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륭제(후궁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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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여의전의 등장인물
건륭제


파일:151374911445.jpg

이름
애신각라 홍력 爱新觉罗 弘历
배우
왕문걸(王文杰)(옹정황제의 여인) | 곽건화(여의전)
거주지
원명원 → 수강궁 → 수황전 → 양심전
지위
4황자 → 황제
가족
아버지 옹정제, 생모 이금계, 양모 숭경황태후 뉴호록 씨
아내[1] 효현황후 부찰 랑화, 계황후 오라나랍 여의, 효의황후 위연완[2] 슬하 17남 10녀

1. 개요
3.1. 소설
3.2. 드라마
4. 실제 역사에서



1. 개요[편집]


드라마 옹정황제의 여인여의전의 등장인물.


2. 옹정황제의 여인[편집]


옹정제의 4황자이자 견환의 양자이며 본명은 애신각라 홍력이다. 옹정제가 아직 옹친왕이었던 시절 강희제의 8황자 윤사와 논쟁을 벌이다, 뜻대로 되지 않자 폭음 후 술김에 열하 행궁의 궁녀 이금계와 동침하여 생긴 황자이다. 그 일을 빌미삼아 당시 8황자 윤사가 선황에게 꼰질러서 크게 혼났고, 친왕의 작위까지 빼앗길 뻔했기에 흑역사 취급을 당하는 듯하다.[3] 옹정제가 이금계를 왕부에 데리고 들어가지 않고 원명원에 방치해뒀고 그녀가 홍력을 낳자마자 죽었기 때문에 궁에서 자라지 못하고 원명원에서 늙은 유모의 손에서, 아버지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냉대 속에서 자랐다. 이렇게 친모가 없기 때문에 애정결핍인지 견환이 어머니가 된다고 하자 드디어 자기에게도 어머니가 생겼다고 매우 좋아한다. 참고로 견환보다, 정확히 말해서 견환의 실제 나이보다 일곱 살 어리므로, 원명원에서 견환을 처음 만났을 때는 11살이었다. 열 살이 넘도록 원명원에 방치되어 자랐던 것. 이 때문에 견환이 홍력의 생모로 세탁되어 환궁했을 때 나이를 무려 10살이나 올려버렸다.

황제가 4황자 이야기만 들으면 화를 버럭 내기 때문에 서재에도 출입하지 못해 당연히 제대로 된 공부도 하지 못했고, 황후[4]를 비롯한 비빈들 역시 냉대한다. 상냥하기로 꼽히는 경빈마저 4황자에게 가까이하지 말라고 견환에게 충고했을 정도였다. 그들의 심복들도 마찬가지다. 여름 피서 차 원명원에 들른 황제에게 문안을 올리려고 해도 노비들이 먼저 몰아내는 판이니 그렇다.

황제에게 갓 총애를 받던 시절의 견환이 문안인사도 올리지 못하고 하인들에게 쫓겨나는 홍력을 불쌍하게 여겨 그에게 따뜻한 위로를 해줬을 때, 홍력은 순수한 표정으로 견환의 말을 듣고 즐거워 한다. 이때 4황자가 나중에 황제가 된다는 복선이 나오는데, 황제 쪽에서 4황자를 만나주지 않자 견환이 위로하느라 "아버지는 일하느라 바쁘시답니다~"라고 말하는데 홍력이 천진난만하게 "그럼 내가 아버지 일을 대신 할래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렇듯 견환이 거의 유일하게 홍력에게 따스하게 대해 주었기에 홍력은 견환을 잘 따른다. 이 관계는 후에 4황자와 견환 모두에게 득이 된다.

견환이 폐비되어 출궁하고 난 뒤 롱월공주의 돌 잔치때문에 입궁했을 때, 몰래 쇄옥헌에 가서 슬퍼하다가 지나가던 황제와 딱 마주친다. 이때 4황자가 황제에게 자신과 견환의 인연과 아들로서 아버지를 그리워했다고 이야기하자, 황제도 이때부터 4황자를 보는 것도 싫은 흑역사에서 흑역사이지만 어쨌든 내 아들 정도로 인식이 진화하면서 공부를 시키고 가끔씩 말도 걸게 되었다.

