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교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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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교 전투
界橋之戰
시기
192년
장소
거록군 광종현(현재의 싱타이 시 웨이 현)
원인
원소의 기주 장악 이후 공손찬과 관계악화.
교전세력
원소군
공손찬군
지휘관
원소
공손찬
참전 장수
국의
전풍
엄강
병력
약 1,800 명+@[1]
약 40,000 명
피해
피해 규모 불명
전사자 약 1천 명
지휘부 붕괴
결과
원소군의 승리
영향
원소의 세력 강화 및 하북 장악의 기틀 마련.




1. 개요[편집]


界橋之戰/磐河之戰[2]
192년에 계교에서 공손찬원소가 싸운 전투이다.


2. 배경[편집]


191년에 공손찬이 원소의 요청으로 한복을 공격해 격파했지만 그 사이에 원소가 기주의 여론을 장악하고 한복을 협박해 기주목의 자리를 빼앗는데, 이로 인해 공손찬이 원술과 연합해 공손월을 파견해 친원소 계열의 군벌을 공격하는 것을 돕다가 공손월이 전사한 것을 빌미로 군대를 출진시켜 원소를 공격한다.

공손찬은 황종에 주둔해 군수, 현령을 바꿨고 기주의 관리들은 공손찬에게 호응했으며, 원소가 공손찬을 공격하면서 계교의 남쪽 20리에서 전투를 벌이게 된다.


3. 과정[편집]


공손찬이 보병 3만여 명을 이끌고 방진을 이루어 기병이 양 날개가 되어 좌우에는 각각 5천여 명이 있어 공손찬의 정예병인 백마의종은 중견이 되어 다시 둘로 나누어 좌교는 우측, 우교는 좌측에 쏘았는데, 원소는 국의에게 800명을 이끌고 선봉에 서도록 하면서 강노 부대 1천을 양 옆에 끼면서 뒤에서 받쳐주고 원소는 보병 수만 명을 이끌고 후위에서 진을 형성했다.

공손찬은 원소군의 병사가 적은 것을 보고 기병을 보내 원소군을 공격했지만 국의가 이끄는 병사들이 방패 아래에 숨어 움직이지 않다가 수십 보에 이르지 않은 가까운 거리에 이르자 다함께 동시에 일어나면서 돌진했으며, 원소군의 강노 부대가 강노를 발사하자 공손찬의 군사 중에 맞은 자는 다 쓰러졌다.

국의가 공손찬군을 공격해 엄강과 그가 이끄는 갑병 천여 명의 목을 얻었으며, 공손찬의 군대는 패해 공손찬의 보병, 기병 등이 달아나 진영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국의는 교계까지 추격했다. 공손찬의 후위 병사들이 다리 위에서 싸웠지만 국의는 다시 이를 격파하고 공손찬의 진영에 이르러 아문을 뽑고 공손찬의 진영에 남은 무리들은 흩어져 달아났다.

원소는 공손찬이 패한 소식을 듣고 다리 근처에 말에서 내려 안장을 풀어놓고 휴식을 하면서 방비를 하지 않고 휘하의 강노부대 수십 명, 극병 수십 명만이 그를 따랐는데, 흩어졌던 공손찬의 기병 2천여 명이 원소를 여러 겹으로 포위해 화살을 쏘자 전풍이 원소를 끼고 퇴각하려 했다. 원소가 투구를 땅에 벗어두면서 "대장부가 적 앞에 당해 죽게 되어 담장 틈으로 들어왔으니 어찌 살아날 수 있겠냐?"고 외치고 앞장서서 싸우자 원소의 군사들이 분발했으며, 원소군이 강노를 어지럽게 발사해 많은 이가 죽거나 다쳤고 공손찬의 기병은 원소인지 모르고 점차 물러나 퇴각했다가 국의의 병사들과 마주치자 흩어져 도망갔다.


4. 결과[편집]


이 전투로 인해 공손찬은 원소와 기주를 다툰 싸움에서 불리하게 되자 발해로 패주했다가 공손범과 함께 계로 돌아와서, 자신을 견제하는 유주목 유우가 있는 계현의 큰 성 동남쪽에 작은 성을 쌓아 유우와 더욱 반목하였다.

원소는 최거업을 보내 고안을 포위했지만 함락하지 못하고 남쪽으로 돌아가는 것을 본 공손찬이 최거업을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고 평원까지 남진하고 전해와 유비를 청주 제(濟)국에 보냈으나 결국 용주에서 패하고 조정에서 칙사가 와서 중재하자 정전하면서 공손찬은 기주를 포기하게 된다.


