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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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rrilla
비정규전/게릴라전을 수행하는 자들. 한국어로는 유격대 또는 편의병(便衣兵)[1]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특수부대 작전의 시초격인 영역이며 현대 특수부대가 성립된 이후에도 끝없는 발전을 거듭하여 여전히 특수전의 주요 요소 중 비정규전(Unconventional Warfare)이라는 이름으로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특수전 문서의 3.4번 문단 참조.
어원은 나폴레옹 전쟁 당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 대항하던 스페인의 비정규 무장집단들을 지칭하던 스페인어로 '전쟁'을 뜻하는 "Guerra"에 '작은(small)'을 뜻하는 접미사 "illa"가 합쳐진 이름인 게리야다.
영어로는 /ɡəˈrɪlə/로 (굳이 한글로 쓰면 "거릴러" 비슷하게) 발음한다. gorilla(고릴라)도 /ɡəˈrɪlə/라서 영어에서 guerrilla와 gorilla는 동음이의어다.
게릴라전의 필수요소는 게릴라 세력을 지원해줄 '민중'과 '외부세력'이다. 민중은 식량과 은신처를 제공하며 경우에 따라 총알받이[2] 또는 게릴라 구성원이 되어줄 수도 있다. 외부세력은 무기와 자금을 보급해주며 이 둘이 빠진 게릴라는 단순한 비적이 되거나 세력이 약해져서 정부나 외부 군사세력에게 손쉽게 토벌될 수 있다.
이들의 소위 '게릴라 전술'은 전력이 약한 쪽이 강한 쪽을 치고 빠지는 식으로 괴롭힌다. 게릴라전은 대개의 힘 없는 약소민족들과 약소국가들의 국민들, 적은 병력으로 최대한 빠르게 성과를 내야 하는 특수부대들이 선호하는 전쟁 방식이기도 하다.
게릴라라는 명칭이 생기기 전에도 변칙적인 유격전은 동서고금 어디서든 존재해 왔다. 전근대의 전장은 회전 중심으로서 유격전을 벌이던 의용병이나 별동대들은 적의 정규군을 회전으로 상대하는것이 아니라 적의 보급선이나 후방 혹은 게릴라를 요격하기 위해 분열한 적의 병력의 각개격파를 기도하기 위해 움직였으며 거리를 벌려두고 보다 유연한 히트 앤 런이 가능하게 된 총기류의 발달 이후엔 전술이 더욱 도드라지게 되었고 스페인의 게릴라도 그러한 시대를 반영해서 나온 본격적인 유격대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에도 경보병이나 산병과 같은 산개해 조준사격을 가하고 적의 대열을 흐뜨려 놓는 병과가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회전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현대의 게릴라와는 일대일로 비교하기엔 달랐다.
7년 전쟁 때 프랑스 혹은 영국 쪽에 붙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사용했던 방법이고 미국 독립 전쟁 때 역시 실전에 가까운 훈련을 받은 영국군을 정면으로 맞써 싸우기 힘들었던 식민지인들이 쓰던 방법이었다.[3] 서로 전면을 바라보면서 싸우는 전열보병에 익숙했던 유럽 군인들에겐 이동 도중에 공격하고 빠져버리는 것은 천적과도 같은 전술이기도 했다.[4] 다만 미국 독립 전쟁에서 게릴라의 역할을 강조한 것은 이후 미국의 정치적 목적에서 나온 프로파간다성 역사 서술의 영향도 크다. 게릴라전으로는 적군을 괴롭힐수는 있어도 승리를 얻어낼수는 없기 때문이다. 식민지인들도 게릴라 부대는 보조병으로만 썼을 뿐 주력군은 유럽식 정규군인 대륙군이었으며 이들은 야전에서 연패하면서도 끝까지 정규전을 고집했다.
