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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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산업성
経済産業省 | Ministry of Economy, Trade and Industry

파일:경제산업성 로고.svg
약칭
경산성(経産省), METI
설립일
2001년 1월 6일
전신
통상산업성, 경제기획청
대신
니시무라 야스토시
부대신
이와타 카즈토모[A]
사카이 소유키[*A ]
대신정무관
이시이 타쿠[1]
요시다 노부히로[2]
사무차관
이이다 유지
소재지

}}}
도쿄도 치요다구 카스미가세키3초메 3-1
(東京都千代田区霞が関一丁目3番1号)
내부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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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관방 (大臣官房)
경제산업정책국 (経済産業政策局)
통상정책국 (通商政策局)
무역경제협력국 (貿易経済協力局)
산업기술환경국 (産業技術環境局)
제조산업국 (製造産業局)
상무정보정책국 (商務情報政策局)

외국
자원에너지청 (資源エネルギー庁)
특허청 (特許庁)
중소기업청 (中小企業庁)
직원 수
5,707명 (외국 제외)
447명 (자원에너지청)
1,641명 (특허청)
195명 (중소기업청)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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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산업성 종합청사 본관
1. 개요
2. 연혁
3. 산하기관
4. 역대 대신
5. 기타



1. 개요[편집]


일본중앙성청 중 하나. 한국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기획재정부[3] 등에 해당한다. 약칭으로 경산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민간의 경제활력의 향상과 대외경제관계의 원활한 발전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 및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광물자원 및 동력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공급을 도모하는 것을 임무로 한다.

경제산업정책, 통상정책, 산업기술, 무역・상무유통정책 등을 관장한다.

경륜・오토레이스(オートレース)[4]의 감독관청이기도 하다.


2. 연혁[편집]


경제산업성의 변천사
농상무성
경제안정본부

상공성

농상성
군수성

상공성
경제심의청

통상산업성
경제기획청

경제산업성
경제산업성의 역사는 1925년 농상무성이 분할되어 설립된 '상공성'에서부터 시작된다. 전시에는 군수산업 강화를 위해 한동안 군수성으로 개조되었고 일부 업무는 농상성으로 이관되었으나 전후 상공성으로 돌아왔다. 이후 1949년 상공성과 그 외국인 무역청과 석탄청을 통합해 '통상산업성'이 발족되었다.

경제산업성의 전신인 통상산업성(Ministry of International Trade and Industry, MITI)은 설립 직후(사실상 6.25 전쟁과 맞아떨어지는 시기)에서부터 1980년대까지 이어져온 일본의 고도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며 일본을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고, 해외에서도 명성을 떨치며 "Almighty MITI" 혹은 "Notorious MITI"라고 불릴정도로 우수한 일본 관료의 대명사로 넓게 알려져 있었다. 오죽하면 영문판 위키백과에는 경제산업성(Ministry of Economy, Trade and Industry)과 통상산업성(The Ministry of International Trade and Industry) 항목이 따로 있을 정도. 그러나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가 붕괴된 이후로 장기화되어가는 경기침체 문제를 끝내해결하지 못하고 잃어버린 10년을 초래하면서 무능의 대명사로 이미지가 바뀌게 되었고, 결국, 2001년에 조직구조가 개편되는 원인이 되었다.

2001년 1월 중앙성청개편 때 경제산업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3. 산하기관[편집]


  • 자원에너지청(資源エネルギー庁) : 한국의 구 동력자원부와 마찬가지로 동력 · 지하자원 · 전기 · 연료 및 열관리에 관한 사무를 관장. 1차 오일 쇼크 당시(1973) 개청하였으며, 이는 동력자원부는 물론 미국 에너지부보다도 빠르다.
  • 중소기업청(中小企業庁)
  • 특허청


4. 역대 대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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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bgcolor=#0097d0> 경제산업대신(2001년~현재) ||
||<-5> ||
||<width=40%><-2> 1·2대
히라누마 다케오 ||<width=60%><-3> 3-5대
나카가와 쇼이치 ||
||<-5><bgcolor=#f0f0f0,#000>
||
||<-5> ||
||<width=20%> 6대
니카이 도시히로 ||<width=40%><-2> 7·8대
아마리 아키라 ||<width=40%><-2> 9·10대
니카이 도시히로 ||
||<-5><bgcolor=#f0f0f0,#000>
||
||<-5> ||
||<width=40%><-2> 11·12대
나오시마 마사유키 ||<width=20%> 13대
오하타 아키히로 ||<width=20%> 14대
가이에다 반리 ||<width=20%> 15대
하치로 요시오 ||
||<-5><bgcolor=#f0f0f0,#000>
||
||<-5> ||
||<width=20%> 16대
에다노 유키오 ||<width=20%> 17대
모테기 도시미쓰 ||<width=20%> 18대
오부치 유코 ||<-2><width=40%> 19·20대
미야자와 요이치 ||
||<-5><bgcolor=#f0f0f0,#000>
||
||<-5> ||
||<width=20%> 21대
하야시 모토오 ||<-2><width=40%> 22·23대
세코 히로시게 ||<width=20%> 24대
스가와라 잇슈 ||<width=20%> 25·26대
가지야마 히로시 ||
||<-5><bgcolor=#f0f0f0,#000>
||
||<-5> ||
||<width=20%> 25·26대
가지야마 히로시 ||<-2><width=40%> 27·28대
하기우다 고이치 ||<width=20%> 29대
니시무라 야스토시 ||<width=20%> 30대
사이토 겐 ||




5. 기타[편집]


  • 전후 일본의 경제복구와 고도경제성장의 주축이 된 구 통상산업성 관료들의 이야기를 담은 TV 드라마 <관료들의 여름>(官僚たちの夏)이 있다. 다소 미화된 것은 있지만 수작이다. 사카이 마사토 출연.[5]

  • 대한민국에서 이미지가 좋지 않은 일본 정부기관 중 한 곳이다. 2019년 일본의 대한국 수출 통제를 주도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을 직접 마주하는 외무성이 아닌 경제산업성을 통해 경제보복을 주도한지라 그만큼 충격이 컸다. 경제산업성 출신이자 아베 신조 내각의 실세인 이마이 다카야(今井尙哉) 정무비서관이 보복 정책을 설계하고, 이를 토대로 주무부처 장관인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이 집행을 총괄하고, '돌쇠형 참모'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이 나팔수 역할을 맡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

  • 아베 신조가 총리였던 시절 외무성과 함께 밀어준 부서이기도 했다. 아베의 확고한, 경제, 외교 성향을 고려한다면 경산성과 외무성이 특혜를 받은 것은 그다지 놀라운 점이 아니긴 하다. 그에 대한 영향으로, 경산성의 대신을 지냈던 세코 히로시게하기우다 고이치는 둘 다 아베 신조의 사후 아베파를 이끌어갈 주요 인사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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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내각부 부대신 겸임[1] 내각부 정무관 겸임[2] 내각부 정무관과 부흥 정무관 겸임[3] 경제부분[4] 경륜자전거의 순위로 도박을 하듯이, 오토레이스는 오토바이를 가지고 도박을 한다.[5]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 경제산업성 표지석이 개막되는 장면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