5. 창작물에서[편집]


카츠마타 토모하루 삼국지에서는 스킵되었다. 지못미.


5.1. 삼국지연의[편집]


동탁 18로 제후군 (삼영전여포) 국면이 지난 후, 처음으로 등장하는 제후 간 전투로 비중 있게 등장한다. 대의를 겉으로 내세우면서도 음흉한 모략을 쓰는 것도 거리끼지 않지만, 나름대로의 군략과 카리스마를 보이는 원소, 위세는 여전하지만 스스로의 성격적 한계로 몰락의 단초를 보이는 유비의 옛 친우 공손찬, 공손찬의 요청에 따라 전투에 참여하면서도 훗날을 기약하는 유비의 모습이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특히 새로이 등장하는 조운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처음 등장하는 전투이다.

공손찬, 원소가 서로 기주의 영유권을 나눠가지자고 했다가 원소가 이를 어기는데, 공손찬이 공손월을 보내 항의하자 동탁의 군사가 죽인 것을 위장해 공손월을 죽이면서 공손찬, 원소가 싸우게 된다. 원소군의 상장인 문추가 공손찬을 압도하나, 조운에게 저지당한다.

공손찬이 원소를 힐책하자 원소의 상장인 문추가 공손찬과 겨루는데, 공손찬이 문추를 이기지 못하고 달아나고 만다. 그 뒤 4명의 부장들이 공손찬을 구하려 하나, 문추가 1명을 죽이자 모두 도망치고 문추가 공손찬을 궁지로 몰아넣으나, 조운에게 저지당하고 만다.

이후 공손찬군에서는 엄강을 선봉대, 원소군에서는 안량, 문추 등을 선봉대로 세우는데, 국의가 활잡이들에게 화살을 막는 방패에 엎드리게 했다가 포 소리가 울리면서 화살을 쏘게 한다. 원소군에서 일제히 화살을 날리자 엄강은 급히 돌아서려다가 국의에게 직접 칼을 맞고 죽으며, 원소군이 승리하면서 국의가 후군으로 달려오자 조운이 나서서 국의를 죽인다. (물론 실제 역사상 국의는 전사하는 것이 아니라 숙청당하는 것으로 최후를 맡지만, 나관중의 신캐 보정으로 조운의 전공으로 각색된 것.) 국의가 죽은 것에 공손찬군의 기세가 올라 반격하자 원소군이 패배하고 조운이 돌격했으며, 원소는 방심하다가 공손찬의 군사가 몰려와 포위되자 전풍이 담에 숨으라고 했지만 원소가 "대장부는 싸우다 죽는 것이 소원인데 담 안에 들어가 살기를 바라겠냐?"고 외치자 원소군이 분발하자 조운은 결국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또한 안량, 문추 등이 각각 군사를 이끌고 오자 양측의 군사는 어지럽게 싸웠고 공손찬군은 원소군에게 쫓겨 물에 빠져 죽는 자가 나오는 등 피해가 컸으며, 유비, 관우, 장비 등이 공손찬을 돕기 위해 원소를 공격한다. 이에 원소는 겁을 먹고 보도를 떨어뜨리고 달아났고 원소의 부하들은 원소를 구해 다리를 건너 달아났으며, 이후 한 달 동안 서로 대치하다가 이를 들은 동탁의 모사 이유가 동탁에게 이들을 중재할 것을 제의하였고, 조정에서 칙사가 와서 중재하자 정전을 한다.


5.2. 삼국지 시리즈[편집]


공손찬과 원소의 대립이 주된 주제가 되는 2~3 시나리오에(1~2시나리오는 보통 황건의 난 또는 18로 제후군을 다룬다) 서는 항상 비중있게 소개되며, 게임 내 역사 이벤트로 구현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시나리오 소개 시에는 전투의 경과를 상세히 소개한다. 특히 역사 이벤트가 강화된 삼국지 10에서는 계교전투의 전 과정이 스크립트로 상세하게 표시되며, 전투 결과까지 그대로 반영된다. 다만, '계교'(界橋)를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 한자로 잘못 이해하여 '국경다리'로 번역한 발번역은 오래 회자된다.