1980년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점령군이었던 소련군과 친소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에 맞서 싸운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 반군도 대표적인 예이고 알제리 전쟁 당시 드넓고 험준한 국토를 활용해 식민지배국이었던 프랑스에 맞서 식민지 독립 전쟁을 펼친 알제리, 1960~70년대 포르투갈의 식민지 지배에 맞서 독립 전쟁을 전개했던 앙골라, 기니비사우,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 국가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의 점령에 맞서 싸운 유고슬라비아, 알바니아,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국가들과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폴란드 국내군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별 거 아니다 싶지만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보통 짜증나고 괴로운 게 아니다. 아예 신경까지 예민해져 테러 공포증과 강박증까지 생겨 불안감에 시달릴 정도다.
다만 괴롭힐 뿐이지 이기는 것은 외부 지원과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게 없으면 사실상 게릴라 부대만으로 전쟁에서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는 것은 불가능하다.[5] 그나마 현지에는 연고가 없는 외부 세력이 자국 내 반전 여론 등을 비롯하여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가는 정도가 다인데 이런 경우 아무리 '승리'한 게릴라 세력이라고 해도 남아 있는 건 비참하게 파괴 된 폐허들 뿐이다.[6] 그래서 많은 뛰어난 게릴라 지휘관들이 선전선동을 선호하며 적이 같은 민족 혹은 같은 국가 시민들을 학살하여도 내버려 둔다. 심지어 어원이 발생한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도 스페인 게릴라들은 프랑스군이 스페인인을 학살하는 것을 딱히 막으려고 하지 않았다.
유의미하게 전쟁에서 '이겼다'라고 할 만큼 성과를 거두려면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콩과 베트남 인민군, 이탈리아 전선의 레시스텐자와 연합군처럼 결국 어느 순간에 외부에서 정규군을 끌고 와 게릴라로 짤짤이를 실컷 먹은 점령군을 몰아 내야 전략적 차원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저렇게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가는 경우'라고 해도 이 정도 시점이면 사실 게릴라 세력도 민심이나 정치적 입지, 인명과 물질의 손실 면에서 한계에 다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식민지나 로디지아의 경우를 보듯이 이렇게 정치적으로 이겼어도 군사적으로 패배한 경우에는 상대편도 아군의 한계를 뻔히 알기 때문에 협상 테이블에서도 주도잡기 힘들다. 게다가 상대하는 적이 압도적인 물량과 섬멸전으로 나와서 청야전술과 주도면밀한 학살을 진행하면 제아무리 게릴라 세력이 필사적으로 저항해도 당해내지 못하고 질수밖에 없다. 준가르인이 청나라에게 게릴라전으로 저항하다가 멸족당한게 좋은 예다.
다른 말로는 파르티잔으로 부르며 6.25 전쟁 이후 이 단어가 한국어에서는 빨치산으로 변형되었다.[7]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저항하던 프랑스의 지하저항조직은 레지스탕스라고 불렀다. 게릴라와는 미묘하게 다르지만 어느 정도는 혼용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임진왜란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의병들과 6.25 전쟁 중에 활동한 각지의 반공유격대[8] 가 있다.
냉전 시대에도 게릴라전이 나름 쓸모있었다. 대표적으로 베트남 전쟁이 있는데 북베트남이 소련의 지원을 받자 미군이 확전을 우려하여 북베트남을 침공하지 못하고 베트콩만 토벌하다가 철수하기도 했다. 물론 소련의 지원을 받지 못한 나라가 게릴라전을 시도하면 그레나다 침공처럼 그냥 털렸다. 반대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각국의 지원을 받은 무자헤딘이 소련군을 몰아내기도 했다. 게릴라군을 지원하는 외부세력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선례다.
그러니까 게릴라군이 주민들에게 안 따르면 죽인다 같은 식으로 처신하는 건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일이다. 이렇게 되면 주민들은 정부에 보고할 것이고 당연히 비정규전은 끝장나기 때문이다. 게릴라는 지역 주민 다수의 지지가 전제로 깔려있어야 성립하며 역으로 주민 다수가 점령군정에 강한 적개심을 품으면 게릴라 집단이 쉽게 발생한다.
