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하르트 튀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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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전투기 에이스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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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30위
순위
이름
국적
격추 수
주 기종
비고
31위
하인리히 슈투름
독일
158대


32위
게르하르트 튀벤
독일
157대


33위
한스 바이스베그너
독일
152대


페터 뒤트만
독일


35위
고르돈 골로프
독일
150대


36위
프리츠 텍트마이어
독일
146대


37위
알빈 볼프
독일
144대


38위
쿠르트 탄처
독일
143대


39위
프리드리히-카를 뮐러
독일
140대


40위
카를 그라츠
독일
138대


하인리히 제츠
독일


루돌프 트렝켈
독일


43위
프란츠 샬
독일
137대


발터 볼프룸
독일


45위
호르스트-귄터 폰 파송
독일
136대


오토 푀네콜트
독일


카를-하인츠 베버
독일


48위
요아힘 뮌헤베르크
독일
135대


49위
한스 발트만
독일
134대


50위
알프레트 그리슬랍스키
독일
133대


요하네스 비제
독일


▼ 52~66위



파일:Gerhard_Thyben.jpg

게르하르트 튀벤(Gerhard Thyben : 1922년 2월 24일~2006년 9월 4일)

1. 입대와 훈련
2. 독소전에서 활약
3. Fw 190 격추왕
4. 서훈



1. 입대와 훈련[편집]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 북부 독일의 항구 도시인 에서 1922년 2월 24일에 태어난 게르하르트 튀벤은 1940년 6월 1일에 루프트바페에 지원하여 입대했다. Bucker 131, Gotha 145에 쌍발기인 포케불프 Fw 58까지 조종하며 훈련을 받다가 1941년 8월 31일에 조종 면허를 딴 그는 파리에 세워진 제5전투비행학교에서 처음 일선 전투기인 메서슈밋 Bf 109를 몰게 된다.


2. 독소전에서 활약[편집]


1942년에 들어서야 일선에 투입될 자격을 갖춘 그는 JG 54 예하의 제3전투비행단에 배속되었다. 편대원으로 독소전에 참전한 그는 1943년 초에 더글라스 A-20 폭격기를 첫 제물로 삼은 뒤 1944년 9월 30일까지 불과 1년 반 남짓되는 짧은 기간 동안 루프트바페에서 93번째로 격추수 100대를 기록했다. 1945년 5월 8일, 쿠를란트 포켓에서 벗어나는 독일 피난민들을 가득 태운 수송선을 노리는 소련 폭격기 Pe-2를 격추시켜 수 천명을 구해냈지만, 이것이 게르하르트 튀벤 최후의 격추 기록이 되었다.


3. Fw 190 격추왕[편집]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출격횟수 385회에 격추수 157기로, 152기는 동부전선에서 격추했고 5대는 서부전선에서 격주했다.
곡엽기사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은 그는 Fw190을 몰고 영국 공군의 비행장에 착륙한 다음 항복했다. 그는 1946년까지 영국에서 억류되었다가 풀려난 다음에는 스페인아르헨티나를 여행한 후에 콜롬비아에 입국하여 공군 고문으로 활동했다.


4. 서훈[편집]


  • 2급 철십자 훈장 (1943. 5. 25)
  • 1급 철십자 훈장 (1943. 7. 10)
  • 공군 명예컵 (1943. 8. 31)
  • 독일 황금십자장 (1943. 10. 24)
  • 기사철십자 훈장 (1944. 12. 6)
  • 제822호 곡엽기사철십자 훈장 (1945.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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