이렇듯 남들보다 공부를 시작한 것이 좀 늦은 편이지만 남들 잘 때 안 자고 밥 먹을 시간도 아껴가며 공부하는 것을 보면 근성도 있고 공부 머리도 꽤 있는 듯. 아버지에게 그나마 듣는 소리라고는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느냐?"였기 때문에 아버지의 총애를 받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공부한다. 그런 그의 모습이 황후의 눈엣가시가 되어[5] 독살당해 죽을 뻔하고, 멘붕해서 방황하다가 심미장을 만나는데, 마침 태후의 수발을 들면서 태후의 예쁨을 받던 심미장이 '홍력을 지켜야함 → 견환을 데려오죠!' 라는 분위기로 가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수강궁에서 잠시 지내다가 그가 15세 되던 해 폐서인되었던 견환이 4황자의 생모로 신분세탁되어 들어왔기에 4황자 홍력의 출생은 고귀해지고, 자연히 황제의 눈에도 더 들게 된 듯.[6]

원명원에 있을 때부터 견환과는 서로 호의적으로 대한 덕분에 견환을 친모처럼 여기며 효심을 다하고, 견환이 출가 전 낳은 롱월공주에게도 매우 잘 대해준다. 그러나 이것의 나비효과가 꽤나 컸다.[7] 견환 역시 홍력을 자신의 친자식들보다 더 신경 써주고 웬만하면 혼내지 않고 말로 잘 타이르는 편이었다. 하지만 견환도 단 한 번 홍력을 호되게 꾸짖은 적이 있었는데, 바로 67화에서 태후의 죽음으로 황제가 슬픔에 못 이겨서 쓰러졌을 때였다. 이때 홍력은 자기딴에는 아버지의 건강을 생각해서 황제에게 인삼탕을 끓여서 직접 갖다드리려고 했지만 견환은 평소와는 달리 "폐하께서 태후의 영전을 지키시느라 몇 번이나 혼절하셨다. 폐하는 널 의젓하다고 생각하시는데 이럴 때 영전을 지키지 않으면 다들 뭐라고 하겠냐? 영전을 지키는 게 인삼탕보다 더 중요하다. 이런 건 여자들이 할 일이니 연연해하지 말라."라고 단호하게 꾸짖었다.[8] 이에 홍력도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생각이 짧았다며 사과하고 견환이 먼저 수황전으로 떠난 뒤 곧바로 황제에게 수황전은 문제가 없으니 푹 쉬시라고 문안 인사를 여쭈며 점수를 딴다.

그 뒤부터는 홍력도 무조건 견환만 쫓아다니며 착한 아들 노릇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 앞길을 개척하기 시작한다. 눈칫밥만 먹고 자란 터라 처세술이 킹왕짱이라 녕귀인이 3황자와 비교하며 지식수준을 시험해 보자 아는 것도 일부러 모른다고 할 정도였다.[9] 게다가 음모와 술수에 능한 자기 아버지와 숙부들의 피는 어디 안 간 것인지, 이복형 3황자 홍시를 황제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8황숙과 14황숙의 구명을 주청하도록 부추겨[10] 황실 족보에서 제명당하게 만들었다. 이후 적복진 부찰씨측복진 오라나랍씨와 혼인도 하고 보친왕에 책봉된다. 옹정제 사후에는 견환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차기 황제로 지목되어 마침내 건륭제로 등극하게 된다.

하지만 황제가 되었을 때 홍력은 견환의 친아들이자 자신의 이복동생인 홍염이 언젠가는 자신의 입지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어느 정도 경계하는 눈치였다. 실제로 황제로 즉위하기도 전부터 항상 "홍염이 잘 되면 소자도 기쁠 거예요"라는 식으로 견환의 눈치를 보는 듯한 발언을 자주 했었다.[11] 결국 황제로 등극한 뒤 정백이 언에서 동생 단을 물리쳤다는 춘추시대 고사를 언급하며 "어린 아들을 편애하고 장남을 홀대한 것이 정나라의 화를 불러왔습니다. 친자식한테도 이러는데 양자라면 어떻겠습니까?"라며 압박을 넣었다. 하지만 견환은 이를 벌써 눈치채고 홍염을 (이미 죽은 친아버지인) 과군왕의 양자로 만들어서 황위다툼에 말려들 가능성을 원천봉쇄시켰다.