제5차 초공작전 때 외부지원을 차단하고 강력한 중화기로 본거지를 하나씩 섬멸해 나가 공산당에게 대장정을 강요한 것은 게릴라 전투를 진압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여러 게릴라 이론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인민전쟁과 포코 이론 등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라틴아메리카 근현대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예고하지 않고 깜작스럽게 진행한 것'을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게릴라성 호우이다.
예를 들어 게릴라 콘서트는 예고하지 않던 깜짝 콘서트, 게릴라 가드닝은 지주의 허가 없이 남의 땅에 꽃이나 채소 등의 식물을 가꾸는 등의 범죄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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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TEEZ의 노래에 대한 내용은 Guerrilla 문서
참고하십시오.1. 개요[편집]
Guerrilla
비정규전/게릴라전을 수행하는 자들. 한국어로는 유격대 또는 편의병(便衣兵)[1]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2. 상세[편집]
특수부대 작전의 시초격인 영역이며 현대 특수부대가 성립된 이후에도 끝없는 발전을 거듭하여 여전히 특수전의 주요 요소 중 비정규전(Unconventional Warfare)이라는 이름으로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특수전 문서의 3.4번 문단 참조.
어원은 나폴레옹 전쟁 당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 대항하던 스페인의 비정규 무장집단들을 지칭하던 스페인어로 '전쟁'을 뜻하는 "Guerra"에 '작은(small)'을 뜻하는 접미사 "illa"가 합쳐진 이름인 게리야다.
영어로는 /ɡəˈrɪlə/로 (굳이 한글로 쓰면 "거릴러" 비슷하게) 발음한다. gorilla(고릴라)도 /ɡəˈrɪlə/라서 영어에서 guerrilla와 gorilla는 동음이의어다.
게릴라전의 필수요소는 게릴라 세력을 지원해줄 '민중'과 '외부세력'이다. 민중은 식량과 은신처를 제공하며 경우에 따라 총알받이[2] 또는 게릴라 구성원이 되어줄 수도 있다. 외부세력은 무기와 자금을 보급해주며 이 둘이 빠진 게릴라는 단순한 비적이 되거나 세력이 약해져서 정부나 외부 군사세력에게 손쉽게 토벌될 수 있다.
이들의 소위 '게릴라 전술'은 전력이 약한 쪽이 강한 쪽을 치고 빠지는 식으로 괴롭힌다. 게릴라전은 대개의 힘 없는 약소민족들과 약소국가들의 국민들, 적은 병력으로 최대한 빠르게 성과를 내야 하는 특수부대들이 선호하는 전쟁 방식이기도 하다.
게릴라라는 명칭이 생기기 전에도 변칙적인 유격전은 동서고금 어디서든 존재해 왔다. 전근대의 전장은 회전 중심으로서 유격전을 벌이던 의용병이나 별동대들은 적의 정규군을 회전으로 상대하는것이 아니라 적의 보급선이나 후방 혹은 게릴라를 요격하기 위해 분열한 적의 병력의 각개격파를 기도하기 위해 움직였으며 거리를 벌려두고 보다 유연한 히트 앤 런이 가능하게 된 총기류의 발달 이후엔 전술이 더욱 도드라지게 되었고 스페인의 게릴라도 그러한 시대를 반영해서 나온 본격적인 유격대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에도 경보병이나 산병과 같은 산개해 조준사격을 가하고 적의 대열을 흐뜨려 놓는 병과가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회전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현대의 게릴라와는 일대일로 비교하기엔 달랐다.
