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가요

덤프버전 :

1. 개요
2. 대표적인 곡
3. 음반 수록 형태
4. 평가
5. 민주화 이후 건전가요
6. 외국의 비슷한 사례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한국의 군부독재 제4공화국전두환 정부 시기 강제로 지정, 보급한 노래이다. 표면적으로는 건전한 대중가요라는 뜻을 담고 있으나 그 실상은 박정희-전두환 정권을 찬양하는 어용 선전매체였다.

건전가요는 대개 군사정권에 대한 찬양을 담고 있었으며, 직접적인 정치성이 없는 경우에도 대한민국을 예찬하는 정도의 내용을 갖추었었다. 후자의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나, 그 배경에 따라서[1] 가수나 엔터테인먼트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졌기보다는 정부기관과 공안당국의 묵시적인 강요에 의해 우러나온 산물로 해석할 수 있겠다.

1970년대 및 80년대에는 대부분의 가요 음반의 맨 마지막 트랙에 건전가요가 수록되어야 했다. 국가가 정하여 강제로 보급한 건전가요는 금지곡 제도와 함께 당시의 음악에 대한 규제를 잘 드러내는 규정이다. 음반의 퀄리티를 강제로 떨어뜨린다 상대되는 개념을 가진 단어로 민중가요가 있다.


2. 대표적인 곡[편집]



  • 조국찬가
  • 나의 조국
  • 아! 대한민국
  • 아름다운 우리나라
  • 어허야 둥기둥기
  • 시장에 가면#건전가요
  • 정화의 노래
  • 푸른산 맑은물
  • 빛의 자손들(1985)
  • 우리의 땅(1983)
  • 내 나라 내 겨레(1972)
  • 아침의 나라에서(1986)
  • 아름다운 노래(1979)
  • 마주보는 눈길마다(1983)
  • 터(노래)
  • 이렇게 좁은 세상(1977)
  • 서로 믿는 우리마음 (1982)
  • 손모아 마음모아(1984)
  • 무궁화(1984)
  • 이 나라 주인되어(1984)
  • 힘내라 힘
  • 김치 주제가
  • 아침이다
  • 바위처럼
  • 서울에서 평양까지
  • 새마을노래

특히 정수라가 부른 것으로 유명한 '아! 대한민국'은 무지막지하게 사용해댔다. 작사자 박건호는 건전가요로 작사하기는 했지만, 특정 정권에 아부하기 위해 쓴 작품이 아니었고 이상적인 국가에 대한 본인의 바람을 솔직히 쓴 것이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작사자의 의도를 생각하면 건전가요보다는 민중가요에 가깝지만 많이 사용했던 이유도 건전가요치고는 정치성이 떨어지고 곡이 들을 만해서 넣는 입장에서도 좋고 청자들의 반감도 덜 샀기 때문이다.

김민기아침 이슬은 건전가요로 지정되었다가 긴급조치 9호에 의해 금지곡이 되기도 하였다. 곡에 등장하는 태양김일성 혹은 공산주의를 연상시킨다는 소문은 덤. 또는 태양은 대한민국 정부, 묘지는 민중 혹은 민주주의가 죽은 대한민국, 한낮의 찌는 더위는 정부의 민주주의 탄압, '나'는 민주화 운동가라는 해석이 붙는 등 온갖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군가 등 정부에서 보급한 노래들은 장르 관계없이 건전가요에 해당됐다.

3. 음반 수록 형태[편집]


음반에는 대개 마지막 곡으로 건전가요가 실렸다. 일례로 조용필 9집까지에는 목록을 보면 맨 마지막 트랙에 건전가요가 꼭 수록되어 있다. 수록된 노래만 해도 군가인 "너와 나", 건전가요인 "산마을", "어허야 둥기둥기", "오빠 생각", "진짜 사나이", "서로 믿는 우리마음" 등 당대의 건전가요를 총망라했다. 그러다보니 당시의 청취자들은 대부분 막곡은 알아서 거르고 거기서 레코드판이나 테이프를 돌렸고, 음반 잘 듣다가 갑자기 군가나 장르에 맞지 않는 좀 이상한 노래가 나온다 싶으면 다들 오디오를 끄곤 했었다.

