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계림로 수레모양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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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경주 계림로 수레모양 토기1.jpg

1. 개요
2. 내용
3. 기타



1. 개요[편집]


1973년, 경상북도 경주시 계림로 제25호분에서 출토된 4세기 경 신라시대의 수레형 토기 1점.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편집]


파일:경주 계림로 수레모양 토기3.jpg
사진 출처 : 소년한국일보

높이 13㎝, 전체 길이 12.8㎝.

1973년, 경주시 대릉원의 동쪽 담을 따라 길(계림로)을 새로 내던 중 황남동 미추왕릉지구 계림로 제25호분이 발견,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이를 출토해본 결과 4,500여점의 신라 유물이 확인되었다. 이 수레모양 토기, 일명 차형토기(車形土器) 또한 이 당시 출토된 유물 중 하나로, 연구 조사 결과 이 독널무덤(옹관묘甕棺墓)가 3세기~4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본 유물 또한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이 수레모양 토기는 바퀴와 차체, 끌채 등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촘좀하게 수레살이 박혀 있는 바퀴의 중앙에는 차축을 끼우기 위한 구멍이 있고 차체의 앞은 트였으나 양 옆면과 뒷면은 판으로 막혀 있다. 판에는 위 아래로 길게 띠를 둘렀으며 띠에는 못자욱이 매우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차체의 앞쪽으로 수레를 끌기 위한 막대같은 것이 부러진 채로 남아있다. 12~13개의 살로 구성된 바퀴는 굴대(車軸)와는 별도로 제작된 뒤 조립되어서 회전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러한 수레모양 토기는 오직 신라가야 두 지역에서만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어, 당시 생활용품을 토기로 만들어 부장하는 형태가 현 경상도 지역의 고유 문화였음을 알 수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수레토기 현재 경주시를 비롯해 진주시, 창녕군, 현풍읍, 함안군 등에서 발견되고 있다.



옥천에서 확인된 신라시대 군사용 도로. 7세기 경 신라가 백제를 공격하기 위해 산 위를 통째로 갈아서 만들었으며, 현대의 4차선 도로 이상의 넓은 구역에 다수의 수레자국이 확인되고 있다.

파일:경주 계림로 수레모양 토기4.jpg
사진 출처 : 신라-고려 '아스팔트' 도로 대구서 확인, 동아일보 : 신라시대에도 ‘포장도로’ 있었다
대구 봉무동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포장도로. 폭 520cm의 도로 넓이에 지름 15~40cm의 강돌과 큰 돌을 깨 만든 자갈을 1단, 2단에 걸쳐 깔은 포장도로로, 역시 수많은 수레가 오고간 흔적이 남아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기록상으로 볼 때, 한 두 사람이 걸어 지나갈 수 있는 작은 산길 외에는 도로를 까는데 큰 관심이 없었던 후대왕조인 고려조선과는 달리 신라는 전국에 대형넓이의 포장도로를 깔고 또는 이 끄는 대형 수레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1,700여년 전에 만들어진 이 4세기 경의 신라 토기는 당시의 이러한 수레 이용 세태를 보여주는 유물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3. 기타[편집]


파일:경주 계림로 수레모양 토기2.jpg

대한민국 보통우표 50원 권의 도안으로 쓰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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