이런 모습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훗날 자신의 아버지보다 더 나쁜 놈이 되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자신의 비빈들에게는 좋은 부군일지는 의문이고 동생 홍염이 자기 자리를 위협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빼면 견환에게 좋은 아들인 건 맞다.

참고로 혼인 당시 황후가 3황자 홍시에게 복진으로 주려고 했던 오라나랍 청앵이 홍력의 측복진이 되었는데, 이때 홍력은 견환과 함께 마주앉아 청앵이 정말 마음에 안 든다고 하소연한다. 이에 견환은 좋든 싫든 아무래도 상관 없으니 그냥 데리고 있는 게 중요한 거라며 달래고, 홍력도 이에 수긍하며 알겠다고 넘어갔다. 홍력도 청앵을 달가워하지 않고 부찰씨를 더 좋아하는 견환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의 건륭제에게는 2명의 황후가 있었는데 첫 황후가 부찰씨인 효현순황후이고, 둘째 황후가 휘발나랍씨(오라나랍씨)인 계황후다.[12]


3. 여의전[편집]



3.1. 소설[편집]


전작의 생모가 미천하고 뉴호록씨의 양자라는 설정은 이어지나 견환에게 항상 효자였던 전작과 달리 생모에 대한 미련 때문에 뉴호록씨를 태후로 추존한 후 거처를 수강궁에서 자녕궁으로 옮기는 것을 망설인다. 그러나 여의의 설득으로 태후의 거처를 옮기고 생모를 위해 신분이 낮은 선제의 후궁들을 비빈릉에 안장시킨다. 생모의 출신 때문에 서출 콤플렉스가 있어 다음 황위는 적자에게 물려주고 싶어해 황후인 부찰 랑화를 신경써준다.

처음엔 여의가 3황자 홍시가 찬 여자라 쪽팔린다고 안 좋아했지만 막상 혼인하고 보니 솔직함이 마음에 들어 총애하게 되었다. 원래는 청앵과 남매 내지는 청매죽마 사이로 "청앵 누이"라고 불렀다. 소설 수정판에선 <장두마상> 연극을 보며 청앵과 만나게 되는데 홍력은 부부가 재결합하는 이 연극의 결말을 좋아했으나 청앵은 싫어했다. 그래서 청앵이 미리 홍력의 이름을 사칭하고 여주인공이 이별을 선언하는 결말로 바꾸는데 분위기가 파토나고 청앵은 사실대로 말한 뒤 밖으로 나간다. 홍력은 뒤따라가서 "청앵 누이"라고 부르고 결말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홍력은 여자가 참으면 다 원만해진다고 하고 청앵은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을 지키지 못했는데 왜 다시 부부가 되어야 하냐고 한다. 둘 다 굽히지 않았지만 홍력은 오히려 청앵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런데 수녀선발 직전 홍시가 곧 실각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형을 위해 용서를 구하려 하는데 랑화가 가도 소용없으니 황제가 시킨 일을 하라고 말리자 그만두고 청앵이 혈육이니 중시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자 복진을 고른 후 옹정에게 가려고 한다. 홍력은 랑화를 측복진으로 선택하고 홍시의 소식에 눈치없이 축하하려고 하며 청앵에게 비아냥거린 희월을 싫어해 적복진으로 고를 듯하다가 낙선시키는 것으로 모욕을 주고 청앵을 적복진으로 선택한다. 하지만 옹정이 나타나 홍시와 황후를 실각시켰음을 밝히며 무산시키고 홍력은 두려워하면서도 물러나지 않아 옹정은 황후의 언니인 효경황후를 떠올리며 그 집안의 희망을 꺾고 싶지 않아서 홍력이 랑화를 적복진으로 삼게하는 대신 청앵을 측복진으로 삼고 싶어하는 홍력의 소원을 들어준다. 덤으로 희월을 격격으로 삼게하나 홍력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즉위 후엔 혜귀비 고희월을 더 총애했지만 여의에게 조정과 후궁의 관계 때문에 예전만큼 잘해주지 못하게 될 거라고 귀뜸해 주었다.

