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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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建興/乾興
한국과 중국의 군주들이 사용한 연호이다.
2. 한국사의 연호[편집]
2.1. 고구려의 연호 (建興)[편집]
장수왕, 안원왕, 영양왕 설이 있고 그 중 영양왕 설이 유력한 고구려의 연호
2.2. 발해 제10대 가독부인 선왕 대인수의 연호 (建興)[편집]
한국 남북국시대 발해의 제10대 가독부인 대인수가 사용한 연호이다.
3. 중국사의 연호[편집]
3.1. 삼국시대 촉한의 제2대 황제 유선의 연호 (建興)[편집]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제2대 황제 유선이 즉위 후 사용한 첫번째 연호이자 촉한의 2번째 연호이다.
촉한이 이릉대전로 인한 타격으로 피해를 복구하면서 남방의 이민족을 평정했고, 위나라에 대해 제갈량이 수차례 북벌을 감행한 시기였다.
3.1.1. 주요 사건[편집]
- 건흥 원년(223년): 유선 즉위, 건흥 연호 선포
- 건흥 3년(225년): 제갈량의 남만 정벌
- 건흥 5년(227년): 제갈량의 출사표
- 건흥 6년(228년) ~ 건흥 12년(234년): 제갈량의 북벌
- 건흥 12년(234년): 추풍오장원
- 건흥 16년(238년): 연희 연호 선포
3.2. 삼국시대 손오의 제2대 황제 손량의 연호 (建興)[편집]
중국 삼국시대 손오의 제2대 황제 손량이 즉위 후 사용한 첫번째 연호이다.
이궁지쟁으로 혼란한 시기가 끝나고 손권이 사망해 내부의 혼란이 끝났고, 위나라와 전투를 벌인 시기였으나, 이 과정에서 생겨난 문제로 집권자인 제갈각을 몰아내 손준이 장악하는 사태가 일어나는 등 내부적으로 혼란이 다시 일어난 시기였다.
3.2.1. 주요 사건[편집]
3.3. 서진의 제4대 황제 민제 사마업의 연호 (建興)[편집]
중국 서진의 제4대 황제 민제 사마업이 즉위 후 사용한 연호이다. 오호십육국시대 전량에서는 민제의 건흥 연호를 습용하여 361년까지 사용하였다.
3.3.1. 주요 사건[편집]
- 건흥 원년(313년): 사마업 즉위, 건흥 연호 선포
- 건흥 4년(316년): 사마업이 유총에 의해 장안으로 압송됨
- 건흥 5년(317년): 사마예가 건강에서 황제로 즉위(동진), 건무 연호 선포
3.4. 오호십육국시대 성한의 초대 황제 무제 이웅의 연호 (建興)[편집]
중국 오호십육국시대 성한의 제3대 군주였던 이웅의 치세 중에 첫번째로 사용한 연호이다.
3.5. 오호십육국시대 후연의 초대 황제 성무제 모용수의 연호 (建興)[편집]
중국 오호십육국시대 후연의 초대 황제였던 모용수의 치세 중에 두번째로 사용한 연호이다.
3.6. 북송의 제3대 황제 진종 조항의 연호 (乾興)[편집]
중국 북송의 제3대 황제였던 진종의 치세 중 마지막으로 사용한 연호이다. 진종이 1022년을 원년으로 건흥 연호를 선포했지만 진종이 사망하였고, 뒤를 이은 진종의 태자인 인종이 1023년에 천성(天聖) 연호를 사용하였다.
3.6.1. 주요 사건[편집]
- 건흥 원년(1022년): 건흥 연호 선포, 진종 사망, 진종의 태자인 인종이 황제로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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