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아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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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산의 사계.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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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산[2]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17호 경복궁
경복궁 아미산
景福宮 峨嵋山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높이

1. 개요
2. 이름과 역사
2.1. 통설
2.1.1. 회의론
2.2. 진실
3. 복원 전의 모습
4. 구조
5. 부속 시설
5.1. 낙하담과 함월지
5.2. 굴뚝
6. 여담



1. 개요[편집]


경복궁 교태전 후원에 있는 언덕이다.


2. 이름과 역사[편집]



2.1. 통설[편집]


이름과 역사의 유래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이름 유래를 먼저 살펴보면, 가장 잘 알려져있는 설은 중국 불교도교성지 중 하나인 아미산에서 따왔다는 것. 그 이 어딘지도 설이 갈린다. 산둥성(山東省) 박산현에 있는 산으로 보기도 하고, 쓰촨성(四川省) 아미현의 산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태종 시절 경회루를 지으면서 연못을 팔 때 나온 을 쌓아 인공산을 만든 것이 아미산 역사의 시작이며, 교태전에서 태어나는 왕손이 백두대간과 한북정맥의 를 받으라는 상징적인 뜻을 담았다고 전해진다.


2.1.1. 회의론[편집]


하지만 상술한 이야기들이 과연 사실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일단, 태종 때에는 교태전이 없었으며[3] 조선 초기의 교태전은 중궁전이 아니었기 때문에 왕손들이 기를 받고 태어나라는 의미도, 경회루 연못을 파서 만들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승정원일기》 1875년(고종 12년) 3월 29일 자 기사에, 고종과 신료들이 아미산의 이름과 역사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나오는데,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사뭇 다르다. 아미산을 '아미사(蛾眉砂)'로 부르고 아미사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지형이란 것이다.

'아미사(蛾眉砂)'는 본래 풍수용어이다. 직역하자면 '누에나방(蛾)의 눈썹(眉)'이란 뜻으로 미인의 눈썹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풍수에서 아미사는 주산에서 내려온 지맥이 혈 자리에 닿기 전에 솟아오른 지형을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같은 기록에서 고종과 신하들은 아미사가 자연적으로 생성된 땅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당시 고종이 화재로 불탔던 교태전 일곽을 크게 고쳐 지으려고 하자 신하들이 반대했는데 호조판서 민치상이 "교태전 뒤의 아미사(蛾眉砂)는 바로 하늘이 만든 것으로, 그 아래에 전각을 세운 데는 깊은 뜻이 있는 듯합니다."라고 고종에게 아뢰었고, 나중에 좌의정 흥인군 이최응이 지맥을 보아야한다고 아뢰자 고종이 "처음에는 아미사가 인공적으로 만든 산인 줄 알았는데, 근래에 들으니 바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고 답했다.

즉, 《승정원일기》 기록이 사실이라면, 아미 명칭은 중국의 명산과는 상관이 없으며 아미사는 인공 언덕도 아니라는 것이다. 조선 전기 경복궁의 모습을 추정하여 그린 그림 〈경복궁도〉를 보면 교태전 바로 뒤로 언덕이 그려져 있는데 이 언덕은 궁성 동북쪽 바깥에서부터 이어져 있다. 이런 일련의 자료를 볼 때 아미사는 원래 자연적으로 높은 지형임을 확인할 수 있다.[A]

그렇다면, '아미사(蛾眉砂)'가 어떻게 해서 중국의 명산에서 따온 이름 '아미산(峨嵋山)'으로 바뀌었는지 궁금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추측할 만한 기록 몇 개가 있다. '아미산'으로 처음 부른 시기는 1904년(광무 8년) 언저리부터이다. 그 무렵 중추원의 김택영 서기관이 친구 윤희구와 함께 경복궁을 둘러보았고, 붉은 모란꽃 61송이가 아름답게 피어있는 아미사를 아미산으로 비유한 내용이 김택영의 문집 《소호당집》에 있다. 김택영은 나중에 아미사의 풍광을 왕족 및 신료들에게 이야기했고 이에 고종의 사촌동생 완순군 이재완이 아미사의 모란을 소재로 를 지었다. 그때부터 '아미사'는 '아미산'으로 불렸고 이후 나온 공식 기록과 그림에도 '아미산'으로 적히게 되었다.[A]

그리고 왜 경회루 연못 흙 이야기가 나왔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에 대한 답은 《경복궁영건일기》에 있다. 이 책에 따르면, 1865년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270년 넘게 경회루 연못에 쌓였던 진흙더미들을 퍼냈고, 퍼낸 진흙들을 아미사에 쌓았다고 한다. 즉, 경회루에서 흙을 퍼온 것은 맞지만 태종 시기가 아니라 고종 시기에 그랬으며, 오롯이 경회루 연못 흙으로만 만든 인공산이 아니라 기존의 언덕에다 쌓았다는 것이다.[A] 고종 때부터 교태전을 중궁전으로 활용하면서 기존의 아미사를 왕비의 정원으로 만들기 위해 흙을 덧댄 것이다. 그것이 와전되어 태종 때 경회루를 축조하면서 나온 흙을 옮겼다는 오해가 생긴 모양이다.


