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요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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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내용
3. 차례
4. 특성 및 가치
5. 외부 링크
6. 보물 제602호


1. 개요[편집]


擊蒙要訣

조선 왕조의 율곡 이이가 지은 학문서. 1577년(선조 10년)에 초보 후학들을 위해 지은 것으로 1권 분량으로 있다.

원본은 강원도 강릉시 오죽헌의 오죽헌시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보물 제602호로 지정되었다.


2. 내용[편집]


책 제목은 '어리석음을 쳐내는 방법(노하우)'이라는 뜻으로, 학문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내 어리석음을 스스로 버리되 학문의 중요함을 새기며 배우도록 하라'는 율곡의 의도이다.

학문의 뜻을 세우고 몸가짐과 접인등 대인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었으며 조선시대의 도덕과 인성을 가르치는 기본교재로 사용되었다. 참고로 이이가 정의하는 학문이라는 것은 단순한 글공부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된 자는 그 아들을 사랑할 것, 자식이 되었으면 당연히 효도하는 것, 신하가 되었으면 충성하는 것, 부부가 되었으면 분별이 있는 것, 형제간에 우애가 있는 것,젊은 사람은 어른을 공경하는 것, 벗끼리는 신의가 있는 것. 이런 일을 날마다 행하는 모든 일'을 학문이라 정의하였
다.(격몽요결 서문 中)

따라서, '격몽요결'은 글공부로서의 학문을 넘어 인간이 추구해야 할 '훌륭한 인간'이 되기 위한 학문의 요결이다. 한국의 전통적 도덕의식이 이 책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서양의 자기계발서나, 비슷비슷한 자기계발서가 넘쳐나는 요즘 시대에도 한 번쯤 읽어 볼 만한 자기계발서로 손색이 없다.)

당시 율곡은 동인과 서인의 붕당 갈등, 개혁에 미적지근한 선조 등에 실망해 스스로 관직에서 사임하고 불리면 출사해서 입바른 소리하다가 또 낙향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이는 이 당시 황해도 해주에 기거하며 후학 양성에 열중하게 되는데, 후학들이 학문의 시작에서 몽매함에 빠지지 말라는 뜻으로 이 책을 직접 저술했다. 관직 생활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후학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리석고 안일한 생각을 가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제목(노하우)과 목차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내용 중 일부분은 시대를 초월해서 현대인들에게도 적용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2장 혁구습에서는 (학생이) 공부를 해볼려고 마음을 먹더라도 성취하지 못하고 망하는 까닭으로 여덟가지 오래된 습관을 제시하고, 이들을 끊어낼 것을 주문한다. 율곡이 언급한 공부의 8적은 아래와 같다. 율곡 본인도 저걸 다 해봤거나, 최소한 저런 제자들을 여러명 받아 봤다는 소리 아닐까(...)
  • 1. 공부에서 오는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힐링 타령하며 퍼져서 쉴 생각만 하는 습관
  • 2. 공부 중 고요함을 견디지 못하고, 책만 펴면 꼭 해야할 집안일들이 생각나서 (책을 놓고) 어지럽게 드나드는 습관
  • 3.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만 어울리기를 즐겨, 그들과의 사교활동이 끊어지는 걸 두려워 하는 습관
  • 4. 공명심에 헛소리를 지어내는 과정에서 경전을 표절하는 습관
  • 5. 풍류[1]에 빠져 신선놀음을 하는 습관
  • 6. 게임[2]에 빠져 하루를 날리는 습관
  • 7. 공부하는 도중 부자들과 자신을 비교해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는 습관
  • 8. 재테크, 음악, 여색에 중독되어 빠져나오지 못하고 학문을 소홀히 하는 습관.

  • * 습관 개선 동기부여**
습관 중에서 마음을 수양하는 데 방해되는 것이 대개 이와 같으니, 그 나머지는 이루 다 들기 어렵다. 이러한 습관이 사람으로 하여금 뜻을 견고하지 지키지 못하게 하고 행실을 독실하지 실천하지 못하게 하여, 오늘 저지른 일을 내일 고치기 어렵고, 아침에 그 행실을 뉘우쳤다가 저녁에는 이미 다시 그렇게 하나니, 반드시 용맹스런 뜻을 크게 분발해서 마치 칼을 가지고 단칼에 뿌리를 깨끗이 끊어버리듯이 하고,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어 털끝만치라도 남은 맥이 없게 하며, 때때로 매양 크게 반성하는 공부를 더하여 이 마음으로 하여금 한 점이라도 옛날에 물든 더러움이 없게 한 뒤에야 학문에 나아가는 공부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4장 <독서>에서는 율곡의 유교경전 테크트리(...)가 등장한다. 교과서를 (뭐부터 봐야 할 지/이 다음은 뭘 봐야 할지) 몰라서 공부를 못하겠습니다 소리도 들어본 듯 교과서들의 리스트만 던진 건 아니고, 유교 경전을 읽는 순서[3]를 제시하며 왜 이 타이밍에 그 책을 읽어야 하는지, 그 단계에서 무엇을 얻어가야 하는지 등 소상한 이유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5서 5경의 책을 다 떼고 나면 사문난적들의 이단이나 잡류에는 눈길도 주지 말고 송나라의 선현들이 지은 근사록, 가례, 심경, 이정전서, 주자대전, 어류 및 성리학 연구서적을 권장하고 있다.