A면의 끝이나 CD 1의 끝에 건전가요를 수록한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MP3로 발매된 음반을 구입하면 앨범의 한가운데에서 뜬금없는 노래가 튀어나온다. 이선희 1집에 수록된 "빛의 자손들"(12개 곡 중 6번째), 3집에 수록된 "도요새의 꿈"(12개 곡 중 5번째) 등. (2집의 건전가요는 B면 끝에 수록된 "이 세상의 어린이"이고, 4집부터는 없다.)

1980년대 최고의 명반에 뽑히는 이문세 음반과 유재하 1집에도 건전가요가 실려있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동요 음반조차도 예외는 아니어서 당시 발매된 가수의 캐롤 음반에도 건전가요가 수록된 사례가 있다. 1970년대 말~80년대 초 '똑순이'로 유명했던 아역 배우 김민희가 부른 크리스마스 캐롤 음반의 마지막 트랙은 뜨악하게도 '공군가'였다. 그 밖에 코미디언이 낸 음반에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심형래의 음반에는 캐롤 분위기와 달리 '우리의 서울'이라는 노래가 실려있었고, 록 음반도 예외는 아니라 부활 1집인 'Rock Will Never Die'에서도 맨 마지막에는 건전가요가 수록되었다. 당시에 나온 우리나라 최초의 헤비메탈 앨범으로 평가받는 시나위 1집 앨범에도 마지막에 '아 대한민국'이 들어있어 헤비한 분위기를 확 깨주신다.

그래서 전인권의 "액막이 타령", 이문세의 "어허야 둥기둥기" 처럼 직접 불러도 됐고, 조영남혜은이의 사례처럼 다른 사람이나 악단 등이 부른 곡을 넣어도 됐다. 곡이 어떤 것이냐 및 수록을 했느냐만 검열했지 이 부분까진 크게 터치하지 않았다. 특히 군가 등 정부가 보급한 곡을 쓴 경우는 그대로 복붙해 넣은 경우가 많다.[2]

예외적으로 들국화 1집 초판에 수록된 '우리의 소원'은 상당히 잘 어울려서 당시 들었던 팬들 사이에서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많다. 하지만 초판 이후 삭제되었다.

아세아레코드에서 발매한 음반은 '온 국민이 함께 부르는 노래'로 표기했었다. 지구레코드는 사회정화추진위원회와 함께 공동기획했다. 오아시스에서도 별도로 건전가요 앨범을 판매했다.

4. 평가[편집]


해방이후 시도된 건전가요 운동의 논리적 시작은 왜색가요말살과 민족 주체성을 찾는 운동의 성격을 가졌으나 일방통행적인 것으로서 감정적인 역효과를 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정부나 관 주도로 보급된 건전가요는 당시 심의제도를 통해 양산된 수많은 금지곡과 함께 국민에 대한 효과적인 이데올로기적 통제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건전가요는 발상 자체가 일제의 전시체제에서 식민지 지배 정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노래통제 정책과 비슷하게 권위주의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5. 민주화 이후 건전가요[편집]


21세기 인터넷, 특히 네이버 뮤직엠넷닷컴에서는 건전가요라고 검색하면 1970 ~ 80년대의 대표적 가수의 음반이 나오며, 꼭 마지막 트랙으로써 실려있다. 저작권과 관계가 없으면 청취 가능하다.

"휘날리는 태극기", "이기자 대한건아", "유신의 노래", "조국찬가" 같은 군가성향의 건전가요들은 1980년대말~90년대 초반까지 국민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려 있었으며, 대부분 교사 재량으로 스킵되었으나 일부 학교에서는 국민학생[3]들이 직접 부르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군사정권 시절의 잔재가 아닌 일부 노래들은 6.25의 노래 처럼 참여정부 시기까지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려 있기도 했다.