아버지 못지않은 독종. 여성편력이 쩌는데다 한 후궁만 총애하지 않고 두루두루 총애하여 후궁들의 암투를 매우 치열하게 만드는 원흉. 여의가 시녀 아약에게 모함을 당했을 거라 의심하면서도 냉궁으로 보내고 아약은 후궁으로 만들어 총애한 줄 알았으나 이게 다 페이크. 아약의 처소를 찾을 때마다 발가벗겨 무릎꿇리고 넌 그저 여의의 노비일 뿐이라며 정신공격을 해댔다.

냉궁에서 방화사건과 비상사건으로 여의의 목숨이 위험하자 홍력은 더 이상 방관하지 못하고 여의를 데려온다. 배후에 희월이 있다고 의심하여 여의가 조사하는 건 허락하나 희월은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싫지만 고빈을 버릴 수 없어 쫓아내지 못한다. 희월이 자백하며 부찰 제영의 죽음은 랑화의 짓일 거라고 하자 나의 황후는 그렇지 않다며 부정하나 홍력은 이미 부찰 제영의 죽음이 랑화의 짓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고희월의 죽음 후 랑화를 멀리하나 그럼에도 적자의 어머니인 랑화를 놓지 못하며 영종이 죽은 후 랑화의 건강이 악화되자 그녀의 건강회복을 위한 지방순행을 단행한다. 랑화가 악행을 저지르긴 했으나 대부분의 일은 그녀의 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죽자 슬퍼한다. 랑화가 죽은 후 믿어주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그녀를 잊지 못하는 중이다. 랑화의 장례식에서 영황과 영장이 지나치게 슬퍼하지 마시라고 말하자 적모의 장례에 슬퍼하는 기색이 없고 불충불효하다고 황위계승권을 박탈했다. 얼마 후 여의의 처소에서 자다가 랑화를 부르면서 잠에서 깨는데 여의에게 꿈에 랑화가 눈물을 흘리면서 '왜 신첩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세요? 아직도 신첩을 의심하십니까? 신첩이 싫으십니까?'라고 묻는다고 말하며 괴로워 한다.

태후를 경계하여 태후가 들인 후궁들을 불임으로 만들어버렸다. 병에 걸렸을 때 홍력은 "어냥"을 불렀다.[13] 홍력에게 어머니는 이금계 하나 뿐이고 태후를 어머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홍력은 사실 여의가 아닌 청앵의 아이같은 천진난만함과 솔직함을 사랑했고 청앵에 대한 미련 때문에 여의를 놓지 못한다. 홍력의 순원황후는 청앵이다. 청앵의 대역으로 외모가 닮은 위연완과 왕부지가 있다.


3.2. 드라마[편집]


배우 곽건화가 홍력 역에 캐스팅되었다. 캐스팅 때부터 역대 최고 건륭제 비주얼이라며 큰 기대를 모았고, 예상대로 드라마 내내 변발로도 감춰지지 않는 절대불변의 미모를 보여주었다.

현지에선 渣男(똥차와 비슷한 뜻의 신조어)에서 기반한 渣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욕 먹는다. 이런 탓에 작가가 드라마에서 조금 순화시키려했으나 곽건화가 원작대로 하자고 해서 무산.

패러랠 월드인 여의전의 아들과 비교하여 좋게 아버지가 재평가되는 면이 있었다. 팬들은 같은 황’썅’이라도 좋아하는 여인은 확실히 지켜주었다는 점[14], 후궁의 혼수품을 기억하는 등 섬세하고 아낌없이 챙겨주는 등, 잘해주는 면을 좋게 평가한다. 또 옹정제는 감정이 앞서 나가서 후궁들, 자식들에게 함부로 손찌검, 발길질하지 않았다.[15] 견환의 사통을 의심했을 때 손찌검을 딱 한 번 했지만, 여의전에서 건륭제는 아들들은 물론이고, 순원황후급으로 좋아했던 여인이라도 감정이 앞서나가면 수 차례 손찌검한다. 심지어 들한테는 손찌검은 기본에 발길질도 서슴없이 한다적어도 옹정제는 상대방이 잘못을 했고 심증 물증이 확실한 경우에 때렸지만 아들놈은 그냥 증거가 없어도 지가 마음에 안들면 때린다. 심지어 지가 잘못했을 때도 적반하장으로 다른 사람을 때린다(...)[16]