7년 전쟁 때 프랑스 혹은 영국 쪽에 붙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사용했던 방법이고 미국 독립 전쟁 때 역시 실전에 가까운 훈련을 받은 영국군을 정면으로 맞써 싸우기 힘들었던 식민지인들이 쓰던 방법이었다.[3] 서로 전면을 바라보면서 싸우는 전열보병에 익숙했던 유럽 군인들에겐 이동 도중에 공격하고 빠져버리는 것은 천적과도 같은 전술이기도 했다.[4] 다만 미국 독립 전쟁에서 게릴라의 역할을 강조한 것은 이후 미국의 정치적 목적에서 나온 프로파간다성 역사 서술의 영향도 크다. 게릴라전으로는 적군을 괴롭힐수는 있어도 승리를 얻어낼수는 없기 때문이다. 식민지인들도 게릴라 부대는 보조병으로만 썼을 뿐 주력군은 유럽식 정규군인 대륙군이었으며 이들은 야전에서 연패하면서도 끝까지 정규전을 고집했다.
1980년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점령군이었던 소련군과 친소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에 맞서 싸운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 반군도 대표적인 예이고 알제리 전쟁 당시 드넓고 험준한 국토를 활용해 식민지배국이었던 프랑스에 맞서 식민지 독립 전쟁을 펼친 알제리, 1960~70년대 포르투갈의 식민지 지배에 맞서 독립 전쟁을 전개했던 앙골라, 기니비사우,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 국가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의 점령에 맞서 싸운 유고슬라비아, 알바니아,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국가들과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폴란드 국내군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별 거 아니다 싶지만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보통 짜증나고 괴로운 게 아니다. 아예 신경까지 예민해져 테러 공포증과 강박증까지 생겨 불안감에 시달릴 정도다.
다만 괴롭힐 뿐이지 이기는 것은 외부 지원과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게 없으면 사실상 게릴라 부대만으로 전쟁에서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는 것은 불가능하다.[5] 그나마 현지에는 연고가 없는 외부 세력이 자국 내 반전 여론 등을 비롯하여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가는 정도가 다인데 이런 경우 아무리 '승리'한 게릴라 세력이라고 해도 남아 있는 건 비참하게 파괴 된 폐허들 뿐이다.[6] 그래서 많은 뛰어난 게릴라 지휘관들이 선전선동을 선호하며 적이 같은 민족 혹은 같은 국가 시민들을 학살하여도 내버려 둔다. 심지어 어원이 발생한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도 스페인 게릴라들은 프랑스군이 스페인인을 학살하는 것을 딱히 막으려고 하지 않았다.
유의미하게 전쟁에서 '이겼다'라고 할 만큼 성과를 거두려면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콩과 베트남 인민군, 이탈리아 전선의 레시스텐자와 연합군처럼 결국 어느 순간에 외부에서 정규군을 끌고 와 게릴라로 짤짤이를 실컷 먹은 점령군을 몰아 내야 전략적 차원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저렇게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가는 경우'라고 해도 이 정도 시점이면 사실 게릴라 세력도 민심이나 정치적 입지, 인명과 물질의 손실 면에서 한계에 다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식민지나 로디지아의 경우를 보듯이 이렇게 정치적으로 이겼어도 군사적으로 패배한 경우에는 상대편도 아군의 한계를 뻔히 알기 때문에 협상 테이블에서도 주도잡기 힘들다. 게다가 상대하는 적이 압도적인 물량과 섬멸전으로 나와서 청야전술과 주도면밀한 학살을 진행하면 제아무리 게릴라 세력이 필사적으로 저항해도 당해내지 못하고 질수밖에 없다. 준가르인이 청나라에게 게릴라전으로 저항하다가 멸족당한게 좋은 예다.
다른 말로는 파르티잔으로 부르며 6.25 전쟁 이후 이 단어가 한국어에서는 빨치산으로 변형되었다.[7]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저항하던 프랑스의 지하저항조직은 레지스탕스라고 불렀다. 게릴라와는 미묘하게 다르지만 어느 정도는 혼용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임진왜란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의병들과 6.25 전쟁 중에 활동한 각지의 반공유격대[8] 가 있다.
