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성동 수로부인 여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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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경주 황성동 수로부인 여인상.jpg

사진 출처 : 국립경주박물관 공식 트위터 - 신라의 여인상

1. 개요
2. 내용



1. 개요[편집]


7세기 초 신라의 무덤인 경주 황성동 고분에서 발견된 한국의 여인상. 신라토우의 일종이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편집]


파일:경주 황성동 수로부인 여인상4.jpg

사진 출처 : 국립국어원 한국수어사전 - 여인상

하단의 내용은 [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8] 포클레인 발톱 피한 '수로부인'의 고운 자태 등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1987년, 경상북도 경주시 황성동 유림 마을에 위치한 황성동 고분(隍城洞古墳)에서 발견된 7세기 신라시대 여인상이다. 황성동 고분은 국내에서 최초로 발견된 용해로적(鎔解爐跡) 및 단야로적(鍛冶爐跡) 제철유적으로, 2020년 현재까지 발견된 삼국시대 철·철기생산 유적 중 그 연대가 가장 오래된 곳이라 사학자들에게 매우 유명한 곳이다. 신라시대에 사용된 송풍관의 잔해(送風管片), 주조쇠도끼의 거푸집 등이 발견되었는데 그 양이 막대하다.

원래는 십이지석와 토용 발굴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경주 용강동 고분과 비슷한 정도로 그 규모가 매우 컸던 무덤이었는데 1987년 당시 한국전력공사전신주 매설공사 도중 이 고분이 우연히 발견되자, 공사가 지체될 것을 우려한 건설회사 측이 몰래 포크레인으로 유적을 두 번에 걸쳐 무참히 파괴해버렸다. 돈을 쫓은 조직적인 파괴로 인해 국립경주박물관동국대학교 연구진이 급히 도착했을 땐 이미 고분과 유물 대부분이 산산조각난 뒤였다.

파일:경주 황성동 수로부인 여인상3.jpg

이 여인상은 분노에 찬 조사단이 파괴된 유물들을 조심스레 수습할 때 발견되었다. 당시 조사단 학예실장은 7세기에 만들어진 이 신라 여인상을 보고 비슷한 시기 미인으로 유명했던 수로부인(水路夫人)을 떠올렸고 이후 이 토용의 애칭으로 사용되었다.

이 신라의 여인은 오른손에 술병을 들고, 왼손으로는 입을 가리고 있다. 실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웃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겉에 입은 옷을 표의(表衣)라 하는데, 위아래가 하나로 이어진 원피스 같은 옷이다. 통일신라 시대 여성들의 옷은 소매가 길어 웬만해서는 손을 볼 수 없었다. 이 여인상의 표의도 마찬가지다. 이는 당시 여자들이 손끝을 내보이는 것을 조심했기 때문이다. 이런 풍습은 이후 고려조선 시대까지 이어져 여자들은 바깥나들이를 할 때 반드시 한삼(汗衫)을 저고리 위에 걸쳐 손을 가렸다.

또한 여인상의 아랫단을 보면 발끝이 살짝 나와있는 보이는데 이를 통해 당시 한국의 여성들이 신코가 있는 신발을 신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인은 쪽머리를 하고 있는데, 중앙에 가르마를 하고 양옆으로 뒤로 넘겨 뒤통수에 쪽을 해놓았다. 또한 입고 있는 원피스 위에 띠를 둘렀는데, 그 자리가 다른 나라 의복에서 흔히 보이는 일반적인 허리춤이 아니다. 가슴 바로 아래쯤에 띠를 둘렀고, 이것으로 보아 당시 신라 여인들은 띠를 위로 올려 잡아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전통적인 조선시대 한복 치마끈 매는 자리와 같다.

원래는 중국에서 유래된 풍습인 입을 가리고 웃는 행동이 보편화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이다. 현대에도 흔히 볼수 있는 모습인데 이 풍습이 굉장히 오래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7세기에 만들어진 신라의 여인상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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