니까 지난 6월 대리인을 통해 한국 감독직을 맡을 의사가 있다는 것을 축구협회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축협은 이에 대해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입장을 발표한지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이 발언은 거짓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히딩크 재단은 "히딩크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직에 관심이 높으니 기술위가 남은 최종예선 두 경기를 맡을 임시 감독을 뽑고 월드컵 본선 감독은 본선 진출 확정 후 지원자 중에서 뽑는 게 어떻겠냐"고 축구협회에게 제안했으며, 해당 내용이 담긴 문자를 공개했다. 히딩크 재단에 따르면 히딩크 측의 이런 제안에 대해 축구협회는 "지금에서는 할 이야기가 아니다"고 반응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터진 축구협회 횡령사건과 히딩크에 대한 논란으로 인해 축구협회에 대한 불만 여론이 커지는 가운데, 히딩크의 재부임설 문제가 단순한 대표팀 감독 선임의 문제를 넘어서 축구협회에 대한 전반적인 개혁 요구로 점차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히딩크 감독 선임 촛불집회에 직접 참가한 언론 보도가 화제가 됐다. 해당 기사
[1]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을 당시 5:0 패배 2번 때문에 오대영이란 별명이 붙긴 했지만, 1998년 월드컵에서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을 맡을 당시 한국을 5:0으로 박살낸 경기 역시 아직까지도 많은 한국인들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어 이 5:0이라는 숫자가 '축구경기에서의 참패'를 뜻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수치가 되었다. 괜히 참담한 대표팀 실력을 볼 때마다 '5:0으로 지는 것 아니야?'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긴 감독.[2] 덕분에 2014년 월드컵 직전 차범근이 다큐멘터리 촬영 중에 만나서 담소를 나누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차범근이 그때 저를 정말 힘들게 하셨어요라고 농담을 던지자 화들짝 놀라 미안하다고 너스레를 떨며 격하게 편집을 요구했다. 당시 차범근은 히딩크의 네덜란드에 참패하여 대회 도중 경질되는 인생 최대의 트라우마를 겪었기 때문. 한때 적으로 맞섰던 두 어르신들이 서로 땀을 닦아주며 미안하다고 오버액션을 날리는 귀여운 모습을 볼 수 있다.[3] 훗날 JTBC 쿡가대표에서 안정환이 말하길 5:0으로 졌을때 인터뷰는 떳떳하게 하셨지만 선수들에게는 어마어마한 불벼락이 떨어졌다고 한다.[4] 약간 언론플레이성 발언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한국 선수들의 발기술이 유럽 선수들과 비교해도 훌륭한 수준이라는 말은 사실 투지와 동기 부여만 있다면 기술적으로도 조금이나마 비벼볼 수 있다는 의미로 한 말이지, 진짜 유럽 선수들만큼 기술이 뛰어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는 것이. 당장 지금까지도 수시로 지적되고 있는 기본기 부족에 관한 지적을 봐도 짐작할 수 있다.[5] 양발 쓸 수 있는 게 뭐 대단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으나, 상대팀도 바보는 아니라 공수 과정에서 맞닥뜨릴 때 상대의 주발을 생각하고 위치를 마크해서 공을 효과적으로 뺏거나 돌파한다. 그러나 양발이라면 상대가 어떻게 나올 지 예측하기 어렵고 한발 늦게 반응하기 때문에 양발 선수가 공격이나 수비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이 세계 강호들을 상대로 선전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며, 수년이 흐른 현재 손흥민의 양발 활용 능력이 전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축구선수에게 있어 양발은 신이 주는 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6] 2005년에 A매치 데뷔전을 가진 유망주 박주영축구 천재이자 황선홍의 뒤를 잇는 정통 스트라이커라고 불리며 기대를 받았던 이유도 간결한 플레이와 골대 앞에서 흥분하지 않는 침착함과 결정력이 돋보였기 때문이었다.[7] 이 당시 하늘같은 선배들은 황당해 하고 까마득한 후배들은 당황해 하며 모든 사람들이 쭈뼛거리는 와중에 이천수가 걸어오며 "명보야, 밥먹자!!"를 외쳐 분위기가 풀어졌다고 한다. 당초 홍명보에게 반말한 선수가 처음엔 김남일이라고 알려졌으나 정작 김남일 본인은 그런 적 없다면서 이를 부정했다.[8] 한편, 이 사례는 의외로 경영학에서 자주 인용된다. 특히 다문화 이해를 중시하는 경영 기법(Inter-cultural Management)에서는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종종 인용되는 사례다.[9] 세월이 흘러 16년 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축구 결승전에서도 이것이 승리를 이끌었다. 이때 팀 막내 이승우가 손흥민에게 한 말은 "나와! 나와!"그리고 골[10] 그런데 정작 유교 문화가 발달했던 조선왕조 시기의 질서와 서열 의식은 현대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특히 양반 가문에서는 자녀가 장성하면 부자간에 대체로 상호존칭을 하기도 했고, 어려서부터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가 자라서 관직에 진출하면 신분에 맞게 존칭을 해 주기도 했다. 적어도 양반 계층 사이에서는 상호존칭의 원칙이 암묵적으로나마 있었던 셈이다. 현대의 연공서열 의식은 오히려 근대화 이후에 생겨난 것이다. 게다가 선후배 문화는 사실 유교 문화와는 무관하다. 