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현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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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의 왕녀
경현공주 | 敬顯公主


경현공주·신의 합장묘 전경
출생
1530년 9월 14일(음력 8월 13일)
사망
1584년 9월 16일(음력 8월 13일)
(향년 55세)
능묘
경현공주·신의 합장묘
광주 이부현 목암리(廣州 利夫峴 木庵里)
(現 경기도 광주시 목현동 산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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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전주 이씨

옥현(玉賢)
부왕
중종
모친
문정왕후
부군
영천위 신의(靈川尉 申檥, ? ~ 1584)[1]
자녀
슬하 1남
아들 - 신사정(申士楨, 1546 ~ 1593)
봉호
경현공주(敬顯公主)

1. 개요
2. 생애
2.1. 어린 시절
2.2. 불행한 생활
2.3. 외로운 죽음
3. 여담
4. 가족 관계




1. 개요[편집]


조선 중종의 적4녀. 어머니 문정왕후의 3녀이자, 명종동복 누나가 된다.

2. 생애[편집]



2.1. 어린 시절[편집]


1530년(중종 25) 공주가 태어났다. 이 당시 자순대비(정현왕후)가 병을 앓고 있었는데, 문정왕후는 경현공주를 임신 중에도 불구하고 밤낮으로 시어머니 자순대비의 병구완을 했다. 자순대비가 위독해졌을 때, 문정왕후는 경현공주를 낳은 지 7일 만이어서 걸어다닐 수 없었다. 그러자 문정왕후는 보자기 위에 앉아 상궁으로 하여금 들고 나게 하면서 자순대비를 문안하였다.[1] 공주는 이런 엄격한 어머니 아래서 성장한 것이다.

1537년(중종 32) 8세의 나이로 경현(敬顯)의 작호를 받고 공주로 책봉되었다. 경현공주 또한 아버지 중종의 사랑을 받았는데, 사헌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주의 집을 새로 짓게 하는 등 많은 비판을 받았다. 1541년(중종 36) 12세의 나이로 목사 신수경[2]의 아들로 동갑내기인 신의를 부마로 맞이하였다. 가례를 올릴 때도 참석한 사람들이 사치스러움에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 뒤로 자극받은 사람들이 있었는지, 잔치를 열면 그보다 더 사치스럽고 호화롭게 하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3]

그러나 중종의 적통 공주이자 명종의 누나로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을 듯이 보이는 삶이었지만, 실상은 시궁창이었다.

2.2. 불행한 생활[편집]


당대의 부마는 왕실과의 혼맥이나 문벌이 좋은 사람을 우선하나 성품은 보지 않은 듯하다. 신의는 사람들을 폭행하고, 권력을 남용했으며, 공주와 불화했다.[4] 문정왕후가 궁궐로 불러 들였으나 따르지 않았고, 문정왕후가 내관을 보내 타이르면 듣는 즉시 화를 내며 꼿꼿이 앉아 엎드리지도 않았다.[5]

명종은 참다 못해 매형 신의가 받은 부마의 직첩을 빼앗고 통천군에 유배까지 보냈다. 하지만 직첩을 빼앗겼다고 해도 엄연히 공주의 남편이고, 공주가 살아있으니 유배지의 지방 수령이 통제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오히려 유배지에서 근신하지 않고 난동을 부리기 일쑤였는데, 유배지에서 살인까지 저질렀다.

뿐만 아니라 기생집에 들락거려 경현공주가 홧병을 얻자 기생집 출입이 금지되는 일도 있었다. 그러자 공주의 옷을 벗겨서 기생에게 주고, 여종을 희롱하고, 아예 집에 기생을 데려와 간음 하였고, 공주와 말싸움을 하면서 공주한테 차마 하지 못할 말을 입에 담았다. 쌍욕했네 오죽하면 명종이 경현공주의 집에 신의가 출입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강제별거 물론 그런다고 사정이 나아진 건 아니다.

명종의 치세가 끝나고 선조가 왕이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때도 신의는 여전히 기고만장하여 경현공주를 더 박대하고, 의복과 음식을 대주지도 않았다. 심지어 공주가 병이 나자, 병구완을 하던 며느리를 쫓아냈다. 결국 선조도 명종이 그랬듯이, 신의를 보성군으로 유배를 보내고 만다.