5.3. 삼국지 영걸전[편집]


원소를 퇴각시키거나 군량고를 빼앗으면 승리하는 것으로 나온다. 원소군은 총 4층구조로 이루어진 대 부대인데, 선봉은 저수를 중심으로 궁병, 적병 위주의 병력이고, 중견은 문추[3], 국의 등이 있는 기병대, 중군은 원소, 전풍, 초촉 등이 있는 보병, 궁병대, 후군은 군량고를 지키는 곽도 외 일부 보병부대이다. 군단의 구성은 앞 시나리오에 어느 전장을 통과했는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배경은 원소군의 병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상황에서 진행되며 아군은 끽해야 5명인데 그중 간옹과 관순은 3류 문관형 능력치라 약하고 유비는 최전선에 투입하기 부담스럽다. 시작부터 공손찬군의 장수 진장이 문추에게 사망한다. 이어서 문추가 공손찬을 공격하려고 하자 조운이 나타나 문추를 물러가게 하고 유비, 관우, 장비의 원군이 도착한다. 여기서 조작 가능한 부대는 아군 최대 5부대, 우군으로 공손찬, 주비, 조운이 참여한다. 아무리 우수한 장수인 조운을 포함한 우군이 약간 가세했다지만 우군의 경우는 템빨도 없고, 지능도 좋지 않아서 쉽게 다굴빵에 녹아버릴 뿐만 아니라, 괜히 적군의 막타를 쳐서 경험치를 스틸해가거나 적군에 돌격하여 어그로를 끄는 등 트롤링을 하기 일쑤이다.

정리하자면 공손찬군은 공손찬, 주비, 진장. 원소군은 거록을 통과하면 네임드만 원소, 전풍, 곽도, 저수, 진림, 진진, 초촉, 장남, 허유, 문추, 국의가 참전하는데 이 정도면 양호하다. 직전 전투에서 청하를 통과하면 저기에서 국의와 진진이 빠지는 대신 그들보다 기본 능력치가 훨씬 우월한 안량과 장합이 레벨10으로 등장하며 봉기는 레벨8 심배와 고람은 레벨7로 등장한다. 지금 거론한 장수들은 고람을 제외하면 모두 청공검과 오자병법서를 가지고 있다. 그나마 제작자의 실수였는지 고람과 국의는 청공검과 오자병법서가 없다.

거록 전투와 청하 전투 중에선 청하 전투 쪽이 압도적으로 더 쉽다. 때문에 영걸전 초보들은 뭣 모르고 거록 전투에 나섰다가 몇번 실패하면 청하 전투로 우회하기 마련인데, 이 경우 지옥이 펼쳐진다.

거록을 통과했다면 그럭저럭 정면승부를 하거나 군량고를 노리는게 고수라면 할 만하지만, 청하를 통과하면 말그대로 2번 목적인 유비가 군량고로 돌아가거나[4] 정면승부로 전체 경험치 50 포기하고 원소를 노리지 않는 이상 클리어가 어렵다. 장판파[5]나 업 전투[6]는 골로보내는 수준. 극초반이라 보급체계도 정비되지 않았고, 폭탄처럼 상황을 타개할 만한 사기템도 없고, 체력과 사기를 보충할 수 있는 성채나 마을은 전장의 하단중앙에 가야 있는데, 적군이 깔려 있어 쓰기 어렵기 때문에 청하를 경과한 계교 전투를 영걸전 최고 난이도로 꼽는 유저도 있다.

특히 청하 루트를 걸쳐 왔다면 계교 전투는 일기토로 적 총대장을 잡을 수 없이 정면승부를 요구하는 첫 전투가 되기 때문에 관우와 장비의 일기토를 믿고 이전 전투들을 해결해왔던 초보들을 좌절하게 하였다. 만약 그보다 앞 루트에서도 신도성이 아닌 광천을 골라서 광천-청하-계교로 온 플레이어라면 그야말로 불지옥을 맛 볼 수 있다.[7] 원소야 병맛능력이지만 레벨이 무려 13에다 청강검과 오자병법서를 껴서 잘키운 관우 장비 번궁이 맞아도 쓰린 수준이면서 유비는 40~50% 정도로 아프고,[8] 특히 간옹이 맞으면 전체 병력의 70% 빠지는 절망 수준이다.

아군 중 어느 부대든, 국의/문추가 있는 중군라인쪽으로 돌파하게 되면 전풍은 원소에게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진언하는 트리거가 나오게 되고, 원소는 선봉대에게 돌격을 개시하게 하며, 장비가 문추와 맞붙으면 문추를 퇴각시키고 원소군의 선봉대를 돌파하면 전풍이 원소에게 적이 상당한 전력으로 싸운다면서 이쪽으로 온다고 하자 원소가 이끄는 후군이 돌격하기 시작한다.

원소를 퇴각시키지 않은 채로 후군을 돌파해 군량고 쪽으로 다가가면 곽도가 군량고를 빼앗기 위해 진영으로 간다는 것을 알리고, 적이 군량고를 우선적으로 지키는 쪽으로 방침이 바뀌게 된다.