1990년대까지도 그 여파가 남아서 그런지 많은 앨범의 마지막 곡에는 건전한 가사의 노래가 실려있던 앨범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듀스의 여름안에서.[4] 2000년 즈음부턴 기존의 건전가요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대부분의 가수들이 정식앨범보다는 싱글앨범 내는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주로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중이다. 그 가수의 성향과 다르게 가사 내용이 비교적 건전하거나 혹은 가사에 공익적인 내용이 있다면 이를 가르켜 비유적으로 건전가요라고 부르는 식이다.

특히 민주화 이후로는 조롱의 의미나 퍼포먼스적으로 건전가요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신해철윤상의 프로젝트 앨범인 노땐스의 앨범 골든힛트에 '시장에 가면'이라는 제목의 트랙이 있는데, 모든 음원 사이트에서도 들을 수 없으며, 앨범에도 재생 시간이 0:00초라고 나온다. 이는 1980년대 초반에 건전가요를 음반마다 한 곡씩 의무적으로 넣어야 했던 정책을 풍자하기 위한 페이크 트랙이며, '시장에 가면'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건전가요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자주 수록되었다는 것도 반영한다.[5]

올라이즈 밴드의 2005년 발매된 3집 음반에서도 '건전가요(?)'라는 제목의 노래가 실려있으나, 곡의 실질적 의미는 항목이 서술한 건전가요의 정의와 정반대이며, 가사에는 욕설이 가득하다. 아이유가 2014년 발매한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의 LP에도 B면 마지막 트랙에 건전가요 '어허야 둥기둥기'가 수록되어 있으며, 이는 정해진 의미가 없이 그저 7080 시절의 레트로한 감성의 분위기를 재현해내기 위한 의도적 연출이다.

이렇듯 민주화 이후로 과거와 같은 의미의 건전가요는 추억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아예 없어진것은 아니다. 현재도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가수들이 연합하여 우리하나되어 같은 곡을 내면서 아직도 간간이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곡을 내는 빈도자체는 적어졌지만 자발적인 참여와 당시 상황등이 겹치면서 과거 형식적으로 내던 건전가요보다 오히려 사회적인 울림은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6. 외국의 비슷한 사례[편집]


대만에서도 건전가요 같은 것으로 보이는 것이 있는데, "아! 대한민국"과 같은 급에 가까운 중화민국송이라는 노래도 있으며, 매화라는 노래와 국은가경(國恩家慶)이라는 노래도 있다.[6] 북한이나 중국, 구소련 같은 나라에서도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다.

중국은 이런 노래들이 세계에서 제일 많은 국가다. CCTV3에서 중국을 찬양하는 곡들을 자주 방영하고 신곡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공산당이나 마오쩌둥을 직접 언급하며 찬양하는 곡과 단순히 중국의 아름다운 자연이나 밝은 미래를 언급하는 곡으로 나뉜다. 인기있는 곡들은 거의 국가에 버금가는 취급을 받는다.

7.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1 04:54:09에 나무위키 건전가요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자발적이 아닌 정권의 강제에 의해서였으므로.[2] 예외로 조용필의 경우 9집에서 진짜사나이를 무반주로 부르기도 했다.[3] 1995년까진 국민학교, 1996년부터 초등학교이다. 국민학교를 조금이라고 다녀본 사람은 2023년 기준 최소 30대이다.[4] 한 인터뷰에서 마지막 트랙채우기용으로 거의 건전가요급의 가사를 실었는데 이게 터질줄은 몰랐다고 언급했었다.[5] 소방차 1집의 마지막 곡의 제목도 '시장에 가면'이다.[6] 여담으로 쯔위를 비난했던 황안이 이 노래를 불렀던 게 발굴되면서 황안의 이중적인 태도에 큰 비판을 받아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