냉전 시대에도 게릴라전이 나름 쓸모있었다. 대표적으로 베트남 전쟁이 있는데 북베트남이 소련의 지원을 받자 미군이 확전을 우려하여 북베트남을 침공하지 못하고 베트콩만 토벌하다가 철수하기도 했다. 물론 소련의 지원을 받지 못한 나라가 게릴라전을 시도하면 그레나다 침공처럼 그냥 털렸다. 반대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각국의 지원을 받은 무자헤딘이 소련군을 몰아내기도 했다. 게릴라군을 지원하는 외부세력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선례다.
그러니까 게릴라군이 주민들에게 안 따르면 죽인다 같은 식으로 처신하는 건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일이다. 이렇게 되면 주민들은 정부에 보고할 것이고 당연히 비정규전은 끝장나기 때문이다. 게릴라는 지역 주민 다수의 지지가 전제로 깔려있어야 성립하며 역으로 주민 다수가 점령군정에 강한 적개심을 품으면 게릴라 집단이 쉽게 발생한다.
제5차 초공작전 때 외부지원을 차단하고 강력한 중화기로 본거지를 하나씩 섬멸해 나가 공산당에게 대장정을 강요한 것은 게릴라 전투를 진압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여러 게릴라 이론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인민전쟁과 포코 이론 등이 있다.
3. 게릴라 단체[편집]
3.1. 중남미[편집]
자세한 내용은 라틴아메리카 근현대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 7월 26일 운동 - 쿠바
- 콜롬비아 무장혁명군 - 콜롬비아
- 민족해방군 - 콜롬비아
- 인민혁명군 - 콜롬비아
- 4월 19일 운동 - 콜롬비아
- URNG - 과테말라
- 인민혁명군 - 아르헨티나
- 사파티스타 - 멕시코
- FMLN - 엘살바도르
-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 니카라과
- 콘트라 - 니카라과
- 빛나는 길 - 페루
- 투팍 아마루 혁명 운동 - 페루
- 파라과이 인민군 - 파라과이
- 투파마로스 - 우루과이
- 혁명좌익운동 - 베네수엘라
- 투파마로스 - 베네수엘라
- 로드리게스타 - 칠레
- 혁명좌익운동 - 칠레
- 라우타로 반군 - 칠레
3.2. 북미[편집]
3.3. 유럽[편집]
- 체트니크 - 유고슬라비아
-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 유고슬라비아
- 알바니아 파르티잔 - 알바니아
- 소련 파르티잔 - 소련
- 벨라루스 파르티잔 - 벨라루스
- 우크라이나 파르티잔 - 우크라이나
-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 - 우크라이나
- 무정부 공산주의자 연맹 - 러시아[9]
- 숲의 형제들 -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 붉은 여단 - 이탈리아
- 레시스텐자 - 이탈리아
- 레지스탕스 - 프랑스
- 아일랜드 공화국군 - 아일랜드
- 독일 저항군 - 독일
- 바더 마인호프 - 독일
- 러다이트 - 영국
- CNT - 스페인
3.4. 아시아[편집]
- 크메르 루주 - 캄보디아
- 구국 민족 통일 전선 - 캄보디아
- 베트민 - 베트남
- 베트콩 - 베트남
- 파테트라오 - 라오스
- 태국 공산당 - 태국
- 의병 - 한국
- 한국광복군 - 대한민국
- 조선인민유격대 - 대한민국
- 남조선민족해방전선 - 대한민국
-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 대한민국
- 동북항일연군 - 북한, 중국
- KLO - 북한
- 영도유격대 - 북한
- 치안대 - 북한
- 무궁화 무장청년단 - 북한
- 일본공산당 - 일본[10]
- 적군파 - 일본
- 홍군 - 중국
- 네팔 공산당(마오주의 센터) - 네팔
- 낙살라이트 - 인도
- 필리핀 국가민주전선 - 필리핀
- 미얀마 시민불복종항쟁 - 미얀마
- 민주주의민족동맹 - 미얀마
- 카렌 민족해방군 - 미얀마
- 미얀마 국민통합정부 - 미얀마
- 미얀마 공산당 - 미얀마[11]