또한 부자가 같은 의심병을 가졌으며 사통에 민감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어머니가 사통을 저지른 상황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일부 팬들은 이해하며 동정을 한다. 그리고 과군왕이 보낸 희귀비안(熹貴妃安) 편지 같은 증거를 확인하고, 끝끝내 인내하다가 견환의 손으로 과군왕을 죽이게 하는 잔인한 복수를 한다. 그러나 건륭제는 확실한 배경 설명이 없고, 제대로 된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질투에 미쳐 사통을 의심한 상대를 곧바로 고자로 만들어 사랑했던 여인에게 내시로 주는 등 이해가 안가는 또라이짓을 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더 고평가받았다. 심지어 그 사랑했던 여인은 그를 특별한 친구로 여겼을 뿐, 사통하지 않아서 평범한 시청자가 보면 역겨운 상황으로 느껴지기 충분했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훨씬 냉혹한 놈이라는 건 엽혁나랍 의환화비의 사례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아버지인 옹정제의 경우, 불임약을 먹이긴 했으나[17] 적어도 화비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어 잘해주려 했다. 그래서 화비가 저지른 수많은 악행이 드러났음에도 웬만하면 목숨은 끊지 않으려 했고, 화비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옛정을 생각하여 나중에 평안히 여생을 살게 해주려 했다. 그러나 건륭제는 오직 태후가 추천했다는 이유만으로 죄없는 의환 모자를 차갑게 대했다. 심지어 자신과 10황자가 상극이라는 흠천관의 예언 하나 믿고 몸이 약한 자식을 궁밖에 방치하고 죽어가는 순간까지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마지막에 의환과 독대할 때, 의환이 태후에게 협조하지 않고 자신에게 진심을 다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나 잘했다는 소리 밖에 하지 않았다.[18]

남주인공을 너무 지나칠 정도로 성격파탄자로 만들어 극에 몰입이 안된다는 비판이 있다. 도저히 남주의 정신상태가 이해가 되지 않으며, 이 정도로 학대를 당하고도 견환처럼 진작에 돌아서지 않는 여의를 신기해하는 시청자들이 많다. 안그래도 극의 중심에 있지 못해 페이크 주인공 논란이 많은데 저런 쓰레기를 끝까지 놓지 못하는 여주의 성격에 더욱 몰입이 안된다는 편. 아무리 후궁 시리즈가 로맨스가 주요한 작품은 아니라지만 독자와 시청자들에게는 고구마 백개를 삼키는 듯한 답답함과 짜증을 유발한다.

다만 이것은 원작과 달리 설명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다. 원작 독자들에게도 욕은 많이 먹지만 왜 이렇게 되는지는 이해했다. 원작에서는 홍력이 아버지에게서 냉대받아 궁에서 멸시받았다는 전작의 설정이 이어지고 희귀비와 오라나랍씨의 암투를 어릴 때부터 목격하여 후궁들을 의심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올바르게 자라기 힘든 환경에서 자란 것이다. 청앵에게 반한 것도 주눅들어 살던 자신과 달리 당당하고 그가 봐온 여자들과 다르게 솔직해서다. 또한 황제가 되면서 후궁들이 겉으로는 자신에게 순종하지만 끊임없이 암투를 벌이자 더욱 의심하게 된다.

이런 행적들로 인해 엄청나게 욕을 얻어먹어서인지 드라마에서는 원작과 다르게 마무리된다.

여의와 해란의 협공으로 5황자 영기, 5황녀 경시의 죽음, 릉운철과의 일 등이 위연완의 짓임이 밝혀지면서, 그녀에게 독과 해독제를 번갈아 먹이며 죽느니만 못한 고통을 겪게 한다. 이후 화해를 위해 여의를 찾아가나 그녀는 이미 건륭제의 진면모와 궁중 내 암투에 지칠대로 지쳐서, 모든 걸 단념한 상태였고 건륭제가 용비와 목란위장으로 간 사이 연금된 이후부터 앓던 폐병으로 죽었다.[19] 여의의 사망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지만 옆에 있던 경빈이[20] 여의가 말도 안하고 약도 먹지 않은 건 목숨을 버리는 것으로 복수하려던 거라고 하자, 짐과 황후가 어떤지는 네가 논할 처지가 아니라며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고 홀로 남은 뒤 왜 여의가 병도 감추고 약도 먹지 않았는지 한탄한다. 이후 여의가 죽기 전 친아들 영기에게 남긴 편지를 읽고 그녀가 직접 반으로 찢어서 불태운 황후의 초상화를 보고 죽어서나마 자금성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여의의 진의를 깨닫는다. 여의의 장례식 이후 어릴 때 그녀와 함께 자주 올라갔던 성루에 혼자 올라가, 여의와의 첫만남부터 적복진 간택과 황후 책봉까지의 추억을 생각하며 오열한다.