턴을 40턴이나 주기 때문에, 적을 빠른 전멸 시킬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좋다면, 원소 외 본군을 모두 때려잡은 뒤 남은 원소를 성채나 마을에 가둬놓고 회복될 때마다 두드려패면서 턴을 넘기다가, 30턴쯤에 군량고로 이동해서 원소를 퇴각시키지 않고 군량고까지 점령하는 플레이가 가능하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레벨 노가다는 필수적이고, 간옹이나 번궁을 책략을 사용 가능한 레벨까지 키워 둔다면 한결 더 수월해진다. 핵심은 방어 효율이 가장 좋은 관우를 몰빵으로 키워 두어서 고기방패로 세워둔 다음에, 감당 가능한 순서로 적을 각개격파 하는 것. 국의와 문추의 중군을 이 방법으로 미리 돌파해서 중앙 성채까지 접근한다면, 손상이 큰 부대를 성채에서 회복시켜가며 버티고 회복아이템을 적절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본군이 전부 돌격하기 전에 전열을 가다듬고 정면돌파가 가능하다. 고인물 수준의 유저들은 여기에서 등장 캐릭터 평균레벨을 8 이상으로 키우고, 최대 레벨 장수는 적 총사령관인 원소의 레벨(13)까지 돌파하기도 한다.

그래도 레벨 노가다 없이 쉬운 클리어를 노리면 윗쪽 숲으로 아군을 보내 군량고를 탈환하는 것이 좋다. 의외로 이 방법을 사용하면 거록/청하 난이도 차이도 없는데, 안량, 장합과 싸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원소군이 전진한다고 메시지가 떠도 본대는 문추가 있던 요새까지만 전진하기 때문.[9] 즉 거리만 유지하면 적 본대도 움직이지 않는다. 특히 턴이 매우 많아서 전방을 정리한 뒤 우회할 시간은 넘치니, 앞쪽 보물고에서 화룡서를 얻어 우회부대에 주면 된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유비가 군량고 입구로 접근해야 적이 철수하기 시작하고, 승리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10] 유비는 담장 왼쪽 보물을 먹고 기다리면서 나머지가 화룡서를 쓰면서 입구를 밀면 된다. 그 후 유비를 군량고로 보내면서 나머지는 곽도를 잡고, 관우/장비는 뒤늦게 철수하는 적 본대 뒤에서 구경하다 문추쪽 보물고(장창)까지 털면 OK.


5.4.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편집]


전투가 벌어진 원인은 삼국지연의와 동일하지만 두 차례 계교에서 싸운 것으로 나오는데, 처음에는 공손찬이 원소군을 향해 돌격했다가 풀숲에서 매복하고 있던 문추의 부대에게 공격을 받아 패하자 문추가 공손찬을 공격하지만 조운이 문추를 상대해 물러가게 공손찬을 구해준다.

두번째는 공손찬이 백마의종으로 펼치기로 하고 부하들이 조운은 전에 원소의 부하였다는 이유로 주의하라고 하자 조운이 병력 5백을 이끌게 하면서 후방에 배치하는데, 원소군은 공손찬이 본진 쪽으로 들어오도록 일부러 비워두면서 안량, 문추 등을 각기 좌우에 매복시켜두고 공손찬군의 속도를 줄이기 위해 함정으로 밧줄을 설치했다.

공손찬군이 밧줄로 인해 주춤하는 틈을 타 안량, 문추 등이 이끄는 매복한 군사들이 포위당하자 패하는데, 조운은 병사들과 함께 상황을 지켜보다가 아군이 모두 물러나고자 적이 오는 것을 보고 병사들에게 화살을 쏘게 하면서 원소군을 막아내는 동안에 유비, 관우, 장비 등이 원군으로 도착한다. 병사들이 관우, 장비 등의 용맹에 달아나자 원소가 도망가는 것을 보고 병사들에게 물었다가 관우, 장비가 왔음을 들었다가 그들의 용맹을 보고 철수하는 것이 낫겠다고 여긴다.

그러나 국의가 이 기회를 놓치면 공손찬을 제거할 수 없다고 하면서 장비에게 달려들다가 죽으며, 국의가 죽은 것을 본 원소는 철수한다. 이후에도 한 달간 싸워 원소군이 불리한 상태였지만 양측 모두 힘이 많이 소모되었고 동탁이 칙사를 보내서 양 측은 정전을 맺는다.


5.5. 화봉요원[편집]


관동 연맹이 와해되어 돌아가는 길에 원소가 공손찬에게 한복을 공격해 기주를 나누자고 제안하거나 공손찬이 한복을 공격하기 위해 출병하자 원소가 한복을 구한다는 이유로 업성을 기습해 빼앗는 것 자체는 연의와 비슷하다.