문제는 남편 복만 없는 게 아니라 아들 복도 없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경현공주의 하나 뿐인 아들도 아버지에게 질세라 사고를 치고 다녔다. 아들 신사정은 외할머니 문정왕후의 국상 기간에 기생을 만나고 다니는가 하면, 문정왕후가 하사한 물건을 주기도 하고, 아버지 신의와도 사이가 좋지 않아 아버지가 유배를 가는데 태연하게 굴다가, 결국 불효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삭탈관직 당하고 자신도 유배를 갔다.[6] 그와 함께 어울린 기생 석빙정(惜娉婷)도 신사정을 유혹했다며 제주도로 유배를 갔다.[7]

2.3. 외로운 죽음[편집]


이러한 가정불화로 경현공주는 병을 얻은 듯 하다. 1584년(선조 17) 공주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당시에 공주의 형제 자매는 살아있는 사람이 없었고, 남편은 먼저 죽었으며, 아들은 유배 중이라, 공주의 임종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사정은 어머니 경현공주가 죽고 4년 뒤에야 비로소 한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3. 여담[편집]


  • 선조후궁 간택에 정빈 민씨가 선발되었을 때, 대간들이 "민씨는 성종부마 여천위 민자방[8]의 외손이므로 제외하소서"라고 했다. 그러나 선조는 "신의는 경현공주에게 5촌척인데, 하물며 7촌이나 되는 먼 사이이겠는가." 라고 말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9][10][11]

4. 가족 관계[편집]



  • 남편 : 영천위 신의(靈川尉 申檥) - 성종의 딸 혜숙옹주의 양손자
    • 장남 : 신사정(申士楨, 1546 ~ 1593)
    • 며느리 : 밀양 박씨(密陽 朴氏) - 판서 박충원(判書 朴忠元)의 딸
      • 적손녀 : 신혜정(申惠貞, 1561 ~ ?)
      • 적손자 : 신순(申楯, 1562 ~ ?)
    • 며느리(첩) - 노비 양옥(良玉)
      • 서손녀 : 신난영(申蘭英, 1574 ~ ?)
    • 며느리(첩) : 노비 향개(香介)
      • 서손자 : 신덕성(申德成, 1575 ~ ?)
    • 며느리(첩) - 양첩 중대(仲代)
      • 서손녀 : 신정순(申正順, 1580 ~ ?)
      • 서손자 : 신영(申梬, 1584 ~ ?)
    • 며느리(첩) - 양첩 애영(愛英)
      • 서손자 : 신남(申楠)
      • 서손자 : 신매(申梅)
    • 며느리(첩) - 노비 종대(終代)
      • 서손자 : 신경(申㯳, 1587 ~ ?)
    • 며느리(첩) - 노비 복상(福祥)
      • 서손자 : 신탑(申㯓, 1588 ~ ?)
    • 며느리(첩) - 노비 영춘(永春)
      • 서손자 : 신용(申榕, 1589 ~ ?)
    • 며느리(첩) : 성씨 미상 - 양민 출신
      • 서손녀 : 신순(申順, 1592 ~ ?)
    • 며느리(첩) : 양첩 성대(聖代)
      • 서손자 : 신영(申楹, 1598 ~ ?)
    • 며느리(첩) : 성씨 미상 - 노비 출신
      • 서손녀 : 군수 김규문(郡守 李圭文)의 처
      • 서손녀 : 공덕창(貢德彰)의 처
      • 서손녀 : 김응선(金應善)의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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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종실록 31권, 명종 20년 4월 20일 병술 2번째 기사. # [2] 경현공주의 시아버지인 신수경은 신숙주의 증손인 신항과 성종의 서장녀인 혜숙옹주의 양자이다. 즉, 경현공주는 친아버지의 이복누나(즉 고모)의 양손자와 혼인한 것이다. [3] 중종실록 94권, 중종 36년 2월 20일 정축 2번째 기사. # [4] 의혜공주의 남편 한경록도 부정부패가 심했으나, 이 지경은 아니었다. [5] 명종실록 16권, 명종 9년 1월 10일 신해 1번째 기사. # [6] 조선시대를 통틀어 국상 기간에 기생과 어울려서 좋은 꼴 본 사람이 없다.[7] 명종실록 32권, 명종 21년 5월 28일 무오 1번째 기사. # [8] 성종의 서5녀 경숙옹주의 남편이다.[9] 선조실록 14권, 선조 13년 5월 27일 을미 1번째기사. #[10] 신의의 할머니, 곧 혜숙옹주 입장에서 보면 경현공주는 자신의 조카인 동시에 손자며느리가 된다. 그런데 경현공주와 신의는 5촌이기도 하지만 9촌이 되기도 하는데, 이는 경현공주의 시어머니 쪽을 봐야한다. 신수경의 부인인 한씨의 증조부는 인수대비의 남동생 한치례이다. 따라서 촌수를 계산해보면 이 둘은 9촌이 되기도 한다.[11] 한치례가 정의공주(세종대왕의 적차녀)의 사위이자 그 아들인 한익은 정의공주의 외손자가 된다. 결국 신의와 경현공주의 결합은 세종의 후손들이 음으로 양으로 돌고 돌아 재결합을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