결국 여의의 뜻대로 황후가 생전의 행적이 좋지 못하고 판단력을 잃었기에 황후의 예로 장례를 치르기 불편할 터이니 황귀비의 예로 행하고, 일체의 기록과 그림을 남기지 말고 (다만) 오라나랍씨가 훙(薨)했다고만 공표하라고 명한다.[21] 태후가 찾아와 이 처사에 대해 궁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며 여의를 황후의 예로 장례치르지 않는 건 물론 순혜황귀비와 합장하고, 위패 및 제향도 올리지 않고 모든 사서에 기록도 남기지 않고 그림도 남기지 않다니 아직도 그녀에게 앙금이 남아있냐고 한소리 한다. 그러나 여의는 황후의 자리, 영화, 권세를 비롯한 모든 것을 개의치 않았으니 자신조차 여의에게 황후의 책무를 강제할 필요는 없고 여의는 본래 궁중에 있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라고 얘기한다.[22][23]

이후 여의가 죽은지 9년이나 지났는데도 이옥을 비롯한 심복들의 간청에도 후궁들조차 찾지 않고, 양심전 안에서 여의가 생전에 가장 아꼈고 사후 유품이나 다름없는 녹매 화분만[24] 바라보며 두문불출한다. 태후가 15황자 영염이 혼례를 올리고 친왕에 봉해진데다 7공주와 8공주도 모두 시집을 갔으니, 거의 미쳐버린 채로 유폐된 위연완을 처리해서 매듭을 지어야되지 않겠냐고 하자 심복들을 시켜 그녀를 독살한다.

여의의 사후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 아들 가경제에게 양위하고 태상황이 된 뒤에도 외롭게 늙어가던 중 태감의 도움을 받으며, 한 상자를 꺼내는데 그 안에는 여의가 직접 녹매와 여지를 수놓은 손수건과[25] 건륭제에게 절연을 선언하며 잘랐던 머리카락이 있었다. 건륭제는 늙어서 백발이 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상자 안에 함께 넣고, 그 상자를 손에 꼭 쥔 채로 눈을 감아 사망하는 것으로 드라마는 막을 내린다.[26]

자신의 이기심으로 수많은 후궁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밀어넣은 업보로 그토록 사랑했던 여의는 생전에 화해하지 못한 채로 떠나보냈고, 결국 자신도 죽기 직전에나마 끝나버린 여의와의 인연을 어떻게든 이어가고자 하는 서글프지만 자업자득의 최후를 맞았다. 비록 여의가 죽어서나마 자유로울 수 있도록 황귀비의 예로 장례를 치루고 그녀에 대한 기록도 전부 지워버렸지만, 건륭제 본인이야말로 죽을 때까지 여의에게서 벗어나지 못했고 평생을 그로 인한 후회 속에서 살아갔다.

그나마 홍력 자신을 두고 암투를 벌이는 궁중과 내명부의 여인들에게 휩싸여 미쳐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고 옹호할 수 있다. 게다가 슬하의 자식 17남 10녀 중 4남 1녀를 제외한 대부분이 자신보다 먼저 죽었고, 황후와 후궁을 통틀어 22명의 부인 중 먼저 사망한 자들만 무려 14명이다. 그러나 홍력이 직접적으로 죽게 만든 자들 중에는 아들(영황, 영모)과 후궁(의환, 여의, 연완)도 있었으니 결국 변명에 불과하다.

이렇듯 본인부터가 후궁들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고 제멋대로 이용하기만 했으니, 당연하게도 홍력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랑화, 여의, 희월 뿐이었다.