왜냐하면 스포츠 선수들 사이에서의 선후배 서열 의식은 유교 문화권인 동아시아권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있었으며, 그 중에는 한국에서보다 심한 사례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알렉스 퍼거슨이 발굴하고 길러낸 데이비드 베컴,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와 같은 스타들도 신인 시절에는 각종 구타와 얼차려에 시달려야 했으며, 팀의 고참이었던 에릭 칸토나가 라커룸에서 과시한 똥군기는 영국 현지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퍼지면서 각 구단 지도층들 사이에서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근래에는 많이 사라지긴 했으나, 여전히 스티븐 제라드리오 퍼디난드등 일부 고참급 선수들은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마치 군대에서 선진병영을 하려고 하자, 상~병장급 병사들이 이에 불만을 갖는 것과 유사하다.[11] 최진철을 발탁하면서 "왜 여태 안뽑았느냐?"고 말한 일화가 있다.[12] 물론 히딩크 이전에 허정무가 박지성의 재능을 일찍 눈여겨보고 뽑은 덕도 컸다. 문제는 당시 여론이 인맥이다, 낙하산이다 하며 저평가를 해댔다는 것.어디서 많이 본 건데? 히딩크가 그렇게 뽑힌 박지성을 잘 키워내서 여론을 반전시키지 않았다면 박지성이 어떤 오명을 뒤집어썼을 지......[13] 한국축구 사상 첫 월드컵 승리를 선사했을 뿐 아니라,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강호를 꺾고 4강까지 진출시킨 업적은 온갖 미사여구를 다 써서 극찬을 하더라도 부족하다. 당장 아시아 국가들 중 유일한 월드컵 4강진출이라는 점과, 최종성적 역시 아시아 최초의 4위였다는 점 역시 엄청난 업적이다. 4위로 마쳤기에 망정이지, 만에 하나 우승이나 준우승으로 끝냈다면 차기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축구계는 엄청난 부담감을 갖고 국제대회를 준비했어야 했었을지도 모른다.[14] 농담이 아니고 실제로 당시 개그로 나돌던 유머 중에 그와 관련된 유머가 돌기도 했다.[15] 괜히 박지성이 2002년 한일 월드컵포르투갈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후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포옹을 한 것이 아니다. 축구선수로서 대성하기 어렵다는 평가에, 프로선수 경력마저 해외, 그것도 일본의 J리그에서 뛰던 그를 발탁시켜 인생 역전을 만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외국인 감독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는 은인이나 다름없다. 아니, 그 이전 자기를 믿어준 소수 지도자들의 명예를 지원해준 백락이나 다름없다.[16] 허정무/거스히딩크축구재단에서 훈련받은 박재민이라는 선수가 나이키 모스트 원티드의 한국 대표로 뽑히기도 했다.[17] 2002년 월드컵 후 중국이나 태국에서 러브콜을 날렸지만, 생깠다. 일본의 경우 2006년 호주대표팀을 맡으면서 밟아 놓아 한국팬들을 또 한번 즐겁게 해 주었다.(거기다 정의는 승리했다는 드립까지!) 하지만 북한의 경우는 예외로, 한국과 한민족이라는 정서를 알았던지, 기회가 된다면 북한 대표팀을 맡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동무 4강 못가면 어디로 갔는지 알지?[18] 실제 히딩크 영입때 찾아간 가삼현씨가 히딩크를 설득하면서 "한국 말고는 당신이 갈 곳이 더 이상 없다."라는 말로 설득했다고.협박 같은데? 앞서 말했다시피 이 때 히딩크는 레알 베티스에서 실패한 후 야인으로 차츰 잊혀져 가는 중이었다. 잉글랜드 대표팀을 맡았던 에릭손 감독이 빌빌 거리다 중국 리그에서 감독하는걸 히딩크가 경험할 수도 있었던 것. 그리고 지금은 이 사람이 진짜 그렇게 될 위기에 처했다... [19] 출연한 광고 중에 "하늘만큼 땅만큼"이라고 말하는 모 보험사 광고가 있었다.[20] 국가원수급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보낸 특사급 인물과 각 국제기구 단체장이나 대통령 초청 특별 인물 방한시에도 더블 게이트를 통과하여 입국하였다. 예를 들면 IOC 위원 이라든가.[21] 히딩크 부모세대들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물자공출로, 히딩크 또래의 세대들은 네덜란드병석유파동의 2연타로 10대, 30대 시절을 어렵게 살아온 경우가 대부분이다.[22] 이 때 히딩크는 박지성이 맨유에서 벤치멤버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를 했고, 자신과 친분이 있는 로만 아브라모비치 소유팀인 첼시 FC로 나중에 같이 가자면서 만류했다. 그러나 박지성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은 첼시가 아닌 맨유라면서 이적을 강행.[23] 사실 이건 히딩크가 유난스러운게 아니라 아랍 및 아시아 각지, 오세아니아, 중남미, 북중미에 이르기까지 산낙지에 대하여 굉장히 질색하는 사람들이 많다.[24] 당시 대표팀 코디네이터였던 얀 룰프스는 다리 한짝을 잘라먹긴 했다. 전설의 명장 조 본프레레의 경우 김치로 밥을 비벼먹을 정도로 음식 적응을 잘 했지만 해삼에게는 백기를 들었다고.[25] 하지만 과거 FC 코리아와 같은 합숙은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26] 클루브 아메리카에서 뛰고 있고,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에 후보 선수로 선발된 경력이 있다.[27] 결국 오만한 태도로 나왔던 멕시코는 3차전에서 크게 패배한 후 한국의 카잔의 기적에 힘입어 16강에 올랐다.[28] 사실 이쯤에 손흥민이 번리전에서 엄청난 슈퍼골로 이슈가 되었을 때 일뽕과 국까들이 경기장에 태극기를 펼쳐드는 것을 갖고 시비와 논란을 일으켰는데, 히딩크의 이 영상이 이 쓰짤때기 없는 논란을 일축시켰다.[29] 리피 이전에 중국 대표팀 감독 제의를 받았는데 거절했다고 한다. 참고로 리피의 연봉은 약 200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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