- 미얀마 인민해방군 - 미얀마[12]
- 무자헤딘 - 아프가니스탄
- 탈레반 - 아프가니스탄
- 아프가니스탄 국민저항전선 - 아프가니스탄
- 아프가니스탄 인민 해방 기구 - 아프가니스탄
-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 - 아프가니스탄
- 아프가니스탄 마오주의 공산당 - 아프가니스탄
- 말레이 공산당 - 말레이시아
3.5. 중동[편집]
- 인민방위대 - 로자바
- 페슈메르가 - 이라크 쿠르디스탄
- 쿠르디스탄 노동자당 - 튀르키예
- 붉은 해커 - 튀르키예
- 혁명민족해방전선 - 튀르키예
- 노동자농민해방군 - 튀르키예
- 튀르키예 마오주의 공산당 - 튀르키예
- 튀르키예 공산당(마르크스-레닌주의) - 튀르키예
-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 - 팔레스타인
- 하마스 - 팔레스타인
- 파타 -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 해방민주전선 - 팔레스타인
3.6. 아프리카[편집]
4. 비유적 표현[편집]
'예고하지 않고 깜작스럽게 진행한 것'을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게릴라성 호우이다.
예를 들어 게릴라 콘서트는 예고하지 않던 깜짝 콘서트, 게릴라 가드닝은 지주의 허가 없이 남의 땅에 꽃이나 채소 등의 식물을 가꾸는 등의 범죄를 의미한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4-08-04 10:49:18에 나무위키 게릴라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70년대까지 쓰이던 게릴라의 한자어다. 삼별초에도 편의대라는 부대가 있었다.[2] 상황이 조금만 더러워도 진짜로 총알받이 역할이 될 가능성이 높다. 좀 고와도 게릴라를 도왔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당연히 고운 꼴을 못 당한다. 재판이고 뭐고 당장 바로 옆 열받은 군인들에게 끔살당할 확률도 있고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는 상대적으로 운이 좋은 경우도 있다.[3] 이런 이유로 영국군은 미국 민병대를 가리켜 "왜 식민지 주민들은 비겁하게 숨어서 싸우는가?"라고 경멸했다.[4] 당시엔 저격수들조차 신사스럽지 않다고 멸시했다. 물론 영국에서도 제95 라이플 연대 같이 게릴라식 전술과 저격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부대가 있었지만 이쪽은 경보병이나 척후병에 가깝기 때문에 게릴라와 직접 비교하는 건 무리다.[5] 임진왜란을 배울 때 의병의 역할을 강조하지만 일본군을 확실히 몰아낼 수 있었던건 정규군, 즉 조선군과 명군이 야전과 해전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하였기 때문이다.[6] 가장 대표적이며 유명한 사례가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이다.[7] 이쪽은 본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공산주의 계열 게릴라를 지칭하는 용도로 한정되어 쓰인다.[8] 1.4 후퇴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철수하면서 상당수의 반공 무장대원들이 서해안의 각 섬으로 피했는데 이들은 처음에는 국군, 나중에는 미군에 의해 조직되어 식량과 무기, 탄약을 지원받아 서해안과 동해안에서 후방교란 활동을 했다. 인터넷상에서 가끔 보이는 동키 부대나 레오파드 부대, 8240부대 등이 바로 이들이다.[9]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무장봉기하여 푸틴의 독재 정권에 대항해 주요 기관을 습격하며 유격전을 펼치고 있다.[10] 패전 직후에는 무장투쟁을 하였다.[11] 미얀마 내전 당시[12] 새로 창당된 미얀마 공산당 소속으로 군부 쿠데타 이후 민중세력과 협력하여 인민전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