4. 실제 역사에서[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건륭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픽션을 토대로 한 드라마인만큼 역사와는 관계가 매우 없지만 견환의 모티브가 건륭제의 생모인 숭경황태후 뉴호록씨인만큼 실존역사를 따지고 본다면 견환의 친자식이 된다. 건륭제의 어머니가 못생긴 시녀라는건 어디까지나 야사.[27][28][29] 출신 때문에 냉대받았다는 것도 드라마 창작으로, 오히려 강희제 생전부터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은 유망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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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직 정실인 황후만이 아내로, 원후 부찰씨와 계후 오라나랍씨만이 아내라고 할 수 있다.[2] 이쪽은 추봉으로, 생전에 혼인한 아내는 아니다.[3] 참고로 이런 치졸한 방식으로 옹정제를 괴롭힌 8황자 윤사는 당연히 옹정제의 즉위 후 보복을 정통으로 받아 본인과 가족들까지 모조리 족보에서 제명당하고 옹정제에게 개돼지라는 멸칭을 하사받는 걸로도 모자라 종인부에 유폐당해 그곳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4] 전추는 4황자가 불쌍해 보였는지 황후에게 양자로 삼는 게 어떻냐고 하자 황후는 "황상이 4황자를 싫어하시는데 들여서 뭘 어쩌라는 게냐?"이라고 말했다.[5] 자신이 양자로 들인 3황자 홍시를 황태자 자리에 올리기 위해 노력 중이였는데 정작 홍시는 자질이 부족한데 비해, 공부를 늦게 시작한 4황자는 훨씬 똑똑하고 공부를 비롯한 다른 수업도 열심히 하니 바로 제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6] 양모이자 호적상 친모인 견환이 만주족 8대 성씨인 뉴호록씨의 성을 가지고 입궁한데다, 희비로 책봉받은 뒤에는 황제의 총애를 독차지하며 귀비로까지 올라갔다. 홍력 입장에서는 황제가 보기도 싫어하는 천한 궁녀 소생의 황자에서, 만주족 명문가 출신 후궁 소생의 황자로 환골탈태한 것이다.[7] 롱월을 견환에게 데리러 왔는데 경비가 견환이 딸을 뺏으려고 하는 거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어 버렸다. 자세한 내용은 근석, 소배성 문서 참조.[8] 이해하기 쉽게 풀어쓰자면 "아들, 이리 좀 와봐. 오늘은 엄마가 따끔하게 한 마디 해야겠어. 네 아버지가 지금 인삼탕이나 끓여오는 아들을 좋아할 것 같냐, 아니면 할머니의 영전을 지키는 효심깊은 아들을 더 좋아할 것 같냐. 이런 일은 내관이나 시녀가 해야될 일이지, 네가 할 일이 아니야!"라는 의미다.[9] 그것도 단순히 모른다고 한 게 아니라 "배움이 늦은 저를 어찌 형님과 비교하겠습니까? 그저 노력할 뿐이지요"라며 애둘러 표현한다.[10] 홍시는 이때 순진하게도 "음, 역시 우리 아우야. 이렇게 생각이 깊다니."라고 홍력을 칭찬하고 있던 중이었다.[11] 황제가 되기 전 친왕 직위를 받았을 때 견환에게 "홍염의 작위는 네가 줬으면 한다(=네가 황제가 되었으면 한다)"라는 말을 듣고 놀라며 감격해하는 걸 보면, 아무리 견환이 자신에게 양모로서 잘 대해주긴 했어도 설마 친아들 홍염이 아닌 양아들인 자신을 밀어줄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던 것 같다. 사실 이건 홍력 뿐만 아니라 황후도 같은 생각이였다. 황후는 옹정제의 사후에 자신을 찾아온 견환에게 난 이제 모후황태후(선황의 정실)이니, 성모황태후(선황의 후궁)인 견환보다 서열이 높다며 여전히 지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견환이 친아들 홍염이 아닌 양아들 홍력을 황위에 올렸다는 소리에 세상에 너같은 어미가 어디있냐며 경악을 금치 못한다.[12] 효의순황후 위가씨는 생전 영의황귀비라는 지위에 있었고 사후에 효의순황후로 건륭제가 추증한다.[13] 태후는 "황어냥"이라고 부른다.