3. 차례[편집]


아래 링크는 동양고전종합DB에서 제공하는 원문 및 번역으로 이어진다.

격몽요결

아래는 목차다.[4]

  • 서(序)
  • 제1장 : 입지(立志) : 뜻 세우기
  • 제2장 : 혁구습(革舊習) : 옛 습관 고치는 법
  • 제3장 : 지신(持身) : 올바른 몸 가지는 법
  • 제4장 : 독서(讀書) : 독서하는 법
  • 제5장 : 사친(事親) : 어버이 섬기는 법
  • 제6장 : 상제(喪祭): 상 치르는 법
  • 제7장 : 제례(祭禮): 제사 지내는 법
  • 제8장 : 거가(居家) : 집안 다스리는 법
  • 제9장 : 접인(接人) : 인간관계하는 법
  • 제10장 : 처세(處世) : 관직에 나아가는 법


4. 특성 및 가치[편집]


『격몽요결(擊蒙要訣)』은 저술 직후부터 국왕을 비롯하여 일반 유생에 이르기까지 널리 익혀졌다. 1585년에 간행된 을해자본 고사촬요에 해주의 책판으로 『격몽요결』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해주에서 처음 편찬이 이루어진 후에 목판으로 간행된 것을 알 수 있다. 최근에 이 당시의 간본으로 추정되는 책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후 격몽요결은 조선시대 중기 이후 초학 자(初學者)들의 입문교과서(入門敎科書)로 널리 쓰여졌으므로 여러 차례 목판본 또는 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목판본으로 확인되는 것은 주로 각 지방의 관아에서 판각하여 보급한 것으로 1582년에 간행된 옥천군서 간행한 것을 비롯하여 1629년 황해감영본, 1658년 삼척부 간본, 1690년 함경도 경성부(鏡城府) 간본, 1727년 평안감영본, 호남좌수영 간본, 1888년 영양현 간본 등이 현전본으로 확인된다. 금속활자본은 1749년 율곡전서를 간행할 때 권27에 포함되었고 당시에 이 율곡전서자본을 번각한 책이 다량으로 유통되었다. 별도의 금속활자본으로도 간행되었는데 종로도서관 소장의 정리자 간본이 이에 해당한다. 한편 율곡이 친필로 작성한 『격몽요결』도 강릉 오죽헌박물관에 전해진다. 특히 이 책의 권수(卷首)에는 정조의 제사(題辭)를 이병모(1742∼1806)가 명을 받들어 쓴 것이 붙어 있다. 정조 12년(1788)에 정조가 오죽헌에 율곡 이이 수고(手稿)의 『격몽요결』이 간직되어 있음을 듣고는 책을 열람하고 벼루(硯)에 명(銘)을 새겨 돌려보낸 것이다. 종로도서관에 소장된 『격몽요결언해(擊蒙要訣諺解)』는 정조의 「제수초격몽요결(題手草擊蒙要訣)」을 포함하여 언해문으로 작성하고 필사한 책이다.

종로도서관 고문헌 검색시스템에서 원문 확인이 가능하다.


5. 외부 링크[편집]




6. 보물 제602호[편집]



이이 수고본 격몽요결(李珥 手稿本 擊蒙要訣)은 율곡 이이(1536∼1584)선생이 42세 때인 선조 10년(1577) 관직을 떠나 해주에 있을 때 처음 글을 배우는 아동의 입문교재로 쓰기 위해 저술한 것이다.

이이는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정치가로, 23세 때 별시에서 장원을 한 후 벼슬길에 올랐고, 호조좌랑, 예조좌랑, 우부승지를 거쳐 47세 때 이조판서에 임명되었다. 이이의 성리학 사상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전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이외에도 <시무육조>를 세우고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 그가 죽은 후 전국 20여개 서원에 위패가 모셔졌으며, 시호는 문성이다. 저서로는 『격몽요결』 외에 『성학집요』, 『기자실기』, 『만언봉사』 등이 있다.

이 책은 율곡이 직접 쓴 친필 원본으로 한지에 행서체로 단아하게 썼으며, 내용은 제1장 <입지>에서부터 <처세>의 항목으로 나누어 제10장으로 구성하여 서술하였다. 특히 이 책머리에는, 정조 12년(1788)에 이 책을 친히 열람하고 제목에 글을 지어 문신 이병모(1742∼1806)에게 명해 이를 책머리에 붙이게 하였다. 『격몽요결』은 조선 중기이후 일반에게 널리 보급되어『동몽선습』과 함께 초학자의 입문서로 근세에까지 많이 읽혀져 왔다.

더욱이 이『격몽요결』은 여러차례 목판본이나 활자본으로 출간되어 왔으나, 유일한 친필본은 율곡의 이모가 시집간 권씨집안에 율곡의 유품과 함께 대대로 소장되어 왔으며, 이것은 율곡이 친히 쓴 친필원본으로 그 가치가 크다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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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붓글씨 쓰기, 시 짓기, 편지 교환, 그림 그리기 등을 포함해서 (학문 자체와는 무관한) 붓 놀림 전반, 거문고 타기, 음주가무 등이 거론된다.[2] 장기와 바둑 등 상대측과 겨루어 이기는 보드게임 종류가 주로 언급된다.[3] 소학-대학/대학혹문-논어-맹자-중용-시경-예경(예기)-서경-역경(주역)-춘추로, 총 10권이다.[4] 아래 목차는 이제는 삭제된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의 번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