그러나 공손찬이 자신의 몫을 요구하러 업성으로 오는 것을 이용해 원방이 복병을 배치해 공손찬의 퇴로를 막았으며, 잔병은 여포의 요구로 동탁의 암살을 돕기 위해 가던 도중에 이 전투에 휘말리는 것으로 나와 소맹이 원소군의 자왕이 이끄는 군사들의 공격을 받아 붙잡힌다.

요원화소맹 일행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을 알고 소맹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데, 공손찬군의 병사들은 원소군에게 일방적으로 학살을 당한 상황이었다. 자왕이 원소의 명에 따라 높은 곳에 올라가 화살을 쏴서 공손찬군을 죽이려고 했지만 요원화를 발견하고 자신에게 부장에게 군사를 지휘하도록 하면서 자왕은 요원화에게 간다.

자왕은 요원화에게 살해당하고 자왕이 이끌던 군사를 지휘하던 자왕의 부장도 곽앙, 장뢰의 습격으로 살해당했으며, 요원화는 자왕으로 위장해 원소 근처로 다가가 그를 죽이려 했지만 문추에게 저지당하면서 그와 싸운다. 원소군은 자왕이 배반했다고 여겨 자왕이 이끄는 병사들을 공격했고 그 틈에 공손찬, 소맹 등은 그 현장에서 달아나는 것에 성공했으며, 요원화는 문추와 싸우다가 그 자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자 달아나면서 자왕을 부르는 척 문추를 끌여들여 원소를 죽일 기회가 되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문추가 속아 달아났지만 안량이 나타나서 문추를 돌아오게 하고 요원화를 공격하는데, 안량은 요원화를 자왕의 동생인 자왕이라 거짓말을 치고 이에 요원화가 자룡이라고 했지만 자룡은 3년 전에 죽은 사람이라 안량은 요원화가 공손찬의 수하를 사칭한 자라는 것을 간파한다. 한편 공손찬은 원소군에게 추격을 당하자 유비, 관우, 장비가 나타나 관우, 장비가 장수 한 명을 죽였으며, 또한 관우, 장비가 유비를 도와주면서 유비가 또 한 명의 장수를 자신이 죽인 것처럼 연출해서 원소군을 겁먹게 해서 도망가게 만든 후에 추격한다.

안량, 문추의 공격으로 요원화는 위기에 몰리지만 사실 일부러 쓰러지는 척 하면서 공격하려는 것이었지만 관우, 장비 등이 나타나 안량, 문추를 공격해 압도하면서 유비가 안량, 문추에게 칼을 들이대며, 안량, 문추는 소문과는 달리 여포를 패배시킨 것은 유비가 아니라 관우, 장비였다는 것을 간파한다. 그러나 원소는 그 현장에 뒤늦게 도착해 병사들과 함께 유비가 안량, 문추를 패배시킨 줄 알고 유비에게 자신들의 관계가 있는 것을 오해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유비가 원소에게 일부러 아첨하는 식으로 말해 원소군을 물러가게 한다.


6. 관련 항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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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봉(800 명), 강노(1,000 명) 외 보병 수만 명으로 기술되어있다.[2] 계교에 흐르던 하천 명칭이 반하여서 반하전투 또는 반하교 전투로 표기되는 경우가 있다.[3] 문추는 원래 선봉이었지만 조운에게 한 번 깨지고 중견으로 후퇴한다.[4] 그런데 이것도 쉽지는 않은 게 에이스인 관우, 장비는 기병대라 숲을 지날 수 없고, 그나마 숲을 통과 가능한 세 부대 중에서 간옹은 궁병이라 군량고를 지키는 보병대들에게 상성에서 밀린다. 그렇다고 광천을 통과해서 한영, 곽적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5] 대가가 뼈아프긴 하지만 최소한 적토마나 적로를 백성에게 준다는 쉬운 선택지가 있다.[6] 인공지능이 그다지 공격적이지 않아서 각개격파가 용이하다.[7] 광천 루트는 초반의 에이스 번궁도 못 얻고 경험치 50 보너스도 없다.[8] 유비만 잘 키워뒀다면 특별히 아프진 않겠지만 견제노가다를 위해 동생들에게 경험치 양보하는 게 영걸전의 정석이다.[9] 원래 있던 문추 부대는 돌진하니 장비 일기토를 노리자.[10] 군량고 왼쪽에 있어도 반응하지 않는다. 숲을 나온 뒤 입구 보병들과 같거나 아래줄로 내려가면 반응.