2.2. 진실[편집]


종합하자면, 아미산은 태종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원래 이름은 '아미사(蛾眉砂)'였으며, 조선 초기에는 중궁전의 후원이 아니었고, 자연적으로 솟은 지형이었다. 그러다 고종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왕비의 후원으로 만들었고 경회루의 흙을 덧대었으며, 대한제국 시기부터 '아미산(峨嵋山)'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3. 복원 전의 모습[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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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태전 복원 전 아미산 모습[4]
일제강점기였던 1917년에 화재로 불탄 창덕궁 내전을 이왕직에서 새로 지으면서 교태전 일곽을 전부 헐었지만 아미산은 건드리지 않아 무사했다. 1995년 문화재관리국에서 교태전을 복원하면서 아미산 역시 교태전 후원으로서의 모습을 되찾았다. 이후 몇 차례 보수, 수리를 거쳐 오늘까지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4. 구조[편집]


교태전 건물을 따라 동서로 길게 뻗어 있으며 높이는 대체로 평평한 편이다. 장대석 석축 2벌대를 쌓아 화계(花階) 4단을 만들어 괴석과 같이 생긴 돌 연못 2개를 놓고 나무와 들을 심어 화려하면서도 운치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무는 총 13종이 심어져있는데 그 중 소나무, 회화나무, 감나무, 말채나무가 주를 이룬다.


5. 부속 시설[편집]



5.1. 낙하담과 함월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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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낙하담, 오른쪽이 함월지이다.

落霞潭 · 涵月池

아미산에 있는, 마치 처럼 생긴 연못들로 말이 연못이지 사실상 수조이다. 낙하담이 동쪽에, 함월지가 서쪽에 있다.

낙하담(落霞潭)은 ‘노을이 내려 앉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낙하(落霞)’는 ‘떨어지는 노을’, 또는 ‘저녁 노을’이라는 의미이다. 중국 남조시대양나라황제였던 간문제가 지은 ‘등성(登城)’이라는 에 “저녁 노을은 금방 이어졌다 끊어지고, 저녁 물결은 때마침 다시 돌아오네.”라는 표현에서 유래했다. 또한 초당사걸[5] 중 한 사람인 시인 왕발 말고이 지은 등왕각서(滕王閣序)에도 “저녁 노을(落霞)은 외로운 따오기와 함께 날고, 가을 물은 먼 하늘과 함께 한 가지 색이로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이 일반적으로 훨씬 유명하기에 여기서 따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함월지(涵月池)는 ‘달을 머금은 연못’이라는 뜻으로, 연못 속에 비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아미산이라는 공간과 연관시켜 보면 이백의 <아미산월가>에 나오는 “아미산에 떠 오른 가을 반달이여, 그림자 평강에 들고 강물은 흘러가네.”라는 구절에서 따온 듯하다.


5.2. 굴뚝[편집]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보물
810호

811호

812호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
경복궁 아미산 굴뚝
경복궁 근정문 및 행각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보물 제811호
경복궁 아미산 굴뚝
景福宮 峨嵋山 굴뚝


소재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주거시설
수량
4기
지정연도
1985년 1월 8일
제작시기
조선시대, 186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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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산 굴뚝


아미산하면 4개의 굴뚝이 제일 유명하다. 교태전의 온돌방에서 나오는 연기를 내보내기 위해 만든 굴뚝이다.

육각형이다. 화강암 받침돌 위에 황토색 벽돌로 30단 정도를 쌓아 몸체를 만들었다. 몸체의 윗 부분은 소로와 창방 · 첨차 형태로 만든 벽돌을 쌓고 기와지붕을 이었다. 맨 위에는 연기가 빠져나가는 연가(煙家)를 점토로 만들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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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십장생벽화 (4).jpg}}}
아미산 굴뚝의 십장생 벽화[6]
또한 각 면 가운데마다 봉황 · · 박쥐 · 해치 · 사슴 · 대나무 · 소나무 · 국화 · 매화 · · 불로초 등의 문양을 구운 벽돌로 집어넣고, 무늬 사이사이에 석회를 넣은 벽화를 설치했다.

굴뚝 4개 중 3개는 나란히 놓여있지만 1개는 동북쪽 끄트머리에 건순각의 출입문인 건순문과 거의 붙어있다시피 있다.

교태전 일곽의 건물들은 전부 1995년에 복원한 것이지만, 이 굴뚝은 1860년대 고종 시절의 모습 그대로이다. 거기에다 미적 가치 등이 뛰어났기에 1985년 1월 8일 보물 제811호로 지정되었다.

아미산을 둘러싼 담장에도 황토색 벽돌로 격자무늬를 내고 문양을 장식하였다. 이는 굴뚝과 조화를 이룸과 동시에, 자칫 밋밋할 수도 있는 담장을 예술 그 자체로 승화시키는 미적 감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6.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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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정문[7]
아미산 굴뚝을 모티브로 국립국악원 정문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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