[14] 황제답게 매우 권위적인 인물이지만 견환이 자기에게 순종하지 않고 출궁해도 잊지 못하고 여러 가지 파격적 특혜를 주며 환궁시켰고, 어머니의 트라우마로 후궁의 사통을 가장 혐오하였음에도 사통한 정황이 거의 확실한 견환을 끝끝내 망설이며 사사하지 못했다. 다른 후궁이었다면 어림도 없었을 일이다.[15] 3황자 홍시가 영귀인을 탐했을 때, 기귀인이 6황자가 온실초의 아들이라고 했을 때, 홍시와 기귀인의 뺨을 때리긴 했다. 하지만 이건 맞은 쪽이 너무 엄청난 병크(...)를 터뜨렸기 때문에 때린 게 오히려 봐주는 셈.[16] 자기가 용비를 지나치게 총애하여 후궁의 기강을 엉망으로 만들었으면서 자초지종도 묻지 않고 용비에게 불임약을 가져다 준 여의의 뺨을 때렸다. 용비에게 불임약을 건네준 건 여의지만 이를 명령한 것은 태후였고, 애초에 용비는 처음부터 건륭제를 싫어해서 불임약임을 알면서도 스스로 마신 거였다...[17] 화비의 오빠 연갱요가 야심이 많고 군권을 모두 장악해서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18] 서비가 분신자살을 했음에도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고 때마침 태어난 여의의 딸 5황녀 경시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장례조차 신경써주지 않았다. 심지어 경시가 심장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서비가 저주한 것은 아닐까?'라는 한마디 한다. 이쯤되면 사이코패스처럼 보일 정도.[19] 병이 심해서 남은 시간이 3~4개월정도였지만 여의 본인이 치료부터 약을 먹는 것도 모두 거부했다.[20] 원작에선 누군지 모른다. 경빈은 자금성에 남아있었다.[21] 여의는 생전에 자유로워지기를 바랐고 황후의 예로 장례를 지내면 죽어서도 영원히 자신의 옆에 묶여있어야 하기에 그렇게 했던 것이다.[22] 후궁들간의 편애를 일삼으며 내명부를 개판으로 만드는데 건륭제도 한몫했지만, 여의가 사랑과 이상에만 집착하며 황후로서 후궁들을 잘 다스리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23] 사실 여의가 황후가 되고나서 트롤짓을 한 후궁들이 너무 많다. 당장에 소록균의 아들들도 문제가 되었고 악역인 김옥연, 위연완, 액음주 이 셋의 트롤링이 앞선 악역들인 랑화와 희월을 압도한다. 또한 서비의 자살, 매빈의 사사, 영비 파림씨의 유산, 향비의 불임같은 랑화가 황후였을 때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제들이 즐비했다.[24] 건륭제가 남방에서 어렵게 구해와 직접 여의에게 선물해준 것으로 여의가 임종을 맞이하는 자리에도 있었다. 여의는 이 녹매를 자신이 좋아하는 꽃을 기억해주고 선물한 건륭제의 진심이라고 여기며, 건륭제와의 사이가 파탄나고 익곤궁에 유폐됐을 때에도 유일하게 곁에 두고 각별하게 아꼈다.[25] 여의가 잠저시절 건륭제에게 직접 만들어준 손수건으로, 여기서 녹매는 여의의 본명인 청앵을 뜻하고 여지는 건륭제를 뜻한다. 건륭제 역시 황제에 등극한 뒤에도 이 손수건을 꼭 들고다녔다.[26] 이때 말라죽어서 오랫동안 꽃을 피우지 못했던 여의의 녹매 화분에 싹이 튼다. 이를 본 태감이 기뻐하며 알려주지만 건륭제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27] 다만 정사 기록에도 건륭황제의 어머니에 대해 즉위 전의 기록에서는 뉴호록씨가 아닌 전씨로 기록된 곳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견환 문서와 관련 역사 자료를 봐도 숭경황태후 뉴호록씨가 시녀 출신에 신분이 한미한 후궁이었다는건 사실인 것 같다.[28] 건륭제의 출생에 대해서 말이 많은 이유도 건륭제가 자기 출생지를 자꾸 여기랬다, 저기랬다 해서 그런 거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떤 기록에는 자기가 옹친왕부에서 태어났다고 했다가, 또 다른 기록에는 원명원같은 피서산장에서 태어났다고 했다는 등, 말이 자주 바뀐다.[29] 청나라의 멸망 후, 권력을 손에 쥔 한족이 만주족의 국가인 청나라를 깎아 내리기위해 한 일 중 하나라는 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